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이온은 짧지 않은 논의를 거쳐 시인의 예술적 능력이 앎과 지식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소크라테스와 이온이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에 의해 누적된 전제들은 모두 시인의 능력이 기술 지식이나 전문 지식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가리킨다. 시인의 예술적 능력의 원천이 앎과 지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시인들로 하여금 그토록 훌륭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신적인 영감이라고 주장한다. 시인들은 어떤 앎과 지식을 따라 냉철하게 계산해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로부터 영감을 전해 받고 신 지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신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인간의 목소리로 전달해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영감론을 당시의 올륌포스 신관을 토대로 하여 신화적 정당화·이론화를 시도한다.
고전본문
이 온 : 내가 한 가지 확신하건대 호메로스에 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말을
가장 잘 하고 할 말이 많다는 점이오. 다른 사람들도 내가 말을 잘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시인에 대해서 나는 말을 잘 못해요.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검토해주시오.
소크라테스 : 이온, 생각하고 있어요. 마침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대에게 이야기
하려던 참이었다고요.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그대가 호메로스에 대해서
말을 잘 하는 것은 기술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에우리피데스가
마그네시아의 돌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헤라클레이아의 돌이라고
부르는 돌(자석)처럼, 어떤 신적인 힘이 그대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
돌은 쇠 반지들을 끌어당길 뿐만이 아니라 그 반지들에 힘을 나눠줘서
그 반지들이 다시 다른 반지들을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쇳조각과
쇠 반지들이 서로 매달려 긴 사슬이 형성되지요. 하지만 이 사슬의
모든 힘은 그 돌 하나에서 나오지요. 마찬가지로 무사 여신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넣어주면 이 사람들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이 영감을 나눠받아
사슬처럼 연결됩니다. 훌륭한 서사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가를 노래하는
것은 기술 지식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고
훌륭한 서사시인도 마찬가집니다.
플라톤, 『이온』 533c-536e.
토론하기
(1) 영감론은 예술적 기예가 인간의 기술이나 지식에 입각하여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창발적으로 떠오르는 직관에 토대를 두거나 초월적 존재에 기원하는 힘이나 말에 이끌려 수행된다고 주장한다. 영감과 더불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일들의 사례를 들어보자.
(2) 플라톤은 『이온』에서 올륌포스 신관에 부합하는 신화적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영감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오늘날의 과학적/학문적 설명과 똑같은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신화적 방식의 설명이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플라톤은 『이온』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온이 헤시오도스와 같은 다른 시인들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어째서 호메로스에 대해서만은 열광하게 되는가에 대한 신화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정당화한다.
영감론의 신화적 정당화
소크라테스가 영감론에 따라 이온이 호메로스에 대해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그 유명한 자석의 비유다. 자석은 금속성 물체를 끌어당기고 금속성 물체는 자석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자석에 달라붙은 금속성 물체는 자석의 자력을 이어받아 다른 금속성 물체를 끌어당긴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속들이 자력을 계속해서 이어받아 하나의 계열체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 계열체에는 낙엽이나 나무처럼 자석이 끌어당기지 않는 비금속성 물체는 들러붙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각종 음악과 학문을 관장하는 여신들을 무사이 여신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영어로 뮤즈라고 부르는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보통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알려져 있고 각자 고유한 영역을 담당한다. 어떤 무사 여신은 서정시를 담당하고 또 어떤 무사 여신은 비극을 담당하는 식이다. 아홉 명의 무사 여신들은 각자 일종의 자석이 되어 최초의 시인들을 끌어당긴다. 이때 호메로스도 그 중 한 명으로서 서사시를 담당하는 무사 여신 칼리오페에게 이끌려 달라붙는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칼리오페로부터 일종의 자력인 신적 영감을 이어받아 그에 이끌리는 또다른 시인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여 이번에도 일종의 계열체를 형성했는데, 이 계열체에는 호메로스가 끌어당기지 않는 자들, 즉 다른 시인에게 감응되는 사람들은 달라붙지 않는 반면, 호메로스가 끌어당기는 자들, 달리 말해서 다른 시인에게는 몰라도 호메로스에게는 감응하는 시인들이 달라붙어 긴 계열체를 형성했는데, 바로 이 계열체 어딘가에 이온이 속해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온은 칼리오페로부터 자력을 이어받은 호메로스애게서 영감을 받은 계열체에 속한 시인이며 그의 예술적 능력이 가진 원천은 기술적 앎이나 지식이 아니라 무사이 여신과 호메로스로부터 이어져온 신적 영감이라는 것이다.
