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그들 중 하나인 파우사니아스가 어제도 과음했으니 술을 쉽게 마실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아가톤은 전날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공적인 향연을 개최했고 이 날은 소수의 친한 지인들만 불러 사적인 향연을 벌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전날의 향연에도 참석했던 것이다. 참석자들은 각자 원하는 만큼만 술을 마시고, 술에 의지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연회를 즐기기로 한다. 적당한 이야깃거리를 찾던 중,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평소 파이드로스가 다른 신들에 대해서는 찬가가 있고 인간 영웅들에 대해서도 찬가가 있으며 심지어 소금과 같은 자연물에 대해서도 찬가가 있는데 유독 에로스 신에 대해서는 찬가가 없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에 대한 응답으로 에로스에 대한 찬양을 돌아가면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찬성하고, 파이드로스가 에로스 찬양 연설을 하게 된 원인 제공자로서 첫 번째 연사로 나서게 된다.
고전본문
…그는 먼저 파이드로스가 에로스는 인간들과 신들 모두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신인데, 다른 많은 점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기원에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신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명예롭기 때문인데, 이 증거는 다음과 같다오. 에로스의 부모는 일반인들에 의해서든 시인들에 의해서든 이야기되지 않았고, 오히려 헤시오도스가 말하길 가장 먼저 카오스가 있었고 언제나 만물을 확고하게 떠받치는 가이아가,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했소. 에로스는 이렇듯 여러 곳으로부터 가장 오래된 존재로 동의되었소. 그리고 가장 오래된 자이므로 그는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에 대한 원인이오. 나로서는 어쨌거나 어린 사람에 있어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훌륭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혹은 사랑하는 쪽에 있어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을 훌륭한 소년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욱 좋은 일이 있는지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왜냐하면 인생 전반에 걸쳐 훌륭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 이를 명예도 재산도 에로스만큼 그토록 훌륭하게 만들어 넣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라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이것이 무엇일까요? 부끄러운 것들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훌륭한 것들에 대해서는 향상심을 갖는 것을 말하지요.
…(중략)…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용기가 없어서 자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뭔가 부끄러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아버지나 친구 또 그 밖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소년 (애인)에게 들켰을 때 더 마음이 아플 거라고 말하겠소. 사랑받는 자(소년 애인)도 마찬가지요. …(생략)… 이리하여 나는 에로스를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명예로우며 인간들에게 있어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미덕과 행복의 성취에 관해 가장 권위있는 자라고 이야기한다오…
[출전] 플라톤, 『향연』 178c-180b passim.
토론하기
(1) 에로스는 흔히 ‘사랑’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사랑에도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부터 떠오르는 개인적인 느낌과 인상을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고 『향연』에서 논의되는 에로스는 여러 사랑들 가운데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2) 파이드로스의 찬양 연설에서 묘사되는 에로스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또,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무언가로 이야기하는데 사랑은 어느 한 쪽만 있어도 성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양쪽 모두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일까?
해설읽기
고대 아테네의 향연(쉼포지온)
플라톤의 『향연』은 레나이아 경연이 끝나고 이틀 후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쉼포지온συμπόσιο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공중토론의 한 종을 가리키는 심포지엄symposium이 되었다. 하지만 쉼포지온은 본래부터 학문적 목적을 위한 행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함께’나 ‘같이’를 의미하는 ‘쉰σύν’에 ‘음료’, ‘음용’ 등을 뜻하는 ‘포시스πόσις’가 더해져 ‘함께 (술) 마시는 장소’라는 뜻으로 ‘쉼포지온’으로 불렸으니 사실 진지한 학문적 사색이 아니라 한바탕 놀아보자고 모이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회는 당연하게도 커다란 지출을 동반했기 때문에 아무나 자주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쉼포지온을 이틀 연속으로 개최한 것을 보면 아가톤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던 모양이다. 그럼 옛 사람들은 어디에서 함께 술을 마셨을까? 통상 주최하는 사람의 가옥 내에 있는 남자를 위한 방인 안드론ἀνδρών에서 마셨다고 한다. 쉼포지온은 남성들의 사회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열렸고 그리 건전하기만 한 자리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서빙과 유흥을 담당하는 것은 노예들이었다. 남녀 노예들은 음식을 대접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희로 참여했는데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되어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또 초기에는 상류층의 젊은 남성이나 소년들도 참관했다고 하며, 소년애 전통을 가진 희랍 사회였기에 이 자리에서 성인 남성이 윤리적 조언을 하고 소년이 성적 관심에 응했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인데, 소년애란 무엇이었을까?
