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참전하지만,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를 겪는다. 그가 자신에게 명예의 선물로 주어진 여성 노예 브뤼세이스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명예와 영광을 위해 참전했던 아킬레우스는 이에 격분하여 전열에서 이탈해버린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희랍군 최고의 전사였던 아킬레우스가 자리를 비우자 전세는 점차 불리해져서 결국 희랍군은 궤멸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의 사랑하는 전우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대신해 출전하여 희랍군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지만, 정작 파트로클로스 본인은 트로이 최고 전사인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죽마고우의 전사 소식을 뒤늦게 접한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것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올라 헥토르를 죽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려 한다. 그는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도 곧 죽게 될 운명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명예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출전을 서두른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적들을 도륙하며 파죽지세로 트로이 성문까지 진출하여 헥토르와 조우하고 마침내 헥토르를 죽여 복수를 달성한다. 원한에 사무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시신을 모독한 다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도록 가져가버리지만, 밤중에 적장이자 자식의 원수인 본인을 홀로 찾아온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에게 감동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고전본문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IX, 410-416.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 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강력한 헤라클레스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의 여신과 헤라의 무서운 노여움에 제압되고 말았어요.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트로이아 여인들과 가슴이 불룩한
다르다니에 여인들로 하여금 부드러운 얼굴에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통탄하게 해주고 싶어요. 또 제가 전쟁에서
이미 충분히 쉬었다는 것을 알려주겠어요. 그러니 제 출전을
모정으로 막지 마세요. 저를 설득하지 못하실 거예요.”
XVIII, 114-126.
그를 노려보며 준족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이 개자식아! 무릎이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게 애원하지 마라.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내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 …(중략)…
아니, 설사 다르다노스의 후예인 프리아모스가 그대의 몸무게만한
황금을 달아주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존경스런 어머니는
결코 몸소 낳은 자식인 그대를 침상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개 떼와 새 떼가 그대를 남김없이 뜯어먹게 되리라!” …(중략)…
이미 숨을 거둔 그에게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죽어라! 내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시신에서 청동 창을 뽑아
옆에 놓고 어깨에서 피투성이가 된 무구들을 벗기기 시작했다.
XXII, 344-368. passim.
이런 말로 노인은 그의 가슴속에 아버지를 위해 통곡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그는 노인의 손을 잡고 살며시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생각에 잠겨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쓰러져 남자를 죽이는 헥토르를 위해 꺼이꺼이
울었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때로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었다. …(중략)…
그러고 나서 그는 소리 내어 울며 사랑하는 전우의 이름을 불렀다.
“파트로클로스여! 하데스의 집에서라도 내가 고귀한 헥토르를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내주었다고 듣거든 나를 원망 마시오.
그는 욕되지 않을 만큼 몸값을 바쳤으니까요.
그대에게도 나는 그중에서 적당한 몫을 나눠줄 것이오.”
XXIV, 507-595. passim.
토론하기
(1) 아킬레우스는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꼽히고 있고,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되는 등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우리는 아킬레우스의 어떤 면모에서 영웅적 매력을 발견하는 것일까? 아킬레우스라는 개별적인 영웅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2)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영웅은 무엇이었고 영웅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대체로 어떠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일까? 영웅이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조건들을 아킬레우스로부터 추상화해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웅의 모습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인간의 육체로 신적인 가치를 향하다
아킬레우스는 유한한 인간임에도 불멸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웅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영웅적 삶의 완성을 꾀하기 때문이다. 영웅적 삶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G. Nagy에 따르면, 영웅을 의미하는 ‘ἥρως(herōs)’는 ‘ὥρα(hōra)’ 및 여신 헤라와 연관된다. 헤라는 시간, 계절, 특정한 시기, 전성기 등을 의미하는 ‘ὥρα’를 담당하여, 시간과 계절의 여신으로서 적절한 시기 및 절정기와 관련된 문제를 돌본다. 그리고 그것은 영웅적 삶의 완성에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인생의 절정기는 삶의 시간 속에서 발견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은 삶의 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유명한 문학작품을 저술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는 작가로 규정될 것이고, 어떤 나라를 통치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통치자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영웅의 경우에는 다르다. 평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하지만, 영웅의 경우에는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가’하는 문제가 그 영웅의 삶을 규정하고 나아가 완성시킨다. 영웅으로서의 삶이 완성되는 특별한 시간은 삶보다는 죽음의 순간에 놓여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가졌다고 해도 비겁하고 치졸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영웅의 칭호를 받기는 힘들다. 『일리아스』에서 신이 인간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불멸한다는 점이고 아킬레우스는 신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신들처럼 불멸하길 원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대신 차선의 불사를 추구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차선의 불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하며, 영웅의 삶을 완성하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죽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웅에게 죽음은 삶의 절정기여야 한다. 아킬레우스는 신의 자식으로서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인간의 자손으로서 한계와 결함도 갖는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가 자신의 과업으로 운명을 따라 이어지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수단으로 운명과 맞서 싸워 마침내 불멸의 영광을 얻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의 의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구 문화에서 영웅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의미와 인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 가장 저주 언급되는 문헌일 것이다. 