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자로서 차기 왕위 계승자이자 아킬레우스가 활약한 희랍 연합군을 상대로 트로이가 약 10년의 세월동안 함락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든 뛰어난 사령관이었다. 아킬레우스가 자리를 비운 후, 트로이군은 초반 전투에서 고전한다. 이때 헥토르는 트로이 성내와 전장을 오가며, 한편으로는 사령관으로서의 지도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전사로서의 용맹함을 보여주면서 희랍군의 공세를 막아낸다. 그러나 헥토르는 전사적 역량만 두드러지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리아스』의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자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전투의 첫째 날, 희랍군을 돕는 여신 아테나를 달래기 위해 그가 성내에 들어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제수와 여성들을 만나 나눈 대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있다. 헥토르는 부모에게는 언제나 공손하고 예의바른 아들이었고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또 그는 완전하지도 않고 완전하려 하지도 않으며, 사람 사이의 도리와 관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그는 때로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또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의 운명을 알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대리자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여 아킬레우스를 불러내고 다시 감히 아킬레우스와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다. 대결에서 승리하는 자는 상대를 존중하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패자의 시신을 반환하자는 제안을 차갑게 거절당한 채로.
고전본문
“내가 만일 겁쟁이 모양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
용감하게 트로이아인들의 선두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내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VI, 442-455 passim.)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중략)…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중략)…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올린 흙더미가 죽는 나를 덮어주었으면…”
(『일리아스』, VI, 464-466. passim.)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일러두겠으니 꼭 명심해두도록 하라!
그대도 오래 살지는 못하리라. 이미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그대 곁에 다가섰으니, 그대는 아이아코스의 나무랄 데 없는
손자 아킬레우스의 손에 쓰러지게 되리라.”
이렇게 말하자 죽음의 종말이 그를 덮쳤다. …(중략)…
그가 이미 죽었지만 영광스런 헥토르가 그에게 말했다.
“파트로클로스여! 어찌하여 그대는 내게 갑작스런 파멸을 예언하는가?
누가 알겠는가, 머릿결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먼저 내 창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될지?”
(XVI, 851-861. passim.)
“자, 이리 와서 신들 앞에서 서약하기로 하자! 신들께서는
모든 합의의 가장 훌륭한 증인이시며 수호자들이시니까.
제우스께서 내게 그대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어
내가 그대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아킬레우스여, 나는 그대에게
모욕을 가하지 않고 그대의 이름난 무구들을 벗긴 다음 그대의
시신은 아카이오이족에게 돌려줄 것이니 그대도 그렇게 하라.”
(XXII, 254-259.)
토론하기
(1) 표면 상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헥토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두 사람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영웅으로서 서로 상반되는 매력을 보여준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어떤 측면에서 서로 상반되는지 대비해보자.
(2) 영웅 신화는 고대 사회에서 단지 유희거리에 불과했을까? 영웅 신화가 단순한 유희거리 외에 고대 희랍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영웅 신화가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속에서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비교
헥토르는 자신의 진영을 대표하는 최고 전사라는 점에서는 아킬레우스와 같지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아킬레우스와는 그 성격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먼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각자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있어서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 안은 조건에서 신적인 가치에 최대한 가까이 도달하기 위해서 싸운다. 그는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영원한 명예와 영광’을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를 싸우게 만드는 ‘영원한 명예와 영광’은 인간들에게 어울리는 어떤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가치다. 인간이 유한하고 필멸하는 존재인 반면, 신은 무한하고 불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헥토르는 트로이 지역 사람들의 지도자로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고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서 싸운다. 헥토르에 대한 묘사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거의 강조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부각된다. 그것은 가족과 부모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그의 절절한 사랑이다. 헥토르가 바라는 것은 부모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트로이인들의 목숨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물질적 삶의 터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들에게 한결 어울리는 가치다. 사람들의 목숨도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도 모두 생성과 소멸을 겪는다는 점에서 유한하고 필멸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영웅이라면, 헥토르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현실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산화하는 현실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앞날을 미리 알고 스스로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이것은 그가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킬레우스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자기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지 미리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IX, 410-416.
요컨대,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지평을 어머니를 통해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두고서 고민과 갈등은 할 수 있을지언정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과 방황을 겪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이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당장 코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어 망망대해 속에 내던져진 기분을 수시로 느끼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참으로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으로 대우하고 있다!
반면, 헥토르는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운명이 다가오면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킬레우스가 초월적인 신들을 닮았다면, 이러한 점에서 헥토르는 평범한 인간들과 훨씬 가깝다. 그는 아킬레우스에 비해 평범하고 실존적인 사람이다. 헥토르는 뛰어난 사령관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자식이고 예언능력도 없다. 아폴론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미래를 보고 싶다면, 신탁이나 예언을 통해서 남들도 알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주변에서 그에게 항상 맞는 신탁만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자신의 앞날에 대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부질없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가 이미 죽었지만 영광스런 헥토르가 그에게 말했다.
