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사상 문제로 벵센이라는 곳에 수감되어 있던 친구 디드로(Diderot)를 방문하러 가던 중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풍속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를 주제로 한 논문 현상공모를 보게 되었고, 이 공모에 응모하여 대상을 받았다. 바로 이때 쓴 글이 그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글이었다. 여기서 루소는 학문이나 예술 자체가 나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것들이 남용되는 것을 비판한다. 논문 제1부에서 그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사례를 들어 학문이 융성은 국력의 약화를 초래했던 사실을 지적한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은 학문이 인간의 미덕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랫글은 제2부를 시작하는 대목으로 우선 학문이 인간의 악덕에서 생겨났음을 고발한다. 이어서 루소는 진정한 학문은 인류의 참된 행복에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고전본문
인간의 휴식에 반대했던 어떤 신이 학문들을 발명했다는 고대의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그리스에 전해졌다. 이집트인들은 자신의 문명에서 발생한 학문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들은 가까이서 학문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목도했다. 사실, 세계 역사를 보든 불명확한 연대기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든 인간이 학문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 생겨났다는 근거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천문학은 미신에서 태어났으며, 웅변술은 야망, 미움, 아첨, 거짓말에서, 기하학은 탐심에서, 물리학은 헛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도덕마저도 인간의 교만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학문들과 예술들은 우리의 악덕들에서 탄생한다. 만일 그것들이 우리의 미덕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들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의심이 덜할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기원이 가진 결함은 그것들이 연구하는 대상에서 매우 명백히 드러난다. 인간의 불의가 없다면 법학은 어디에 쓸모가 있겠는가? 폭군도 전쟁도 모반자도 없었다면 역사학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의무들과 자연적으로 필요한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조국을 위해 불행한 자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시간을 쓴다면, 누가 자기 인생을 메마른 사색으로 보낼 것인가?
-장 자크 루소,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제2장 中
토론하기
1. 인간의 고귀한 정신 활동의 산물인 학문에 대해서 루소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2. 학교에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3. 한국은 학습 중독 사회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진단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루소의 관점에서 한국 교육 현장의 학습 중독 현상을 비판해 봅시다.
해설읽기
이집트의 신화에 따르면 테우스라는 발명의 신이 기하학, 천문학, 산술학 그리고 특히 문자를 발명했다. 이 신은 당시 이집트의 왕인 타무스에게 문자가 이집트인들을 더 현명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유용한 도구에 대해서 듣자 타무스는 테우스가 발명한 문자가 이집트인들을 진정 현명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기억력이 아닌 문자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무스는 지식이 기억이 아닌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인 문자를 통해서 축적되었을 때 나쁘게 이용될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자와 학문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멸종시키고자 했던 제우스에 대항했고 인간에게 불과 함께 학문,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는 신화가 있다. 불과 문자는 인류를 발전시켰지만 지혜로워진 인간은 욕심이 생겨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을 벌하기 위해서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창조하게 했고, 그녀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주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온갖 불행이 들어 있는 상자을 주었고 그녀는 호기심에 못 이겨서 그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류에게 많은 재앙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 신화도 문자와 학문은 원래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윗글에서 루소는 현명한 타무스 왕처럼 문자와 문자를 수단으로 하는 학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던 학문에 대해서 루소는 왜 조롱하고 있을까? 루소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소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구 사회에서는 학문이 크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생산되었다. 사실, 루소도 지식을 생산하는 학자 중 하나였다. 특히 새로 등장한 근대 과학은 그 이전에 모든 것이 신의 섭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이 신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성적 능력을 토대로 인류가 계속해서 발전해 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감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루소가 학문을 조롱한다는 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
이 글에서 루소는 학문 활동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잘못된 학문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잘못된 학문 뒤에는 인간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은 우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서 생겨났다. 말을 잘하는 기술인 웅변술은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했다.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조차 인간의 교만함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구분함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루소는 학문의 동기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루는 대상도 나쁘다고 생각한다. 법학은 세상이 불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발전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놓고 싸우지 않는다면 이 학문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역사학은 폭군과 전쟁이 없었다면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학문에 대한 루소의 생각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지식을 나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루소는 자족한 삶을 살아가던 개인들이 사회를 이루면서 타락했다고 주장했다. 사회 이전의 상태에서는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지식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사람들은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지식을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미덕을 갖춘 인간이 아니라 영악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루소는 말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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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사상 문제로 벵센이라는 곳에 수감되어 있던 친구 디드로(Diderot)를 방문하러 가던 중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풍속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를 주제로 한 논문 현상공모를 보게 되었고, 이 공모에 응모하여 대상을 받았다. 바로 이때 쓴 글이 그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글이었다. 여기서 루소는 학문이나 예술 자체가 나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것들이 남용되는 것을 비판한다. 논문 제1부에서 그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사례를 들어 학문이 융성은 국력의 약화를 초래했던 사실을 지적한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은 학문이 인간의 미덕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랫글은 제2부를 시작하는 대목으로 우선 학문이 인간의 악덕에서 생겨났음을 고발한다. 이어서 루소는 진정한 학문은 인류의 참된 행복에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고전본문
