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제우스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크로노스를 필두로 한 티탄 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세계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티탄 이아페토스의 아들인 프로메테우스는 티탄들의 패배를 예견하고서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함께 올륌포스 진영에 가담했지만, 티탄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우스와 올륌포스 신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올륌포스 신들 사이에서 소외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다.
제우스는 새 시대의 통치자로서 다른 신들에게 권능을 분배하고 세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자 했다. 그는 기존의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키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자 인간들과 친했던 프로메테우스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제우스는 신과 인간의 몫을 나누어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위임한다. 이제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제우스를 상대로 지혜를 다퉈볼 작정이다. 그러나 제우스와의 힘의 격차는 너무 크다. 따라서 제우스를 상대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전략은 거짓말이든 속임수든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투쟁이어야 했다. 그는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들을 돕기 위해 음모와 계략을 꾸민다. 프로메테우스는 신과 인간의 몫을 정하기 위해 황소 한 마리를 데려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음흉한 마음으로 첫 번째 음모를 꾸민다. 그는 황소를 해체하고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만든다. 첫 번째 덩어리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뼈를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흰 점막으로 포장해 만든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덩어리는 소의 살코기를 피가 덕지덕지 붙어 보기 흉한 내장으로 포장해 만든 것이다. 제우스는 첫 번째 덩어리를 선택했고,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프로메테우스가 감히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격분하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었으므로 프로메테우스를 직접 처벌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끼는 인간들로부터 불과 밀을 회수한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두 번째 음모를 꾸민다. 그는 신궁으로 올라가서, 숨겨온 회향풀 속에 은밀히 불씨를 숨겨다 인간들에게 나눠준다. 회향나무는 표면이 푸르고 촉촉해 보여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 프로메테우스는 밀알도 함께 훔쳐 땅 속에 숨겼다. 땅 속에 숨겨놓으면 하늘에 있는 신들로서는 알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기뻐했지만, 사실 제우스는 이 모든 음모와 계략을 알고 있었다.
괘씸죄만 성립할 뿐이었던 전과 달리, 이제는 뚜렷한 처벌근거가 주어졌다. 이를 근거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에 결박한 뒤, 매일 독수리에 의해 간이 파 먹히고 재생되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을 내린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형벌에서 풀려나게 되는데, 여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자신의 예언능력 또는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의 역할이 컸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왕좌가 걸린 중요한 예언으로 그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일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여신 테티스로부터 자신보다 뛰어난 자식을 얻게 되고 그에 의해서 왕위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데, 이후 제우스가 이 비밀을 미리 알려주고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그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하면, 조금 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문헌도 있는데, 그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에서 풀어준 것은 인간 헤라클레스였다고 한다. 그는 11번째 노역으로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찾던 중, 카우카소스 산맥을 지나게 되는데, 이때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던 독수리를 활로 제압하고 그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헤라클레스의 영광을 더해주는 일이기에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스튁스 강에 대고 한 맹세가 있기 때문에 카우카소스 산의 바위로 만든 반지를 프로메테우스가 착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상대로 한 싸움을 비로소 마칠 수 있었고, 인류도 종말의 위기를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전본문
신들과 필멸의 인간들이 메코네에서 서로 갈라섰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기꺼이 큰 황소 한 마리를 잘라 나누어
제우스의 마음을 속이려고 그분 앞에 내놓았다.
그분 앞에 그는 살코기와 기름기 많은 내장을
소의 위로 덮은 다음 소가죽에 싸서 내놓았고,
한편 인간들을 위해서는 흰 소뼈들을 쌓은 다음
그것들을 반짝반짝 빛나는 기름 조각으로 교묘히 쌌다.
그때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여,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 걸출한 자여,
이봐요, 그대는 얼마나 불공평하게 몫을 나누었는가!“
불멸의 계략을 알고 계시는 제우스께서는 이렇게 그를 나무라셨다.
그러자 음모를 꾸미는 프로메테우스가 그분께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으나 자신의 계략을 잊지는 않았다.
“제우스여, 영생하는 신들 중에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위대한 분이여,
둘 중 어느 것이든 그대 가슴속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이렇게 그는 음흉한 마음에서 말했다.
…(중략)…
그분께서는 두 손으로 하얀 기름 조각을 들어 올리셨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셨고, 흰 소뼈들이 교묘히
놓여있는 것을 보시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셨다.
