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미국 오레곤 주의 한 정신 병동에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만성 환자들과 정신 이상은 아니지만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급성 환자들이 머물고 있다. 맥머피가 이 병동에 새로 환자로 오게 되면서 병동의 분위기는 확연히 바뀌게 된다. 사실, 맥머피는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고 농장에서 노역을 하고 있던 중 그의 폭력적 성향에 대한 정신 감정을 위해 병원에 위탁된 정상인이다. 병동이 렛처드 수간호사의 철저한 통제 아래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맥머피는 급성 환자들의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에 분노한다. 질서와 규율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환자들을 훈육하는 것을 병동 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렛처드에게 맥머피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낱 선동가에 불과하다. 그는 환자들이 강한 자들에게 순응해야만 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맥머피는 렛처드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결국 그녀의 가장 큰 무기인 전두엽 제거 수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그는 실패한 영웅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환자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고전본문
하딩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두 손으로 맥머피의 손을 잡으려고 몸을 숙인다.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깨진 포도주병처럼 되었고, 자줏빛과 회색을 띠었다.
“이보게 친구, 이 세상은 강한 자들의 것이야!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삼켜서 더 강해지는 것이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해. 이런 식의 질서는 잘못되지 않았어. 우리는 이 상태를 자연 세계의 질서 유지를 위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해. 토끼들은 이 의식에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늑대를 강한 자로 인정하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토끼는 영리해지고 두려워서 도망을 하게 되지. 토끼는 늑대가 주위에 서성거리면 구멍을 파고 몸을 숨기지. 그렇게 참으면서 그것은 그럭저럭 생명을 부지하는 거야. 토끼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거야. 틀림없이 그것은 늑대와 싸우려고 덤비지 않아. 봐, 그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중략)
“이봐, 멍청이 같이 말하는군. 당신 말은 그냥 뒤에 앉아서 어떤 푸른 머리의 늙은 여자가 당신을 구슬려 토끼가 되게 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이군요.
“나를 구슬려 토끼가 되게 한 것이 아니야. 나는 토끼로 태어났다고. 나를 봐. 나는 내 역할을 통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간호사가 필요할 뿐이야.”
“당신은 빌어먹을 토끼가 아니란 말이오!”
“이 귀가 보이시오? 씰룩씰룩 움직이는 코가 보이지? 작고 귀여운 꼬리는 안 보이나?
“당신은 마치 미친 사··처럼 말하고 있군요.”
“미친 사람 같다고? 정곡을 찔렀소.”
“제기랄, 하딩,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요. 당신은 그렇게 미치지 않았소. 빌어먹을, 당신들이 모두 정상인지 알고 정말 놀랐단 말이오. 내가 아는 한, 당신들은 저기 길거리의 멍청이들보다 더 미치지 않았다고.”
“아, 그렇군요, 길거리에 멍청이들.”
“말하자면 당신들은 영화 속의 미친 사람들처럼 미치지 않았다 이거요.” “당신들은 매달려 있을 뿐이란 말이오.”
“마치 토끼처럼 말이죠?”
“토끼들이라니, 제기랄! 토끼 같은 존재가 아니라니까, 빌어먹을”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제5장 中
토론하기
1. 하딩은 환자들을 토끼에 비유한다. 토끼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2.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의 가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서 자신을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타인들의 눈에 비친 자신 사이에 차이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보자.
3. 우리 사회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사회의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사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정신 병동에 신참으로 온 맥머피는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사람이지만, 그는 폭력, 성범죄 등의 전과를 가진 죄수에 불과하다. 그의 폭력적 성향이 정신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감정받기 위해서 교정 기관은 그를 정신병원에 위탁했다. 위탁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병원 관계자, 특히 렛처드 수간호사의 손에 달려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맥머피는 자신과 달리 대부분의 급성 환자들이 위탁 환자가 아님을 알고 놀란다. 위탁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 언제든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장에서 노역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정신 병동에 감금된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환자들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란다.
급성 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삶에서 큰 상처를 입고 세상을 두려워하여 자기 자신 안으로 움츠러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빌리라는 환자는 권위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성성을 발현하지 못한다. 그의 정신적인 문제는 말을 더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어머니는 병원의 수납계 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수간호사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는 렛처드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잘못을 알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맥머피는 탈출을 시도하기 전에 빌리가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갖도록 병동에 몰래 직업여성을 불러들여 관계를 맺게 한다. 밤새 파티를 하다가 모두 잠이 들었고, 맥머피는 빌리를 위해서 벌인 파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한다. 빌리가 여성과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 수간호사에게 발각되었고, 수간호사는 빌리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한다. 바로 빌리는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하고 담당 의사 진료실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만다.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브롬든이나 빌리와 같이 정신병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해진 인간들이다.
