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가톤이 레나이아 제의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자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축하하는 술자리를 갖는다. 전날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음주 파티에 힘들어하던 그들은 술 대신 이야기를 하며 놀기로 하고 돌아가면서 에로스 신에 대한 찬양연설을 함으로써 말솜씨를 뽐내기로 한다. 어느 덧 순번이 돌아 아가톤의 차례가 되고 그의 찬양연설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보낸다. 레나이아 제의 비극 경연대회 우승자다운 말솜씨와 재치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에로스를 행복한 신이라며 찬양한다. 에로스 신의 행복은 그 신이 가진 두 가지 특성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보유하게 된 결과물이다. 에로스는 한편으로 아름답고 다른 한편으로 좋기(훌륭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가톤은 이 두 가지 핵심 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에로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3개의 하위 논거를 동원하고 훌륭함에 대해서는 4개의 하위 논거를 동원한다. 그러한 논거에 기초한 논증들은 사실 진지한 것은 아니어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아가톤 특유의 말솜씨와 재치가 돋보이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에로스는 가장 강력한 욕구이니 모든 욕구들 위에 군림하며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욕구를 지배하는 것을 절제하고 부르니 에로스는 절제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제 소크라테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연설 실력이 무시무시할 정도였고 자기와 너무나 크게 비교될 것 같아 도망치고 싶을 정도라며 한 가지 양해를 구한다. 자기가 에로스 찬양연설을 돌아가면서 하자는데 동의하긴 했지만, 자기 생각과는 달리, 그 찬양연설이라는 것이 단어와 구절들의 아름다움에 지극히 유의하여 전문적이고 화려한 기교가 가미되어야만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참이든 거짓이든 아무거나 듣기 좋은 말을 가져다 붙이면 되는 모양인데, 자기는 그런 방식의 연설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해도 좋겠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는 이런 소피스트식 수사 연설 따위는 할 마음도 없고 잘 할 수도 없으니 평소 하던 것처럼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적 논법으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술자리에 모인 나머지 참가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준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자기 방식대로 에로스 찬양 연설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에로스를 향한 찬사가 아니라 방금 전 찬양연설을 마친 아가톤을 논박하는 일로 시작한다.
고전본문
“친애하는 아가톤, 먼저 에로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그것의 기능을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자네는 연설을 정말 훌륭하게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네. 이제 에로스에 대해서 이것도 설명해주게.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해서 에로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아닌가? 마치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 것처럼 말이야. 자네가 훌륭하게 대답하고 싶다면 분명히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내게 설명할 테지? 아닌가?”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말씀하셨네.
아가톤은 전적으로 그렇다고 말했다고 하네. …(중략)…
“그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네가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답해주게.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가 아닌가 아니면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인가?”
그는 확실히 그렇다고 했다네. …(중략)…
그렇다면 에로스가 ‘저것’에 대한 에로스라고 할 때, 그 저것’을 욕구하겠는가 아니면 욕구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욕구하겠지요.” 그가 말했네.
“그는 욕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진 상태에서 욕구하고 사랑하는가 아니면 갖지 못한 상태에서 욕구하고 사랑하는가?“
“갖지 않은 상태에서요. 그것이 더 그럴 듯합니다.” 그가 말했네. …(중략)…
자네가 연설 중에 에로스가 무엇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는지 기억해보게. 신들의 일이 결정된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에로스(사랑)에 의해서다. 추한 것들에 대한 에로스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네. 만일 이것이 이러하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지, 추함에 대한 에로스는 아니지 않나?”
아가톤이 동의했네.
“그런데 우리는 동의한 적이 있지 않은가? 결여하고 있고 갖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네.” 아가톤이 대답했네.
“그러므로 에로스는 결여하고 있고 갖고 있는 게 아니구먼, 아름다움을.
“필연적이군요.” 그가 말했네.
“어떤가?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고 아름다움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자네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나?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아직도 에로스가 아름답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는가, 그가 이런 형편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아가톤이 말했네. “오, 소크라테스 선생님. 연설 때 말씀드린 것들에 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몰랐군요.“
“아, 아가톤. 그래도 참으로 아름답게 연설을 해줬다네. 그런데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 아름다운 것은 또한 훌륭한 것으로 자네에게 여겨지지는 않는가?