…(중략)…
그리고 그 이후로 그분께서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화를 내시며
지상의 집에서 살고 있는 필멸의 인간들을 위해
물푸레나무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불의 힘을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아페토스의 빼어난 아들은 그분을 속이고는 속이 빈
회향풀 줄기 속에다 감춰 지칠 줄 모르는 불의 멀리 보는
화광을 훔쳐냈다.
…(중략)…
제우스께서는 이에 가슴이 아프셨고, 인간들 사이에서
불의 멀리 보는 화광을 보시자 마음속으로 화가 나셨다.
당장 그분께서는 불의 대가로 인간들에게 재앙을 마련하셨으니,
이름난 절음발이 신이 크로노스의 아드님의 계획에 따라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을 흙으로 빚었던 것이다.
이렇듯 제우스의 마음을 속이거나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아페토스의 아들인 교활한 프로메테우스조차
그분의 엄중한 노여움을 피하지 못하고
영리한데도 큰 사슬에 억지로 붙들려 있으니 말이다.
헤시오도스, 천병희 역, 『신들의 계보』, 521-616 passim.
토론하기
(1) 영웅의 유형을 분류할 때, ‘안티히어로(반영웅)’와 함께 ‘다크히어로(흑영웅)’라는 말도 동원되고는 한다. 다크히어로가 안티히어로와 어떻게 다른지 사전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조사해보자.
(2)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프로메테우스를 히어로나 안티히어로 또는 다크히어로와 연관지어 각자 자유롭게 평가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눠보자.
(3) 사회 공동체는 뛰어난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입장을 영웅주의라고 한다면,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영웅주의에 대해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히어로와 안티히어로 그리고 다크히어로
앞서의 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영웅과 반영웅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영웅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로서 인물의 성품도 그리고 행위의 목적과 수단도 모두 정의롭고 윤리적이다. 이들은 영웅 개인의 특별한 힘으로 다수의 공동체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영웅주의적 구도를 형성한다. 이와는 달리, 반영웅은 전형적인 영웅 개념에 포섭되지 못하는 인물 전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형적인 영웅은 첫째, 능력과 비중의 측면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이면서, 둘째, 인물의 성품과 행위의 목적 및 수단이 모두 선하고 정의롭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반영웅적 인물에는 도덕적 측면은 갖추고 있지만 능력과 비중의 측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시민적 유형과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는 있으나 도덕적이지는 못한 망나니 히어로 유형 그리고 두 가지 측면 모두 갖추지 못한 악당 유형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반영웅으로 분류되는 다른 유형의 히어로를 나타내는 또다른 개념이 있다. 그것은 ‘흑(黑)영웅’ 혹은 ‘다크히어로’다.
다크히어로는 안티히어로에 비해 협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티히어로가 인물 자체는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다른 이유로 정당하거나 정의로운 무언가를 위해서 싸우는 중심인물이라면, 다크히어로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서 정의의 편에서 싸우기는 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윤리·도덕의 문제를 떠나 잔인하고 비겁하며 부정한 방법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과거의 사건에 의해 갖게 된 어두운 성격이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종종 보여주고, 전통적인 영웅이나 더욱 중심적인 영웅과 함께 등장할 경우에는 그와 성향과 이념 등에서 대립하기도 한다. 다크히어로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두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그에 비추어 인류의 절멸을 막기 위해 제우스를 속이려 든 프로메테우스를 평해보자.
· 다크히어로는 기본적으로 정의의 편에 서지만, 비겁하고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 다크히어로는 기존의 법과 윤리 규범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다크히어로는 과거의 사건을 계기로 어두운 성격 또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갖는다. · 다크히어로는 전통적 영웅이나 더욱 중심적 영웅과 함께 등장할 경우, 그와 대립하기도 한다. |
다크히어로의 면모를 가진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이중적이고 경계적인 성격이 강한 인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사용했던 계략의 본질은 모두 겉과 속의 이중성에 있었고, 신들 사이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 자체가 티탄과 올륌포스 신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었으며 제우스로부터 받은 형벌 속에서도 프로메테우스는 반복을 통해 신들의 무한한 시간을 경험하는 동시에 간의 생성과 소멸을 하루라는 짧은 주기로 겪음으로써 인간들의 유한한 시간도 갖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이중적 인물이자 경계인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영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적이면서 동시에 영웅적이지 않다. 비록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인물의 성품과 행위의 목적 및 수단이 모두 정의에 부합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반영웅적 측면, 그 중에서도 다크히어로의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앞서 요약한 다크히어로의 특징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는 다크히어로의 특징에 얼마나 부합할까?
