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니코프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고립감에 시달리다 어리고 무지하지만 경건한 마음을 가진 매춘부 소냐에게 괴로움을 털어놓으러 찾아간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녀의 감화로 자수를 결심하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살인을 진정으로 죄로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비범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자 입법자로서 사회적 규범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사회의 불합리한 현상을 개조하기 위해 사회악의 일부를 과감히 제거한 것이라 주장한다.
여동생 두냐도 오빠의 살인 행위에 관해 알게 되고 그를 염려하여 찾아오는데, 라스콜니코프는 여동생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행동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논리로서만 합리화하며 다수의 이익을 위해 행한 살인이 죄가 아니며 그의 실패는 범죄를 행할 권리가 있는 재능있는 비범인으로서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 것에 있었을 뿐이라 강변한다.
고전본문
“난 그 무렵 노상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지, 난 왜 이다지도 못났을까? 다른 자들이 못난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면서, 나 자신의 못난 점을 왜 고치려 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난 나중에 깨달았지, 소냐, 만약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되리라고… 또 이렇게도 느꼈어.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고. 인간은 변하지 않고 누구도 인간을 개조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위해서 힘을 허비할 것도 못된다고. 정말 그래요! 그게 인간의 법칙이란 거요… 법칙이야, 소냐!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인한 자는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라는 것을! 많은 일을 과감히 해치우는 자는 인간으로서는 올바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말이야!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올바른 자가 된다면, 그와 동시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인간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되는 거요! (중략) 권력이란 일부러, 아니오, 기를 쓰고 그것을 줍겠다고 덤비는 자만이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을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때 내 머리에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거요. 나 말고는 그 어떤 사람도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이! (중략) 왜? 오늘날까지 이와 같은 온갖 불합리한 현상을 보면서도 그 꼬리만이라도 붙잡아 내던져 버리려는 인간이 없었고, 현재도 없는가, 하는 생각이야! 그래서 난… 난 단호하게… 과감하게 실행하겠다고 결심했던 거요! 그 결과 그걸 죽여버리고 말았지!”
(중략)
“죄? 죄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더러운, 이(虱)같이 해로운 노파를,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그 노파를 죽인 것을 말하는 거니? 그게 죄일까? 가난한 사람들의 피만 빨아먹는 이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의 다른 죄도 용서받아 마땅한 거다. 그게 죄가 된단 말이냐? 그게 죄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런 걸 깨끗이 씻어내려고도 생각지 않는단 말이야! 그런데도 왜들 입을 모아 <죄! 죄!>하고 못살게 구는 거야!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옹졸하고 무능한 것에 싫증이 나서 그래서 자수하려는 거야! 그리고 그 포르피리의 말에 따르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야!,,,”
“오빠, 오빠, 오빠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오빠가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두냐는 절망해서 울부짖었다.