“제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출전] 플라톤, 『향연』 199c2-201c4.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어떤 까닭에서 자신의 연설을 아가톤에 대한 논박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2)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의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대화의 말미에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라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훌륭한 것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은 작품 초반부터 ‘지혜’를 둘러싸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두 사람은 당시 지식인 부류로 통하던 철학자와 시인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지혜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제일 먼저 그들은 만나자마자 ‘신체적 접촉을 통한 지혜의 전달 가능성 여부’를 두고 미묘한 다툼을 벌이다가 말이 길어지자 나중에 디오뉘소스를 판관으로 삼아 시비를 가리도록 하자는 아가톤의 말로 일단락된 바 있고 (175d-e)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끝난 다음에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들켰을 때, 지혜를 가진 사람은 분별있는 소수 앞에서든 분별없는 다수 앞에서든 똑같이 부끄러움을 느끼겠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에 대해서 더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겠는가’에 관해 논쟁을 벌이려다 파이드로스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연설을 아가톤 논박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
소크라테스와 아가톤 중 먼저 에로스 찬양 연설에 나선 것은 아가톤이었는데 그는 특유의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에로스를 찬양하는 가운데, 교묘하게 소크라테스를 깎아내리는 한편, 스스로를 뽐낸다. 그는 에로스가 아름답다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 중 하나로 그 신이 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논거로 에로스는 노인들을 피하고 청년들과 주로 어울리는데 어울리는 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자들과 어울리기 마련이니 에로스는 필시 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은 아가톤 자신이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즉, 아가톤 자신은 에로스와 가장 가깝고 소크라테스는 사실 그 신과 가장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 아가톤은 에로스가 행복한 신이라며 찬양하는데 그 주요 논거는 그 신이 첫째, 아름답고 둘째,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아가톤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는 매우 여성스러운 미소년이었고 젊은 나이에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훌륭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가톤은 자신의 연설을 통해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여오던 소크라테스는 낮추고 자기 자신은 높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순서가 돌아간 이상, 소크라테스도 디오티마 이야기에 앞서 아가톤에게 받은 것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생각보다 짓궂다.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이 펼치는 논변의 성격 차이
아가톤은 소피스트적 성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종류의 논변을 활용하고 있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진실을 추구하고 참을 증명하는데 목표를 두기보다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말싸움에서 굴복시키거나 수많은 청중들이 자신의 주장을 옳다고 믿도록 만들어 설득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오류를 사용하여 주장을 펼치는 오류추론이나 참된 전제를 지향하지도 않고 필연적이고 강한 논증을 추구하지도 않는 수사추론에 더욱 주력했다. 근거 없는 유비추론에 기대어 ‘다른 시계보다 빠르게 간다고 좋은 시계가 아니듯이, 남들보다 열심히 산다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거나 언어의 다의성을 이용해 ‘우리 사회는 쉽게 부패할 수 있고 부패하기 쉬운 것은 냉장보관해야 하므로 우리 사회는 거대한 냉장고를 필요로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오류추론에 해당하는데 아가톤이 그러한 논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의 규명을 중시하는 철학자의 시각에서 이러한 논변은 말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진실을 감추는 기만적인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엘렝코스’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답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앎이 참된 것인지 검토하는 방법인데, 보통은 상대방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지 지적 허위의식이었고 그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으로 끝나 소크라테스가 기득권자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사형에 처하게 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엘렝코스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제로 하여 답변자의 주장과 모순되는 명제를 도출하는 논증을 고안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전제들은 가능한 참을 지향해야 하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논증은 필연적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틀렸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는 달리 참되고 필연적인 논증을 지향하며 연설에 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논변 정리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문답법으로 아가톤의 무지를 어떻게 폭로하게 만들 것인가? 우선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인가?’ 아리송한 표현의 이 질문은 에로스가 관계 속에 얽혀서 성립되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서 아버지이고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자식인 것처럼, 에로스도 어떤 대상에 얽혀서 성립하는 것인가, 아닌가? 물론 에로스는 대상 지향적이다. 성욕이든 사랑이든 항상 어떤 것을 지향하여 성립하지 않나. 뒤늦게 질문을 이해한 아가톤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한다. 이제 하나의 전제가 성립된다.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 질문을 아가톤에게 던진다. ‘에로스는 자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욕구하는가?’ 아가톤이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이제 두 번째 전제가 마련된다.
