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들이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광인들로 규정었고 사회로부터 소외, 배제되기 시작했는지는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광인을 정상인 또는 합리적 인간과 대척점에 놓고서 정상인들의 사회에서 감금을 통해 분리시킨 것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광인의 감금 제도는 역사적, 제도적 창작물이다.
고전본문
감금 제도는 17세기에 창안된 그 세기에 고유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즉각적으로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었는데, 중세에 실행된 감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제적인 조치이자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이 제도는 하나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그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광기가 사회적 지평, 즉 노동을 할 수 없고 사회 집단에 통합되는 것일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광기가 도시의 문제들 중 하나로서 분류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빈곤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들, 노동의 의무에 따른 중요성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윤리적 가치들은 궁극적으로 광기의 개념을 변화시키면서 그것에 대한 경험에서 결정적인 요인들이 되었다.
선을 긋고 문턱을 높이고 추방을 위해서 선택을 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고전 시대의 사회의 구체적인 공간에서 중립지대가 별도로 배정되었으며, 도시의 실제적 삶이 중단된 무색의 공간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자유로운 대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은 그것을 기피할 수 있는 모든 것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려 하거나 그것을 거부하려 하지 않는다. 속박에서 벗어난 비이성을 상대로 미리 보장된 승리 가운데서 이성은 순수한 상태로 군림한다. 광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아직 번성하도록 허용되었던 상상의 자유 영역에서 부정당했다. 얼마 전만 해도 광기는 여전히 한낮의 빛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리어왕이나 돈키호테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반세기도 되기 전에 광기는 감금의 요새, 바로 이성, 도덕적 규칙 그리고 그 단조로운 밤들 속에 유폐되었다.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제1부 3장 中
토론하기
(1) 푸코에 따르면 왜 광인을 감금하기 시작했습니까?
(2) 정상과 비정상, 비이성과 이성 사이의 경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사회에서 특정 집단을 분리, 고립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해설읽기
지금도 가끔씩 등장하지만 과거 우리들이 자라던 동네에는 광인들이 한 둘씩 정상인들과 섞여 살았다. 그리고 대개 그들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미셀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서구 사회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까지 광인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푸코가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고전 시대로 부른 기간이었다. 광기와 정상 사이의 느슨한 구분이 해체되고, 둘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이 생겨났다. 푸코는 이 대립적 구도가 생겨난 원인을 노동의 문제와 관련짓는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인이다. 그래서 원래 광인들은 부랑자들이나 범죄자들과 함께 무더기로 수용되었다. 하지만 노동력이 더 필요해지자 일을 할 수 있는 부랑자들은 해방되었지만, 광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인권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서 광인들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후 광인들은 정상인과 다른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된다.
푸코의 중요한 연구 주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세상과 타인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광인을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미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씩 우리도 헛소리를 하고, 종종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이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어왕이나 돈키호테에 나오는 광기는 인간의 어두운 영역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사실, 광기는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대상에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쉬운 예로 사랑의 광기를 생각해 보자. 미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이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푸코는 광기와 이성, 정상과 비정상의 구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시키고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 사이에 금을 긋고서 타인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을 악마화하면서 우리 자신이 악마가 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의 생각은 우리가 가진 기존의 편견들에 대해서 한 번쯤 반성해보게 한다.
키워드
전후맥락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들이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광인들로 규정었고 사회로부터 소외, 배제되기 시작했는지는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광인을 정상인 또는 합리적 인간과 대척점에 놓고서 정상인들의 사회에서 감금을 통해 분리시킨 것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광인의 감금 제도는 역사적, 제도적 창작물이다.
고전본문
감금 제도는 17세기에 창안된 그 세기에 고유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즉각적으로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었는데, 중세에 실행된 감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제적인 조치이자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이 제도는 하나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그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광기가 사회적 지평, 즉 노동을 할 수 없고 사회 집단에 통합되는 것일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광기가 도시의 문제들 중 하나로서 분류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빈곤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들, 노동의 의무에 따른 중요성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윤리적 가치들은 궁극적으로 광기의 개념을 변화시키면서 그것에 대한 경험에서 결정적인 요인들이 되었다.
선을 긋고 문턱을 높이고 추방을 위해서 선택을 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고전 시대의 사회의 구체적인 공간에서 중립지대가 별도로 배정되었으며, 도시의 실제적 삶이 중단된 무색의 공간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자유로운 대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은 그것을 기피할 수 있는 모든 것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려 하거나 그것을 거부하려 하지 않는다. 속박에서 벗어난 비이성을 상대로 미리 보장된 승리 가운데서 이성은 순수한 상태로 군림한다. 광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아직 번성하도록 허용되었던 상상의 자유 영역에서 부정당했다. 얼마 전만 해도 광기는 여전히 한낮의 빛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리어왕이나 돈키호테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반세기도 되기 전에 광기는 감금의 요새, 바로 이성, 도덕적 규칙 그리고 그 단조로운 밤들 속에 유폐되었다.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제1부 3장 中
토론하기
(1) 푸코에 따르면 왜 광인을 감금하기 시작했습니까?
(2) 정상과 비정상, 비이성과 이성 사이의 경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사회에서 특정 집단을 분리, 고립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해설읽기
지금도 가끔씩 등장하지만 과거 우리들이 자라던 동네에는 광인들이 한 둘씩 정상인들과 섞여 살았다. 그리고 대개 그들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미셀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서구 사회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까지 광인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푸코가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고전 시대로 부른 기간이었다. 광기와 정상 사이의 느슨한 구분이 해체되고, 둘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이 생겨났다. 푸코는 이 대립적 구도가 생겨난 원인을 노동의 문제와 관련짓는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인이다. 그래서 원래 광인들은 부랑자들이나 범죄자들과 함께 무더기로 수용되었다. 하지만 노동력이 더 필요해지자 일을 할 수 있는 부랑자들은 해방되었지만, 광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인권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서 광인들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후 광인들은 정상인과 다른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된다.
푸코의 중요한 연구 주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세상과 타인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광인을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미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씩 우리도 헛소리를 하고, 종종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이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어왕이나 돈키호테에 나오는 광기는 인간의 어두운 영역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사실, 광기는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대상에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쉬운 예로 사랑의 광기를 생각해 보자. 미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이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푸코는 광기와 이성, 정상과 비정상의 구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시키고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 사이에 금을 긋고서 타인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을 악마화하면서 우리 자신이 악마가 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의 생각은 우리가 가진 기존의 편견들에 대해서 한 번쯤 반성해보게 한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