사실 시인이 앎 혹은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온의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대중들의 교육자이자 지식인으로 불려 온 시인으로서 이온은 자신이 전문 기술과 전문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다소간의 항변을 시도하지만 시인의 능력이 비록 앎과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인간의 것을 뛰어넘는 신적인 영감을 무사 여신들로부터 이어받아 신들린 상태에서 발휘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수긍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신화적 설명 방식의 한계
신화는 철학이나 과학이 발달하기에 앞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어 대안적인 설명을 제공해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크게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는 창세신화가 그렇고 작게는 동네 뒷산에 있는 기암괴석의 유래를 소개하는 기원신화가 그렇다. 이러한 신화적 방식의 설명은 고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기록 수단이 귀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설명의 방식 자체가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전되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는 구전의 과정에서 왜곡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사실의 온전한 기록 혹은 전달’이라는 기능을 감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했지만, ‘가치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우수한 측면이 있었다. 덕분에 고대 희랍인들은 비록 여러 개의 폴리스(도시 국가)로 쪼개져서 살아갔고 때로는 서로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언어와 신화를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기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인류가 언제까지나 신화적 설명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지는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성적 사유에 점점 눈을 뜨게 되듯이, 인류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합리적인 설명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각도에서 신화적 설명을 바라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미봉적이라는 사실이다. 미봉적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은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화적 설명은 단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당장 가능한 최선의 설명조차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바꾸더라도 같은 수준의 설득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진을 포세이돈이 분노하여 삼지창 트리아이나로 일으키는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러지 말고 하데스가 망자들의 세계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지표면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땅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설득력은 동일하다. 두 설명의 개연성이 같다는 것은 적어도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포세이돈을 통한 기존의 설명 방식이 최선의 설명 방법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키워드
마그네시아, 소크라테스, 영감론, 이온, 플라톤, 헤라클레이아, 호메로스
전후맥락
소크라테스와 이온은 짧지 않은 논의를 거쳐 시인의 예술적 능력이 앎과 지식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소크라테스와 이온이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에 의해 누적된 전제들은 모두 시인의 능력이 기술 지식이나 전문 지식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가리킨다. 시인의 예술적 능력의 원천이 앎과 지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시인들로 하여금 그토록 훌륭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신적인 영감이라고 주장한다. 시인들은 어떤 앎과 지식을 따라 냉철하게 계산해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로부터 영감을 전해 받고 신 지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신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인간의 목소리로 전달해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영감론을 당시의 올륌포스 신관을 토대로 하여 신화적 정당화·이론화를 시도한다.
고전본문
이 온 : 내가 한 가지 확신하건대 호메로스에 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말을
가장 잘 하고 할 말이 많다는 점이오. 다른 사람들도 내가 말을 잘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시인에 대해서 나는 말을 잘 못해요.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검토해주시오.
소크라테스 : 이온, 생각하고 있어요. 마침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대에게 이야기
하려던 참이었다고요.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그대가 호메로스에 대해서
말을 잘 하는 것은 기술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에우리피데스가
마그네시아의 돌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헤라클레이아의 돌이라고
부르는 돌(자석)처럼, 어떤 신적인 힘이 그대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
돌은 쇠 반지들을 끌어당길 뿐만이 아니라 그 반지들에 힘을 나눠줘서
그 반지들이 다시 다른 반지들을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쇳조각과
쇠 반지들이 서로 매달려 긴 사슬이 형성되지요. 하지만 이 사슬의
모든 힘은 그 돌 하나에서 나오지요. 마찬가지로 무사 여신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넣어주면 이 사람들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이 영감을 나눠받아
사슬처럼 연결됩니다. 훌륭한 서사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가를 노래하는
것은 기술 지식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고
훌륭한 서사시인도 마찬가집니다.
플라톤, 『이온』 533c-536e.
