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외항인 페이라이오스에 가서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낯선 벤디스 여신의 축제 행렬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폴레마르코스를 만나 집으로 초대받는다.
그곳에서 폴레마르코스의 부친인 케팔로스를 만나 부유한 재산을 가짐으로써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고, 케팔로스는 올바르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재산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대답을 한다. 이것을 계기로 소크라테스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올바름’이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나누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을 개인도 가질 수 있고 국가도 가질 수 있는데, 작은 것보다 큰 것을 관찰하는 것이 더욱 쉽다며 국가의 차원에서 올바름을 먼저 찾아보기로 하고 가상의 국가를 건설한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을 갖춘 ‘건강한 국가’를 구성해본다. 이 나라는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갖춘 국가로서 구성원들은 올바름 속에서 전쟁을 경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반대로 올바름을 갖추지 못한 ‘돼지들의 국가’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 나라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구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다.
고전본문
“그렇다면 우리는 그 국가를 다시금 더욱 확대해야만 하네. 왜냐하면 건강한 국가는 더 이상 충분치 못하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초과하도록 그것의 규모를 부풀리고 숫자를 채워 넣어야 해. 예컨대, 사냥꾼들의 부류 전체와 예술가들을 넣어야해. 이들 가운데 다수가 형태와 색채에 관여하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음악에 종사하지. 시인들과 그들의 조수들, 음송인들, 배우들, 합창 가무단원들, 연출가들이 그렇다네. 온갖 종류의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 특히 여성들의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봉사자들을 필요로 하게 될 거야. 자네는 우리가 가정교사, 유모, 보모, 시녀, 이발사를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또 요리사와 육류 전문 요리사는 어떻고? 더 나아가 돼지치기들도 필요하게 되겠지. 앞서 우리가 만든 건강한 국가에는 이러한 것들은 전혀 없었네. 그들은 필요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이것이 필요할거야. 또 수요가 있다면 가축들도 대단히 많이 필요할걸세.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인구를 충분히 먹이기에는 영토가 너무나 작을 걸세. 그런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웃의 영토 중 한 조각을 잘라내야겠구먼. 충분히 목축과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네. 그리고 만약 그들 역시 재화의 획득에 대한 무제한적 욕망에 자기들 스스로를 맡겨버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그들이 우리의 땅을 잘라 가지려 하지 않을까?”
“필연적이네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우리는 다음 단계로 전쟁을 하게 될 테지, 글라우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가 말했네.
“전쟁이 어떤 악하거나 선한 영향을 낳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도록 하세. 하지만 우리가 전쟁의 기원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만큼은, 다시 말해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쁜 재앙이 생길 때, 이것이 생기게 되는 단서는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라는 걸 말일세.” 내가 말했네.
플라톤, 『국가』 II 373b-e.
토론하기
(1)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건강한 국가’와 ‘돼지들의 국가’를 비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2)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건강한 국가’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거나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평화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해 ‘건강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살아가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과한 요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욕구의 절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절제가 바람직한 삶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가 가상 국가를 수립하는 목적은 국가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찾아낸 올바름을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면, ‘올바름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답을 찾게 될 거라는 기대에서다.
인간의 영혼은 세 부분을 갖는다
한 개인의 차원에서 적용되는 올바름과 국가의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올바름이 호환될 수 있다는 생각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대화편을 쓰고 있는 플라톤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각이다. 플라톤은 공동체가 개인으로 구성되는 만큼,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인간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인간의 정체성은 그의 육체보다는 영혼에 있었고, 인간의 영혼은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구의 세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므로 플라톤이 현미경으로 영혼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현미경 대신 논증을 통해서 그러한 결론을 얻는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우선 우리가 몸을 가진 이상, 욕구의 존재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 동일한 것에 대립할 수 없다는 원리를 세운다. A는 자기 자신인 A에 대해서 대립할 수는 없고, A가 아닌 나머지 다른 것들에 대해서만 대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우리의 욕구에 대립하는 경우가 있다. 금식 다이어트 중에 냉장고에서 피자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에 맞서서, 다이어트의 목적을 헤아려 먹지 않으려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성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욕구가 이성을 저버리고 그릇된 대상을 추구할 때 후회와 분노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 감정적 부분은 기개로 분류된다. 이 부분은 우리가 시험을 앞두고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 때, 그것을 향해 화를 내고 대립할 때가 있다는 점에서 욕구와 구분되며, 자신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을 보고 치밀어 오른 분노를 억누르고, 구혼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을 따라 당장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훗날 더 큰 이익을 얻은 오뒷세우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성과도 다르다.
