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끝나자 에뤽시마코스는 그의 연설을 칭찬하면서 다음 연사가 사랑 전문가들인 아가톤과 소크라테스가 아니었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을 거라면서 너스레를 떤다. 소크라테스도 죽는 소리를 한다. 에뤽시마코스야 연설을 잘 했으니 속이 편하겠지만 이제 비극대회 우승인 아가톤까지 멋진 연설을 들려줄 테니 자기 상황이 몹시도 절망적이라고.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아가톤 사이에 누가 더 지혜로운가를 두고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지지만, 파이드로스가 논쟁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에로스 찬양 연설을 반드시 들어야겠다며 제지함으로써 아가톤의 연설이 시작된다. 아가톤은 레나이아 비극 경연대회의 우승자이자 연회의 주인공답게 즉흥적 연설임에도 문체론적 고려까지 곁들인 현란한 연설을 들려준다.
고전본문
…나는 모든 신들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에로스가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는 그 어떤 신들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신이거든요. 그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첫째로 아, 파이드로스여,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젊어요. 그 자신이 이 말에 증거를 제공하고 있지요. 노령이란 빠른 것이 분명한데도 노인들을 피하니까요. 확실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질 정도보다는 더 빠르게 찾아오잖아요. 에로스는 언제나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그 스스로도 젊어요.
또 에로스는 젊고, 그 뿐만 아니라 부드럽기도 합니다. 그 신이 신들 가운데 가장 부드럽다는 점을 보이려면 예컨대 호메로스와 같은 시인이 필요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호메로스는 어쨌든 여신 아테 또한 부드럽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죠.
“그녀의 발은 부드럽다. (단단한) 맨바닥을 딛고 다가오지 않고
(무른) 사람들의 머리를 딛고 걸어 다니니까.”
에로스는 가장 젊고 가장 부드러운데다 거기에 더하여 형태에 있어서 유연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유연하지 않다면 온갖 방식으로 붙들어 놓지도 못할 것이고 모든 영혼에 우선 들어갔다가 은연중에 빠져나오지도 못할 테니까요.
이것 다음으로는 에로스의 훌륭함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로스가 신들에게든 인간들에게든 불의를 저지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이들이 에로스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봉사하려고 드니까요. 그런데 “국가의 왕인 법률”은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정의롭다고 부릅니다.
에로스는 정의에 더하여 가장 큰 절제도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쾌락과 욕구를 지배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력하다고 이야기되지 않지요. 쾌락들이 에로스보다 한결 열등하다면 에로스에 의해 지배될 것이고 에로스는 그것들을 지배할 겁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쾌락과 욕구보다 강력하니 그것은 특별히 절제 있는 것이죠.
또한 용기에 있어서도 아레스조차 에로스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아레스가 에로스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아레스를 휘두르고 있으니까요. 휘두르는 자가 휘둘리는 자보다 강력하죠. 다른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자를 지배하는 신이니 에로스는 가장 용감한 신이 됩니다.
자, 이제 그 신의 정의와 절제 그리고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되었고 지혜에 관한 것이 남았습니다. 그 신은 다른 사람도 시인으로 만들 만큼 지혜로운 시인입니다. 어쨌든지 에로스와 접촉하기 전까지 음악에 문외한이었다고 해도 모두 시인이 되고 말지요.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증거로 삼아 에로스가 훌륭한 시인이라고, 요컨대 시가 기술에 따르는 모든 창작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든 갖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다른 이에게 주거나 가르칠 수 없으니까요.
[출전] 플라톤, 『향연』, 195a-197 passim.
토론하기
(1) 아가톤은 이 향연의 주인공이자 지혜로운 자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화려하고 현란하기는 해도 진지하고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가톤은 왜 이러한 연설을 들려주는 것일까?
