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가톤에 대한 논박이 끝난 뒤, 소크라테스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무녀 디오티마와 대화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크라테스는 그녀로부터 에로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방금 전까지 아가톤이 했던 주장을 자신이 디오티마에게 똑같이 했으며 자신이 아가톤을 논박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로 디오티마가 자신을 논박했다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에로스의 정체와 기원 그리고 그 성질에 대해서 디오티마와 나눈 대화를 들려준다.
고전본문
디오티마는 내가 아가톤을 논박했던 논변으로 나를 논박했었다네. 내 말에 의하면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훌륭하지도 않다고 말일세.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강력한 신이라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네.
“앎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나요? 그 ‘모든 사람’이라는 사람들 말이에요. 아니면 앎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나요?” 그녀가 말했지.
“그들 전부 다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네. “오, 소크라테스, 어떻게 해서 이들이 에로스가 강력한 신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를 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요?“
…(중략)…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내가 말했네.“
“당신은 모든 신들이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나요? 그런데 당신은 에로스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결여하고 있는 이것들을 욕구한다는데 동의한 바 있지요. 그렇다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갖지 못한 그가 어떻게 신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에로스는 무엇입니까? 가사자인가요?” 내가 말했네.
“천만에요.”
“그럼 대체 무엇입니까?“
“강력한 정령입니다. 오, 소크라테스, 정령에 속하는 모든 자들은 신들과 인간들의 중간에 놓입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것을 신들에게, 신들의 것을 인간들에게 전해주지요. 그리고 신과 인간의 가운데서 그들 사이를 메움으로써 서로 결속되도록 합니다. 이러한 정령들은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한데, 에로스는 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략)…
“아프로디테가 태어났을 때 신들이 잔치를 열었는데 다른 신들도 있었지만 메티스(계책, 꾀, 지혜)의 아들 포로스(방도, 대책, 해답, 수단 등)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끝냈을 때, 잔치가 벌어지면 보통 그렇듯이 얻어먹기 위해서 페니아가 와서는 문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스가 넥타르에 취해서 (아직 술은 없었거든요) 제우스의 정원에 들어가 만취하여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페니아가 ‘답’이 없는 그녀의 운명을 떠올리고는 포로스로부터 자식을 낳을 계획을 세워 동침하여 에로스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수행원이자 심복이 되었어요. 그녀의 생일에 태어난 데다 본래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랑하는 자인데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웠으니까요.
에로스는 늘 가난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답지 않으며 오히려 피부가 딱딱하고 거친데다 맨발이며 집조차 없습니다. 어머니의 본성을 가진 탓에 항상 결핍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수단을 만들어냅니다. 용감하고 당차며 용맹하고 늘 수를 짜내는 유능한 사냥꾼입니다. 사리분별을 욕구하고 그걸 얻기 위한 기략이 풍부합니다.
또 그는 본성 상 불사자도 아니고 가사자도 아닙니다. 하루 만에 전성기를 누리며 살 때도 있고 (방법/수단이 잘 갖추어졌을 경우) 죽어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본성 때문에 다시 살아나지만, 그의 방법/수단은 항상 새 나갑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유한 것도 아닌, 그리고 지혜롭지도 않고 무지한 것도 아닌 그 중간에 놓입니다. 신들은 아무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욕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렇기 때문이죠. 다른 어느 누구라도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힘든 것은 이 점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자도 아니고 분별 있는 자도 아니지만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기거든요. 자신이 어떤 것을 결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결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을 욕구하지 않습니다.”
“그럼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은 누굽니까? 지혜로운 자도 아니고 무지한 자도 아니라면.“
“적어도 이 점은 아이들에게도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이들 둘 사이에 놓이는 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에로스도 거기에 속할 거라는 점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인데,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이니, 에로스가 곧 지혜를 사랑하는 자임에 틀림이 없으며, 지혜를 사랑하는 자인 이상 지혜와 무지의 사이에 놓일 테니까요. 그 탄생이 그것들에 대해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지혜롭고 대책이 풍부한 반면, 어머니는 지혜롭지 않고 대책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정령의 본성은 이렇습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출전] 플라톤, 『향연』 201d-203a
토론하기
(1) 인간은 모두 ‘에로스’, 즉 성욕을 가지고 태어나며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초보적인 수준에서 에로스와 관련된 행동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에로스의 특징으로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지 본문을 읽기 전에 자유롭게 말해보자.
