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파이드로스에 이어서 파우사니아스가 연설을 마친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은 사회·문화적 성격이 짙은데, 그는 에로스를 훌륭한 에로스와 그렇지 못한 에로스로 나누고 나이 든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 사이의 소년애 관계 역시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관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어서 올바른 소년애 문화의 토대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법과 관습이 타 지역의 법과 관습에 대해 가지는 상대적 우월성을 칭송한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이 끝난 후, 세 번째 연사가 되어 연설에 나서야 할 사람은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심한 딸꾹질을 호소하고 옆에 있던 에뤽시마코스에게 딸꾹질을 멈추게 해주든가 자기 대신 먼저 연설을 해달라고 말한다. 에뤽시마코스는 술 대신 이야기를 하며 즐기자고 또 이야기의 주제로 에로스에 관한 찬양 연설을 선택하자고 주장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주도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의사였다. 그러자 에뤽시마코스는 이번에도 자신 있게 두 가지 모두를 해주겠다며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재채기와 간지럼 요법을 권한 아리스토파네스와 순서를 바꾸어 세 번째로 연설에 나선다.
고전본문
에로스가 사람들의 영혼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기술인 의술로부터 깨달았다고 생각하네. 그 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랄 만한 신인지, 그리고 어떻게 모든 것에, 즉 인간적인 사물들과 신적인 사물들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지를 말일세.
나는 이야기를 의술에서부터 시작할 것인데, 그건 우리가 그 기술에 특별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네. 몸들의 본성은 바로 이 이중의 에로스를 갖고 있네. 몸의 건강함과 병듦이 다른 것이고 서로 비슷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흔히 받아들여지며, 비슷하지 않은 것은 비슷하지 않은 것들을 욕망하고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건강한 것에게 있는 사랑이 다르고 병든 것에게 있는 사랑이 다르지.
골자만 말하면 의술은 채움이나 비움과 관련하여 에로스가 몸 안에서 하는 일들에 대한 앎이며 이런 일들에서 아름다운 사랑과 추한 사랑을 분간하는 자가 있다면 이자야말로 가장 의사다운 자이네. 사실 그는 몸 안에서 가장 적대적인 것들이 서로 친하도록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어야만 하거든. 그런데 가장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에게 가장 적대적이지. 차가운 것이 뜨거운 것에, 쓴 것이 단 것에, 마른 것이 축축한 것에,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그러하네. 이런 것들에 사랑과 한 마음을 만들어 넣어 줄 줄 알았기에, 여기 이 시인들이 말하고 또 나 자신도 그들을 따라 믿고 있듯이, 우리 조상 아스클레피오스께서 우리 기술을 확립하셨던 것이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있는 대로 의술 전체가 이 신을 통해 조종되며, 체육 기술과 농사 기술도 마찬가지네. 시가 기술도 이것들과 똑같은 상태라는 것이 분명하다네.
이렇게 많은 큰 능력을, 아니 한마디로 말해 일체의 능력을 에로스 전체가 갖고 있다네.
토론하기
(1) 에뤽시마코스의 연설에 드러난 사랑의 본성과 역할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그가 향연의 다른 참가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론과 그가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일러준 처방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 그리고 깨알 같은 자기자랑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는 이중적이다. 그는 에로스의 이중성을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욕구하고 사랑한다’는 상극상통설로부터 이끌어낸다.
…몸들의 본성은 바로 이 이중의 에로스를 갖고 있으니까 말일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몸의 건강함과 병듦이 다르고 같지 않다고 하고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욕구하고 사랑하니까. 그러므로 건강한 것에 있는 사랑이 다르고 병든 것에 있는 사랑이 다르지… 플라톤, 『향연』 186b5-9.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를 단지 인간 내부에 들어있는 요소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 걸쳐 적용되는 근본적인 원리로 확장시킨다. 그의 에로스는 반대되는 대립자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끌거나 불화를 일으켜 존재의 생성과 유지를 돕거나 파괴와 소멸을 이끈다. 그리고 개별적인 학문과 기술은 특정 분야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지식이다. 예컨대 음악은 음정의 높고 낮음 그리고 박자의 빠름과 느림이라는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고 기상학은 별의 움직임과 계절의 더움과 추움 그리고 건조함과 축축함 같은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앎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들 가운데 가장 특별한 주목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의술이다. 의술도 몸 안에 있는 온·냉·건·습 등의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앎인데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아스클레피오스가 기술로 확립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의사와 의술은 특별한 존경을 받아야 한단다. 그리고 에뤽시마코스의 직업은 의사다.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인 잘난 척 아닌지…?