그것은 서구 문명의 뿌리를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는데다, 『일리아스』가 고대 희랍의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암기하는 것은 한 사람의 교양을 결정하는 일이었고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나 대강의 내용을 꿰고 있었다. 희랍인들에게 『일리아스』는 단순한 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는 많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영웅의 전형으로 각인되었을 것인데, 그가 가진 영웅적 면모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일리아스』에서 신이 인간과 다른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불멸한다는 점이고, 영웅은 신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처럼 불멸하길 원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대신 ‘차선의 불사’를 추구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들의 노래 속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영웅의 삶을 완성하는 완벽한 시간, 즉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죽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웅에게 죽음은 삶의 절정기여야 한다. 영웅은 신들의 자손으로서 가지고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인간의 자손으로서 한계와 결함도 갖는다. 그 한계와 결함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영웅의 운명적인 과업으로 주어지면, 그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수단으로 그 운명과 맞서 마침내 불멸의 영광을 얻는다. 우리는 이를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영웅은 신의 혈통을 가진 신들의 자손이다. · 영웅은 가사자(可死者)이자 필멸자(必滅者)인 인간이다. · 영웅은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한계와 결함도 보유한다. · 영웅은 삶의 절정기에 완벽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불멸의 영광을 완성한다. |
아킬레우스의 경우, 그는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필멸자와 불멸자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아킬레우스는 신과 인간의 성격을 조금씩 닮아서 가지고 있다. 그는 신들을 닮아 영원하고 소멸하지 않는 가치를 얻길 바라지만, 인간의 피도 흐르는 탓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차선의 불사를 택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서 영원히 기억되는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얻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적장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도 죽게 될 운명임을 알면서도, 그가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살해하자, 친구의 복수를 위해서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적진을 유린하고 끝내 적장 헥토르에게 복수하였다. 그 후 아킬레우스는 홀로 찾아온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에게 감동하여 극적인 화해를 이루어 원수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장례 기간 동안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이 화해를 통해서 전사적 영웅 이상의 인물로 승화되었고 이후 재개된 전투에서 헥토르의 동생인 파리스의 화살에 전사함으로써 자신의 영웅 서사에 마침표를 찍어 오늘날까지 호메로스의 노래 속에 남아 기억되고 있다.
키워드
영웅, 일리아스, 트로이, 헥토르, 호메로스
전후맥락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참전하지만,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를 겪는다. 그가 자신에게 명예의 선물로 주어진 여성 노예 브뤼세이스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명예와 영광을 위해 참전했던 아킬레우스는 이에 격분하여 전열에서 이탈해버린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희랍군 최고의 전사였던 아킬레우스가 자리를 비우자 전세는 점차 불리해져서 결국 희랍군은 궤멸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의 사랑하는 전우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대신해 출전하여 희랍군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지만, 정작 파트로클로스 본인은 트로이 최고 전사인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죽마고우의 전사 소식을 뒤늦게 접한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것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올라 헥토르를 죽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려 한다. 그는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도 곧 죽게 될 운명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명예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출전을 서두른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적들을 도륙하며 파죽지세로 트로이 성문까지 진출하여 헥토르와 조우하고 마침내 헥토르를 죽여 복수를 달성한다. 원한에 사무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시신을 모독한 다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도록 가져가버리지만, 밤중에 적장이자 자식의 원수인 본인을 홀로 찾아온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에게 감동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고전본문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IX, 410-416.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 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강력한 헤라클레스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의 여신과 헤라의 무서운 노여움에 제압되고 말았어요.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트로이아 여인들과 가슴이 불룩한
다르다니에 여인들로 하여금 부드러운 얼굴에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통탄하게 해주고 싶어요. 또 제가 전쟁에서
이미 충분히 쉬었다는 것을 알려주겠어요. 그러니 제 출전을
모정으로 막지 마세요. 저를 설득하지 못하실 거예요.”
XVIII, 114-126.
그를 노려보며 준족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이 개자식아! 무릎이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게 애원하지 마라.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내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 …(중략)…
아니, 설사 다르다노스의 후예인 프리아모스가 그대의 몸무게만한
황금을 달아주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존경스런 어머니는
결코 몸소 낳은 자식인 그대를 침상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개 떼와 새 떼가 그대를 남김없이 뜯어먹게 되리라!” …(중략)…
이미 숨을 거둔 그에게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죽어라! 내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시신에서 청동 창을 뽑아
옆에 놓고 어깨에서 피투성이가 된 무구들을 벗기기 시작했다.
XXII, 344-368. passim.
이런 말로 노인은 그의 가슴속에 아버지를 위해 통곡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그는 노인의 손을 잡고 살며시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생각에 잠겨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쓰러져 남자를 죽이는 헥토르를 위해 꺼이꺼이
울었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때로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었다. …(중략)…
그러고 나서 그는 소리 내어 울며 사랑하는 전우의 이름을 불렀다.