올바른 개인, 올바른 국가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이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구의 세 부분을 갖는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적절한 방식을 따라 조직화된 영혼의 모습을 마부의 비유로 제시한다. 마차를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이 마부의 통제를 받아야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듯이,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도 욕구와 기개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영혼의 세 부분은 자신의 최선의 상태가 되어 각기 고유한 덕목을 낳고, 그것들이 상호 조화를 이룸으로써 올바르고 정의로운 개인이 탄생한다. 즉, 한 인간의 이성은 지혜롭고 기개는 용감하며 욕구는 절제 있을 때, 그 인간은 비로소 올바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 구성과 그것의 바람직한 조직화 방식은 국가론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에게 개인과 공동체는 소우주와 대우주의 유비적 관계를 이루며, 국가는 거대한 개인이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 내에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기개, 욕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국가에서 이성에 해당하는 곳은 통치자 계급이고 기개에 해당하는 것은 수호자 계급이며 마지막으로 욕구에 해당하는 것은 생산자 계급이다. 이들은 마땅히 통치자의 통제 하에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협력할 때 가장 바람직하게 상호 결속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치자는 지혜롭고 수호자는 용감하며 생산자는 절제를 갖추게 되고,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올바른 국가, 정의로운 공동체가 탄생한다.
소크라테스의 국가 설립 시뮬레이션 속 전쟁의 원인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육체의 욕구를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충족하는데 만족하는 ‘건강한 국가’가 평화로운 사회인 반면, 욕구에 대한 무제한적 추구를 허용하는 ‘돼지들의 국가’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전쟁은 문명이 발달 초기 단계를 지나 욕구의 충족과 쾌락을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러 발발한다. 국가가 불필요한 욕구의 충족을 위해 점점 비대해지면,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 넓은 땅을 차지해야만하기 때문에, 결국 주변 국가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고,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것이 필요로 하는 필수물의 충족이 이루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육체의 욕구에 압도되어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도와 이성이 명하는 것 이상을 욕구가 탐하려고 들 때, 그것은 모든 전쟁에 대해서 없애기 어려운 원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는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것은 앞서 들었던 마부의 비유를 가지고 말하자면, 욕구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방종한 상태가 됨으로써, 국가라는 마차가 목적성을 상실하여 말이 이끄는 대로 좌충우돌하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국가, 소크라테스, 전쟁, 평화, 플라톤
전후맥락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외항인 페이라이오스에 가서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낯선 벤디스 여신의 축제 행렬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폴레마르코스를 만나 집으로 초대받는다.
그곳에서 폴레마르코스의 부친인 케팔로스를 만나 부유한 재산을 가짐으로써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고, 케팔로스는 올바르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재산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대답을 한다. 이것을 계기로 소크라테스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올바름’이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나누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을 개인도 가질 수 있고 국가도 가질 수 있는데, 작은 것보다 큰 것을 관찰하는 것이 더욱 쉽다며 국가의 차원에서 올바름을 먼저 찾아보기로 하고 가상의 국가를 건설한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을 갖춘 ‘건강한 국가’를 구성해본다. 이 나라는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갖춘 국가로서 구성원들은 올바름 속에서 전쟁을 경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반대로 올바름을 갖추지 못한 ‘돼지들의 국가’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 나라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구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다.
고전본문
“그렇다면 우리는 그 국가를 다시금 더욱 확대해야만 하네. 왜냐하면 건강한 국가는 더 이상 충분치 못하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초과하도록 그것의 규모를 부풀리고 숫자를 채워 넣어야 해. 예컨대, 사냥꾼들의 부류 전체와 예술가들을 넣어야해. 이들 가운데 다수가 형태와 색채에 관여하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음악에 종사하지. 시인들과 그들의 조수들, 음송인들, 배우들, 합창 가무단원들, 연출가들이 그렇다네. 온갖 종류의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 특히 여성들의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봉사자들을 필요로 하게 될 거야. 자네는 우리가 가정교사, 유모, 보모, 시녀, 이발사를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또 요리사와 육류 전문 요리사는 어떻고? 더 나아가 돼지치기들도 필요하게 되겠지. 앞서 우리가 만든 건강한 국가에는 이러한 것들은 전혀 없었네. 그들은 필요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이것이 필요할거야. 또 수요가 있다면 가축들도 대단히 많이 필요할걸세.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인구를 충분히 먹이기에는 영토가 너무나 작을 걸세. 그런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웃의 영토 중 한 조각을 잘라내야겠구먼. 충분히 목축과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네. 그리고 만약 그들 역시 재화의 획득에 대한 무제한적 욕망에 자기들 스스로를 맡겨버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그들이 우리의 땅을 잘라 가지려 하지 않을까?”