“파트로클로스여! 어찌하여 그대는 내게 갑작스런 파멸을 예언하는가?
누가 알겠는가, 머릿결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먼저 내 창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될지?”
(XVI, 858-861.)
아킬레우스는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는 전사로서의 측면 외에 다른 실존적 측면이 거의 부각되지 않고 군인임에도 전장에서 이탈하는 등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와 명예 외에 그 어떤 것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과는 다르게, 헥토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큰아들로서, 안드로마케의 남편으로서, 아스튀아낙스의 아버지로서, 파리스의 형으로서, 트로이군의 사령관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아킬레우스가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이라면 헥토르는 평범하고 실존적인 인간에 가깝다.
헥토르 |
| 아킬레우스 |
인간적 가치의 수호 | 전투에 나서는 목적 | 신적 가치의 달성 |
수동적 | 운명을 대하는 방식 | 능동적 |
(평범하고 실존적 인간) | 반영하는 인간상 | (특별하고 초월적 인간) |
(인간이 필요로 하는 현실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산화하는 현실적인 영웅) | | (인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영웅) |
영웅신화의 기능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관점은 신화란 고대인들이 현상이나 대상의 원인과 시초를 설명하는 과학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보는 생각이다. 철학이나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도 세계를 설명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설명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신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종류의 설명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다. 원인 신화가 그런 관점에 부합하는 신화일 것이다. 각종 기암괴석의 탄생설화 같은 것들도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영웅 중심 신화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영웅 신화는 어떤 현상이나 자연물이 아니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웅 신화는 고대 사회에서 단순한 유희의 기능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영웅 신화는 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공동의 문화와 윤리 그리고 관습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분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학교를 통해서 그러한 사회화 교육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지만 고대 사회에는 그러한 대규모 공교육 기관이 없었다. 그 대신 고대인들은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공동체가 개인에게 권장하는 가치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에 대해 들으면서 ‘아! 나도 아킬레우스처럼 우정을 존중하면서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아폴론의 사제를 무시했다가 대규모 역병으로 고생한 아가멤논을 떠올리며 신들에 대한 경외를 다지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그 신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결속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으로 작동하는 신화를 헌장 신화라고 하는데, 영웅 신화는 그러한 헌장 신화의 프레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키워드
영웅, 일리아스, 트로이, 헥토르, 호메로스
전후맥락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자로서 차기 왕위 계승자이자 아킬레우스가 활약한 희랍 연합군을 상대로 트로이가 약 10년의 세월동안 함락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든 뛰어난 사령관이었다. 아킬레우스가 자리를 비운 후, 트로이군은 초반 전투에서 고전한다. 이때 헥토르는 트로이 성내와 전장을 오가며, 한편으로는 사령관으로서의 지도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전사로서의 용맹함을 보여주면서 희랍군의 공세를 막아낸다. 그러나 헥토르는 전사적 역량만 두드러지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리아스』의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자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전투의 첫째 날, 희랍군을 돕는 여신 아테나를 달래기 위해 그가 성내에 들어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제수와 여성들을 만나 나눈 대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있다. 헥토르는 부모에게는 언제나 공손하고 예의바른 아들이었고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또 그는 완전하지도 않고 완전하려 하지도 않으며, 사람 사이의 도리와 관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그는 때로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또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의 운명을 알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대리자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여 아킬레우스를 불러내고 다시 감히 아킬레우스와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다. 대결에서 승리하는 자는 상대를 존중하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패자의 시신을 반환하자는 제안을 차갑게 거절당한 채로.
고전본문
“내가 만일 겁쟁이 모양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
용감하게 트로이아인들의 선두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내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VI, 442-455 passim.)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중략)…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중략)…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올린 흙더미가 죽는 나를 덮어주었으면…”
(『일리아스』, VI, 464-466. passim.)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일러두겠으니 꼭 명심해두도록 하라!
그대도 오래 살지는 못하리라. 이미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그대 곁에 다가섰으니, 그대는 아이아코스의 나무랄 데 없는
손자 아킬레우스의 손에 쓰러지게 되리라.”
이렇게 말하자 죽음의 종말이 그를 덮쳤다. …(중략)…
그가 이미 죽었지만 영광스런 헥토르가 그에게 말했다.
“파트로클로스여! 어찌하여 그대는 내게 갑작스런 파멸을 예언하는가?
누가 알겠는가, 머릿결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먼저 내 창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될지?”
(XVI, 851-861. passim.)
“자, 이리 와서 신들 앞에서 서약하기로 하자! 신들께서는
모든 합의의 가장 훌륭한 증인이시며 수호자들이시니까.
제우스께서 내게 그대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어
내가 그대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아킬레우스여, 나는 그대에게
모욕을 가하지 않고 그대의 이름난 무구들을 벗긴 다음 그대의
시신은 아카이오이족에게 돌려줄 것이니 그대도 그렇게 하라.”