‘에로스는 자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욕구한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는 대상을 결여한 채로 욕구하는 걸까, 아니면 소유한 것을 욕구하는 걸까?’ 아가톤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욕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욕구하는 거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흔히 갖고 있는 것을 욕구한다고 생각될 수 있는 사례를 든다. 부자가 부유함을 욕구한다거나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욕구한다고 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조차 미래의 부와 미래의 건강을 욕구하는 것인 만큼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욕구하는 것으로 판명된다. 그제야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은 세 번째 전제를 확고하게 한다.
‘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는 대상을 결여한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을 환기시킨다. 신들의 일이 정해진 것도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가 생겨난 후의 일이며 추한 것에 대한 에로스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맞느냐고 소크라테스가 묻자 아가톤은 그렇다고 답한다. 요컨대, 아가톤은 에로스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지 추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까지 사전작업을 마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아가톤 사냥에 나선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에 의하면 에로스는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한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욕구하는데, 욕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욕구하므로 필시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을 것이고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가톤의 에로스 찬양 연설의 결론은 에로스가 행복한 신이라는 것이었고 에로스가 아름답고 또 에로스가 훌륭하다는 것이 논거의 양대 축이었는데, 아가톤의 주장이 가진 두 날개 중 하나를 소크라테스가 방금 부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질문의 의미
소크라테스의 꼼꼼한 논박에 아가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오, 소크라테스 선생님. 연설 때 말씀드린 것들에 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몰랐군요.“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아름다운 연설이었다며 젊은 비극시인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 훌륭한 것은 또한 아름다운 것으로 자네에게 여겨지지는 않는가?’ 이에 아가톤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한다. 이 사소한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아가톤을 향한 확인사살이다. 아름다운 것이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에로스는 훌륭한 것일 수도 없다. 이렇게 하여 아가톤의 논변에 남아있던 날개의 나머지 한쪽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을 두 번 죽이며 이렇게 묻는 듯하다. ‘이보게, 아가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키워드
디오티마, 사랑, 소크라테스, 아가톤, 에로스, 플라톤
전후맥락
아가톤이 레나이아 제의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자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축하하는 술자리를 갖는다. 전날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음주 파티에 힘들어하던 그들은 술 대신 이야기를 하며 놀기로 하고 돌아가면서 에로스 신에 대한 찬양연설을 함으로써 말솜씨를 뽐내기로 한다. 어느 덧 순번이 돌아 아가톤의 차례가 되고 그의 찬양연설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보낸다. 레나이아 제의 비극 경연대회 우승자다운 말솜씨와 재치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에로스를 행복한 신이라며 찬양한다. 에로스 신의 행복은 그 신이 가진 두 가지 특성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보유하게 된 결과물이다. 에로스는 한편으로 아름답고 다른 한편으로 좋기(훌륭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가톤은 이 두 가지 핵심 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에로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3개의 하위 논거를 동원하고 훌륭함에 대해서는 4개의 하위 논거를 동원한다. 그러한 논거에 기초한 논증들은 사실 진지한 것은 아니어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아가톤 특유의 말솜씨와 재치가 돋보이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에로스는 가장 강력한 욕구이니 모든 욕구들 위에 군림하며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욕구를 지배하는 것을 절제하고 부르니 에로스는 절제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제 소크라테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연설 실력이 무시무시할 정도였고 자기와 너무나 크게 비교될 것 같아 도망치고 싶을 정도라며 한 가지 양해를 구한다. 자기가 에로스 찬양연설을 돌아가면서 하자는데 동의하긴 했지만, 자기 생각과는 달리, 그 찬양연설이라는 것이 단어와 구절들의 아름다움에 지극히 유의하여 전문적이고 화려한 기교가 가미되어야만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참이든 거짓이든 아무거나 듣기 좋은 말을 가져다 붙이면 되는 모양인데, 자기는 그런 방식의 연설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해도 좋겠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는 이런 소피스트식 수사 연설 따위는 할 마음도 없고 잘 할 수도 없으니 평소 하던 것처럼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적 논법으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술자리에 모인 나머지 참가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준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자기 방식대로 에로스 찬양 연설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에로스를 향한 찬사가 아니라 방금 전 찬양연설을 마친 아가톤을 논박하는 일로 시작한다.