먼저, 첫 번째 특징. 인간들의 눈으로 볼 때, 프로메테우스는 정의의 편에 서는 인물이고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든 좋거나 옳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으니까. 즉, 프로메테우스는 자기 나름대로 올바름과 정의로움을 목적으로 삼아 행동한다. 그러나 그 방법까지 올바르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가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공정하고 정당한 경쟁은 포기했다. 어쩌면 제우스와의 지혜 경쟁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 결과 프로메테우스가 사용하게 된 방법이 ‘음흉한 마음’에서 ‘불공평하게 몫을 나누’기로 한 ‘불멸의 계략’이었다. 요컨대, 프로메테우스는 정의를 위해 싸우기는 하지만, 정의로운 수단을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속이 시꺼멓다! 다음으로, 두 번째 특징. 이야기 속 세상은 제우스가 티탄들을 제압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세계다. 신들의 왕이자 세계의 통치자로서 제우스가 새롭게 등극한 세계에서 법과 규범은 모두 제우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없애려는 제우스에게 반대하였고, 인간들을 위해 불과 밀을 가져다 준 것도 모두 제우스의 뜻을 거스른 행위였다. 다음, 셋째.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형제들과 티탄들에게 전쟁을 피하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한 후 올륌포스 신들의 진영으로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입지만큼이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그는 티탄들이 전쟁에 패하고 형제지간인 아틀라스가 천구를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워했다.
천만에, 나와 형제간인 아틀라스가 당한 운명만 생각하면
나는 벌써 마음이 아프오. 그는 세상의 서쪽 끝에
서서 하늘과 대지의 기둥을, 결코 견디지 쉽지 않은
짐을 양어깨에 떠메고 있으니 말이오.
아이스퀼로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347-350.
마지막으로 넷째.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제우스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제압한 이후의 세계는 제우스가 모든 것의 정점에 선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모든 이야기에서 고정되어 있는 상수다. 그리스의 영웅 개념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능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중립적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면 영웅은 제우스다. 인간들을 없애고 다시 만들고자 하는 제우스가 악역으로 보여도 그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의 관점에서 그럴 뿐, 제우스는 우주의 섭리 작용을 하는 것이지 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제우스에 맞서 대립하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는 다크히어로의 면모에 꽤 부합하는 인물이 아닌가.
프로메테우스가 시사하는 반영웅주의
신들의 전쟁 이후, 세계는 제우스와 올륌포스 신들이 주도하는 질서에 따라서 재편되었다. 제우스는 올륌포스 신들을 이끌어 크로노스와 티탄 신들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스스로 우주의 새로운 지배자이자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다. 제우스는 모든 신과 인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과 권위를 갖는다. 그런 까닭에 제우스를 영웅의 자리에 상수로 놓은 바 있다. 그는 올륌포스 신들을 가부장적 권위로 강권 통치하고 올륌포스 신들은 제우스로부터 인정받은 각자의 권능을 통해서 그의 질서를 새로운 세계에 구현하는 소수의 대리적 권력 집행자들이다. 우리는 제우스와 신들의 관계 속에서 영웅주의적 구도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에서 히어로는 단연 최고의 권능을 지닌 제우스이며 그를 비롯한 소수의 올륌포스 신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조 영웅적 인물들로서 우주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을 프로메테우스로 옮겨본다면, 그 속에서 반영웅주의적 구도를 발견할 수도 있다.
프로메테우스와 인간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이야기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교활한 속임수와 계략을 쓰면서까지 자신이 아끼는 인간들을 보호하려다 고통당해야 했던 반영웅이자 다크히어로였다. 한편, 인간들은 그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제우스의 질서에 더욱 강력하게 구속되고 그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쩌리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도 제우스의 질서를 거슬러 자기들의 의지를 실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이다. 프로메테우스를 결코 풀어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제우스는 끝내 그를 실질적으로 풀어주게 된다. 인간 영웅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에서 풀어주는 한편,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예언능력으로 알아낸 테티스의 운명을 가지고 제우스와의 거래를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세계가 제우스와 같은 절대적 존재의 의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프로메테우스와 다수의 인간들처럼 소외된 약자들에 의해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영웅주의적이다.