(2) 아가톤의 에로스는 ‘가장 아름다운 동시에 가장 훌륭하기 때문에 신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신’이다. ‘아름다움’과 ‘훌륭함’ 중 하나를 선택해 아가톤이 그것을 에로스의 특성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밝히고 이 찬양연설의 숨겨진 대상이 누구일지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수사학과 찬양연설
아가톤은 이날 열린 향연의 주인공이다. 이 자리에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은 아가톤이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사회에서 시인들은 신들이 들려주는 것을 대중들에게 말해주는 신성한 인간인 동시에 본받을 점이 많은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들려줘 공동의 윤리적 공통분모를 고대 희랍에 공급해 온 대중 교육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가톤은 그런 비극 시인들 중 최고로 인정받은 셈이니 자신의 지혜에 대해 꽤나 자신만만한 상태일 법도 하다. 그러나 아가톤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가 재치 있고 말솜씨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기를 해도,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도 않고 어떤 앎을 가져다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아가톤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를 보여주지 않는 걸까? 그것은 이들이 하고 있는 ‘수사학적 연설’의 특징 때문이다.
본래 향연은 다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는 자리이지만, 전날 열렸던 공적 연회에서 모두가 과음을 했던 탓에, 아가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에로스에 대해 찬양연설을 하며 술자리를 즐기기로 합의했다. 찬양연설은 당시 아테네에서 크게 각광받던 수사학(대중 연설술)의 한 분야였다. 직접 민주정을 실시했던 아테네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설득을 추구하는 연설 기술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었고 그 교육은 주로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수사학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장르가 있다.
『향연』의 참가자들이 벌이고 있는 찬양연설은 전시연설 중 대상을 칭찬하는 연설을 가리키는데, 당시 소피스트들은 이것을 자신의 뛰어난 말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 활용하고는 했다. 대다수가 미워하는 인물을 성공적으로 칭찬하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성공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의 언변이 유창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연설의 핵심 쟁점은 아름다움과 추함, 즉 미추美醜의 문제다. 연설가는 자신이 칭찬하려는 대상이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거나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점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반대임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래서 『향연』의 연사들은 마치 우리네 조상들이 시를 지으며 술을 즐겼듯이, 찬양연설을 경쟁적 놀이로 삼아 자신의 말솜씨를 뽐내며 술자리를 즐기는데, 모두가 에로스의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에 초점을 맞추어 찬양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철학자들과는 매우 다른 소피스트들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들은 수사적 연설에서 논변을 구성할 때, 설득에 도움이 된다면 사실이 아닌 전제와 논증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곤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보편적 진리란 없으므로 자신의 생각을 연설을 통해 다수의 통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사적 논변은 학문적 논변과는 달라서, 언제나 참된 진실로만 채워질 필요도 없고 엄밀한 지식을 산출할 필요도 없다. 소피스트들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에 사용되는 논증 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진실보다 모두가 믿는 거짓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수사학과 찬양연설은 애초부터 진리의 증명을 겨냥하지 않는다. 아가톤과 기존 연사들의 제 1 목표는 에로스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한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검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후에 등장할 소크라테스의 몫이다. 그들에게 ‘당신들의 연설이 화려하기는 한데, 뭔가 진실을 깨달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런 겁니까?’하고 묻는다면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비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할 예정이지만.
행복한 신 에로스
아가톤은 에로스 신이 아름다우면서도 훌륭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행복한 신이라고 찬양한다. 희랍어로 ‘아름다운’은 칼로스이고 ‘훌륭한’은 ‘아가토스’이고 고대 희랍에서는 심신의 조화를 갖춘 이상적이고 고결한 성품을 가진 자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하여 ‘칼로카가토스’하다고 했다. 아가톤의 연설은 에로스 신이 바로 그처럼 ‘칼로카가토스’하다는 것이다.
아가톤의 논변은 명료하다. 첫째, 에로스는 아름답다. 왜? 그는 젊고 섬세하며 유연하니까. 모든 것은 유유상종하는 법인데 에로스는 노인들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함께한다. 아테 여신의 경우처럼, 무른 것과 접촉하는 것은 무르기 마련인데 에로스는 무른 것 중에서도 가장 무른 것인 사랑에 빠진 영혼하고만 접촉한다. 마지막으로 에로스는 마치 물이 그릇에 대해서 그렇듯이, 어떻게 생긴 영혼이든 자유롭게 들어갔다가 자유롭게 빠져나온다.