“필연적이네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우리는 다음 단계로 전쟁을 하게 될 테지, 글라우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가 말했네.
“전쟁이 어떤 악하거나 선한 영향을 낳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도록 하세. 하지만 우리가 전쟁의 기원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만큼은, 다시 말해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쁜 재앙이 생길 때, 이것이 생기게 되는 단서는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라는 걸 말일세.” 내가 말했네.
플라톤, 『국가』 II 373b-e.
토론하기
(1)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건강한 국가’와 ‘돼지들의 국가’를 비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2)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건강한 국가’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거나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평화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해 ‘건강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살아가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과한 요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욕구의 절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절제가 바람직한 삶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가 가상 국가를 수립하는 목적은 국가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찾아낸 올바름을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면, ‘올바름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답을 찾게 될 거라는 기대에서다.
인간의 영혼은 세 부분을 갖는다
한 개인의 차원에서 적용되는 올바름과 국가의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올바름이 호환될 수 있다는 생각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대화편을 쓰고 있는 플라톤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각이다. 플라톤은 공동체가 개인으로 구성되는 만큼,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인간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인간의 정체성은 그의 육체보다는 영혼에 있었고, 인간의 영혼은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구의 세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므로 플라톤이 현미경으로 영혼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현미경 대신 논증을 통해서 그러한 결론을 얻는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우선 우리가 몸을 가진 이상, 욕구의 존재는 자명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 동일한 것에 대립할 수 없다는 원리를 세운다. A는 자기 자신인 A에 대해서 대립할 수는 없고, A가 아닌 나머지 다른 것들에 대해서만 대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우리의 욕구에 대립하는 경우가 있다. 금식 다이어트 중에 냉장고에서 피자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에 맞서서, 다이어트의 목적을 헤아려 먹지 않으려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성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욕구가 이성을 저버리고 그릇된 대상을 추구할 때 후회와 분노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 감정적 부분은 기개로 분류된다. 이 부분은 우리가 시험을 앞두고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 때, 그것을 향해 화를 내고 대립할 때가 있다는 점에서 욕구와 구분되며, 자신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을 보고 치밀어 오른 분노를 억누르고, 구혼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을 따라 당장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훗날 더 큰 이익을 얻은 오뒷세우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성과도 다르다.
올바른 개인, 올바른 국가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이 이성과 기개 그리고 욕구의 세 부분을 갖는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적절한 방식을 따라 조직화된 영혼의 모습을 마부의 비유로 제시한다. 마차를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이 마부의 통제를 받아야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듯이,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도 욕구와 기개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영혼의 세 부분은 자신의 최선의 상태가 되어 각기 고유한 덕목을 낳고, 그것들이 상호 조화를 이룸으로써 올바르고 정의로운 개인이 탄생한다. 즉, 한 인간의 이성은 지혜롭고 기개는 용감하며 욕구는 절제 있을 때, 그 인간은 비로소 올바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 구성과 그것의 바람직한 조직화 방식은 국가론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에게 개인과 공동체는 소우주와 대우주의 유비적 관계를 이루며, 국가는 거대한 개인이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 내에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기개, 욕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국가에서 이성에 해당하는 곳은 통치자 계급이고 기개에 해당하는 것은 수호자 계급이며 마지막으로 욕구에 해당하는 것은 생산자 계급이다. 이들은 마땅히 통치자의 통제 하에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협력할 때 가장 바람직하게 상호 결속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치자는 지혜롭고 수호자는 용감하며 생산자는 절제를 갖추게 되고,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올바른 국가, 정의로운 공동체가 탄생한다.
소크라테스의 국가 설립 시뮬레이션 속 전쟁의 원인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육체의 욕구를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충족하는데 만족하는 ‘건강한 국가’가 평화로운 사회인 반면, 욕구에 대한 무제한적 추구를 허용하는 ‘돼지들의 국가’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전쟁은 문명이 발달 초기 단계를 지나 욕구의 충족과 쾌락을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러 발발한다. 국가가 불필요한 욕구의 충족을 위해 점점 비대해지면,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 넓은 땅을 차지해야만하기 때문에, 결국 주변 국가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고,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것이 필요로 하는 필수물의 충족이 이루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육체의 욕구에 압도되어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도와 이성이 명하는 것 이상을 욕구가 탐하려고 들 때, 그것은 모든 전쟁에 대해서 없애기 어려운 원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는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것은 앞서 들었던 마부의 비유를 가지고 말하자면, 욕구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방종한 상태가 됨으로써, 국가라는 마차가 목적성을 상실하여 말이 이끄는 대로 좌충우돌하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