인간의 휴식에 반대했던 어떤 신이 학문들을 발명했다는 고대의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그리스에 전해졌다. 이집트인들은 자신의 문명에서 발생한 학문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들은 가까이서 학문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목도했다. 사실, 세계 역사를 보든 불명확한 연대기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든 인간이 학문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 생겨났다는 근거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천문학은 미신에서 태어났으며, 웅변술은 야망, 미움, 아첨, 거짓말에서, 기하학은 탐심에서, 물리학은 헛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도덕마저도 인간의 교만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학문들과 예술들은 우리의 악덕들에서 탄생한다. 만일 그것들이 우리의 미덕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들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의심이 덜할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기원이 가진 결함은 그것들이 연구하는 대상에서 매우 명백히 드러난다. 인간의 불의가 없다면 법학은 어디에 쓸모가 있겠는가? 폭군도 전쟁도 모반자도 없었다면 역사학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의무들과 자연적으로 필요한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조국을 위해 불행한 자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시간을 쓴다면, 누가 자기 인생을 메마른 사색으로 보낼 것인가?
-장 자크 루소,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제2장 中
토론하기
1. 인간의 고귀한 정신 활동의 산물인 학문에 대해서 루소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2. 학교에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3. 한국은 학습 중독 사회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진단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루소의 관점에서 한국 교육 현장의 학습 중독 현상을 비판해 봅시다.
해설읽기
이집트의 신화에 따르면 테우스라는 발명의 신이 기하학, 천문학, 산술학 그리고 특히 문자를 발명했다. 이 신은 당시 이집트의 왕인 타무스에게 문자가 이집트인들을 더 현명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유용한 도구에 대해서 듣자 타무스는 테우스가 발명한 문자가 이집트인들을 진정 현명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기억력이 아닌 문자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무스는 지식이 기억이 아닌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인 문자를 통해서 축적되었을 때 나쁘게 이용될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자와 학문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멸종시키고자 했던 제우스에 대항했고 인간에게 불과 함께 학문,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는 신화가 있다. 불과 문자는 인류를 발전시켰지만 지혜로워진 인간은 욕심이 생겨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을 벌하기 위해서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창조하게 했고, 그녀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주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온갖 불행이 들어 있는 상자을 주었고 그녀는 호기심에 못 이겨서 그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류에게 많은 재앙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 신화도 문자와 학문은 원래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윗글에서 루소는 현명한 타무스 왕처럼 문자와 문자를 수단으로 하는 학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던 학문에 대해서 루소는 왜 조롱하고 있을까? 루소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소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구 사회에서는 학문이 크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생산되었다. 사실, 루소도 지식을 생산하는 학자 중 하나였다. 특히 새로 등장한 근대 과학은 그 이전에 모든 것이 신의 섭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이 신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성적 능력을 토대로 인류가 계속해서 발전해 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감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루소가 학문을 조롱한다는 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
이 글에서 루소는 학문 활동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잘못된 학문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잘못된 학문 뒤에는 인간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은 우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서 생겨났다. 말을 잘하는 기술인 웅변술은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했다.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조차 인간의 교만함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구분함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루소는 학문의 동기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루는 대상도 나쁘다고 생각한다. 법학은 세상이 불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발전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놓고 싸우지 않는다면 이 학문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역사학은 폭군과 전쟁이 없었다면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학문에 대한 루소의 생각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지식을 나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루소는 자족한 삶을 살아가던 개인들이 사회를 이루면서 타락했다고 주장했다. 사회 이전의 상태에서는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지식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사람들은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지식을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미덕을 갖춘 인간이 아니라 영악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루소는 말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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