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발표한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진화학자 찰스 다윈은 1846년부터 1854년까지 8년이란 시간 동안 따개비 연구에 매달렸다. 그 시간 동안 다윈이 얼마나 따개비 연구에 시간을 쏟았는지, 다윈의 자녀들은 세상의 모든 아빠가 이렇게 산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다윈의 자녀 중 하나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 아빠 따개비는 어디 있니?” 진화론이라는 엄청난 업적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다윈은 따개비가 갑각류라는 것을 밝혀낸 최초의 학자 가운데 한 명이기도 했다.
따개비들을 ‘내 사랑’이라고 부르며 8년을 연구한 끝에 무려 1000쪽에 달하는 연구성과를 발표한 다윈은 바로 막스 베버가 말한 ‘학문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버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라면, 수천 년간 해독되지 못한 책의 어느 한 구절을 해석하는 데 자신의 영혼이 달려 있다는 태도로 스스로의 전문 분야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모습이 비록 학문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열정이라고 조롱을 당하더라도 말이다.
베버가 이렇게 말한 배경에는 급속도로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당시의 사회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근대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고도의 분업화,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 베버는 바로 이 때문에 학문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전문화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런 흐름이 이후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베버는 학문이라는 영역에서 탁월한 것을 성취하였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매우 엄격한 전문화’를 이루었을 때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종종 인접한 학문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연구를 하게 된다. 다양한 영역 간의 연결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이러한 학문영역 간의 교류와 융합을 장려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흐름 역시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버의 관점에서 이런 접근법은 ‘침범적 연구’에 해당하며, 이런 방식의 연구는 기껏해야 침범한 영역의 전문가에게 그의 전문적 관점에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질문을 제기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효용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베버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특정한 하나의 대상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열정 위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대상이 ‘따개비’이든 아니면 ‘양피지 조각’이든 말이다. 그러면서 베버는 학문의 영역에서 소위 ‘개성’을 얻는다는 목적으로 가능한 한 여러 체험을 하고 다니려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는 학문에 있어서 체험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거나 혹은 자신이 단순한 전문가 이상의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보았다. 베버가 보기에는 오직 자기 자신의 과업에만 완전히 몰두하여 자신이 헌신한 그 과업의 정점에 오르는 사람만이 진정한 학문을 하는 사람이며 학문의 진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학문을 바라보는 베버의 위와 같은 관점은 고도의 분업화와 전문화라는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소통과 융합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따개비’나 ‘양피지 조각’처럼 얼핏 무용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그마한 주제를 대상으로 온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에 대해 혹자는 무용해 보이는 공부에 열정을 쏟는 것이야말로 곧 ‘정신의 척추를 똑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대상에 제대로 몰두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 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 사람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게 될 어떤 질문에 대해서라도 차근차근 답을 구해나갈 수 있는 단단한 정신적 기초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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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근대화, 열정, 유용성, 전문성,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