소년애 전통?! 그리고 에로스
플라톤의 『향연』은 소년애 문화를 바탕으로 ‘에로스’에 관한 찬양과 논의를 들려주는 대화편이다. 소년애란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 사이에 맺어지는 동성애 관계를 가리키는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그리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서는 다소 뜨악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소년애 문화는 나름대로 순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소년 애인들은 소년애를 통해서 성인 남성들로부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윤리적 가르침 그리고 인맥 등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공교육 시설과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던 고대 사회에서 일종의 교육적 기능을 그들에게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소년애 관계에 놓인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은 ‘에라스테스’과 ‘에로메노스’로 불렸는데 이들 모두 ‘에로스’에서 비롯된 말들이며 각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를 의미했다. 이것은 옛 희랍인들이 소년애 관계를 ‘에로스’가 매개하는 관계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희랍어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과 성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에로스를 보통 ‘사랑’으로 옮기고는 하는데, 사실 사랑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개념이다. 사랑에도 수많은 종류와 유형이 있으니까. 짝사랑, 풋사랑, 지고지순한 사랑 등등. 그중에서 희랍어 ‘에로스’는 육체적이고 성性적인 사랑과 그 원천인 성욕을 가리켰다. 흥미롭게도 에로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화 속에서 우주의 초창기부터 작용해온 원초적인 에너지로 등장한다. 그것은 신화가 세계의 탄생을 신들의 유성 생식 활동으로 설명하는데, 그러한 성적 활동의 원동력이 바로 에로스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성욕이 없다면, 성행위란 그저 힘든 노동에 불과하므로 누구도 성적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생성과 창조도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대화편 『향연』은 소년애는 물론 모든 성적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는 이 ‘육체적 사랑과 성욕’에 관하여 참가자들 각자의 해석과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론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론은 단순·명료하다. 찬양 연설이므로, 그는 에로스가 찬사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에로스가 어떤 신이기에 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오래된 태초의 신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름난 시인인 헤시오도스도, 현명한 파르메니데스도 그리고 아쿠실라오스도 에로스의 부모가 누구인지 대지 못했다는 것이 파이드로스의 근거다. 왜 현명한 이들조차 에로스의 부모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부모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또 부모가 없다는 것은 에로스보다 선행하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이니 곧 그가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뜻이 아니겠나? 다른 한편으로, 에로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에 대해서 원인이 되어준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뭘까? 그것은 행복일 텐데, 무슨 일인지 파이드로스는 ‘추한 것을 멀리하고 훌륭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 혹은 ‘용기’라고 불러 마땅할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짧게 말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하면,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는 이처럼 가장 오래되고 인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찬사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시들 속에서조차 에로스는 최초의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또,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용기’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라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처럼 파이드로스의 연설 속에는 논리적 비약과 과장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파이드로스가 겨냥하는 것은 어차피 논리적 참이나 진리의 규명이 아니라 성공적인 찬양과 자신의 말솜씨를 뽐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자신의 연설 속에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이스터 에그’도 숨겨놓았다!
파이드로스의 숨은 의도..?
아가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아테네의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각기 비극과 희극에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고 에뤽시마코스는 의사였다. 파이드로스는 소피스트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 수사술에 익숙하다.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서 한때 상당한 권력자였다. 파우사니아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지만, 어린 아가톤과 소년애 관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렇다면 그도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었을 리는 없다. 이런 엘리트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해서, 사소한 경쟁에서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특히 고대 희랍에서는 ‘아곤ἀγῶν’ 전통이라고 해서 경쟁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아곤’은 전쟁이나 투쟁 등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몇몇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연설에 심어놓곤 하는데 파이드로스도 그 중 하나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대목일까? 사실 파이드로스의 찬양 연설 전반의 내용이 곧 파이드로스 자신에 대한 찬사로 읽힐 수 있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기원 상 가장 오래된 것이고 근원적인 것이므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좋은 어떤 것의 원인은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논의를 하게 된 원인이자 근원이 무엇이었던가? 파이드로스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지금부터 나누게 될 이야기가 나쁜 것일 리가 있을까? 무려 플라톤 대화편 속 대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인데? 그렇다면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좋은 것이고 파이드로스는 그것의 원인이므로,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위대하고 훌륭한 파이드로스여야 한다.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에로스, 파이드로스, 플라톤, 향연
전후맥락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그들 중 하나인 파우사니아스가 어제도 과음했으니 술을 쉽게 마실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아가톤은 전날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공적인 향연을 개최했고 이 날은 소수의 친한 지인들만 불러 사적인 향연을 벌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전날의 향연에도 참석했던 것이다. 참석자들은 각자 원하는 만큼만 술을 마시고, 술에 의지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연회를 즐기기로 한다. 적당한 이야깃거리를 찾던 중,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평소 파이드로스가 다른 신들에 대해서는 찬가가 있고 인간 영웅들에 대해서도 찬가가 있으며 심지어 소금과 같은 자연물에 대해서도 찬가가 있는데 유독 에로스 신에 대해서는 찬가가 없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에 대한 응답으로 에로스에 대한 찬양을 돌아가면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찬성하고, 파이드로스가 에로스 찬양 연설을 하게 된 원인 제공자로서 첫 번째 연사로 나서게 된다.
