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사상과 물질적 이기주의에 근거하여 마침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범죄 현장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그녀의 동생까지 살해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지만, 그가 인정하지 않던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막연한 괴로움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살해사건을 조사하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과거 라스콜니코프가 썼던 논문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포르피리는 참고인 조사를 명분으로 라스콜니코프에게 방문을 요청하고 라스콜니코프는 포르피리를 높게 평가하는 친구 라주미힌과 함께 포르피리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는 경찰서장 자묘토프 역시 와 있다. 이들은 노파 살인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현대사회와 범죄 문제에 관해 갑론을박한다. 이때 포르피리가 라스콜니코프의 논문 <범죄론>을 언급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에 라스콜니코프는 인류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누어지며 창조적 발견으로 인류 진보를 가져온 이들이 결국 상도에서 벗어난 일탈자들이었으므로 인류 진보를 위해 비범인에게 상도(常道)를 넘어서 범죄를 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고전본문
라스콜니코프는 또다시 히죽 웃었다. 그는 문제의 소재가 어디 있는가, 상대방은 자기를 어디로 유도하고자 하는가를 재빨리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쓴 논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도전에 응할 각오를 했다. 그는 정색을 하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나는 단지 이렇게 암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범인>이란 인간은, 어떤 종류의 장애를 초월하는 권리를 지녔다… 그렇다고 그건 공적인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초월할 것을 양심에 허용하는 권리를 지녔다, 그것도 전적으로 그 사상을, 때로는 전인류에 대한 구세(救世)적 사상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 사상을 실행에 옮기는 데 불가불 필요할 경우에 한한다고 분명히 기술하였습니다. 당신은 내 논문을 아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가급적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해 드리지요. (중략) 내 생각으로는 가령 케플러 같은 사람이나 뉴튼 같은 사람의 발견이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그 위대한 발견을 방해하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발견을 해낼 수가 없고 따라서 전인류에 공헌할 수가 없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뉴튼이 그들 방해자들이 몇 십, 몇 백 명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제거하여 자기의 발견을 전인류에게 알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마저 있다는 주장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뉴튼은 이놈 저놈 아무런 차별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거나 매일 시장에서 도둑질을 해도 좋은 권리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시면 곤란합니다. (중략) 모든…아무튼, 예를 들면 전인류적인 입법자도 좋고 법 제정자라도 좋습니다.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등의 사람들, 이와 같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로운 법률을 발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서 신성시되고 자손대대로 계승되어 온 옛 법률을 파기하였을 뿐 아니라 만일 유혈 이외에는 (때로는 옛 법률을 수호하기 위하여 전연 죄가 없는 인간이 감연히 피를 흘린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유혈 외에는 자기들이 살 길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피를 흘리게 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는 그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들은 범죄자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인류적인 입법자, 제정자들 그 대부분이 특별히 소름이 끼칠 정도의 유혈 도배들이었다는 것은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내가 내린 결론이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위인이라고 할 정도는 못된다 하더라고 조금이라도 상도(常道)에서 일탈한 인간, 다시 말하면 조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간에 그 본질적인 면으로 따져 볼 때 반드시 범죄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대체적으로 그러한 경향으로 오늘날 우리의 전 세계의 역사가 흘러내렸다는 것은 전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범죄자가 아니면 상도에서 일탈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성격상 상도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감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의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중략)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대체로 두 개의 부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즉 보다 저급한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자기와 유사한 인간을 생식하는 기능밖에 없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말’을 토(吐)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와의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것을 세분해 나가자면 그야말로 한이 없겠습니다만 이들 두 부류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제1의 부류, 즉 소재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천성적으로 보수적이며 행실이 좋은 인간들입니다만, 이들은 남에게 복종하며 생활하고 또 복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러한 사람들은 복종하는 것이 의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비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제2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재능의 다소에 따라서 법률을 범하는 파괴자들인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경향을 지닌 사람들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범죄도 역시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각양각색의 잡다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매우 다종다양한 성명의 방법으로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나 피도 불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러한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면의 양심에 비추어 봐서 피를 보아도 좋다는 허가를 자기에게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면의 성질과 그 크기에 따라서 차이는 있습니다. –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이러한 뜻에서만 나는 그 논문에서 그들의 범죄를 수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중략) 대중들은 거의 어떠한 경우이든 그들은 그와 같은 권리를 인정치 않고 그들을 처벌하기도 하고 교수형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은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자기들의 보수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들어와서는 그 대중들이 처형한 사람들을 오히려 추모하고 숭배하게 됩니다만, 이것도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1의 부류는 항상 현재의 주인공이며, 제2의 부류는 미래의 주인공입니다. 제1 부류의 사람들은 세계를 부지하고 그것을 수직으로 증대시키며, 제2부류의 사람들은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를 목표에 유도하는 것입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라스콜니코프의 생각에 따르면, 케플러나 뉴튼과 같은 <비범인>의 위대한 발견의 경우,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그 위대한 발견을 방해하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발견을 해낼 수가 없고 따라서 전인류에 공헌할 수가 없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방해자들을 제거하여 발견을 전인류에게 알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마저 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라.
