전후맥락
루소에게 자연상태 속의 인간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다. 그는 문명인과 달리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자기애(自己愛)를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는 이기심(利己心)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루소는 문명인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계기는 자신의 소유에 대한 생각이 싹튼 순간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소유가 생겨나자 인간은 경쟁적으로 물질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부자들은 이제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제정하고 불평등의 상태를 사회적으로 제도화하였다. 자연상태에서 자유로웠던 인간은 사회상태 속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음 글에서 루소는 이러한 변화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고전본문
처음으로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꺼야!’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이것을 순진하게도 믿을 것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시민사회의 진정한 창시자였다. 말뚝들을 뽑아내고 구멍을 메우고 사람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조심하시오. 열매들은 모두의 것이고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당신은 끝장이오!’라고 부르짖는 자가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불행, 공포들에서 인간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유의 관념이 인간의 정신 속에서 하루 아침에 형성되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관념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상태의 끝에 이르기 전에 큰 진보를 이루었었고, 많은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며 그것들을 증대시켰음이 틀림없다. (중략)
인간이 소박한 오두막에 만족하는 한, 식물이나 동물의 가시로 가죽옷을 꿰매고, 깃털이나 조개껍질로 자신을 치장하고, 몸을 다양한 색깔로 칠하고, 활과 화살을 다듬거나 장식하고, 날카로운 돌로 어선들과 소박한 악기를 깍는 것에 만족하는 한, 간단히 말해서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몰두하고 여러 손들의 협력이 필요 없는 일들에만 힘쓰고 있는 한, 그들은 그들의 본성을 따라 자유롭고, 건강하고, 선하고 행복하게 살았었고, 그들은 서로 자유로운 교류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두 사람을 위한 식량을 한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자 평등한 관계가 사라지고, 소유가 생겨나고, 노동이 불가피해지고 거대한 숲이 인간의 땀으로 일구어야 할 아름다운 평야로 변하게 되었고, 거기서 금세 노예 상태와 비참함이 싹터 수확물들과 함께 커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장 자끄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제2부 중에서-
토론하기
1. 루소는 왜 소유하는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까? 그리고 그의 평가는 인간에 대한 정당한 평가입니까? “인간이 사회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존 로크(John Locke)의 생각과도 비교하여 생각해 봅시다.
2. 자신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 불평등의 구조가 생겨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루소의 진단은 올바르다고 생각하십니까?
3. 우리가 사는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라면 이 나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해결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루소의 입장에서 또는 루소와는 다른 입장에서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자연(自然)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원래 모습을 뜻하고 인위(人爲)의 반대말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본모습이란 어떤 상태일까? 인간에 국한해 생각해 본다면 이기적이고 악한 상태가 인간의 원래 모습일까, 아니면 이타적이고 선한 상태가 인간의 원래 모습일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윗글의 저자인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루소는 홉스가 상정한 자연적 상태는 현재 경험하는 문명화된 사회의 상태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타락한 사회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함께 모여 살면서 문명을 이루기 이전의 상태를 진정한 자연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때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이었다. 그는 기본적인 본능의 욕구가 채워지면 만족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상대적인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사는 분열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사는 온전한 인간이었다.
자연상태의 인간도 기본적으로 자기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자기애(自己愛)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감정으로 타인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이기심(利己心)과는 구별되는 감정이다.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同情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전한 자기 보존 본능이 나쁜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억제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자연상태의 인간은 가뭄, 추위, 무더위 등에 맞서서 생존하기 위해서 지성을 점차 계발해 나간다. 인간은 한곳에 머물러 살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농업 활동을 하게 되었고 야금술*이 발달하여 더 많은 생산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상태에서 갖추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자질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은 점점 줄어들고 타인과의 비교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회에는 계급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제도가 생겨났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는 자연상태 속의 인간이 루소에게는 더욱 온전하고 행복한 인간이다.
하지만 역사를 거꾸로 돌려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루소는 이미 인간이 처해 있는 사회 상태 속에서 자연상태 속에서 갖고 있었던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는 사회 계약론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의 상태를 타파하려 했고,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적 본성에 따른 교육 철학을 제시함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려고 하였다.