(XXII, 254-259.)
토론하기
(1) 표면 상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헥토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두 사람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영웅으로서 서로 상반되는 매력을 보여준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어떤 측면에서 서로 상반되는지 대비해보자.
(2) 영웅 신화는 고대 사회에서 단지 유희거리에 불과했을까? 영웅 신화가 단순한 유희거리 외에 고대 희랍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영웅 신화가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속에서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비교
헥토르는 자신의 진영을 대표하는 최고 전사라는 점에서는 아킬레우스와 같지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아킬레우스와는 그 성격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먼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각자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있어서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 안은 조건에서 신적인 가치에 최대한 가까이 도달하기 위해서 싸운다. 그는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영원한 명예와 영광’을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를 싸우게 만드는 ‘영원한 명예와 영광’은 인간들에게 어울리는 어떤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가치다. 인간이 유한하고 필멸하는 존재인 반면, 신은 무한하고 불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헥토르는 트로이 지역 사람들의 지도자로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고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서 싸운다. 헥토르에 대한 묘사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거의 강조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부각된다. 그것은 가족과 부모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그의 절절한 사랑이다. 헥토르가 바라는 것은 부모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트로이인들의 목숨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물질적 삶의 터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들에게 한결 어울리는 가치다. 사람들의 목숨도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도 모두 생성과 소멸을 겪는다는 점에서 유한하고 필멸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영웅이라면, 헥토르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현실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산화하는 현실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앞날을 미리 알고 스스로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이것은 그가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킬레우스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자기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지 미리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 IX, 410-416.
요컨대,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지평을 어머니를 통해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두고서 고민과 갈등은 할 수 있을지언정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과 방황을 겪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이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당장 코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어 망망대해 속에 내던져진 기분을 수시로 느끼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참으로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으로 대우하고 있다!
반면, 헥토르는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운명이 다가오면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킬레우스가 초월적인 신들을 닮았다면, 이러한 점에서 헥토르는 평범한 인간들과 훨씬 가깝다. 그는 아킬레우스에 비해 평범하고 실존적인 사람이다. 헥토르는 뛰어난 사령관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자식이고 예언능력도 없다. 아폴론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미래를 보고 싶다면, 신탁이나 예언을 통해서 남들도 알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주변에서 그에게 항상 맞는 신탁만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자신의 앞날에 대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부질없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가 이미 죽었지만 영광스런 헥토르가 그에게 말했다.
“파트로클로스여! 어찌하여 그대는 내게 갑작스런 파멸을 예언하는가?
누가 알겠는가, 머릿결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먼저 내 창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될지?”
(XVI, 858-861.)
아킬레우스는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는 전사로서의 측면 외에 다른 실존적 측면이 거의 부각되지 않고 군인임에도 전장에서 이탈하는 등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와 명예 외에 그 어떤 것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과는 다르게, 헥토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큰아들로서, 안드로마케의 남편으로서, 아스튀아낙스의 아버지로서, 파리스의 형으로서, 트로이군의 사령관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아킬레우스가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간이라면 헥토르는 평범하고 실존적인 인간에 가깝다.
헥토르 |
| 아킬레우스 |
인간적 가치의 수호 | 전투에 나서는 목적 | 신적 가치의 달성 |
수동적 | 운명을 대하는 방식 | 능동적 |
(평범하고 실존적 인간) | 반영하는 인간상 | (특별하고 초월적 인간) |
(인간이 필요로 하는 현실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산화하는 현실적인 영웅) | | (인간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영웅) |
영웅신화의 기능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관점은 신화란 고대인들이 현상이나 대상의 원인과 시초를 설명하는 과학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보는 생각이다. 철학이나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도 세계를 설명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설명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신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종류의 설명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다. 원인 신화가 그런 관점에 부합하는 신화일 것이다. 각종 기암괴석의 탄생설화 같은 것들도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영웅 중심 신화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영웅 신화는 어떤 현상이나 자연물이 아니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웅 신화는 고대 사회에서 단순한 유희의 기능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영웅 신화는 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공동의 문화와 윤리 그리고 관습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분열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학교를 통해서 그러한 사회화 교육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지만 고대 사회에는 그러한 대규모 공교육 기관이 없었다. 그 대신 고대인들은 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공동체가 개인에게 권장하는 가치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에 대해 들으면서 ‘아! 나도 아킬레우스처럼 우정을 존중하면서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아폴론의 사제를 무시했다가 대규모 역병으로 고생한 아가멤논을 떠올리며 신들에 대한 경외를 다지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그 신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결속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으로 작동하는 신화를 헌장 신화라고 하는데, 영웅 신화는 그러한 헌장 신화의 프레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키워드
영웅, 일리아스, 트로이, 헥토르, 호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