“누구나 모두 피를 흘리고 있어!” 그는 거의 광란 상태가 되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이 세상에서 폭포처럼 흘려왔고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피 말이냐? 샴페인처럼 흐르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주피터 신전에서 왕관을 얻어쓰고 그리하여 인류의 은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한 바로 그 피 말이냐? 너도 다시 한번,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란 말이다! 난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려고 했다. 그리고 몇 백 몇 천이나 되는 선행을 성취했을지도 모르는데, 난 이렇게 우매한 옹졸한 짓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냐, 우매하거나 옹졸했던 것이 아니야! 다만 좀 서툴렀다는 생각뿐이야, 난 아무래도 나의 그 행동이 우매하고 옹졸했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패하고 보면 무엇이건 우매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법이지. 난 이 우매하고 옹졸했던 행위로, 먼저 자립하고 제1보를 내디딜 자금을 얻으려 했던 거야. 그렇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을 이 세상에 가져다주게 되고, 동시에 모든 나의 죄는 속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난, 그 제1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견디지 못했다. 왜? 내가 우매하고 옹졸했기 때문이다. 난, 절대로, 너희들과 같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보지는 않겠다! 이것이 성공했더라면 영광은 나의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난 끝내 함정에 빠지고 말았어!”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그게 아녜요! 오빠, 오빠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아, 형식이 틀렸다는 거냐? 형식이라는 게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이구나! 난 정말 너의 말을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폭탄이나 정식 포위 공격으로 대량살상을 하는 것이 왜 훌륭한 형식이란 말이냐! 아름다운 형식이냐, 어떠냐 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력함을 드러내는 첫째 징후란 말이야!… 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것을 뚜렷하게 깨달았어! 그리고 지금처럼 뚜렷하게 내 죄가,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 난 여태까지 이 순간처럼 강인한 때도 없었고, 굳은 확신을 가져 본 적도 없었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인한 자가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며 많은 일을 과감히 해치우고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올바른 자로서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고 인간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논리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입법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떤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2)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하려 가는 자신을 염려하는 동생 두냐와의 대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피만 빨아먹는 이와 같이 사회에 해만을 끼치는 노파를 죽인 것이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백해무익한 인간의 살인이 오히려 인류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고 몇 백 몇 천이나 되는 선행을 성취했을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먼저 자립하고 제1보를 내디딜 자금을 얻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을 이 세상에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3) 자신의 살인을 전쟁에서의 살상행위와 다만 형식적으로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에 대한 라스콜리니코프는 목적이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한 목적과 긍정적인 결과는 비윤리적인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해설읽기
소냐의 감화로 자수를 결심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스스로를 개조하지 못하므로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두뇌와 정신이 확고한 비범한 인간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보다 많은 일을 이루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비범한 인간은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며 동시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인간 사회의 입법자가 된다.
대중을 지배하는 초인(超人)의 범죄행위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구성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과연 평범한 대중의 하나에 불과한지, 아니면 범죄를 행할 권리를 가진, 즉 사회상규(社會常規)를 넘어설 권리를 가진 초인인지를 증명해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범인(凡人)이자 대중(大衆)이라면 사회적 도덕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이 비범한 초인이라면 양심의 가책은 가볍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비범한 초인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자신은 그러한 극소수의 초인인가, 아니면 복종하게 운명지어진 저 비겁한 범인(凡人)에 불과한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러한 의문의 끝에서 자신이 초인이라면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할 것”,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려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나 피도 불사”할 것을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살인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이 초인임을 밝히고자 한다. 즉 자신이 초인임을 증명할 길은 오직 행위를 통해서밖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빈틈없는 논리 구성을 통해 범죄론을 전개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여기서 결정적인 논리의 오류를 저지른다. 비범한 초인은 그가 초인이기 때문에 대중을 구속하는 도덕률을 초월할 수 있다. 이 명제를 참으로 가정할 때, 이를 뒤집은 반대 명제, 즉 도덕률을 초월한다는 사실이 곧 그러한 행위를 한 자가 비범한 초인이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반드시 참은 아니다. 그러므로 도덕률을 넘어서는 행위, 즉 범죄행위는 자신이 초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라스콜리니코프의 의문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으로 남게 된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초인임을 증명하려 했던 라스콜리니코프의 시도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것으로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성립불가능한 것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동생 두냐와의 대화에서도 살인을 죄로 인정하지 않으며 양심의 회의와 망설임을 비범한 자에 어울리지 않는 “우매하고 옹졸한 짓”이라 말하며 부정하려 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폭탄이나 정식 포위 공격에 의한 전쟁의 대량살상과 비교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주장에는 나폴레옹의 전쟁 행위에 대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비범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나폴레옹의 전쟁 행위 역시 결국 살인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범죄를 비범인의 행위로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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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니코프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고립감에 시달리다 어리고 무지하지만 경건한 마음을 가진 매춘부 소냐에게 괴로움을 털어놓으러 찾아간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녀의 감화로 자수를 결심하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살인을 진정으로 죄로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비범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자 입법자로서 사회적 규범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사회의 불합리한 현상을 개조하기 위해 사회악의 일부를 과감히 제거한 것이라 주장한다.