이과적 인간의 역습
에뤽시마코스는 ‘이과적인’ 인간이다. 의사답게 에로스에 대한 자연철학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에로스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운행을 이끄는 자연의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에뤽시마코스는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는 일종의 상극상통설에 토대를 두고 에로스를 설명한다. 에로스는 서로 반대되는 대립적 원리들의 조화와 부조화를 결정하는데 에로스의 이러한 작용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예컨대, 에로스가 인간의 몸에 대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전문지식을 가진 자들은 자신과 같은 의사들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신적인 것이라는 은근한 자기자랑이 섞여있다. 이 자리는 유흥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종종 나타나는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상술했다시피 에뤽시마코스는 의사로서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이과적’이다. 그의 의술도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들의 이합집산과 그것들의 결합과 분리를 이끄는 사랑과 불화의 두 가지 원리를 통해 자연 세계를 설명했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토대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뤽시마코스는 연설에 앞서 간단한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준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그가 알려주는 방법은 일단 숨을 참아보고 듣지 않으면 가글을 해본 다음, 그래도 딸꾹질이 계속되거든 코를 간지럽혀 재채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모두 어떤 질서나 원리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들이다. 일시적으로 불규칙적인 상태를 일부러 유도함으로써 원래의 규칙적인 상태를 복구한 것인데, 이는 에뤽시마코스가 연설에서 주장하는 에로스의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에뤽시마코스의 처방과 의술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과연 그것은 참된 의술일까, 아니면 나름의 체계는 갖추고 있지만 잘못된 전제를 사용한 유사 과학일까?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에로스, 에뤽시마코스, 플라톤, 향연
전후맥락
파이드로스에 이어서 파우사니아스가 연설을 마친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은 사회·문화적 성격이 짙은데, 그는 에로스를 훌륭한 에로스와 그렇지 못한 에로스로 나누고 나이 든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 사이의 소년애 관계 역시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관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어서 올바른 소년애 문화의 토대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법과 관습이 타 지역의 법과 관습에 대해 가지는 상대적 우월성을 칭송한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이 끝난 후, 세 번째 연사가 되어 연설에 나서야 할 사람은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심한 딸꾹질을 호소하고 옆에 있던 에뤽시마코스에게 딸꾹질을 멈추게 해주든가 자기 대신 먼저 연설을 해달라고 말한다. 에뤽시마코스는 술 대신 이야기를 하며 즐기자고 또 이야기의 주제로 에로스에 관한 찬양 연설을 선택하자고 주장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주도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의사였다. 그러자 에뤽시마코스는 이번에도 자신 있게 두 가지 모두를 해주겠다며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재채기와 간지럼 요법을 권한 아리스토파네스와 순서를 바꾸어 세 번째로 연설에 나선다.
고전본문
에로스가 사람들의 영혼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기술인 의술로부터 깨달았다고 생각하네. 그 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랄 만한 신인지, 그리고 어떻게 모든 것에, 즉 인간적인 사물들과 신적인 사물들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지를 말일세.
나는 이야기를 의술에서부터 시작할 것인데, 그건 우리가 그 기술에 특별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네. 몸들의 본성은 바로 이 이중의 에로스를 갖고 있네. 몸의 건강함과 병듦이 다른 것이고 서로 비슷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흔히 받아들여지며, 비슷하지 않은 것은 비슷하지 않은 것들을 욕망하고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건강한 것에게 있는 사랑이 다르고 병든 것에게 있는 사랑이 다르지.
