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재능과 야심을 가진 법대생 로디온 라스콜니코프는 빈곤으로 학업을 중단한 채 사회적 열등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평소 빈곤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이 높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사회에 백해무익한 존재인 전당포 노파의 살인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자신이 이러한 행위를 실행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함과 동시에 보다 나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자나깨나 이러한 생각에 골몰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어느 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옆자리에서 학생과 젊은 장교가 자신이 하던 생각을 똑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는 노파의 살해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이야기하자, 이를 숙명에 대한 일종의 암시로 느끼게 된다.
고전본문
“한데 말이야, 나는 한 가지 진지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 말이지.” 학생은 다시 열을 띠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얘기한 것은 농담이지만, 알겠나, 한쪽에는 멍텅구리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인데다가 못된 인간이어서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로운 존재로서, 자기 자신도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뿐더러 내일이라도 저절로 죽을지도 모르는 병자인 노파가 있다. 알겠나?”
“응, 알아듣고말고.” 장교는 열을 올리고 있는 친구를 줄곧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그럼 계속 얘기를 하지.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원조의 손길이 뻗치지 않기 때문에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젊고 신선한 힘이 있다. 그건 몇 천이든지 있고 또 도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수도원에 기부하기로 되어 있는 노파의 돈으로 몇 백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과 계획을 추진할 수도 있으며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몇 백, 몇 천이라는 무법자를 올바른 길로 걸어가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가족들이 빈곤‧부패‧죽음‧타락‧성병의 병원(病源)으로부터 구출될 수도 있다 – 이러한 것들을 모두 그 노파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약탈하라, 이 말이야. 단, 그것은 그 후, 그 돈을 인류 전체와 공공사업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작은 범죄 같은 것이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으로서도 보상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단 하나의 죽음으로 몇 천 명의 생명이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이다. 하나의 죽음과 백의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 – 이것은 산술처럼 전적으로 명백한 것이 아니냐! 게다가 사회 전체의 비중으로 보아서 저 폐병에 걸린 무식하고 못된 노파의 생명이 어느 만큼의 가치가 있느냐? 벼룩이 바퀴벌레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니, 그 정도의 가치조차도 없는 거야. 그것은 그 노파가 해롭기 때문이지. 그 노파는 타인의 생명을 핥아먹고 있으니 말이야…”
“물론 그런 노파는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지.” 장교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지 않겠나.”
“흥, 자연의 섭리도 수정되어 그 방향을 바꾸어 가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틀린 생각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한 사람의 위인도 나오지 못했겠지. ‘의무다, 양심이다’ 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의무나 양심에 반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만, 우리들은 의무라든가 양심이라든가 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중략)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이것은 모두 지극히 흔하게 항상 떠도는 대화였고 형식이나 테마만이 다를 뿐, 이미 몇 번이고 들은 일이 있는 청년다운 대화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마당에, 하필 지금, 그 자신의 머리에… ‘바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 마당에, 하필 이런 얘기와 이런 생각을 듣게 되는 것일까? (중략) 그는 이 우연한 일치가 항상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이 식당에 생의 하잘것없는 잡담의 사건이 더욱 전개되어 감에 따라서 그에게 이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실제로 이때 일종의 숙명이, 계시가 있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대화에서 학생은 사회에 백해무익한 인간과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비교하고 양자의 생명의 가치가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혹시 여러분의 삶에서 유사한 생각을 하게 된 경우가 있는가?
(2) 여러분이 형벌권자라면 사회에 전적으로 해로운 노파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약탈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수백 명을 살린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해설읽기
러시아의 1870년대는 낭만주의에 대한 회의와 함께 도덕적이고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허무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만이 맹신되던 시기였다. 1870년대의 시대적 소산으로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인색하고 욕심 많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그 돈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을 통해 이와 같은 당대 사상들의 영향을 깊숙이 받은 지식인의 형상을 체현해 보이고 있다. 지방에서 수도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던 그는 빈곤 속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무력감에 시달리던 중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악덕 전당포 노파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평소 사회악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빈곤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같은 악한 이들로 인해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선한 이들의 삶이 파괴된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사회에 백해무익한 이(虱)와 같은 존재라 규정한다. 따라서 사회에 백해무익한 존재인 전당포 노파의 살인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자신이 이러한 행위를 실행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함과 동시에 보다 나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라스콜니코프가 하나의 조그마한 범죄와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 단 하나의 죽음과 몇 천 명의 생명 간의 비교를 통해 노파의 살해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19세기를 지배하던 공리주의 사상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산업발전과 더불어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사상이 급속히 발전하던 19세기 후반 당시 도시 빈곤층의 문제는 서구 산업사회 대부분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러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급진적 무신론과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던 러시아 지식인(인텔리겐치아) 계층은 대부분의 범죄가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모순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고 그러므로 범죄는 사회기구의 불비(不備)에 대한 항의로부터 유발되고 범죄자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서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를 정상적으로 개조하게 된다면 범죄도 모두 일시에 사라지고 인류 역시 모두가 정상적이고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이와 같은 19세기 후반 급진적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전형으로서 사회적 모순을 일으키는 암적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주변 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이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유물론적 사고에 기초한 라스콜니코프의 오류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는 양심과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사고를 통해 생명의 우월성을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이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키워드
백 개의 생명, 수도원으로 가게될 노파, 수천 가지 선행, 작은 범죄, 젊고 싱싱한 사람들, 하나의 죽음
전후맥락
재능과 야심을 가진 법대생 로디온 라스콜니코프는 빈곤으로 학업을 중단한 채 사회적 열등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평소 빈곤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이 높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사회에 백해무익한 존재인 전당포 노파의 살인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자신이 이러한 행위를 실행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함과 동시에 보다 나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자나깨나 이러한 생각에 골몰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어느 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옆자리에서 학생과 젊은 장교가 자신이 하던 생각을 똑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는 노파의 살해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이야기하자, 이를 숙명에 대한 일종의 암시로 느끼게 된다.