여동생 두냐도 오빠의 살인 행위에 관해 알게 되고 그를 염려하여 찾아오는데, 라스콜니코프는 여동생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행동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논리로서만 합리화하며 다수의 이익을 위해 행한 살인이 죄가 아니며 그의 실패는 범죄를 행할 권리가 있는 재능있는 비범인으로서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 것에 있었을 뿐이라 강변한다.
고전본문
“난 그 무렵 노상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지, 난 왜 이다지도 못났을까? 다른 자들이 못난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면서, 나 자신의 못난 점을 왜 고치려 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난 나중에 깨달았지, 소냐, 만약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되리라고… 또 이렇게도 느꼈어.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고. 인간은 변하지 않고 누구도 인간을 개조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위해서 힘을 허비할 것도 못된다고. 정말 그래요! 그게 인간의 법칙이란 거요… 법칙이야, 소냐!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인한 자는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라는 것을! 많은 일을 과감히 해치우는 자는 인간으로서는 올바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말이야!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올바른 자가 된다면, 그와 동시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인간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되는 거요! (중략) 권력이란 일부러, 아니오, 기를 쓰고 그것을 줍겠다고 덤비는 자만이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을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때 내 머리에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거요. 나 말고는 그 어떤 사람도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이! (중략) 왜? 오늘날까지 이와 같은 온갖 불합리한 현상을 보면서도 그 꼬리만이라도 붙잡아 내던져 버리려는 인간이 없었고, 현재도 없는가, 하는 생각이야! 그래서 난… 난 단호하게… 과감하게 실행하겠다고 결심했던 거요! 그 결과 그걸 죽여버리고 말았지!”
(중략)
“죄? 죄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더러운, 이(虱)같이 해로운 노파를,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그 노파를 죽인 것을 말하는 거니? 그게 죄일까? 가난한 사람들의 피만 빨아먹는 이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의 다른 죄도 용서받아 마땅한 거다. 그게 죄가 된단 말이냐? 그게 죄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런 걸 깨끗이 씻어내려고도 생각지 않는단 말이야! 그런데도 왜들 입을 모아 <죄! 죄!>하고 못살게 구는 거야!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옹졸하고 무능한 것에 싫증이 나서 그래서 자수하려는 거야! 그리고 그 포르피리의 말에 따르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야!,,,”
“오빠, 오빠, 오빠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오빠가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두냐는 절망해서 울부짖었다.
“누구나 모두 피를 흘리고 있어!” 그는 거의 광란 상태가 되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이 세상에서 폭포처럼 흘려왔고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피 말이냐? 샴페인처럼 흐르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주피터 신전에서 왕관을 얻어쓰고 그리하여 인류의 은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한 바로 그 피 말이냐? 너도 다시 한번,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란 말이다! 난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려고 했다. 그리고 몇 백 몇 천이나 되는 선행을 성취했을지도 모르는데, 난 이렇게 우매한 옹졸한 짓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냐, 우매하거나 옹졸했던 것이 아니야! 다만 좀 서툴렀다는 생각뿐이야, 난 아무래도 나의 그 행동이 우매하고 옹졸했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패하고 보면 무엇이건 우매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법이지. 난 이 우매하고 옹졸했던 행위로, 먼저 자립하고 제1보를 내디딜 자금을 얻으려 했던 거야. 그렇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을 이 세상에 가져다주게 되고, 동시에 모든 나의 죄는 속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난, 그 제1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견디지 못했다. 왜? 내가 우매하고 옹졸했기 때문이다. 난, 절대로, 너희들과 같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보지는 않겠다! 이것이 성공했더라면 영광은 나의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난 끝내 함정에 빠지고 말았어!”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그게 아녜요! 오빠, 오빠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아, 형식이 틀렸다는 거냐? 형식이라는 게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이구나! 난 정말 너의 말을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폭탄이나 정식 포위 공격으로 대량살상을 하는 것이 왜 훌륭한 형식이란 말이냐! 아름다운 형식이냐, 어떠냐 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력함을 드러내는 첫째 징후란 말이야!… 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것을 뚜렷하게 깨달았어! 그리고 지금처럼 뚜렷하게 내 죄가,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 난 여태까지 이 순간처럼 강인한 때도 없었고, 굳은 확신을 가져 본 적도 없었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중에서