고전본문
“친애하는 아가톤, 먼저 에로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그것의 기능을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자네는 연설을 정말 훌륭하게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네. 이제 에로스에 대해서 이것도 설명해주게.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해서 에로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아닌가? 마치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 것처럼 말이야. 자네가 훌륭하게 대답하고 싶다면 분명히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내게 설명할 테지? 아닌가?”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말씀하셨네.
아가톤은 전적으로 그렇다고 말했다고 하네. …(중략)…
“그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네가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답해주게.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가 아닌가 아니면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인가?”
그는 확실히 그렇다고 했다네. …(중략)…
그렇다면 에로스가 ‘저것’에 대한 에로스라고 할 때, 그 저것’을 욕구하겠는가 아니면 욕구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욕구하겠지요.” 그가 말했네.
“그는 욕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진 상태에서 욕구하고 사랑하는가 아니면 갖지 못한 상태에서 욕구하고 사랑하는가?“
“갖지 않은 상태에서요. 그것이 더 그럴 듯합니다.” 그가 말했네. …(중략)…
자네가 연설 중에 에로스가 무엇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는지 기억해보게. 신들의 일이 결정된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에로스(사랑)에 의해서다. 추한 것들에 대한 에로스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네. 만일 이것이 이러하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지, 추함에 대한 에로스는 아니지 않나?”
아가톤이 동의했네.
“그런데 우리는 동의한 적이 있지 않은가? 결여하고 있고 갖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네.” 아가톤이 대답했네.
“그러므로 에로스는 결여하고 있고 갖고 있는 게 아니구먼, 아름다움을.
“필연적이군요.” 그가 말했네.
“어떤가?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고 아름다움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자네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나?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아직도 에로스가 아름답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는가, 그가 이런 형편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아가톤이 말했네. “오, 소크라테스 선생님. 연설 때 말씀드린 것들에 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몰랐군요.“
“아, 아가톤. 그래도 참으로 아름답게 연설을 해줬다네. 그런데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 아름다운 것은 또한 훌륭한 것으로 자네에게 여겨지지는 않는가?
“제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출전] 플라톤, 『향연』 199c2-201c4.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어떤 까닭에서 자신의 연설을 아가톤에 대한 논박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2)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의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대화의 말미에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라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훌륭한 것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은 작품 초반부터 ‘지혜’를 둘러싸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두 사람은 당시 지식인 부류로 통하던 철학자와 시인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지혜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제일 먼저 그들은 만나자마자 ‘신체적 접촉을 통한 지혜의 전달 가능성 여부’를 두고 미묘한 다툼을 벌이다가 말이 길어지자 나중에 디오뉘소스를 판관으로 삼아 시비를 가리도록 하자는 아가톤의 말로 일단락된 바 있고 (175d-e)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끝난 다음에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들켰을 때, 지혜를 가진 사람은 분별있는 소수 앞에서든 분별없는 다수 앞에서든 똑같이 부끄러움을 느끼겠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에 대해서 더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겠는가’에 관해 논쟁을 벌이려다 파이드로스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연설을 아가톤 논박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
소크라테스와 아가톤 중 먼저 에로스 찬양 연설에 나선 것은 아가톤이었는데 그는 특유의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에로스를 찬양하는 가운데, 교묘하게 소크라테스를 깎아내리는 한편, 스스로를 뽐낸다. 그는 에로스가 아름답다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 중 하나로 그 신이 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논거로 에로스는 노인들을 피하고 청년들과 주로 어울리는데 어울리는 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자들과 어울리기 마련이니 에로스는 필시 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은 아가톤 자신이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즉, 아가톤 자신은 에로스와 가장 가깝고 소크라테스는 사실 그 신과 가장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 아가톤은 에로스가 행복한 신이라며 찬양하는데 그 주요 논거는 그 신이 첫째, 아름답고 둘째,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아가톤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는 매우 여성스러운 미소년이었고 젊은 나이에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훌륭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가톤은 자신의 연설을 통해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여오던 소크라테스는 낮추고 자기 자신은 높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순서가 돌아간 이상, 소크라테스도 디오티마 이야기에 앞서 아가톤에게 받은 것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생각보다 짓궂다.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이 펼치는 논변의 성격 차이