고전본문
…그는 먼저 파이드로스가 에로스는 인간들과 신들 모두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신인데, 다른 많은 점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기원에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신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명예롭기 때문인데, 이 증거는 다음과 같다오. 에로스의 부모는 일반인들에 의해서든 시인들에 의해서든 이야기되지 않았고, 오히려 헤시오도스가 말하길 가장 먼저 카오스가 있었고 언제나 만물을 확고하게 떠받치는 가이아가,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했소. 에로스는 이렇듯 여러 곳으로부터 가장 오래된 존재로 동의되었소. 그리고 가장 오래된 자이므로 그는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에 대한 원인이오. 나로서는 어쨌거나 어린 사람에 있어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훌륭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혹은 사랑하는 쪽에 있어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을 훌륭한 소년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욱 좋은 일이 있는지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왜냐하면 인생 전반에 걸쳐 훌륭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 이를 명예도 재산도 에로스만큼 그토록 훌륭하게 만들어 넣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라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이것이 무엇일까요? 부끄러운 것들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훌륭한 것들에 대해서는 향상심을 갖는 것을 말하지요.
…(중략)…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용기가 없어서 자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뭔가 부끄러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아버지나 친구 또 그 밖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소년 (애인)에게 들켰을 때 더 마음이 아플 거라고 말하겠소. 사랑받는 자(소년 애인)도 마찬가지요. …(생략)… 이리하여 나는 에로스를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명예로우며 인간들에게 있어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미덕과 행복의 성취에 관해 가장 권위있는 자라고 이야기한다오…
[출전] 플라톤, 『향연』 178c-180b passim.
토론하기
(1) 에로스는 흔히 ‘사랑’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사랑에도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부터 떠오르는 개인적인 느낌과 인상을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고 『향연』에서 논의되는 에로스는 여러 사랑들 가운데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2) 파이드로스의 찬양 연설에서 묘사되는 에로스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또,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무언가로 이야기하는데 사랑은 어느 한 쪽만 있어도 성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양쪽 모두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일까?
해설읽기
고대 아테네의 향연(쉼포지온)
플라톤의 『향연』은 레나이아 경연이 끝나고 이틀 후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쉼포지온συμπόσιο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공중토론의 한 종을 가리키는 심포지엄symposium이 되었다. 하지만 쉼포지온은 본래부터 학문적 목적을 위한 행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함께’나 ‘같이’를 의미하는 ‘쉰σύν’에 ‘음료’, ‘음용’ 등을 뜻하는 ‘포시스πόσις’가 더해져 ‘함께 (술) 마시는 장소’라는 뜻으로 ‘쉼포지온’으로 불렸으니 사실 진지한 학문적 사색이 아니라 한바탕 놀아보자고 모이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회는 당연하게도 커다란 지출을 동반했기 때문에 아무나 자주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쉼포지온을 이틀 연속으로 개최한 것을 보면 아가톤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던 모양이다. 그럼 옛 사람들은 어디에서 함께 술을 마셨을까? 통상 주최하는 사람의 가옥 내에 있는 남자를 위한 방인 안드론ἀνδρών에서 마셨다고 한다. 쉼포지온은 남성들의 사회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열렸고 그리 건전하기만 한 자리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서빙과 유흥을 담당하는 것은 노예들이었다. 남녀 노예들은 음식을 대접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희로 참여했는데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되어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또 초기에는 상류층의 젊은 남성이나 소년들도 참관했다고 하며, 소년애 전통을 가진 희랍 사회였기에 이 자리에서 성인 남성이 윤리적 조언을 하고 소년이 성적 관심에 응했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인데, 소년애란 무엇이었을까?