(2) 라스콜니코프는 인간을 대체적으로 두 부류, 즉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해 자기와 같은 인간을 낳는 일 밖에 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주장’을 토(吐)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보고, 이 두 번째 부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은 결국 법률을 범하는 파괴자일 것이라 주장한다. 여러분은 이 분류에 동의하는가? 또한 두 번째 부류인 ‘새로운 주장’을 토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가 파괴자라는 정의는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3) 라스콜니코프는 극소수인 비범한 인간 혹은 천재가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그들에게 범죄를 수행할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설읽기
전당포 노파와 그의 여동생을 죽인 범죄를 저지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범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범죄에 관해 공리주의적 합리에 의거한 논증을 전개한다. 라스콜니코프가 구성한 논증은 다음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의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인간 가치의 서열론이다. 라스콜니코프가 말하는 “보다 저급한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자기와 유사한 인간을 생식하는 기능밖에 없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란, 새로운 법칙이나 발견을 하지 못하고 주어진 사회적 관습 안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 혹은 대중(大衆)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그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주장’을 토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평범한 인간과 달리 인류 역사의 발전과 도약을 가져오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해내는 창조적 천재들이다.
둘째,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사회의 관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해내는 비범인들에 의해 발전된다는 지극히 낭만주의적 천재론이다.
셋째, 그러므로 지배할 운명을 가진 이러한 비범인들에게 상도(常道)를 넘어설 권리, 즉 라스콜리니코프에 따르면, 사회적 규율과 관습을 넘어서는 행위이므로 범인들에게는 범죄로 여겨지는 행위를 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범인과 비범인, 대중과 천재이라는 라스콜니코프의 구분에서는 한편으로는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유행했지만 당대에는 시들어가던 나폴레옹에 대한 낭만주의적 숭배의 잔재를,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후반 유럽 전반에 퍼졌던 니체 사상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처럼 무신론자로서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만을 유일한 존재론적 근거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신 혹은 절대적 존재를 근거로 성립된 종교와 도덕은 실상 상대적인 것이며 일종의 환상에 다름 없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평생을 지배당하며 복종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도덕 안에 머물러야 하는 대중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직 지배자의 운명을 타고난 초인(超人), 뛰어난 천재만이 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초인은 대중을 구속하는 도덕률을 넘어서 새로운 법칙을 창조함으로써 인류 문명을 진보시켜왔다. 니체가 초인을 선악의 피안에 있는 존재로 규정했듯이 라스콜리니코프 역시 비범인을 평범한 인간의 도덕률, 즉 상도를 넘어서야 할 운명을 타고난 자로 보면서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는 이들의 행위를 결국 범죄로 이해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라스콜니코프는 인류 역사를 견인해온 비범인들이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제한받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행위, 즉 범죄를 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범인에 대한 라스콜니코프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자본주의와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으로 유행했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와도 양립할 수 있다. 천재적인 초인이 기성 사회질서를 단숨에 넘어서는 행위를 함으로써 사회를 개선한다는 생각은 바로 사회가 물질적 복리의 증대를 통해 인류 다수, 즉 대중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공리주의의 전제에 충분히 호응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키워드
대중, 범인, 범죄자, 비범인, 새로운 말, 입법자, 초인, 파괴
전후맥락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사상과 물질적 이기주의에 근거하여 마침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범죄 현장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그녀의 동생까지 살해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지만, 그가 인정하지 않던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막연한 괴로움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살해사건을 조사하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과거 라스콜니코프가 썼던 논문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포르피리는 참고인 조사를 명분으로 라스콜니코프에게 방문을 요청하고 라스콜니코프는 포르피리를 높게 평가하는 친구 라주미힌과 함께 포르피리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는 경찰서장 자묘토프 역시 와 있다. 이들은 노파 살인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현대사회와 범죄 문제에 관해 갑론을박한다. 이때 포르피리가 라스콜니코프의 논문 <범죄론>을 언급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에 라스콜니코프는 인류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누어지며 창조적 발견으로 인류 진보를 가져온 이들이 결국 상도에서 벗어난 일탈자들이었으므로 인류 진보를 위해 비범인에게 상도(常道)를 넘어서 범죄를 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고전본문
