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관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그것을 부정의하다고 여기고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보상을 받으려고 할까? 사람들이 원하는 돈, 명성, 지위 등은 누구나 얻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원한다고 모두가 갖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게 된다. 일을했지만 임금 체불을 겪고 있는 노동자는 그 상황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만일 각자가 자신의 노력의 대가를 얻는 것만을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노력을 많이 하여 사회적으로 지위, 재산 그리고 명성을 갖게 된 강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약한 사람들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자들은 현 사회의 불평등은 각자의 노력에 따른 정당한 질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올바른지 곧 의문이 들게 하는 점들이 보인다. 가령, 비슷한 능력을 타고난 A와 B라는 학생이 비슷한 노력을 했다고 할 때, 항상 같은 노력의 결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A 학생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고, B 학생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A 학생은 아버지가 재력이 있기 때문에 최고급 과외를 받을 수 있지만, B 학생은 과외를 받거나 흔한 학원도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두 학생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에서만 정의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 학생의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정의를 공정의 관점에서 접근한 사람이 존 롤스이다. 롤스는 공정한 사회의 원리를 정하기 위하여 ‘원초적 입장’을 제시했다. 원초적 입장이란 사회 대표자들이 모여서 사회 정의의 원칙에 대해서 논의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대표자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공정한 정의의 원리가 도출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롤스는 이들이 ‘무지의 베일’ 속에서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지의 베일 속에 있다는 말은 대표자들이 자신의 재능, 사회적 지위와 계층, 가치관, 심지어 자신이 어떤 세대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무지의 베일 속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을 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다시, 위 사례로 돌아가 롤스의 생각을 적용해 보자. 롤스의 생각에 따르면 위 A, B 학생이 속한 사회는 두 학생이 공정한 위치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구체적으로 A 학생은 그의 아버지가 속해 있는 특권 집단의 결속력 덕에 다른 학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학교나 회사, 정부 기관에 들어갈 수 있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우선, B 학생이 노력을 하면 같은 학교, 회사나 정부 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A, B학생은 경제적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경제적 차이를 인위적으로 균등화하기보다 두 학생의 학습 격차를 줄여 줄 수 있는 복지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