둘째, 에로스는 훌륭하다. 어째서? 그는 정의롭고 절제 있으며 용감하고 지혜로우니까.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강제적 완력으로 불의를 선사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불의를 당하지도 않는다. 불의와 이토록 반대되는 것은 정의다. 또 에로스는 모든 쾌락과 욕망의 정점에서 그것들을 지배하는데, 우리는 쾌락과 욕망에 대한 지배를 절제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에로스는 아레스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배한다. 아레스보다 용감한 신이 에로스를 제외하고 또 있던가? 마지막으로 사랑은 그것에 빠진 사람들을 그 대상에 따라 시인으로 만들거나 특정 영역의 전문가로 만들어주는데, 그것은 사랑이 그 영역들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다. 사랑이 그러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없는 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는가?
이면의 메시지
요약해놓은 논변만 보더라도 눈치 챌 수 있듯이, 아가톤의 연설은 말재주와 재치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한 가지 장치를 더 숨겨놓았다. 그것은 이 향연의 주인공이자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지성인으로서 아가톤 스스로에 대한 칭찬과 자랑이다. 아가톤은 에로스를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겸비한 존재로 집중 묘사하는데, 이 두 가지 개념 모두 아가톤 자신을 연상시킬 수 있는 키워드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아가톤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테네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미소년으로 유명했었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 『테스모포리아의 여인들』에서는 아가톤이 여성들보다 더욱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자로 묘사되어 있을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 ‘훌륭함’ 또한 아가톤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은 아가톤이 젊은 나이에 레나이아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가톤ἀγαθόν’이라는 이름이 이미 ‘훌륭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아가토스ἀγαθός’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가톤이 묘사하는 에로스는 곧 아가톤 자신을 가리키며 그의 에로스 찬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도 볼 수 있겠다.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아가톤, 에로스, 플라톤, 향연
전후맥락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끝나자 에뤽시마코스는 그의 연설을 칭찬하면서 다음 연사가 사랑 전문가들인 아가톤과 소크라테스가 아니었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을 거라면서 너스레를 떤다. 소크라테스도 죽는 소리를 한다. 에뤽시마코스야 연설을 잘 했으니 속이 편하겠지만 이제 비극대회 우승인 아가톤까지 멋진 연설을 들려줄 테니 자기 상황이 몹시도 절망적이라고.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아가톤 사이에 누가 더 지혜로운가를 두고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지지만, 파이드로스가 논쟁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에로스 찬양 연설을 반드시 들어야겠다며 제지함으로써 아가톤의 연설이 시작된다. 아가톤은 레나이아 비극 경연대회의 우승자이자 연회의 주인공답게 즉흥적 연설임에도 문체론적 고려까지 곁들인 현란한 연설을 들려준다.
고전본문
…나는 모든 신들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에로스가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는 그 어떤 신들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신이거든요. 그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첫째로 아, 파이드로스여,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젊어요. 그 자신이 이 말에 증거를 제공하고 있지요. 노령이란 빠른 것이 분명한데도 노인들을 피하니까요. 확실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질 정도보다는 더 빠르게 찾아오잖아요. 에로스는 언제나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그 스스로도 젊어요.
또 에로스는 젊고, 그 뿐만 아니라 부드럽기도 합니다. 그 신이 신들 가운데 가장 부드럽다는 점을 보이려면 예컨대 호메로스와 같은 시인이 필요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호메로스는 어쨌든 여신 아테 또한 부드럽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죠.
“그녀의 발은 부드럽다. (단단한) 맨바닥을 딛고 다가오지 않고
(무른) 사람들의 머리를 딛고 걸어 다니니까.”
에로스는 가장 젊고 가장 부드러운데다 거기에 더하여 형태에 있어서 유연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유연하지 않다면 온갖 방식으로 붙들어 놓지도 못할 것이고 모든 영혼에 우선 들어갔다가 은연중에 빠져나오지도 못할 테니까요.