(2) 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디오티마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에로스의 성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특성들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에로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설명해보자.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조금 전까지 아가톤이 펼쳤던 주장과 똑같은 이야기를 디오티마 앞에서 해보지만 역시 논박 당한다. 소크라테스를 논박한 디오티마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무녀인데 만티네이아는 실존하는 지명이지만 디오티마가 실존인물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녀의 이름은 신이나 제우스를 뜻하는 ‘디오스’와 명예와 가치 등을 가리키는 ‘티메’가 결합되어 만들어져 ‘신성한 명예’, ‘신성한 가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지혜로운 여성으로 알려져 있고 예언자였다고 하는데, 예언자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만티스’였고 그녀의 고향도 만티스와 매우 유사한 이름을 가졌다. 이름으로 보나 직업으로 보나 고향으로 보나, 디오티마는 『향연』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아 소크라테스에게 에로스에 관한 일들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에로스의 정체 : 중간자
디오티마가 에로스에 대해서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그의 정체와 본성에 관한 것이다. 대체 에로스는 어떤 존재일까? ‘에로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성욕’, ‘성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옛 희랍인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의인화시켜 이해하길 즐겼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포함하여 희랍 사람들은 대체로 에로스를 아름답고 좋은 신으로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녀 혹은 예언녀인 디오티마가 웃음기를 띤 얼굴로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않고 좋지도 않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아니라고 알려준다. 소크라테스는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신을 섬기는 무녀의 불경스럽고 놀라운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가 놀라자 디오티마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간다.
에로스가 왜 아름답지도 좋지도 않은가? 다른 셀인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링크_불가능하면 삭제해주세요)‘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욕구한다. 그런데 욕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욕구의 주체가 결여하고 있고 갖고 있지 않은 것임이 앞서 확인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욕구하는 이유는 그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에로스는 아름다움과 함께 좋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참되고 지극한 경지에서 두 속성은 실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좋음이요, 진정한 좋음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름다움과 좋음의 속성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아름답다거나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좋지도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항변을 해본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에로스를 훌륭한 신이라는데 동의한다고. 하지만 디오티마는 이제 에로스가 신이라는 점마저 부정한다.
디오티마에 의하면, 에로스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그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자인 정령(다이몬)이다. 디오티마는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신들은 항상 아름다움과 좋음을 가질 테고 따라서 행복을 늘 곁에 두고 있겠지만, 에로스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에로스가 인간인 것일까? 디오티마는 가당치 않다고만 하고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않지만, 논거야 찾기 마련이다. 에로스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본성인데, 에로스 자신이 인간이라면 어떻게 인간이 다른 인간의 본성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에로스는 불사자인 신도 아니고 필멸자인 인간도 아님이 분명하다. 에로스가 신도 인간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소크라테스에게 디오티마는 그가 신과 인간 사이를 메워주는 중간자적 존재들인 정령이라고 알려준다.
에로스의 본성과 성질
에로스가 정령이라는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그의 부모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자 디오티마는 에로스의 탄생기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지어내고 디오티마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자작 신화다. 이 에로스 탄생 신화는 에로스가 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본성을 갖게 되었는지와 어떠한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에로스의 탄생은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기념하여 신들이 열었던 연회에서 시작한다. 여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많은 신들 가운데 방책과 수단의 신 포로스도 있었다. 그는 제우스에게 크로노스로부터 형제들을 구출할 계략을 알려주었던 계략과 꾀의 신 메티스의 아들이었다. 연회가 무르익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에 거나하게 취한 포로스가 밖으로 나와 잠이 든다. 그때 마침 음식을 구걸하려고 문가에 자리를 잡고 있던 빈곤과 결핍의 여신 페니아가 잠든 포로스를 발견한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답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갖지 못한 ‘답’을 얻고자 포로스와 동침하여 에로스를 낳게 된다. 그 결과 에로스는 매우 특이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먼저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본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잘못 만나 페니아의 본성을 이어받은 탓에 자신이 사랑하고 욕구하는 아름다움을 얻어도 금방 새 나가버려 결핍상태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 포로스의 능력을 물려받아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욕구의 대상을 획득할 방책과 수단을 능란하게 찾아낸다. 이것이 디오티마가 알려주는 정령 에로스의 본성과 특징이며 우리가 가진 성적 욕구의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다이몬, 디오티마, 사랑, 소크라테스, 쉼포지움, 에로스, 정령, 중간자, 플라톤, 향연
전후맥락
아가톤에 대한 논박이 끝난 뒤, 소크라테스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무녀 디오티마와 대화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크라테스는 그녀로부터 에로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방금 전까지 아가톤이 했던 주장을 자신이 디오티마에게 똑같이 했으며 자신이 아가톤을 논박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로 디오티마가 자신을 논박했다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에로스의 정체와 기원 그리고 그 성질에 대해서 디오티마와 나눈 대화를 들려준다.
