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아킬레우스는 희랍군 최고의 영웅이지만,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를 겪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기세가 오른 트로이군은 헥토르를 앞세워 반격에 나서고 희랍군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세운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우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아킬레우스 대신 그의 무구들을 가지고 참전하지만, 헥토르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갑옷과 무구도 모두 빼앗긴다. 친구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고, 아가멤논과 화해하여 다시금 전쟁에 가담한다. 그 사이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아들이 사용할 새 무구의 제작을 부탁한다. 그러자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의 부탁에 응하여 가장 먼저 방패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인간들의 두 도시가 아주 정교하게 새겨졌다. 그 도시들 중 하나는 평화로운 도시였고, 나머지 하나는 전쟁 중인 도시였다.
고전본문
그는 먼저 크고 튼튼한 방패를 만들었는데
사방에 교묘한 장식을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세 겹의 테를 두르고 은으로 된 멜빵을 달았다.
방패 자체는 다섯 겹이었는데 그는 그 안에
훌륭한 솜씨로 여러 가지 교묘한 형상들을 만들었다.
…(중략)…
거기에 그는 또 필멸의 인간들의 아름다운 두 도시를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식과 잔치들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휘황한 횃불 아래 신부들을 방에서 인도하여
도성 안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축혼가가 높이 울려 퍼졌다.
젊은이들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피리와 포르밍스 소리가 드높았다.
여인들은 각자 자기 집 문간에 서서 감탄하고 있었다.
…(중략)…
또 하나의 도시 주위에서는 양군이 무구들을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중략)…
그리하여 그들은 강둑에서 맞서 싸웠고
청동 날이 박힌 창으로 서로 상대편을 쳤다.
그들 속에는 에리스와 소란과 잔혹한 죽음의 여신이 섞여 있었는데
그녀는 갓 부상당한 자를 산 채로 붙잡는가 하면
부상당하지 않은 자로 붙잡았고 또 죽은 자의 발을 잡고 혼전 속을
끌고 다녔다. 그리하여 죽음의 여신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옷은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우러져 싸웠고 서로 상대편 전사자들의 시신들을 끌고 갔다.
거기에 그는 또 부드러운 묵정밭을 넣었는데
세 번이나 갈아엎은 넓고 기름진 밭이었다.
그 안에서 여러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XVIII, 483-543. passim.
토론하기
(1)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격언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면,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할까?
(2) 우리 모두는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 이 세계는 진정으로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없을지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평화의 의미
만약 고대 희랍의 정신을 플라톤이 가장 잘 보여주는 철학자라면, 희랍인들이 이해하던 평화의 의미로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전쟁의 부재상태로서의 평화이고, 두 번째 는 국가의 부분들이 상호간의 조화를 이룸에 따라서 달성되는 평화이다.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위 두 가지 의미의 평화 개념과 관련지어 살펴보자.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첫 번째 평화 개념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일차적으로 전쟁의 부재 상태로서의 평화와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대립구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에 직면해야 했다. 그리스 청동기에 펠로폰네소스 본토에서 자리를 잡았던 뮈케네인들은 희랍인들의 선조이자 숙련된 전사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희랍어로 작성된 최초의 문자 기록인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희랍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일리아스』는 초기 희랍의 문명이 가진 상무적 성격과 함께 전사 집단임에도 전쟁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으며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시각적으로 대비하여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아킬레우스의 방패 제작 장면이다. 전쟁과 평화를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항대립항으로 묶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항대립항은 반대되는 것을 가까이 놓았을 때 그 차이가 더욱 강조된다는 점을 이용해 양자를 변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인상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평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훗날 철학적 반성이 더해지겠지만, 평화의 의미에 대해 그들의 가장 간단하고 기초적이며 규정은 전쟁의 대척점에 놓이는 것으로서 평화란 전쟁의 부재 상태라는 것이었다. 비록 위작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일종의 철학사전인 위-플라톤의 『정의들』에서도 ‘평화는 적군의 증오로부터의 해방’으로 규정된다. 평화가 전쟁의 대립항이라는 생각은 여러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희랍어는 단어마다 성(性)을 갖는데, 폴레모스와 에이레네는 각기 남성명사와 여성명사다. 이는 남성과 여성을 밀접하게 연관 지을 수 있는 만큼, 희랍인들이 전쟁과 평화 또한 관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에이레네는 3월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데, 3월은 전통적으로 군사작전을 가장 빈번하게 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방패 또한 평화가 전쟁과 연관지어 그것의 대립항으로 이해되곤 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다.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두 번째 평화 개념