이것 다음으로는 에로스의 훌륭함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로스가 신들에게든 인간들에게든 불의를 저지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이들이 에로스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봉사하려고 드니까요. 그런데 “국가의 왕인 법률”은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정의롭다고 부릅니다.
에로스는 정의에 더하여 가장 큰 절제도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쾌락과 욕구를 지배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력하다고 이야기되지 않지요. 쾌락들이 에로스보다 한결 열등하다면 에로스에 의해 지배될 것이고 에로스는 그것들을 지배할 겁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쾌락과 욕구보다 강력하니 그것은 특별히 절제 있는 것이죠.
또한 용기에 있어서도 아레스조차 에로스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아레스가 에로스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아레스를 휘두르고 있으니까요. 휘두르는 자가 휘둘리는 자보다 강력하죠. 다른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자를 지배하는 신이니 에로스는 가장 용감한 신이 됩니다.
자, 이제 그 신의 정의와 절제 그리고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되었고 지혜에 관한 것이 남았습니다. 그 신은 다른 사람도 시인으로 만들 만큼 지혜로운 시인입니다. 어쨌든지 에로스와 접촉하기 전까지 음악에 문외한이었다고 해도 모두 시인이 되고 말지요.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증거로 삼아 에로스가 훌륭한 시인이라고, 요컨대 시가 기술에 따르는 모든 창작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든 갖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다른 이에게 주거나 가르칠 수 없으니까요.
[출전] 플라톤, 『향연』, 195a-197 passim.
토론하기
(1) 아가톤은 이 향연의 주인공이자 지혜로운 자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화려하고 현란하기는 해도 진지하고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가톤은 왜 이러한 연설을 들려주는 것일까?
(2) 아가톤의 에로스는 ‘가장 아름다운 동시에 가장 훌륭하기 때문에 신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신’이다. ‘아름다움’과 ‘훌륭함’ 중 하나를 선택해 아가톤이 그것을 에로스의 특성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밝히고 이 찬양연설의 숨겨진 대상이 누구일지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수사학과 찬양연설
아가톤은 이날 열린 향연의 주인공이다. 이 자리에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은 아가톤이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사회에서 시인들은 신들이 들려주는 것을 대중들에게 말해주는 신성한 인간인 동시에 본받을 점이 많은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들려줘 공동의 윤리적 공통분모를 고대 희랍에 공급해 온 대중 교육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가톤은 그런 비극 시인들 중 최고로 인정받은 셈이니 자신의 지혜에 대해 꽤나 자신만만한 상태일 법도 하다. 그러나 아가톤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가 재치 있고 말솜씨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기를 해도,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도 않고 어떤 앎을 가져다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아가톤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를 보여주지 않는 걸까? 그것은 이들이 하고 있는 ‘수사학적 연설’의 특징 때문이다.
본래 향연은 다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는 자리이지만, 전날 열렸던 공적 연회에서 모두가 과음을 했던 탓에, 아가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에로스에 대해 찬양연설을 하며 술자리를 즐기기로 합의했다. 찬양연설은 당시 아테네에서 크게 각광받던 수사학(대중 연설술)의 한 분야였다. 직접 민주정을 실시했던 아테네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설득을 추구하는 연설 기술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었고 그 교육은 주로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수사학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장르가 있다.