“파트로클로스여! 하데스의 집에서라도 내가 고귀한 헥토르를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내주었다고 듣거든 나를 원망 마시오.
그는 욕되지 않을 만큼 몸값을 바쳤으니까요.
그대에게도 나는 그중에서 적당한 몫을 나눠줄 것이오.”
XXIV, 507-595. passim.
토론하기
(1) 아킬레우스는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꼽히고 있고,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되는 등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우리는 아킬레우스의 어떤 면모에서 영웅적 매력을 발견하는 것일까? 아킬레우스라는 개별적인 영웅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2)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영웅은 무엇이었고 영웅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대체로 어떠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일까? 영웅이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조건들을 아킬레우스로부터 추상화해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웅의 모습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해보자.
해설읽기
인간의 육체로 신적인 가치를 향하다
아킬레우스는 유한한 인간임에도 불멸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웅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영웅적 삶의 완성을 꾀하기 때문이다. 영웅적 삶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G. Nagy에 따르면, 영웅을 의미하는 ‘ἥρως(herōs)’는 ‘ὥρα(hōra)’ 및 여신 헤라와 연관된다. 헤라는 시간, 계절, 특정한 시기, 전성기 등을 의미하는 ‘ὥρα’를 담당하여, 시간과 계절의 여신으로서 적절한 시기 및 절정기와 관련된 문제를 돌본다. 그리고 그것은 영웅적 삶의 완성에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인생의 절정기는 삶의 시간 속에서 발견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은 삶의 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유명한 문학작품을 저술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는 작가로 규정될 것이고, 어떤 나라를 통치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통치자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영웅의 경우에는 다르다. 평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하지만, 영웅의 경우에는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가’하는 문제가 그 영웅의 삶을 규정하고 나아가 완성시킨다. 영웅으로서의 삶이 완성되는 특별한 시간은 삶보다는 죽음의 순간에 놓여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가졌다고 해도 비겁하고 치졸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영웅의 칭호를 받기는 힘들다. 『일리아스』에서 신이 인간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불멸한다는 점이고 아킬레우스는 신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신들처럼 불멸하길 원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대신 차선의 불사를 추구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차선의 불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하며, 영웅의 삶을 완성하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죽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웅에게 죽음은 삶의 절정기여야 한다. 아킬레우스는 신의 자식으로서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인간의 자손으로서 한계와 결함도 갖는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가 자신의 과업으로 운명을 따라 이어지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수단으로 운명과 맞서 싸워 마침내 불멸의 영광을 얻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의 의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구 문화에서 영웅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의미와 인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 가장 저주 언급되는 문헌일 것이다. 그것은 서구 문명의 뿌리를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는데다, 『일리아스』가 고대 희랍의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암기하는 것은 한 사람의 교양을 결정하는 일이었고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나 대강의 내용을 꿰고 있었다. 희랍인들에게 『일리아스』는 단순한 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는 많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영웅의 전형으로 각인되었을 것인데, 그가 가진 영웅적 면모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일리아스』에서 신이 인간과 다른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불멸한다는 점이고, 영웅은 신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처럼 불멸하길 원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대신 ‘차선의 불사’를 추구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들의 노래 속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영웅의 삶을 완성하는 완벽한 시간, 즉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죽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웅에게 죽음은 삶의 절정기여야 한다. 영웅은 신들의 자손으로서 가지고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인간의 자손으로서 한계와 결함도 갖는다. 그 한계와 결함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영웅의 운명적인 과업으로 주어지면, 그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수단으로 그 운명과 맞서 마침내 불멸의 영광을 얻는다. 우리는 이를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영웅은 신의 혈통을 가진 신들의 자손이다. · 영웅은 가사자(可死者)이자 필멸자(必滅者)인 인간이다. · 영웅은 비범한 능력을 갖는 동시에 한계와 결함도 보유한다. · 영웅은 삶의 절정기에 완벽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불멸의 영광을 완성한다. |
아킬레우스의 경우, 그는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필멸자와 불멸자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아킬레우스는 신과 인간의 성격을 조금씩 닮아서 가지고 있다. 그는 신들을 닮아 영원하고 소멸하지 않는 가치를 얻길 바라지만, 인간의 피도 흐르는 탓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차선의 불사를 택한다. 그것은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서 영원히 기억되는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얻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적장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도 죽게 될 운명임을 알면서도, 그가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살해하자, 친구의 복수를 위해서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적진을 유린하고 끝내 적장 헥토르에게 복수하였다. 그 후 아킬레우스는 홀로 찾아온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에게 감동하여 극적인 화해를 이루어 원수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장례 기간 동안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이 화해를 통해서 전사적 영웅 이상의 인물로 승화되었고 이후 재개된 전투에서 헥토르의 동생인 파리스의 화살에 전사함으로써 자신의 영웅 서사에 마침표를 찍어 오늘날까지 호메로스의 노래 속에 남아 기억되고 있다.
키워드
영웅, 일리아스, 트로이, 헥토르, 호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