환자들이 자신을 토끼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이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딩은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이해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하딩의 교양은 현실을 개조시키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 맥머피는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산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 사람으로 불합리한 통제와 억압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상처받고 나약해진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판단보다는 타인의 평가와 규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그들에게 그나마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안정감은 거짓된 안정감이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참된 자아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맥머피는 겉으로는 불량하고, 도덕적으로도 건전하지 못한 인간이다. 하지만 맥머피와 다른 급성 환자들의 차이점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려고 하는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다. 급성 환자들에게 맥머피는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전후맥락
미국 오레곤 주의 한 정신 병동에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만성 환자들과 정신 이상은 아니지만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급성 환자들이 머물고 있다. 맥머피가 이 병동에 새로 환자로 오게 되면서 병동의 분위기는 확연히 바뀌게 된다. 사실, 맥머피는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고 농장에서 노역을 하고 있던 중 그의 폭력적 성향에 대한 정신 감정을 위해 병원에 위탁된 정상인이다. 병동이 렛처드 수간호사의 철저한 통제 아래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맥머피는 급성 환자들의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에 분노한다. 질서와 규율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환자들을 훈육하는 것을 병동 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렛처드에게 맥머피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낱 선동가에 불과하다. 그는 환자들이 강한 자들에게 순응해야만 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맥머피는 렛처드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결국 그녀의 가장 큰 무기인 전두엽 제거 수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그는 실패한 영웅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환자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고전본문
하딩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두 손으로 맥머피의 손을 잡으려고 몸을 숙인다.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깨진 포도주병처럼 되었고, 자줏빛과 회색을 띠었다.
“이보게 친구, 이 세상은 강한 자들의 것이야!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삼켜서 더 강해지는 것이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해. 이런 식의 질서는 잘못되지 않았어. 우리는 이 상태를 자연 세계의 질서 유지를 위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해. 토끼들은 이 의식에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늑대를 강한 자로 인정하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토끼는 영리해지고 두려워서 도망을 하게 되지. 토끼는 늑대가 주위에 서성거리면 구멍을 파고 몸을 숨기지. 그렇게 참으면서 그것은 그럭저럭 생명을 부지하는 거야. 토끼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거야. 틀림없이 그것은 늑대와 싸우려고 덤비지 않아. 봐, 그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중략)
“이봐, 멍청이 같이 말하는군. 당신 말은 그냥 뒤에 앉아서 어떤 푸른 머리의 늙은 여자가 당신을 구슬려 토끼가 되게 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이군요.
“나를 구슬려 토끼가 되게 한 것이 아니야. 나는 토끼로 태어났다고. 나를 봐. 나는 내 역할을 통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간호사가 필요할 뿐이야.”
“당신은 빌어먹을 토끼가 아니란 말이오!”
“이 귀가 보이시오? 씰룩씰룩 움직이는 코가 보이지? 작고 귀여운 꼬리는 안 보이나?
“당신은 마치 미친 사··처럼 말하고 있군요.”
“미친 사람 같다고? 정곡을 찔렀소.”
“제기랄, 하딩,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요. 당신은 그렇게 미치지 않았소. 빌어먹을, 당신들이 모두 정상인지 알고 정말 놀랐단 말이오. 내가 아는 한, 당신들은 저기 길거리의 멍청이들보다 더 미치지 않았다고.”
“아, 그렇군요, 길거리에 멍청이들.”
“말하자면 당신들은 영화 속의 미친 사람들처럼 미치지 않았다 이거요.” “당신들은 매달려 있을 뿐이란 말이오.”
“마치 토끼처럼 말이죠?”
“토끼들이라니, 제기랄! 토끼 같은 존재가 아니라니까, 빌어먹을”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제5장 中
토론하기
1. 하딩은 환자들을 토끼에 비유한다. 토끼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2.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의 가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서 자신을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타인들의 눈에 비친 자신 사이에 차이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보자.
3. 우리 사회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사회의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사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정신 병동에 신참으로 온 맥머피는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사람이지만, 그는 폭력, 성범죄 등의 전과를 가진 죄수에 불과하다. 그의 폭력적 성향이 정신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를 감정받기 위해서 교정 기관은 그를 정신병원에 위탁했다. 위탁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병원 관계자, 특히 렛처드 수간호사의 손에 달려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맥머피는 자신과 달리 대부분의 급성 환자들이 위탁 환자가 아님을 알고 놀란다. 위탁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 언제든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장에서 노역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정신 병동에 감금된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환자들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란다.
급성 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삶에서 큰 상처를 입고 세상을 두려워하여 자기 자신 안으로 움츠러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빌리라는 환자는 권위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성성을 발현하지 못한다. 그의 정신적인 문제는 말을 더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어머니는 병원의 수납계 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수간호사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는 렛처드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잘못을 알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맥머피는 탈출을 시도하기 전에 빌리가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갖도록 병동에 몰래 직업여성을 불러들여 관계를 맺게 한다. 밤새 파티를 하다가 모두 잠이 들었고, 맥머피는 빌리를 위해서 벌인 파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한다. 빌리가 여성과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 수간호사에게 발각되었고, 수간호사는 빌리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한다. 바로 빌리는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하고 담당 의사 진료실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만다.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브롬든이나 빌리와 같이 정신병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해진 인간들이다.
환자들이 자신을 토끼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이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딩은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이해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하딩의 교양은 현실을 개조시키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 맥머피는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산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 사람으로 불합리한 통제와 억압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상처받고 나약해진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판단보다는 타인의 평가와 규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그들에게 그나마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안정감은 거짓된 안정감이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참된 자아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맥머피는 겉으로는 불량하고, 도덕적으로도 건전하지 못한 인간이다. 하지만 맥머피와 다른 급성 환자들의 차이점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려고 하는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다. 급성 환자들에게 맥머피는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