『향연』의 참가자들이 벌이고 있는 찬양연설은 전시연설 중 대상을 칭찬하는 연설을 가리키는데, 당시 소피스트들은 이것을 자신의 뛰어난 말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 활용하고는 했다. 대다수가 미워하는 인물을 성공적으로 칭찬하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성공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의 언변이 유창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연설의 핵심 쟁점은 아름다움과 추함, 즉 미추美醜의 문제다. 연설가는 자신이 칭찬하려는 대상이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거나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점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반대임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래서 『향연』의 연사들은 마치 우리네 조상들이 시를 지으며 술을 즐겼듯이, 찬양연설을 경쟁적 놀이로 삼아 자신의 말솜씨를 뽐내며 술자리를 즐기는데, 모두가 에로스의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에 초점을 맞추어 찬양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철학자들과는 매우 다른 소피스트들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들은 수사적 연설에서 논변을 구성할 때, 설득에 도움이 된다면 사실이 아닌 전제와 논증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곤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보편적 진리란 없으므로 자신의 생각을 연설을 통해 다수의 통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사적 논변은 학문적 논변과는 달라서, 언제나 참된 진실로만 채워질 필요도 없고 엄밀한 지식을 산출할 필요도 없다. 소피스트들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에 사용되는 논증 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진실보다 모두가 믿는 거짓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수사학과 찬양연설은 애초부터 진리의 증명을 겨냥하지 않는다. 아가톤과 기존 연사들의 제 1 목표는 에로스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한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검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후에 등장할 소크라테스의 몫이다. 그들에게 ‘당신들의 연설이 화려하기는 한데, 뭔가 진실을 깨달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런 겁니까?’하고 묻는다면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비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할 예정이지만.
행복한 신 에로스
아가톤은 에로스 신이 아름다우면서도 훌륭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행복한 신이라고 찬양한다. 희랍어로 ‘아름다운’은 칼로스이고 ‘훌륭한’은 ‘아가토스’이고 고대 희랍에서는 심신의 조화를 갖춘 이상적이고 고결한 성품을 가진 자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하여 ‘칼로카가토스’하다고 했다. 아가톤의 연설은 에로스 신이 바로 그처럼 ‘칼로카가토스’하다는 것이다.
아가톤의 논변은 명료하다. 첫째, 에로스는 아름답다. 왜? 그는 젊고 섬세하며 유연하니까. 모든 것은 유유상종하는 법인데 에로스는 노인들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함께한다. 아테 여신의 경우처럼, 무른 것과 접촉하는 것은 무르기 마련인데 에로스는 무른 것 중에서도 가장 무른 것인 사랑에 빠진 영혼하고만 접촉한다. 마지막으로 에로스는 마치 물이 그릇에 대해서 그렇듯이, 어떻게 생긴 영혼이든 자유롭게 들어갔다가 자유롭게 빠져나온다.
둘째, 에로스는 훌륭하다. 어째서? 그는 정의롭고 절제 있으며 용감하고 지혜로우니까.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 강제적 완력으로 불의를 선사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불의를 당하지도 않는다. 불의와 이토록 반대되는 것은 정의다. 또 에로스는 모든 쾌락과 욕망의 정점에서 그것들을 지배하는데, 우리는 쾌락과 욕망에 대한 지배를 절제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에로스는 아레스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배한다. 아레스보다 용감한 신이 에로스를 제외하고 또 있던가? 마지막으로 사랑은 그것에 빠진 사람들을 그 대상에 따라 시인으로 만들거나 특정 영역의 전문가로 만들어주는데, 그것은 사랑이 그 영역들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다. 사랑이 그러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없는 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는가?
이면의 메시지
요약해놓은 논변만 보더라도 눈치 챌 수 있듯이, 아가톤의 연설은 말재주와 재치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한 가지 장치를 더 숨겨놓았다. 그것은 이 향연의 주인공이자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지성인으로서 아가톤 스스로에 대한 칭찬과 자랑이다. 아가톤은 에로스를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겸비한 존재로 집중 묘사하는데, 이 두 가지 개념 모두 아가톤 자신을 연상시킬 수 있는 키워드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아가톤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테네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미소년으로 유명했었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 『테스모포리아의 여인들』에서는 아가톤이 여성들보다 더욱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자로 묘사되어 있을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 ‘훌륭함’ 또한 아가톤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은 아가톤이 젊은 나이에 레나이아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가톤ἀγαθόν’이라는 이름이 이미 ‘훌륭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아가토스ἀγαθός’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가톤이 묘사하는 에로스는 곧 아가톤 자신을 가리키며 그의 에로스 찬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도 볼 수 있겠다.
키워드
사랑, 쉼포지움, 아가톤, 에로스, 플라톤,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