*야금술(冶金術): 광석에서 금속을 걸러내는 기술
키워드
동정심, 불평등, 사회 상태, 시민 사회, 이기심, 자연 상태, 지성
전후맥락
루소에게 자연상태 속의 인간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다. 그는 문명인과 달리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자기애(自己愛)를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는 이기심(利己心)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루소는 문명인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계기는 자신의 소유에 대한 생각이 싹튼 순간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소유가 생겨나자 인간은 경쟁적으로 물질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부자들은 이제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제정하고 불평등의 상태를 사회적으로 제도화하였다. 자연상태에서 자유로웠던 인간은 사회상태 속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음 글에서 루소는 이러한 변화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고전본문
처음으로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꺼야!’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이것을 순진하게도 믿을 것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시민사회의 진정한 창시자였다. 말뚝들을 뽑아내고 구멍을 메우고 사람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조심하시오. 열매들은 모두의 것이고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당신은 끝장이오!’라고 부르짖는 자가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불행, 공포들에서 인간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유의 관념이 인간의 정신 속에서 하루 아침에 형성되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관념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상태의 끝에 이르기 전에 큰 진보를 이루었었고, 많은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며 그것들을 증대시켰음이 틀림없다. (중략)
인간이 소박한 오두막에 만족하는 한, 식물이나 동물의 가시로 가죽옷을 꿰매고, 깃털이나 조개껍질로 자신을 치장하고, 몸을 다양한 색깔로 칠하고, 활과 화살을 다듬거나 장식하고, 날카로운 돌로 어선들과 소박한 악기를 깍는 것에 만족하는 한, 간단히 말해서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몰두하고 여러 손들의 협력이 필요 없는 일들에만 힘쓰고 있는 한, 그들은 그들의 본성을 따라 자유롭고, 건강하고, 선하고 행복하게 살았었고, 그들은 서로 자유로운 교류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두 사람을 위한 식량을 한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자 평등한 관계가 사라지고, 소유가 생겨나고, 노동이 불가피해지고 거대한 숲이 인간의 땀으로 일구어야 할 아름다운 평야로 변하게 되었고, 거기서 금세 노예 상태와 비참함이 싹터 수확물들과 함께 커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장 자끄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제2부 중에서-
토론하기
1. 루소는 왜 소유하는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까? 그리고 그의 평가는 인간에 대한 정당한 평가입니까? “인간이 사회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존 로크(John Locke)의 생각과도 비교하여 생각해 봅시다.
2. 자신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 불평등의 구조가 생겨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루소의 진단은 올바르다고 생각하십니까?
3. 우리가 사는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라면 이 나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해결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루소의 입장에서 또는 루소와는 다른 입장에서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자연(自然)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원래 모습을 뜻하고 인위(人爲)의 반대말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본모습이란 어떤 상태일까? 인간에 국한해 생각해 본다면 이기적이고 악한 상태가 인간의 원래 모습일까, 아니면 이타적이고 선한 상태가 인간의 원래 모습일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윗글의 저자인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루소는 홉스가 상정한 자연적 상태는 현재 경험하는 문명화된 사회의 상태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타락한 사회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함께 모여 살면서 문명을 이루기 이전의 상태를 진정한 자연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때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이었다. 그는 기본적인 본능의 욕구가 채워지면 만족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상대적인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사는 분열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사는 온전한 인간이었다.
자연상태의 인간도 기본적으로 자기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자기애(自己愛)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감정으로 타인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이기심(利己心)과는 구별되는 감정이다.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同情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전한 자기 보존 본능이 나쁜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억제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자연상태의 인간은 가뭄, 추위, 무더위 등에 맞서서 생존하기 위해서 지성을 점차 계발해 나간다. 인간은 한곳에 머물러 살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농업 활동을 하게 되었고 야금술*이 발달하여 더 많은 생산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상태에서 갖추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자질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은 점점 줄어들고 타인과의 비교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회에는 계급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제도가 생겨났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는 자연상태 속의 인간이 루소에게는 더욱 온전하고 행복한 인간이다.
하지만 역사를 거꾸로 돌려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루소는 이미 인간이 처해 있는 사회 상태 속에서 자연상태 속에서 갖고 있었던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는 사회 계약론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의 상태를 타파하려 했고,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적 본성에 따른 교육 철학을 제시함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려고 하였다.
*야금술(冶金術): 광석에서 금속을 걸러내는 기술
키워드
동정심, 불평등, 사회 상태, 시민 사회, 이기심, 자연 상태,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