토론하기
(1) 영감론은 예술적 기예가 인간의 기술이나 지식에 입각하여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창발적으로 떠오르는 직관에 토대를 두거나 초월적 존재에 기원하는 힘이나 말에 이끌려 수행된다고 주장한다. 영감과 더불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일들의 사례를 들어보자.
(2) 플라톤은 『이온』에서 올륌포스 신관에 부합하는 신화적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영감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오늘날의 과학적/학문적 설명과 똑같은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신화적 방식의 설명이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플라톤은 『이온』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온이 헤시오도스와 같은 다른 시인들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어째서 호메로스에 대해서만은 열광하게 되는가에 대한 신화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정당화한다.
영감론의 신화적 정당화
소크라테스가 영감론에 따라 이온이 호메로스에 대해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그 유명한 자석의 비유다. 자석은 금속성 물체를 끌어당기고 금속성 물체는 자석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자석에 달라붙은 금속성 물체는 자석의 자력을 이어받아 다른 금속성 물체를 끌어당긴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속들이 자력을 계속해서 이어받아 하나의 계열체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 계열체에는 낙엽이나 나무처럼 자석이 끌어당기지 않는 비금속성 물체는 들러붙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각종 음악과 학문을 관장하는 여신들을 무사이 여신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영어로 뮤즈라고 부르는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보통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알려져 있고 각자 고유한 영역을 담당한다. 어떤 무사 여신은 서정시를 담당하고 또 어떤 무사 여신은 비극을 담당하는 식이다. 아홉 명의 무사 여신들은 각자 일종의 자석이 되어 최초의 시인들을 끌어당긴다. 이때 호메로스도 그 중 한 명으로서 서사시를 담당하는 무사 여신 칼리오페에게 이끌려 달라붙는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칼리오페로부터 일종의 자력인 신적 영감을 이어받아 그에 이끌리는 또다른 시인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여 이번에도 일종의 계열체를 형성했는데, 이 계열체에는 호메로스가 끌어당기지 않는 자들, 즉 다른 시인에게 감응되는 사람들은 달라붙지 않는 반면, 호메로스가 끌어당기는 자들, 달리 말해서 다른 시인에게는 몰라도 호메로스에게는 감응하는 시인들이 달라붙어 긴 계열체를 형성했는데, 바로 이 계열체 어딘가에 이온이 속해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온은 칼리오페로부터 자력을 이어받은 호메로스애게서 영감을 받은 계열체에 속한 시인이며 그의 예술적 능력이 가진 원천은 기술적 앎이나 지식이 아니라 무사이 여신과 호메로스로부터 이어져온 신적 영감이라는 것이다.
사실 시인이 앎 혹은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온의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대중들의 교육자이자 지식인으로 불려 온 시인으로서 이온은 자신이 전문 기술과 전문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다소간의 항변을 시도하지만 시인의 능력이 비록 앎과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인간의 것을 뛰어넘는 신적인 영감을 무사 여신들로부터 이어받아 신들린 상태에서 발휘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수긍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신화적 설명 방식의 한계
신화는 철학이나 과학이 발달하기에 앞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어 대안적인 설명을 제공해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크게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는 창세신화가 그렇고 작게는 동네 뒷산에 있는 기암괴석의 유래를 소개하는 기원신화가 그렇다. 이러한 신화적 방식의 설명은 고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기록 수단이 귀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설명의 방식 자체가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전되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는 구전의 과정에서 왜곡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사실의 온전한 기록 혹은 전달’이라는 기능을 감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했지만, ‘가치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우수한 측면이 있었다. 덕분에 고대 희랍인들은 비록 여러 개의 폴리스(도시 국가)로 쪼개져서 살아갔고 때로는 서로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언어와 신화를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기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인류가 언제까지나 신화적 설명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지는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성적 사유에 점점 눈을 뜨게 되듯이, 인류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합리적인 설명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각도에서 신화적 설명을 바라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미봉적이라는 사실이다. 미봉적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은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화적 설명은 단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당장 가능한 최선의 설명조차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바꾸더라도 같은 수준의 설득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진을 포세이돈이 분노하여 삼지창 트리아이나로 일으키는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러지 말고 하데스가 망자들의 세계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지표면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땅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설득력은 동일하다. 두 설명의 개연성이 같다는 것은 적어도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포세이돈을 통한 기존의 설명 방식이 최선의 설명 방법은 아니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