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사회에서는 개인보다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개인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되곤 했다. 근대 사회에서는 점점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사상가들은 이기적인 개인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내놓았다. 이기적인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읽고 토론해 보자.
스미스는 <국부론>을 시작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최대한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원리로 분업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분업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의 것와 자신의 것을 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성향은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인간에게서만 발견됨을 지적한다. 인간들은 각자의 이기심에서 부를 증대시키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사회 전체에 부가 분배되게 한다.
고전본문
어떤 사람도 한 개가 다른 개에게 뼈다귀을 공정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뼈다귀와 교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도 한 마리의 동물이 몸짓과 타고난 울음 소리로 다른 동물에게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너의 것’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줄테니 저것을 달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동물이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게 속한 어떤 것을 얻고자 할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또는 동물의 호의를 얻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수단밖에 없다. 강아지는 어미에게 꼬리를 흔들고 스패니얼은 배가 고플 때 온갖 아양을 떨면서 식탁에 있는 주인의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 때때로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을 쓴다. 그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따라 그들이 행동하게 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는 온갖 굴종적 태도로 아양을 떨어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경우에 그렇게 할 정도의 시간이 없다. 문명사회에서 그는 항상 협력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소수의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기에 결코 충분치 않다. 거의 모든 동물 집단에서, 동물이 성장하게 되면, 완전히 독립하게 되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동물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동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호의에만 기대어 그 도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가 만일 그들의 자기 사랑(self-love)에 관심을 불러 일으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러한 모든 거래가 담고 있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게 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익에 대한 그들 자신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미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자기 사랑에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대해서 말한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1권 2장 분업을 야기하는 원리 중에서
토론하기
(1) 스미스가 말하는 인간의 ‘교환성향’이란 무슨 뜻인가?
(2) 교환을 통해서 이득을 본 경험을 말해봅시다.
(3) 스미스는 분업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업이 초래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봅시다.
(4) 스미스는 개인과 집단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신적 섭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최선의 결과를 낳게 해 준다고 보고 있다. 이 생각이 늘 타당한지 사례를 들어 발표해 봅시다.
해설읽기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간관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을 지나치게 선한 존재로 이상화하여 이해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악한 존재로 악마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을 철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순전한 선의(善意)에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낯선 타인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성향에 스미스는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이러한 성향을 그 자체로 나쁜 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기심(selfishness)과 자기애(self-love)를 다른 것으로 본다. 이기적인 것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성향이다. 반면, 자기애는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다.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성향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인간 사이의 협력이 발생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동물들이 협력하는 듯이 보이는 경우는 그들의 감각적인 욕망이 우연히 일치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을 계산하여 서로 협력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협력의 동기를 인간의 타고난 ‘교환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에서 찾는다. 쉽게 말해, 두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남는 물건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성향이 바로 교환 성향이다. 분업(分業)의 원리도 바로 이 교환 성향에서 나온다. 한 사람이 하나의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여러 공정으로 노동을 나누어서 제품을 만든다면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노동 분업은 서로 일을 교환하는 방식이고, 이 교환을 통해서 모두의 이익이 증대된다. 노동자 각자는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자기애를 가진 인간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하는 과정에서 사회 공동체 전체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 스미스 경제사상의 철학적 기초이다.
스미스는 인간들이 자유롭게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부를 증대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에는 국가와 특정 기업들이 결탁하여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부는 특정 집단에게만 편중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국가의 부를 증대시켜 부가 고루 분배되는 것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스미스는 생각했다. 거주와 직업의 자유를 가진 개인들이 서로 대등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할 때 경제적 불평등은 해소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미스의 경제사상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내버려 두면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밟히는 것을 현실에서 수없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책상에서 공상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경제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사실 그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국부론>을 썼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할 수 있는 대신 기본적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덕 감정론>에서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정의의 기초라고 제시했다. 이 생각은 <국부론>에도 깔려 있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용으로 이기적인 개인의 경제활동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부를 창출한다는 생각은 그의 사상을 피상적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경제 활동이 정의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키워드
교환, 보이지 않는 손, 이기심, 자기애, 정의
전후맥락
스미스는 <국부론>을 시작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최대한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원리로 분업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분업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의 것와 자신의 것을 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성향은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인간에게서만 발견됨을 지적한다. 인간들은 각자의 이기심에서 부를 증대시키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사회 전체에 부가 분배되게 한다.