고전본문
“한데 말이야, 나는 한 가지 진지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 말이지.” 학생은 다시 열을 띠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얘기한 것은 농담이지만, 알겠나, 한쪽에는 멍텅구리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인데다가 못된 인간이어서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로운 존재로서, 자기 자신도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뿐더러 내일이라도 저절로 죽을지도 모르는 병자인 노파가 있다. 알겠나?”
“응, 알아듣고말고.” 장교는 열을 올리고 있는 친구를 줄곧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그럼 계속 얘기를 하지.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원조의 손길이 뻗치지 않기 때문에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젊고 신선한 힘이 있다. 그건 몇 천이든지 있고 또 도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수도원에 기부하기로 되어 있는 노파의 돈으로 몇 백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과 계획을 추진할 수도 있으며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몇 백, 몇 천이라는 무법자를 올바른 길로 걸어가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가족들이 빈곤‧부패‧죽음‧타락‧성병의 병원(病源)으로부터 구출될 수도 있다 – 이러한 것들을 모두 그 노파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약탈하라, 이 말이야. 단, 그것은 그 후, 그 돈을 인류 전체와 공공사업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작은 범죄 같은 것이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으로서도 보상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단 하나의 죽음으로 몇 천 명의 생명이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이다. 하나의 죽음과 백의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 – 이것은 산술처럼 전적으로 명백한 것이 아니냐! 게다가 사회 전체의 비중으로 보아서 저 폐병에 걸린 무식하고 못된 노파의 생명이 어느 만큼의 가치가 있느냐? 벼룩이 바퀴벌레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니, 그 정도의 가치조차도 없는 거야. 그것은 그 노파가 해롭기 때문이지. 그 노파는 타인의 생명을 핥아먹고 있으니 말이야…”
“물론 그런 노파는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지.” 장교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지 않겠나.”
“흥, 자연의 섭리도 수정되어 그 방향을 바꾸어 가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틀린 생각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한 사람의 위인도 나오지 못했겠지. ‘의무다, 양심이다’ 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의무나 양심에 반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만, 우리들은 의무라든가 양심이라든가 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중략)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이것은 모두 지극히 흔하게 항상 떠도는 대화였고 형식이나 테마만이 다를 뿐, 이미 몇 번이고 들은 일이 있는 청년다운 대화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마당에, 하필 지금, 그 자신의 머리에… ‘바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 마당에, 하필 이런 얘기와 이런 생각을 듣게 되는 것일까? (중략) 그는 이 우연한 일치가 항상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이 식당에 생의 하잘것없는 잡담의 사건이 더욱 전개되어 감에 따라서 그에게 이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실제로 이때 일종의 숙명이, 계시가 있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대화에서 학생은 사회에 백해무익한 인간과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비교하고 양자의 생명의 가치가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혹시 여러분의 삶에서 유사한 생각을 하게 된 경우가 있는가?
(2) 여러분이 형벌권자라면 사회에 전적으로 해로운 노파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약탈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수백 명을 살린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해설읽기
러시아의 1870년대는 낭만주의에 대한 회의와 함께 도덕적이고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허무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만이 맹신되던 시기였다. 1870년대의 시대적 소산으로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인색하고 욕심 많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그 돈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을 통해 이와 같은 당대 사상들의 영향을 깊숙이 받은 지식인의 형상을 체현해 보이고 있다. 지방에서 수도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던 그는 빈곤 속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무력감에 시달리던 중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악덕 전당포 노파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평소 사회악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빈곤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같은 악한 이들로 인해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선한 이들의 삶이 파괴된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사회에 백해무익한 이(虱)와 같은 존재라 규정한다. 따라서 사회에 백해무익한 존재인 전당포 노파의 살인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자신이 이러한 행위를 실행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함과 동시에 보다 나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라스콜니코프가 하나의 조그마한 범죄와 몇 천이라는 훌륭한 사업, 단 하나의 죽음과 몇 천 명의 생명 간의 비교를 통해 노파의 살해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19세기를 지배하던 공리주의 사상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산업발전과 더불어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사상이 급속히 발전하던 19세기 후반 당시 도시 빈곤층의 문제는 서구 산업사회 대부분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러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급진적 무신론과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던 러시아 지식인(인텔리겐치아) 계층은 대부분의 범죄가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모순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고 그러므로 범죄는 사회기구의 불비(不備)에 대한 항의로부터 유발되고 범죄자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서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를 정상적으로 개조하게 된다면 범죄도 모두 일시에 사라지고 인류 역시 모두가 정상적이고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이와 같은 19세기 후반 급진적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전형으로서 사회적 모순을 일으키는 암적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주변 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이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유물론적 사고에 기초한 라스콜니코프의 오류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는 양심과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사고를 통해 생명의 우월성을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이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키워드
백 개의 생명, 수도원으로 가게될 노파, 수천 가지 선행, 작은 범죄, 젊고 싱싱한 사람들, 하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