라스콜니코프는 또다시 히죽 웃었다. 그는 문제의 소재가 어디 있는가, 상대방은 자기를 어디로 유도하고자 하는가를 재빨리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쓴 논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도전에 응할 각오를 했다. 그는 정색을 하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나는 단지 이렇게 암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범인>이란 인간은, 어떤 종류의 장애를 초월하는 권리를 지녔다… 그렇다고 그건 공적인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초월할 것을 양심에 허용하는 권리를 지녔다, 그것도 전적으로 그 사상을, 때로는 전인류에 대한 구세(救世)적 사상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 사상을 실행에 옮기는 데 불가불 필요할 경우에 한한다고 분명히 기술하였습니다. 당신은 내 논문을 아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가급적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해 드리지요. (중략) 내 생각으로는 가령 케플러 같은 사람이나 뉴튼 같은 사람의 발견이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그 위대한 발견을 방해하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발견을 해낼 수가 없고 따라서 전인류에 공헌할 수가 없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뉴튼이 그들 방해자들이 몇 십, 몇 백 명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제거하여 자기의 발견을 전인류에게 알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마저 있다는 주장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뉴튼은 이놈 저놈 아무런 차별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거나 매일 시장에서 도둑질을 해도 좋은 권리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시면 곤란합니다. (중략) 모든…아무튼, 예를 들면 전인류적인 입법자도 좋고 법 제정자라도 좋습니다.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등의 사람들, 이와 같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로운 법률을 발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서 신성시되고 자손대대로 계승되어 온 옛 법률을 파기하였을 뿐 아니라 만일 유혈 이외에는 (때로는 옛 법률을 수호하기 위하여 전연 죄가 없는 인간이 감연히 피를 흘린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유혈 외에는 자기들이 살 길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피를 흘리게 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는 그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들은 범죄자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인류적인 입법자, 제정자들 그 대부분이 특별히 소름이 끼칠 정도의 유혈 도배들이었다는 것은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내가 내린 결론이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위인이라고 할 정도는 못된다 하더라고 조금이라도 상도(常道)에서 일탈한 인간, 다시 말하면 조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간에 그 본질적인 면으로 따져 볼 때 반드시 범죄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대체적으로 그러한 경향으로 오늘날 우리의 전 세계의 역사가 흘러내렸다는 것은 전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범죄자가 아니면 상도에서 일탈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성격상 상도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감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의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중략)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대체로 두 개의 부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즉 보다 저급한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자기와 유사한 인간을 생식하는 기능밖에 없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말’을 토(吐)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와의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것을 세분해 나가자면 그야말로 한이 없겠습니다만 이들 두 부류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제1의 부류, 즉 소재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천성적으로 보수적이며 행실이 좋은 인간들입니다만, 이들은 남에게 복종하며 생활하고 또 복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러한 사람들은 복종하는 것이 의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비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제2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재능의 다소에 따라서 법률을 범하는 파괴자들인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경향을 지닌 사람들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범죄도 역시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각양각색의 잡다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매우 다종다양한 성명의 방법으로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나 피도 불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러한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면의 양심에 비추어 봐서 피를 보아도 좋다는 허가를 자기에게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면의 성질과 그 크기에 따라서 차이는 있습니다. –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이러한 뜻에서만 나는 그 논문에서 그들의 범죄를 수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중략) 대중들은 거의 어떠한 경우이든 그들은 그와 같은 권리를 인정치 않고 그들을 처벌하기도 하고 교수형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은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자기들의 보수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들어와서는 그 대중들이 처형한 사람들을 오히려 추모하고 숭배하게 됩니다만, 이것도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1의 부류는 항상 현재의 주인공이며, 제2의 부류는 미래의 주인공입니다. 제1 부류의 사람들은 세계를 부지하고 그것을 수직으로 증대시키며, 제2부류의 사람들은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를 목표에 유도하는 것입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라스콜니코프의 생각에 따르면, 케플러나 뉴튼과 같은 <비범인>의 위대한 발견의 경우,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그 위대한 발견을 방해하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발견을 해낼 수가 없고 따라서 전인류에 공헌할 수가 없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방해자들을 제거하여 발견을 전인류에게 알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마저 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라.