고전본문
디오티마는 내가 아가톤을 논박했던 논변으로 나를 논박했었다네. 내 말에 의하면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훌륭하지도 않다고 말일세.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강력한 신이라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네.
“앎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나요? 그 ‘모든 사람’이라는 사람들 말이에요. 아니면 앎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나요?” 그녀가 말했지.
“그들 전부 다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네. “오, 소크라테스, 어떻게 해서 이들이 에로스가 강력한 신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를 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요?“
…(중략)…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내가 말했네.“
“당신은 모든 신들이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나요? 그런데 당신은 에로스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결여하고 있는 이것들을 욕구한다는데 동의한 바 있지요. 그렇다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갖지 못한 그가 어떻게 신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에로스는 무엇입니까? 가사자인가요?” 내가 말했네.
“천만에요.”
“그럼 대체 무엇입니까?“
“강력한 정령입니다. 오, 소크라테스, 정령에 속하는 모든 자들은 신들과 인간들의 중간에 놓입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것을 신들에게, 신들의 것을 인간들에게 전해주지요. 그리고 신과 인간의 가운데서 그들 사이를 메움으로써 서로 결속되도록 합니다. 이러한 정령들은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한데, 에로스는 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략)…
“아프로디테가 태어났을 때 신들이 잔치를 열었는데 다른 신들도 있었지만 메티스(계책, 꾀, 지혜)의 아들 포로스(방도, 대책, 해답, 수단 등)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끝냈을 때, 잔치가 벌어지면 보통 그렇듯이 얻어먹기 위해서 페니아가 와서는 문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스가 넥타르에 취해서 (아직 술은 없었거든요) 제우스의 정원에 들어가 만취하여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페니아가 ‘답’이 없는 그녀의 운명을 떠올리고는 포로스로부터 자식을 낳을 계획을 세워 동침하여 에로스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수행원이자 심복이 되었어요. 그녀의 생일에 태어난 데다 본래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랑하는 자인데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웠으니까요.
에로스는 늘 가난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답지 않으며 오히려 피부가 딱딱하고 거친데다 맨발이며 집조차 없습니다. 어머니의 본성을 가진 탓에 항상 결핍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수단을 만들어냅니다. 용감하고 당차며 용맹하고 늘 수를 짜내는 유능한 사냥꾼입니다. 사리분별을 욕구하고 그걸 얻기 위한 기략이 풍부합니다.
또 그는 본성 상 불사자도 아니고 가사자도 아닙니다. 하루 만에 전성기를 누리며 살 때도 있고 (방법/수단이 잘 갖추어졌을 경우) 죽어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본성 때문에 다시 살아나지만, 그의 방법/수단은 항상 새 나갑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유한 것도 아닌, 그리고 지혜롭지도 않고 무지한 것도 아닌 그 중간에 놓입니다. 신들은 아무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욕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렇기 때문이죠. 다른 어느 누구라도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힘든 것은 이 점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자도 아니고 분별 있는 자도 아니지만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기거든요. 자신이 어떤 것을 결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결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을 욕구하지 않습니다.”
“그럼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은 누굽니까? 지혜로운 자도 아니고 무지한 자도 아니라면.“
“적어도 이 점은 아이들에게도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이들 둘 사이에 놓이는 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에로스도 거기에 속할 거라는 점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인데,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이니, 에로스가 곧 지혜를 사랑하는 자임에 틀림이 없으며, 지혜를 사랑하는 자인 이상 지혜와 무지의 사이에 놓일 테니까요. 그 탄생이 그것들에 대해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지혜롭고 대책이 풍부한 반면, 어머니는 지혜롭지 않고 대책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정령의 본성은 이렇습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출전] 플라톤, 『향연』 201d-203a
토론하기
(1) 인간은 모두 ‘에로스’, 즉 성욕을 가지고 태어나며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초보적인 수준에서 에로스와 관련된 행동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에로스의 특징으로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지 본문을 읽기 전에 자유롭게 말해보자.
(2) 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디오티마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에로스의 성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특성들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에로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설명해보자.
