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스트릭랜드가 병이 들었을 때 스트로브는 자신의 아내, 블랑쉬를 설득하여 그를 자신에 집에서 간호하게 했다. 그런데 블랑쉬는 스트릭랜드의 야성적 매력에 빠져서 그를 따라가겠다고 남편에서 통보한다. 사실, 스트릭랜드는 블랑쉬가 모델로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비상식적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블랑쉬는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파리을 떠나 타이티 섬에 정착한다. 여기에서 가족을 이루고 예술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나병에 걸려 죽으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겼고, 아내에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울 것을 부탁한다.
고전본문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최근 스트릭랜드에 대해서 들었던 모든 것이 나를 사로잡게 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 외딴 섬에서 그는 고향에서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사는 토착민이나 유럽인들에게 그는 이상한 존재였지만, 그들은 그런 사람에게 익숙했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이상한 일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사람이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그는 둥근 구멍에 넣어야 할 네모난 말뚝과 같은 존재였지만, 여기서는 어떤 모양의 구멍이든 다 있었고, 맞지 않은 말뚝은 없었다. 여기서 그가 덜 이기적이고 덜 거친 부드러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만일 그가 이런 환경에서 생을 보냈었다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것, 동정을 받았다.
나는 브뤼노 선장에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는지를 말하려 했다. 그는 한 동안 대답을 하지 않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하여간 내가 그에게 공감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오. 우리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우리 둘은 같은 대상을 지향하고 있었소.”
“당신과 스트릭랜드는 너무 다른 사람인데 도대체 어떻게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단 말입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움 말이오.”
“큰 목표군요.” 나는 중얼거렸다.
“당신도 알다시피, 사람이 사랑에 사로잡히면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 않소. 그들은 갤리선에 묶여서 노를 젓는 노예들처럼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아 묶었던 열정은 사랑만큼이나 사람을 휘어잡았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이야, 정말 신기하네요.” 나는 대답했다. “오래전에 나는 그가 악마에 홀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았던 열정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그 열정은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습니다. 그는 신적인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였습니다. 그 안에 있던 악마는 무자비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큰 나머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기초를 흔들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류에 스트릭랜드는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오직 아름다움만이 진리를 대신했지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제54장 中
토론하기
1. 스트릭랜드가 문명 세계를 떠나 원시적 삶이 살아 있는 타이티 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왜 스티릭랜드는 아름다움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했을까?
2. 스트릭랜드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속해 있는 삶의 현장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설읽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진리(眞), 좋음(善), 아름다움(美)은 한 대상의 다른 측면들이었다. 다시 말해, 옳은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세계에서는 이 세 가지 차원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무엇이 진실된 삶인지에 대한 합의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낭만주의자들은 아름다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송가」(Ode on a Grecian Urn)에서 “아름다움이 진리이고, 진리가 곧 아름다움이다/이것은 당신이 지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이고, 당신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다.”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스트릭랜드에게도 아름다움이 삶의 진실이고, 그것만이 그에게 살만한 가치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가 찾던 삶의 진실을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타이티 섬으로 갔고 섬의 한 구석을 자신만의 낙원으로 삼고 작품활동에 매진한다. 그가 문명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문명 세계가 거짓과 위선, 속물근성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루소(Rousseau)는 당시 대두되는 물질문명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써냈다. 그는 문명에 물들지 않는 원시 상태의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 인간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루소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이 사유 재산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을 갖게 되었고, 점점 탐욕에 물들게 되었다. 스트릭랜드가 살던 런던은 바로 그런 문명사회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루소는 예술조차도 인간의 사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는데, 스트릭랜드가 예술을 통해서 명예를 얻고 돈을 벌려고 했다면 그도 루소가 비판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즉 일종의 종교적 구도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타이티 섬은 그에게 속된 문명에 물들지 않은 성스러운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평범한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때 그는 인륜을 저버린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덕을 오히려 타인에 대한 위선적 태도의 산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가장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기성의 도덕과 관습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그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술이 도덕성을 고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트릭랜드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키워드
도덕, 문명사회, 물질문명, 아름다움, 예술, 진리
전후맥락
스트릭랜드가 병이 들었을 때 스트로브는 자신의 아내, 블랑쉬를 설득하여 그를 자신에 집에서 간호하게 했다. 그런데 블랑쉬는 스트릭랜드의 야성적 매력에 빠져서 그를 따라가겠다고 남편에서 통보한다. 사실, 스트릭랜드는 블랑쉬가 모델로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비상식적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블랑쉬는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파리을 떠나 타이티 섬에 정착한다. 여기에서 가족을 이루고 예술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나병에 걸려 죽으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겼고, 아내에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울 것을 부탁한다.