키워드
고통, 나쁨, 인간, 제우스, 판도라, 프로메테우스
전후맥락
제우스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크로노스를 필두로 한 티탄 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세계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티탄 이아페토스의 아들인 프로메테우스는 티탄들의 패배를 예견하고서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함께 올륌포스 진영에 가담했지만, 티탄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우스와 올륌포스 신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올륌포스 신들 사이에서 소외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다.
제우스는 새 시대의 통치자로서 다른 신들에게 권능을 분배하고 세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자 했다. 그는 기존의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키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자 인간들과 친했던 프로메테우스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제우스는 신과 인간의 몫을 나누어 그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위임한다. 이제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제우스를 상대로 지혜를 다퉈볼 작정이다. 그러나 제우스와의 힘의 격차는 너무 크다. 따라서 제우스를 상대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전략은 거짓말이든 속임수든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투쟁이어야 했다. 그는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들을 돕기 위해 음모와 계략을 꾸민다. 프로메테우스는 신과 인간의 몫을 정하기 위해 황소 한 마리를 데려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음흉한 마음으로 첫 번째 음모를 꾸민다. 그는 황소를 해체하고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만든다. 첫 번째 덩어리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뼈를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흰 점막으로 포장해 만든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덩어리는 소의 살코기를 피가 덕지덕지 붙어 보기 흉한 내장으로 포장해 만든 것이다. 제우스는 첫 번째 덩어리를 선택했고,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프로메테우스가 감히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격분하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었으므로 프로메테우스를 직접 처벌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끼는 인간들로부터 불과 밀을 회수한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두 번째 음모를 꾸민다. 그는 신궁으로 올라가서, 숨겨온 회향풀 속에 은밀히 불씨를 숨겨다 인간들에게 나눠준다. 회향나무는 표면이 푸르고 촉촉해 보여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 프로메테우스는 밀알도 함께 훔쳐 땅 속에 숨겼다. 땅 속에 숨겨놓으면 하늘에 있는 신들로서는 알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기뻐했지만, 사실 제우스는 이 모든 음모와 계략을 알고 있었다.
괘씸죄만 성립할 뿐이었던 전과 달리, 이제는 뚜렷한 처벌근거가 주어졌다. 이를 근거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에 결박한 뒤, 매일 독수리에 의해 간이 파 먹히고 재생되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을 내린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형벌에서 풀려나게 되는데, 여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자신의 예언능력 또는 인간이었던 헤라클레스의 역할이 컸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왕좌가 걸린 중요한 예언으로 그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일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여신 테티스로부터 자신보다 뛰어난 자식을 얻게 되고 그에 의해서 왕위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데, 이후 제우스가 이 비밀을 미리 알려주고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그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하면, 조금 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문헌도 있는데, 그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에서 풀어준 것은 인간 헤라클레스였다고 한다. 그는 11번째 노역으로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찾던 중, 카우카소스 산맥을 지나게 되는데, 이때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던 독수리를 활로 제압하고 그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헤라클레스의 영광을 더해주는 일이기에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스튁스 강에 대고 한 맹세가 있기 때문에 카우카소스 산의 바위로 만든 반지를 프로메테우스가 착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상대로 한 싸움을 비로소 마칠 수 있었고, 인류도 종말의 위기를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전본문
신들과 필멸의 인간들이 메코네에서 서로 갈라섰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기꺼이 큰 황소 한 마리를 잘라 나누어
제우스의 마음을 속이려고 그분 앞에 내놓았다.
그분 앞에 그는 살코기와 기름기 많은 내장을
소의 위로 덮은 다음 소가죽에 싸서 내놓았고,
한편 인간들을 위해서는 흰 소뼈들을 쌓은 다음
그것들을 반짝반짝 빛나는 기름 조각으로 교묘히 쌌다.
그때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여,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 걸출한 자여,
이봐요, 그대는 얼마나 불공평하게 몫을 나누었는가!“
불멸의 계략을 알고 계시는 제우스께서는 이렇게 그를 나무라셨다.
그러자 음모를 꾸미는 프로메테우스가 그분께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으나 자신의 계략을 잊지는 않았다.
“제우스여, 영생하는 신들 중에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위대한 분이여,
둘 중 어느 것이든 그대 가슴속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고르십시오!”
이렇게 그는 음흉한 마음에서 말했다.
…(중략)…
그분께서는 두 손으로 하얀 기름 조각을 들어 올리셨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셨고, 흰 소뼈들이 교묘히
놓여있는 것을 보시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셨다.