두 번째 평화개념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저술한 뒤, 오랜 세월에 걸쳐 철학적 반성이 더해져 다듬어지는 입장인데,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이 두 번째 평화 개념의 단서도 제공하는 듯하다. 전쟁과 평화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할 경우, 둘 사이에는 중간적 상태가 놓여야 할까, 놓이지 않아야 할까? 이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서, 전쟁과 평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평화 개념을 따라 평화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소박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중간항이 없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당장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일상의 소소한 평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간항이 없어도 자신의 입장을 세울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평화 개념을 따라 평화를 국가의 각 부분이 정치·경제·군사·외교의 각 분야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달성되는 이상적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중간항의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들은 당장 전쟁이 멈추었다는 것만으로는 평화가 달성되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제 3의 상태가 있어야 자기 입장을 세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속에는 두 가지 관점이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테티스의 부탁을 받아 아킬레우스의 새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는 방패 안에 정교한 그림을 새겨 넣는다. 전쟁과 평화를 각기 맞이한 인간들의 두 도시가 안쪽에 그려지고 가장 바깥에 오케아노스가 둘러지는 것으로 보아, 헤파이스토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세계의 축소판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가 인간들의 도시를 그리면서 평화로운 도시와 전쟁 중인 도시를 나란히 새겨놓고는 뒤이어 시골 풍경을 그려 넣은 것이 흥미롭다. 도시는 전쟁과 평화의 상태로 양분되어 있지만, 인간 세계 전체가 양분되어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먼저 방패에 그려진 도시를 보자. 도시는 발달한 문명에 의지해 인간이 자신을 욕망을 충족하는데 최적화된 인간 중심적 공간이다. 도시의 모든 것들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속에서 도시에는 일도양단의 이분법이 적용되어 있어 전쟁과 평화 사이에 중간적 상태가 없다. 이곳은 첫 번째 평화 개념이 지배한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요, 평화가 아니면 전쟁이니, 도시는 당장 전쟁이 없는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공간이다. 반면, 시골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인간도 동물도 자연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며 산다. 시골은 그 자체로 평화로운 분위기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인간세계 전체에 대해서는 전쟁과 평화 사이에 중간항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골이 중간항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세계에 두 번째 평화 개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즉, 단순히 전쟁의 반대로서가 아니라, 전쟁도 아니고, 중간적 상태도 아닌, 국가의 이상적 상태로서의 참된 평화의 단서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를 ‘돼지들의 도시’로 부르며 그런 곳에서는 전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반면, 필요한 만큼만 욕망을 충족하면서 사는 ‘최소 한도의 도시’ 부르며 그러한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자리잡는다고 설명하는 소크라테스를 『국가』 VI권에서 보게 된다. 어쩌면 플라톤보다 훨씬 앞서 활동했던 호메로스가 훗날 철학적 반성을 통해 수립될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미리 선취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
이항대립, 일리아스, 전쟁, 평화, 호메로스
전후맥락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아킬레우스는 희랍군 최고의 영웅이지만,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를 겪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기세가 오른 트로이군은 헥토르를 앞세워 반격에 나서고 희랍군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세운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우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아킬레우스 대신 그의 무구들을 가지고 참전하지만, 헥토르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갑옷과 무구도 모두 빼앗긴다. 친구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고, 아가멤논과 화해하여 다시금 전쟁에 가담한다. 그 사이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아들이 사용할 새 무구의 제작을 부탁한다. 그러자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의 부탁에 응하여 가장 먼저 방패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인간들의 두 도시가 아주 정교하게 새겨졌다. 그 도시들 중 하나는 평화로운 도시였고, 나머지 하나는 전쟁 중인 도시였다.
고전본문
그는 먼저 크고 튼튼한 방패를 만들었는데
사방에 교묘한 장식을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세 겹의 테를 두르고 은으로 된 멜빵을 달았다.
방패 자체는 다섯 겹이었는데 그는 그 안에
훌륭한 솜씨로 여러 가지 교묘한 형상들을 만들었다.
…(중략)…
거기에 그는 또 필멸의 인간들의 아름다운 두 도시를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식과 잔치들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휘황한 횃불 아래 신부들을 방에서 인도하여
도성 안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축혼가가 높이 울려 퍼졌다.
젊은이들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피리와 포르밍스 소리가 드높았다.
여인들은 각자 자기 집 문간에 서서 감탄하고 있었다.
…(중략)…
또 하나의 도시 주위에서는 양군이 무구들을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중략)…
그리하여 그들은 강둑에서 맞서 싸웠고
청동 날이 박힌 창으로 서로 상대편을 쳤다.
그들 속에는 에리스와 소란과 잔혹한 죽음의 여신이 섞여 있었는데
그녀는 갓 부상당한 자를 산 채로 붙잡는가 하면
부상당하지 않은 자로 붙잡았고 또 죽은 자의 발을 잡고 혼전 속을
끌고 다녔다. 그리하여 죽음의 여신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옷은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우러져 싸웠고 서로 상대편 전사자들의 시신들을 끌고 갔다.
거기에 그는 또 부드러운 묵정밭을 넣었는데
세 번이나 갈아엎은 넓고 기름진 밭이었다.
그 안에서 여러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XVIII, 483-543. passim.
토론하기
(1)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격언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면,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할까?