소년애 전통?! 그리고 에로스
플라톤의 『향연』은 소년애 문화를 바탕으로 ‘에로스’에 관한 찬양과 논의를 들려주는 대화편이다. 소년애란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 사이에 맺어지는 동성애 관계를 가리키는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그리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서는 다소 뜨악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소년애 문화는 나름대로 순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소년 애인들은 소년애를 통해서 성인 남성들로부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윤리적 가르침 그리고 인맥 등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공교육 시설과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던 고대 사회에서 일종의 교육적 기능을 그들에게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소년애 관계에 놓인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은 ‘에라스테스’과 ‘에로메노스’로 불렸는데 이들 모두 ‘에로스’에서 비롯된 말들이며 각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를 의미했다. 이것은 옛 희랍인들이 소년애 관계를 ‘에로스’가 매개하는 관계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희랍어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과 성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에로스를 보통 ‘사랑’으로 옮기고는 하는데, 사실 사랑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개념이다. 사랑에도 수많은 종류와 유형이 있으니까. 짝사랑, 풋사랑, 지고지순한 사랑 등등. 그중에서 희랍어 ‘에로스’는 육체적이고 성性적인 사랑과 그 원천인 성욕을 가리켰다. 흥미롭게도 에로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화 속에서 우주의 초창기부터 작용해온 원초적인 에너지로 등장한다. 그것은 신화가 세계의 탄생을 신들의 유성 생식 활동으로 설명하는데, 그러한 성적 활동의 원동력이 바로 에로스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성욕이 없다면, 성행위란 그저 힘든 노동에 불과하므로 누구도 성적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생성과 창조도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대화편 『향연』은 소년애는 물론 모든 성적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는 이 ‘육체적 사랑과 성욕’에 관하여 참가자들 각자의 해석과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론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론은 단순·명료하다. 찬양 연설이므로, 그는 에로스가 찬사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에로스가 어떤 신이기에 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오래된 태초의 신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름난 시인인 헤시오도스도, 현명한 파르메니데스도 그리고 아쿠실라오스도 에로스의 부모가 누구인지 대지 못했다는 것이 파이드로스의 근거다. 왜 현명한 이들조차 에로스의 부모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부모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또 부모가 없다는 것은 에로스보다 선행하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이니 곧 그가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뜻이 아니겠나? 다른 한편으로, 에로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에 대해서 원인이 되어준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뭘까? 그것은 행복일 텐데, 무슨 일인지 파이드로스는 ‘추한 것을 멀리하고 훌륭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 혹은 ‘용기’라고 불러 마땅할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짧게 말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하면,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는 이처럼 가장 오래되고 인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찬사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시들 속에서조차 에로스는 최초의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또,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용기’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라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처럼 파이드로스의 연설 속에는 논리적 비약과 과장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파이드로스가 겨냥하는 것은 어차피 논리적 참이나 진리의 규명이 아니라 성공적인 찬양과 자신의 말솜씨를 뽐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자신의 연설 속에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이스터 에그’도 숨겨놓았다!
파이드로스의 숨은 의도..?
아가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아테네의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각기 비극과 희극에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고 에뤽시마코스는 의사였다. 파이드로스는 소피스트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 수사술에 익숙하다.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서 한때 상당한 권력자였다. 파우사니아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지만, 어린 아가톤과 소년애 관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렇다면 그도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었을 리는 없다. 이런 엘리트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해서, 사소한 경쟁에서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특히 고대 희랍에서는 ‘아곤ἀγῶν’ 전통이라고 해서 경쟁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아곤’은 전쟁이나 투쟁 등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몇몇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연설에 심어놓곤 하는데 파이드로스도 그 중 하나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대목일까? 사실 파이드로스의 찬양 연설 전반의 내용이 곧 파이드로스 자신에 대한 찬사로 읽힐 수 있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기원 상 가장 오래된 것이고 근원적인 것이므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좋은 어떤 것의 원인은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논의를 하게 된 원인이자 근원이 무엇이었던가? 파이드로스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지금부터 나누게 될 이야기가 나쁜 것일 리가 있을까? 무려 플라톤 대화편 속 대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인데? 그렇다면 에로스에 대한 찬양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좋은 것이고 파이드로스는 그것의 원인이므로,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위대하고 훌륭한 파이드로스여야 한다.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에로스, 파이드로스, 플라톤,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