…(중략)…
그리고 그 이후로 그분께서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화를 내시며
지상의 집에서 살고 있는 필멸의 인간들을 위해
물푸레나무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불의 힘을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아페토스의 빼어난 아들은 그분을 속이고는 속이 빈
회향풀 줄기 속에다 감춰 지칠 줄 모르는 불의 멀리 보는
화광을 훔쳐냈다.
…(중략)…
제우스께서는 이에 가슴이 아프셨고, 인간들 사이에서
불의 멀리 보는 화광을 보시자 마음속으로 화가 나셨다.
당장 그분께서는 불의 대가로 인간들에게 재앙을 마련하셨으니,
이름난 절음발이 신이 크로노스의 아드님의 계획에 따라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을 흙으로 빚었던 것이다.
이렇듯 제우스의 마음을 속이거나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아페토스의 아들인 교활한 프로메테우스조차
그분의 엄중한 노여움을 피하지 못하고
영리한데도 큰 사슬에 억지로 붙들려 있으니 말이다.
헤시오도스, 천병희 역, 『신들의 계보』, 521-616 passim.
토론하기
(1) 영웅의 유형을 분류할 때, ‘안티히어로(반영웅)’와 함께 ‘다크히어로(흑영웅)’라는 말도 동원되고는 한다. 다크히어로가 안티히어로와 어떻게 다른지 사전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조사해보자.
(2)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프로메테우스를 히어로나 안티히어로 또는 다크히어로와 연관지어 각자 자유롭게 평가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눠보자.
(3) 사회 공동체는 뛰어난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입장을 영웅주의라고 한다면,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영웅주의에 대해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히어로와 안티히어로 그리고 다크히어로
앞서의 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영웅과 반영웅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영웅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로서 인물의 성품도 그리고 행위의 목적과 수단도 모두 정의롭고 윤리적이다. 이들은 영웅 개인의 특별한 힘으로 다수의 공동체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영웅주의적 구도를 형성한다. 이와는 달리, 반영웅은 전형적인 영웅 개념에 포섭되지 못하는 인물 전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형적인 영웅은 첫째, 능력과 비중의 측면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이면서, 둘째, 인물의 성품과 행위의 목적 및 수단이 모두 선하고 정의롭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반영웅적 인물에는 도덕적 측면은 갖추고 있지만 능력과 비중의 측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시민적 유형과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는 있으나 도덕적이지는 못한 망나니 히어로 유형 그리고 두 가지 측면 모두 갖추지 못한 악당 유형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반영웅으로 분류되는 다른 유형의 히어로를 나타내는 또다른 개념이 있다. 그것은 ‘흑(黑)영웅’ 혹은 ‘다크히어로’다.
다크히어로는 안티히어로에 비해 협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티히어로가 인물 자체는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다른 이유로 정당하거나 정의로운 무언가를 위해서 싸우는 중심인물이라면, 다크히어로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서 정의의 편에서 싸우기는 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윤리·도덕의 문제를 떠나 잔인하고 비겁하며 부정한 방법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과거의 사건에 의해 갖게 된 어두운 성격이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종종 보여주고, 전통적인 영웅이나 더욱 중심적인 영웅과 함께 등장할 경우에는 그와 성향과 이념 등에서 대립하기도 한다. 다크히어로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두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그에 비추어 인류의 절멸을 막기 위해 제우스를 속이려 든 프로메테우스를 평해보자.
· 다크히어로는 기본적으로 정의의 편에 서지만, 비겁하고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 다크히어로는 기존의 법과 윤리 규범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다크히어로는 과거의 사건을 계기로 어두운 성격 또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갖는다. · 다크히어로는 전통적 영웅이나 더욱 중심적 영웅과 함께 등장할 경우, 그와 대립하기도 한다. |
다크히어로의 면모를 가진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이중적이고 경계적인 성격이 강한 인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사용했던 계략의 본질은 모두 겉과 속의 이중성에 있었고, 신들 사이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 자체가 티탄과 올륌포스 신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었으며 제우스로부터 받은 형벌 속에서도 프로메테우스는 반복을 통해 신들의 무한한 시간을 경험하는 동시에 간의 생성과 소멸을 하루라는 짧은 주기로 겪음으로써 인간들의 유한한 시간도 갖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이중적 인물이자 경계인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영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적이면서 동시에 영웅적이지 않다. 비록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인물의 성품과 행위의 목적 및 수단이 모두 정의에 부합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반영웅적 측면, 그 중에서도 다크히어로의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앞서 요약한 다크히어로의 특징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는 다크히어로의 특징에 얼마나 부합할까?