(2) 라스콜니코프는 인간을 대체적으로 두 부류, 즉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해 자기와 같은 인간을 낳는 일 밖에 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주장’을 토(吐)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보고, 이 두 번째 부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은 결국 법률을 범하는 파괴자일 것이라 주장한다. 여러분은 이 분류에 동의하는가? 또한 두 번째 부류인 ‘새로운 주장’을 토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의 부류가 파괴자라는 정의는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3) 라스콜니코프는 극소수인 비범한 인간 혹은 천재가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그들에게 범죄를 수행할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설읽기
전당포 노파와 그의 여동생을 죽인 범죄를 저지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범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범죄에 관해 공리주의적 합리에 의거한 논증을 전개한다. 라스콜니코프가 구성한 논증은 다음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의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인간 가치의 서열론이다. 라스콜니코프가 말하는 “보다 저급한 보통의 인간,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자기와 유사한 인간을 생식하는 기능밖에 없는, 말하자면 소재(素材)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란, 새로운 법칙이나 발견을 하지 못하고 주어진 사회적 관습 안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 혹은 대중(大衆)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그가 “본래의 인간, 즉 자기의 동료 중에서도 ‘새로운 주장’을 토할 수 있는 천부의 소질이며 재능을 지닌 인간”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평범한 인간과 달리 인류 역사의 발전과 도약을 가져오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해내는 창조적 천재들이다.
둘째,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사회의 관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해내는 비범인들에 의해 발전된다는 지극히 낭만주의적 천재론이다.
셋째, 그러므로 지배할 운명을 가진 이러한 비범인들에게 상도(常道)를 넘어설 권리, 즉 라스콜리니코프에 따르면, 사회적 규율과 관습을 넘어서는 행위이므로 범인들에게는 범죄로 여겨지는 행위를 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범인과 비범인, 대중과 천재이라는 라스콜니코프의 구분에서는 한편으로는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유행했지만 당대에는 시들어가던 나폴레옹에 대한 낭만주의적 숭배의 잔재를,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후반 유럽 전반에 퍼졌던 니체 사상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처럼 무신론자로서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만을 유일한 존재론적 근거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신 혹은 절대적 존재를 근거로 성립된 종교와 도덕은 실상 상대적인 것이며 일종의 환상에 다름 없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평생을 지배당하며 복종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도덕 안에 머물러야 하는 대중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직 지배자의 운명을 타고난 초인(超人), 뛰어난 천재만이 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초인은 대중을 구속하는 도덕률을 넘어서 새로운 법칙을 창조함으로써 인류 문명을 진보시켜왔다. 니체가 초인을 선악의 피안에 있는 존재로 규정했듯이 라스콜리니코프 역시 비범인을 평범한 인간의 도덕률, 즉 상도를 넘어서야 할 운명을 타고난 자로 보면서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는 이들의 행위를 결국 범죄로 이해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라스콜니코프는 인류 역사를 견인해온 비범인들이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제한받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행위, 즉 범죄를 행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범인에 대한 라스콜니코프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자본주의와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으로 유행했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와도 양립할 수 있다. 천재적인 초인이 기성 사회질서를 단숨에 넘어서는 행위를 함으로써 사회를 개선한다는 생각은 바로 사회가 물질적 복리의 증대를 통해 인류 다수, 즉 대중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공리주의의 전제에 충분히 호응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키워드
대중, 범인, 범죄자, 비범인, 새로운 말, 입법자, 초인,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