아가톤은 소피스트적 성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종류의 논변을 활용하고 있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진실을 추구하고 참을 증명하는데 목표를 두기보다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말싸움에서 굴복시키거나 수많은 청중들이 자신의 주장을 옳다고 믿도록 만들어 설득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오류를 사용하여 주장을 펼치는 오류추론이나 참된 전제를 지향하지도 않고 필연적이고 강한 논증을 추구하지도 않는 수사추론에 더욱 주력했다. 근거 없는 유비추론에 기대어 ‘다른 시계보다 빠르게 간다고 좋은 시계가 아니듯이, 남들보다 열심히 산다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거나 언어의 다의성을 이용해 ‘우리 사회는 쉽게 부패할 수 있고 부패하기 쉬운 것은 냉장보관해야 하므로 우리 사회는 거대한 냉장고를 필요로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오류추론에 해당하는데 아가톤이 그러한 논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의 규명을 중시하는 철학자의 시각에서 이러한 논변은 말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진실을 감추는 기만적인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엘렝코스’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답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앎이 참된 것인지 검토하는 방법인데, 보통은 상대방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지 지적 허위의식이었고 그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으로 끝나 소크라테스가 기득권자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사형에 처하게 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엘렝코스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제로 하여 답변자의 주장과 모순되는 명제를 도출하는 논증을 고안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전제들은 가능한 참을 지향해야 하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논증은 필연적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틀렸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는 달리 참되고 필연적인 논증을 지향하며 연설에 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논변 정리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문답법으로 아가톤의 무지를 어떻게 폭로하게 만들 것인가? 우선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인가?’ 아리송한 표현의 이 질문은 에로스가 관계 속에 얽혀서 성립되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서 아버지이고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자식인 것처럼, 에로스도 어떤 대상에 얽혀서 성립하는 것인가, 아닌가? 물론 에로스는 대상 지향적이다. 성욕이든 사랑이든 항상 어떤 것을 지향하여 성립하지 않나. 뒤늦게 질문을 이해한 아가톤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한다. 이제 하나의 전제가 성립된다.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 질문을 아가톤에게 던진다. ‘에로스는 자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욕구하는가?’ 아가톤이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이제 두 번째 전제가 마련된다.
‘에로스는 자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욕구한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는 대상을 결여한 채로 욕구하는 걸까, 아니면 소유한 것을 욕구하는 걸까?’ 아가톤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욕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욕구하는 거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흔히 갖고 있는 것을 욕구한다고 생각될 수 있는 사례를 든다. 부자가 부유함을 욕구한다거나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욕구한다고 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조차 미래의 부와 미래의 건강을 욕구하는 것인 만큼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욕구하는 것으로 판명된다. 그제야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은 세 번째 전제를 확고하게 한다.
‘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는 대상을 결여한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을 환기시킨다. 신들의 일이 정해진 것도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에로스가 생겨난 후의 일이며 추한 것에 대한 에로스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맞느냐고 소크라테스가 묻자 아가톤은 그렇다고 답한다. 요컨대, 아가톤은 에로스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지 추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까지 사전작업을 마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아가톤 사냥에 나선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에 의하면 에로스는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한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욕구하는데, 욕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욕구하므로 필시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을 것이고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가톤의 에로스 찬양 연설의 결론은 에로스가 행복한 신이라는 것이었고 에로스가 아름답고 또 에로스가 훌륭하다는 것이 논거의 양대 축이었는데, 아가톤의 주장이 가진 두 날개 중 하나를 소크라테스가 방금 부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질문의 의미
소크라테스의 꼼꼼한 논박에 아가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오, 소크라테스 선생님. 연설 때 말씀드린 것들에 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몰랐군요.“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아름다운 연설이었다며 젊은 비극시인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사소한 것 한 가지만 좀 말해주겠나? 훌륭한 것은 또한 아름다운 것으로 자네에게 여겨지지는 않는가?’ 이에 아가톤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한다. 이 사소한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아가톤을 향한 확인사살이다. 아름다운 것이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에로스는 훌륭한 것일 수도 없다. 이렇게 하여 아가톤의 논변에 남아있던 날개의 나머지 한쪽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을 두 번 죽이며 이렇게 묻는 듯하다. ‘이보게, 아가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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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티마, 사랑, 소크라테스, 아가톤, 에로스,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