먼저, 첫 번째 특징. 인간들의 눈으로 볼 때, 프로메테우스는 정의의 편에 서는 인물이고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든 좋거나 옳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으니까. 즉, 프로메테우스는 자기 나름대로 올바름과 정의로움을 목적으로 삼아 행동한다. 그러나 그 방법까지 올바르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가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공정하고 정당한 경쟁은 포기했다. 어쩌면 제우스와의 지혜 경쟁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 결과 프로메테우스가 사용하게 된 방법이 ‘음흉한 마음’에서 ‘불공평하게 몫을 나누’기로 한 ‘불멸의 계략’이었다. 요컨대, 프로메테우스는 정의를 위해 싸우기는 하지만, 정의로운 수단을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속이 시꺼멓다! 다음으로, 두 번째 특징. 이야기 속 세상은 제우스가 티탄들을 제압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세계다. 신들의 왕이자 세계의 통치자로서 제우스가 새롭게 등극한 세계에서 법과 규범은 모두 제우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없애려는 제우스에게 반대하였고, 인간들을 위해 불과 밀을 가져다 준 것도 모두 제우스의 뜻을 거스른 행위였다. 다음, 셋째.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형제들과 티탄들에게 전쟁을 피하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한 후 올륌포스 신들의 진영으로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입지만큼이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그는 티탄들이 전쟁에 패하고 형제지간인 아틀라스가 천구를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워했다.
천만에, 나와 형제간인 아틀라스가 당한 운명만 생각하면
나는 벌써 마음이 아프오. 그는 세상의 서쪽 끝에
서서 하늘과 대지의 기둥을, 결코 견디지 쉽지 않은
짐을 양어깨에 떠메고 있으니 말이오.
아이스퀼로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347-350.
마지막으로 넷째.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제우스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제압한 이후의 세계는 제우스가 모든 것의 정점에 선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모든 이야기에서 고정되어 있는 상수다. 그리스의 영웅 개념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능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중립적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면 영웅은 제우스다. 인간들을 없애고 다시 만들고자 하는 제우스가 악역으로 보여도 그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의 관점에서 그럴 뿐, 제우스는 우주의 섭리 작용을 하는 것이지 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제우스에 맞서 대립하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는 다크히어로의 면모에 꽤 부합하는 인물이 아닌가.
프로메테우스가 시사하는 반영웅주의
신들의 전쟁 이후, 세계는 제우스와 올륌포스 신들이 주도하는 질서에 따라서 재편되었다. 제우스는 올륌포스 신들을 이끌어 크로노스와 티탄 신들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스스로 우주의 새로운 지배자이자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다. 제우스는 모든 신과 인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과 권위를 갖는다. 그런 까닭에 제우스를 영웅의 자리에 상수로 놓은 바 있다. 그는 올륌포스 신들을 가부장적 권위로 강권 통치하고 올륌포스 신들은 제우스로부터 인정받은 각자의 권능을 통해서 그의 질서를 새로운 세계에 구현하는 소수의 대리적 권력 집행자들이다. 우리는 제우스와 신들의 관계 속에서 영웅주의적 구도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에서 히어로는 단연 최고의 권능을 지닌 제우스이며 그를 비롯한 소수의 올륌포스 신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조 영웅적 인물들로서 우주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을 프로메테우스로 옮겨본다면, 그 속에서 반영웅주의적 구도를 발견할 수도 있다.
프로메테우스와 인간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이야기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교활한 속임수와 계략을 쓰면서까지 자신이 아끼는 인간들을 보호하려다 고통당해야 했던 반영웅이자 다크히어로였다. 한편, 인간들은 그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제우스의 질서에 더욱 강력하게 구속되고 그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쩌리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도 제우스의 질서를 거슬러 자기들의 의지를 실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이다. 프로메테우스를 결코 풀어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제우스는 끝내 그를 실질적으로 풀어주게 된다. 인간 영웅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에서 풀어주는 한편,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예언능력으로 알아낸 테티스의 운명을 가지고 제우스와의 거래를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세계가 제우스와 같은 절대적 존재의 의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프로메테우스와 다수의 인간들처럼 소외된 약자들에 의해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영웅주의적이다.
키워드
고통, 나쁨, 인간, 제우스, 판도라,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