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 : 미메시스
예술은 무엇일까? 옛 희랍사람들은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 활동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서 그것은 ‘미메시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 개념에 대해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번역어는 ‘모방imatation’이다. 그렇다면 가장 잘 모방하는 것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사무실마다 놓여있는 복사기는 최고의 예술기계들이었던 걸까? 그렇게 단순한 것일 리는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메시스를 ‘모방’ 대신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모방은 단지 원본의 복사물을 만드는 개념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주관적 해석이나 예술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재현은 대상에 관한 예술가의 주관적 해석에 대해서 열려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예술이 미메시스라면, 그것은 무엇을 미메시스하는 걸까?
미메시스의 대상
예술이 일차적으로 미메시스하는 대상은 인간의 행위이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조각상이든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재현하려 한다. 하지만 음악은 형체를 갖지 않고 그림도 추상화가 있는데 그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투명인간이라도 재현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미메시스의 일차적 대상은 인간의 행위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차적인 대상일 뿐 더욱 궁극적인 대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미메시스하려는 것은 일차적 대상이었던 ‘행위’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성격과 감정이다. 음악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성격과 감정에 대한 청각적 차원의 미메시스가 바로 음악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의문은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음악이 우리의 성격과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 미메시스한다는 걸까?
음악의 미메시스 방식
음악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캔버스 위에 있다. 음악이 그려지는 캔버스의 가로축과 세로축은 음정과 박자로 짜인다. 음악가들은 이러한 음정과 박자로 짜인 화폭 안에 인간 영혼의 움직임, 즉 성격 및 감정을 모방하고 재현한다. 비감각적 대상을 감각 가능한 소리를 매개로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와 음악이 성격 및 감정과 엄연히 다른데 대체 어떻게 음악이 인간 내면의 성격과 감정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일까?
음악이 미메시스하려는 궁극적 대상인 성격과 감정은 영혼의 움직임이다. (영혼이라는 말이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 것 같아 불편하다면 내면이나 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다.) 인간 영혼의 움직임은 시간 속에서 일정 기간 지속되고 유지된다. 성격도 감정도 찰나의 순간에 스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화음과 박자의 조직체로서 시간을 점유하는 소리의 움직임이다. 음악이 성격과 감정에 대한 미메시스라고 할 때, 음악가는 성격과 감정의 결과물인 영혼의 움직임을 화음과 박자의 결과물인 소리의 움직임으로 재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키워드
모방, 미메시스, 시가,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