해설읽기
소크라테스는 조금 전까지 아가톤이 펼쳤던 주장과 똑같은 이야기를 디오티마 앞에서 해보지만 역시 논박 당한다. 소크라테스를 논박한 디오티마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무녀인데 만티네이아는 실존하는 지명이지만 디오티마가 실존인물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녀의 이름은 신이나 제우스를 뜻하는 ‘디오스’와 명예와 가치 등을 가리키는 ‘티메’가 결합되어 만들어져 ‘신성한 명예’, ‘신성한 가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만티네이아 출신의 지혜로운 여성으로 알려져 있고 예언자였다고 하는데, 예언자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만티스’였고 그녀의 고향도 만티스와 매우 유사한 이름을 가졌다. 이름으로 보나 직업으로 보나 고향으로 보나, 디오티마는 『향연』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아 소크라테스에게 에로스에 관한 일들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에로스의 정체 : 중간자
디오티마가 에로스에 대해서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그의 정체와 본성에 관한 것이다. 대체 에로스는 어떤 존재일까? ‘에로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성욕’, ‘성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옛 희랍인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의인화시켜 이해하길 즐겼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포함하여 희랍 사람들은 대체로 에로스를 아름답고 좋은 신으로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녀 혹은 예언녀인 디오티마가 웃음기를 띤 얼굴로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않고 좋지도 않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아니라고 알려준다. 소크라테스는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신을 섬기는 무녀의 불경스럽고 놀라운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가 놀라자 디오티마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간다.
에로스가 왜 아름답지도 좋지도 않은가? 다른 셀인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링크_불가능하면 삭제해주세요)‘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욕구한다. 그런데 욕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욕구의 주체가 결여하고 있고 갖고 있지 않은 것임이 앞서 확인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욕구하는 이유는 그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에로스는 아름다움과 함께 좋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참되고 지극한 경지에서 두 속성은 실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좋음이요, 진정한 좋음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름다움과 좋음의 속성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아름답다거나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좋지도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항변을 해본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에로스를 훌륭한 신이라는데 동의한다고. 하지만 디오티마는 이제 에로스가 신이라는 점마저 부정한다.
디오티마에 의하면, 에로스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그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자인 정령(다이몬)이다. 디오티마는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신들은 항상 아름다움과 좋음을 가질 테고 따라서 행복을 늘 곁에 두고 있겠지만, 에로스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에로스가 인간인 것일까? 디오티마는 가당치 않다고만 하고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않지만, 논거야 찾기 마련이다. 에로스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본성인데, 에로스 자신이 인간이라면 어떻게 인간이 다른 인간의 본성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에로스는 불사자인 신도 아니고 필멸자인 인간도 아님이 분명하다. 에로스가 신도 인간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소크라테스에게 디오티마는 그가 신과 인간 사이를 메워주는 중간자적 존재들인 정령이라고 알려준다.
에로스의 본성과 성질
에로스가 정령이라는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그의 부모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자 디오티마는 에로스의 탄생기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지어내고 디오티마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자작 신화다. 이 에로스 탄생 신화는 에로스가 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본성을 갖게 되었는지와 어떠한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에로스의 탄생은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기념하여 신들이 열었던 연회에서 시작한다. 여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많은 신들 가운데 방책과 수단의 신 포로스도 있었다. 그는 제우스에게 크로노스로부터 형제들을 구출할 계략을 알려주었던 계략과 꾀의 신 메티스의 아들이었다. 연회가 무르익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에 거나하게 취한 포로스가 밖으로 나와 잠이 든다. 그때 마침 음식을 구걸하려고 문가에 자리를 잡고 있던 빈곤과 결핍의 여신 페니아가 잠든 포로스를 발견한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답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갖지 못한 ‘답’을 얻고자 포로스와 동침하여 에로스를 낳게 된다. 그 결과 에로스는 매우 특이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먼저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본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잘못 만나 페니아의 본성을 이어받은 탓에 자신이 사랑하고 욕구하는 아름다움을 얻어도 금방 새 나가버려 결핍상태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 포로스의 능력을 물려받아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욕구의 대상을 획득할 방책과 수단을 능란하게 찾아낸다. 이것이 디오티마가 알려주는 정령 에로스의 본성과 특징이며 우리가 가진 성적 욕구의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다이몬, 디오티마, 사랑, 소크라테스, 쉼포지움, 에로스, 정령, 중간자, 플라톤,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