토론하기
(1)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인한 자가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며 많은 일을 과감히 해치우고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올바른 자로서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고 인간 사회에서는 입법자가 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논리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입법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떤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2)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하려 가는 자신을 염려하는 동생 두냐와의 대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피만 빨아먹는 이와 같이 사회에 해만을 끼치는 노파를 죽인 것이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백해무익한 인간의 살인이 오히려 인류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고 몇 백 몇 천이나 되는 선행을 성취했을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먼저 자립하고 제1보를 내디딜 자금을 얻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을 이 세상에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3) 자신의 살인을 전쟁에서의 살상행위와 다만 형식적으로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에 대한 라스콜리니코프는 목적이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한 목적과 긍정적인 결과는 비윤리적인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해설읽기
소냐의 감화로 자수를 결심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스스로를 개조하지 못하므로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두뇌와 정신이 확고한 비범한 인간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보다 많은 일을 이루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비범한 인간은 인간을 지배하는 주권자이며 동시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인간 사회의 입법자가 된다.
대중을 지배하는 초인(超人)의 범죄행위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구성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과연 평범한 대중의 하나에 불과한지, 아니면 범죄를 행할 권리를 가진, 즉 사회상규(社會常規)를 넘어설 권리를 가진 초인인지를 증명해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범인(凡人)이자 대중(大衆)이라면 사회적 도덕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이 비범한 초인이라면 양심의 가책은 가볍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비범한 초인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자신은 그러한 극소수의 초인인가, 아니면 복종하게 운명지어진 저 비겁한 범인(凡人)에 불과한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러한 의문의 끝에서 자신이 초인이라면 “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현상을 파괴할 것”,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려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나 피도 불사”할 것을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살인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이 초인임을 밝히고자 한다. 즉 자신이 초인임을 증명할 길은 오직 행위를 통해서밖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빈틈없는 논리 구성을 통해 범죄론을 전개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여기서 결정적인 논리의 오류를 저지른다. 비범한 초인은 그가 초인이기 때문에 대중을 구속하는 도덕률을 초월할 수 있다. 이 명제를 참으로 가정할 때, 이를 뒤집은 반대 명제, 즉 도덕률을 초월한다는 사실이 곧 그러한 행위를 한 자가 비범한 초인이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반드시 참은 아니다. 그러므로 도덕률을 넘어서는 행위, 즉 범죄행위는 자신이 초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라스콜리니코프의 의문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으로 남게 된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초인임을 증명하려 했던 라스콜리니코프의 시도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것으로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성립불가능한 것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동생 두냐와의 대화에서도 살인을 죄로 인정하지 않으며 양심의 회의와 망설임을 비범한 자에 어울리지 않는 “우매하고 옹졸한 짓”이라 말하며 부정하려 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폭탄이나 정식 포위 공격에 의한 전쟁의 대량살상과 비교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주장에는 나폴레옹의 전쟁 행위에 대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비범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나폴레옹의 전쟁 행위 역시 결국 살인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범죄를 비범인의 행위로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키워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이, 개조, 권력, 대량 살상,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인한 자,많은 일을 과감히 해치우는 자,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자,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자, 보다 올바른 자, 불합리한 현상, 속죄, 용서, 이같이 해로운 노파, 인간의 법칙, 입법자, 죄, 주권자,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