(2) 우리 모두는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 이 세계는 진정으로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없을지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평화의 의미
만약 고대 희랍의 정신을 플라톤이 가장 잘 보여주는 철학자라면, 희랍인들이 이해하던 평화의 의미로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전쟁의 부재상태로서의 평화이고, 두 번째 는 국가의 부분들이 상호간의 조화를 이룸에 따라서 달성되는 평화이다.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위 두 가지 의미의 평화 개념과 관련지어 살펴보자.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첫 번째 평화 개념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일차적으로 전쟁의 부재 상태로서의 평화와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대립구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에 직면해야 했다. 그리스 청동기에 펠로폰네소스 본토에서 자리를 잡았던 뮈케네인들은 희랍인들의 선조이자 숙련된 전사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희랍어로 작성된 최초의 문자 기록인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희랍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일리아스』는 초기 희랍의 문명이 가진 상무적 성격과 함께 전사 집단임에도 전쟁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으며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시각적으로 대비하여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아킬레우스의 방패 제작 장면이다. 전쟁과 평화를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항대립항으로 묶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항대립항은 반대되는 것을 가까이 놓았을 때 그 차이가 더욱 강조된다는 점을 이용해 양자를 변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인상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평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훗날 철학적 반성이 더해지겠지만, 평화의 의미에 대해 그들의 가장 간단하고 기초적이며 규정은 전쟁의 대척점에 놓이는 것으로서 평화란 전쟁의 부재 상태라는 것이었다. 비록 위작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일종의 철학사전인 위-플라톤의 『정의들』에서도 ‘평화는 적군의 증오로부터의 해방’으로 규정된다. 평화가 전쟁의 대립항이라는 생각은 여러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희랍어는 단어마다 성(性)을 갖는데, 폴레모스와 에이레네는 각기 남성명사와 여성명사다. 이는 남성과 여성을 밀접하게 연관 지을 수 있는 만큼, 희랍인들이 전쟁과 평화 또한 관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에이레네는 3월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데, 3월은 전통적으로 군사작전을 가장 빈번하게 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방패 또한 평화가 전쟁과 연관지어 그것의 대립항으로 이해되곤 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다.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두 번째 평화 개념
두 번째 평화개념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저술한 뒤, 오랜 세월에 걸쳐 철학적 반성이 더해져 다듬어지는 입장인데, 아킬레우스의 방패는 이 두 번째 평화 개념의 단서도 제공하는 듯하다. 전쟁과 평화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할 경우, 둘 사이에는 중간적 상태가 놓여야 할까, 놓이지 않아야 할까? 이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서, 전쟁과 평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평화 개념을 따라 평화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소박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중간항이 없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당장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일상의 소소한 평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간항이 없어도 자신의 입장을 세울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평화 개념을 따라 평화를 국가의 각 부분이 정치·경제·군사·외교의 각 분야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달성되는 이상적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중간항의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들은 당장 전쟁이 멈추었다는 것만으로는 평화가 달성되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제 3의 상태가 있어야 자기 입장을 세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속에는 두 가지 관점이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테티스의 부탁을 받아 아킬레우스의 새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는 방패 안에 정교한 그림을 새겨 넣는다. 전쟁과 평화를 각기 맞이한 인간들의 두 도시가 안쪽에 그려지고 가장 바깥에 오케아노스가 둘러지는 것으로 보아, 헤파이스토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세계의 축소판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가 인간들의 도시를 그리면서 평화로운 도시와 전쟁 중인 도시를 나란히 새겨놓고는 뒤이어 시골 풍경을 그려 넣은 것이 흥미롭다. 도시는 전쟁과 평화의 상태로 양분되어 있지만, 인간 세계 전체가 양분되어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먼저 방패에 그려진 도시를 보자. 도시는 발달한 문명에 의지해 인간이 자신을 욕망을 충족하는데 최적화된 인간 중심적 공간이다. 도시의 모든 것들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속에서 도시에는 일도양단의 이분법이 적용되어 있어 전쟁과 평화 사이에 중간적 상태가 없다. 이곳은 첫 번째 평화 개념이 지배한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요, 평화가 아니면 전쟁이니, 도시는 당장 전쟁이 없는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공간이다. 반면, 시골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인간도 동물도 자연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며 산다. 시골은 그 자체로 평화로운 분위기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인간세계 전체에 대해서는 전쟁과 평화 사이에 중간항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골이 중간항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세계에 두 번째 평화 개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즉, 단순히 전쟁의 반대로서가 아니라, 전쟁도 아니고, 중간적 상태도 아닌, 국가의 이상적 상태로서의 참된 평화의 단서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를 ‘돼지들의 도시’로 부르며 그런 곳에서는 전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반면, 필요한 만큼만 욕망을 충족하면서 사는 ‘최소 한도의 도시’ 부르며 그러한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자리잡는다고 설명하는 소크라테스를 『국가』 VI권에서 보게 된다. 어쩌면 플라톤보다 훨씬 앞서 활동했던 호메로스가 훗날 철학적 반성을 통해 수립될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미리 선취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키워드
이항대립, 일리아스, 전쟁, 평화, 호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