고전본문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최근 스트릭랜드에 대해서 들었던 모든 것이 나를 사로잡게 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 외딴 섬에서 그는 고향에서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사는 토착민이나 유럽인들에게 그는 이상한 존재였지만, 그들은 그런 사람에게 익숙했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이상한 일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사람이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그는 둥근 구멍에 넣어야 할 네모난 말뚝과 같은 존재였지만, 여기서는 어떤 모양의 구멍이든 다 있었고, 맞지 않은 말뚝은 없었다. 여기서 그가 덜 이기적이고 덜 거친 부드러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만일 그가 이런 환경에서 생을 보냈었다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것, 동정을 받았다.
나는 브뤼노 선장에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는지를 말하려 했다. 그는 한 동안 대답을 하지 않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하여간 내가 그에게 공감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오. 우리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우리 둘은 같은 대상을 지향하고 있었소.”
“당신과 스트릭랜드는 너무 다른 사람인데 도대체 어떻게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단 말입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움 말이오.”
“큰 목표군요.” 나는 중얼거렸다.
“당신도 알다시피, 사람이 사랑에 사로잡히면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 않소. 그들은 갤리선에 묶여서 노를 젓는 노예들처럼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아 묶었던 열정은 사랑만큼이나 사람을 휘어잡았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이야, 정말 신기하네요.” 나는 대답했다. “오래전에 나는 그가 악마에 홀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았던 열정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그 열정은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습니다. 그는 신적인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였습니다. 그 안에 있던 악마는 무자비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큰 나머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기초를 흔들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류에 스트릭랜드는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오직 아름다움만이 진리를 대신했지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제54장 中
토론하기
1. 스트릭랜드가 문명 세계를 떠나 원시적 삶이 살아 있는 타이티 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왜 스티릭랜드는 아름다움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했을까?
2. 스트릭랜드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속해 있는 삶의 현장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설읽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진리(眞), 좋음(善), 아름다움(美)은 한 대상의 다른 측면들이었다. 다시 말해, 옳은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세계에서는 이 세 가지 차원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무엇이 진실된 삶인지에 대한 합의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낭만주의자들은 아름다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송가」(Ode on a Grecian Urn)에서 “아름다움이 진리이고, 진리가 곧 아름다움이다/이것은 당신이 지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이고, 당신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다.”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스트릭랜드에게도 아름다움이 삶의 진실이고, 그것만이 그에게 살만한 가치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가 찾던 삶의 진실을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타이티 섬으로 갔고 섬의 한 구석을 자신만의 낙원으로 삼고 작품활동에 매진한다. 그가 문명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문명 세계가 거짓과 위선, 속물근성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루소(Rousseau)는 당시 대두되는 물질문명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써냈다. 그는 문명에 물들지 않는 원시 상태의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 인간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루소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이 사유 재산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을 갖게 되었고, 점점 탐욕에 물들게 되었다. 스트릭랜드가 살던 런던은 바로 그런 문명사회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루소는 예술조차도 인간의 사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는데, 스트릭랜드가 예술을 통해서 명예를 얻고 돈을 벌려고 했다면 그도 루소가 비판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즉 일종의 종교적 구도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타이티 섬은 그에게 속된 문명에 물들지 않은 성스러운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평범한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때 그는 인륜을 저버린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덕을 오히려 타인에 대한 위선적 태도의 산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가장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기성의 도덕과 관습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그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술이 도덕성을 고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트릭랜드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키워드
도덕, 문명사회, 물질문명, 아름다움, 예술,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