골자만 말하면 의술은 채움이나 비움과 관련하여 에로스가 몸 안에서 하는 일들에 대한 앎이며 이런 일들에서 아름다운 사랑과 추한 사랑을 분간하는 자가 있다면 이자야말로 가장 의사다운 자이네. 사실 그는 몸 안에서 가장 적대적인 것들이 서로 친하도록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어야만 하거든. 그런데 가장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에게 가장 적대적이지. 차가운 것이 뜨거운 것에, 쓴 것이 단 것에, 마른 것이 축축한 것에,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그러하네. 이런 것들에 사랑과 한 마음을 만들어 넣어 줄 줄 알았기에, 여기 이 시인들이 말하고 또 나 자신도 그들을 따라 믿고 있듯이, 우리 조상 아스클레피오스께서 우리 기술을 확립하셨던 것이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있는 대로 의술 전체가 이 신을 통해 조종되며, 체육 기술과 농사 기술도 마찬가지네. 시가 기술도 이것들과 똑같은 상태라는 것이 분명하다네.
이렇게 많은 큰 능력을, 아니 한마디로 말해 일체의 능력을 에로스 전체가 갖고 있다네.
토론하기
(1) 에뤽시마코스의 연설에 드러난 사랑의 본성과 역할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그가 향연의 다른 참가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론과 그가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일러준 처방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 그리고 깨알 같은 자기자랑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는 이중적이다. 그는 에로스의 이중성을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욕구하고 사랑한다’는 상극상통설로부터 이끌어낸다.
…몸들의 본성은 바로 이 이중의 에로스를 갖고 있으니까 말일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몸의 건강함과 병듦이 다르고 같지 않다고 하고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욕구하고 사랑하니까. 그러므로 건강한 것에 있는 사랑이 다르고 병든 것에 있는 사랑이 다르지… 플라톤, 『향연』 186b5-9.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를 단지 인간 내부에 들어있는 요소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 걸쳐 적용되는 근본적인 원리로 확장시킨다. 그의 에로스는 반대되는 대립자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끌거나 불화를 일으켜 존재의 생성과 유지를 돕거나 파괴와 소멸을 이끈다. 그리고 개별적인 학문과 기술은 특정 분야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지식이다. 예컨대 음악은 음정의 높고 낮음 그리고 박자의 빠름과 느림이라는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고 기상학은 별의 움직임과 계절의 더움과 추움 그리고 건조함과 축축함 같은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앎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들 가운데 가장 특별한 주목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의술이다. 의술도 몸 안에 있는 온·냉·건·습 등의 대립자들 사이에서 에로스가 하는 일에 관한 앎인데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아스클레피오스가 기술로 확립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의사와 의술은 특별한 존경을 받아야 한단다. 그리고 에뤽시마코스의 직업은 의사다.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인 잘난 척 아닌지…?
이과적 인간의 역습
에뤽시마코스는 ‘이과적인’ 인간이다. 의사답게 에로스에 대한 자연철학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에로스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운행을 이끄는 자연의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에뤽시마코스는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는 일종의 상극상통설에 토대를 두고 에로스를 설명한다. 에로스는 서로 반대되는 대립적 원리들의 조화와 부조화를 결정하는데 에로스의 이러한 작용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예컨대, 에로스가 인간의 몸에 대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전문지식을 가진 자들은 자신과 같은 의사들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신적인 것이라는 은근한 자기자랑이 섞여있다. 이 자리는 유흥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종종 나타나는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상술했다시피 에뤽시마코스는 의사로서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이과적’이다. 그의 의술도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들의 이합집산과 그것들의 결합과 분리를 이끄는 사랑과 불화의 두 가지 원리를 통해 자연 세계를 설명했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토대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뤽시마코스는 연설에 앞서 간단한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준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그가 알려주는 방법은 일단 숨을 참아보고 듣지 않으면 가글을 해본 다음, 그래도 딸꾹질이 계속되거든 코를 간지럽혀 재채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모두 어떤 질서나 원리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들이다. 일시적으로 불규칙적인 상태를 일부러 유도함으로써 원래의 규칙적인 상태를 복구한 것인데, 이는 에뤽시마코스가 연설에서 주장하는 에로스의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에뤽시마코스의 처방과 의술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과연 그것은 참된 의술일까, 아니면 나름의 체계는 갖추고 있지만 잘못된 전제를 사용한 유사 과학일까?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에로스, 에뤽시마코스, 플라톤,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