고전본문
어떤 사람도 한 개가 다른 개에게 뼈다귀을 공정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뼈다귀와 교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도 한 마리의 동물이 몸짓과 타고난 울음 소리로 다른 동물에게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너의 것’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줄테니 저것을 달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동물이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게 속한 어떤 것을 얻고자 할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또는 동물의 호의를 얻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수단밖에 없다. 강아지는 어미에게 꼬리를 흔들고 스패니얼은 배가 고플 때 온갖 아양을 떨면서 식탁에 있는 주인의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 때때로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을 쓴다. 그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따라 그들이 행동하게 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는 온갖 굴종적 태도로 아양을 떨어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경우에 그렇게 할 정도의 시간이 없다. 문명사회에서 그는 항상 협력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소수의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기에 결코 충분치 않다. 거의 모든 동물 집단에서, 동물이 성장하게 되면, 완전히 독립하게 되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동물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동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호의에만 기대어 그 도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가 만일 그들의 자기 사랑(self-love)에 관심을 불러 일으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러한 모든 거래가 담고 있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게 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익에 대한 그들 자신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미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자기 사랑에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대해서 말한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1권 2장 분업을 야기하는 원리 중에서
토론하기
(1) 스미스가 말하는 인간의 ‘교환성향’이란 무슨 뜻인가?
(2) 교환을 통해서 이득을 본 경험을 말해봅시다.
(3) 스미스는 분업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업이 초래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봅시다.
(4) 스미스는 개인과 집단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신적 섭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최선의 결과를 낳게 해 준다고 보고 있다. 이 생각이 늘 타당한지 사례를 들어 발표해 봅시다.
해설읽기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간관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을 지나치게 선한 존재로 이상화하여 이해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악한 존재로 악마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을 철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순전한 선의(善意)에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낯선 타인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성향에 스미스는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이러한 성향을 그 자체로 나쁜 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기심(selfishness)과 자기애(self-love)를 다른 것으로 본다. 이기적인 것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성향이다. 반면, 자기애는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다.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인간의 성향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인간 사이의 협력이 발생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동물들이 협력하는 듯이 보이는 경우는 그들의 감각적인 욕망이 우연히 일치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을 계산하여 서로 협력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협력의 동기를 인간의 타고난 ‘교환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에서 찾는다. 쉽게 말해, 두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남는 물건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성향이 바로 교환 성향이다. 분업(分業)의 원리도 바로 이 교환 성향에서 나온다. 한 사람이 하나의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여러 공정으로 노동을 나누어서 제품을 만든다면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노동 분업은 서로 일을 교환하는 방식이고, 이 교환을 통해서 모두의 이익이 증대된다. 노동자 각자는 자기 삶을 개선하려는 자기애를 가진 인간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하는 과정에서 사회 공동체 전체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 스미스 경제사상의 철학적 기초이다.
스미스는 인간들이 자유롭게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부를 증대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에는 국가와 특정 기업들이 결탁하여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부는 특정 집단에게만 편중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국가의 부를 증대시켜 부가 고루 분배되는 것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스미스는 생각했다. 거주와 직업의 자유를 가진 개인들이 서로 대등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할 때 경제적 불평등은 해소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미스의 경제사상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내버려 두면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밟히는 것을 현실에서 수없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책상에서 공상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경제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사실 그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국부론>을 썼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할 수 있는 대신 기본적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덕 감정론>에서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정의의 기초라고 제시했다. 이 생각은 <국부론>에도 깔려 있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용으로 이기적인 개인의 경제활동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부를 창출한다는 생각은 그의 사상을 피상적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경제 활동이 정의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