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원자 이론과 처음으로 만난 순간에서부터 양자역학을 개척한 과정까지 깊이있게 그려낸다. 철학적 깨달음에까지 도달한 그는 이후 언어, 칸트 철학, 정치 등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생물학과 화학과 물리학의 관계, 통일장 이론 등에 이르기까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책의 마지막 절인 20.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에서는 현대 과학 최고의 성취인 소립자 이론과 인류의 근본 사유인 플라톤 철학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치열하게 묘사해낸다. ‘고전 본문’은 바로 이 대목의 마지막 세 단락이다. 부분과 전체를 마무리짓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고전본문
멀리 떨어져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 엘리자베트가 끼여들었다. “아니, 당신들은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당신들이 논하고 있는 그와 같은 커다란 연관성 따위의 문제에 관심이나 있는 줄 아세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은 대부분 개개의 작은 문제에 쏠려 있지. 커다란 연관성 같은 것은 거의 거론해서는 안되는 터부가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던데요. 사람들이 바로 다음의 일식과 월식을 원(圓)과 주전원(周轉圓)의 중첩으로 계산해내는 데만 만족해 버리고, 아리스타르쿠스의 태양 중심의 행성계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저 옛날과 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당신들이 말하는 커다란 연관성에 관한 일반적인 물음에 대하여 사람들이 흥미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비판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반론을 폈다.
“개개의 작은 일에 대한 관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것이죠. 그 까닭은 우리는 바로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예요. 당신도 보어가 항상 즐겨 인용한 구절, 즉 ‘충실한 곳에 바로 명석이 따른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 그 터부라는 것도 나는 그렇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터부라는 것은 사람이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수다와 조롱에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까 말이오. 옛부터 터부의 논거로서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소.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고 오로지 현인에게만 말하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조롱할 테니까.” 그러니까 터부에 대해서 저항해서는 안 되오. 항상 세상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끝까지 성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커다란 연 관성을 깊이 생각하려는 몇몇이 꼭 있게 마련이오. 그때는 그 수의 다소가 문제되지 않소.
(.,)
플라톤의 철학을 명상해본 사람은 세계가 어떠한 상(像)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대화 묘사도 최근에 내가 뮌헨에서 보낸 세월의 상징으로 나의 마음에 각인되었던 상에 의하여 완결되어야 할 것이다. (…) 폰 홀스트는 비올라를 갖고 우리 두 아이들 사이에 앉아서 베토벤이 청년 시절에 작곡한 세레나데 D 장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곡은 생명력과 환희에 넘쳐 있었으며, 중심적 질서를 향한 신뢰가 무기력과 피로감을 완전히 물리쳐주고 있었다. 그 곡을 경청하는 동안 내 전신에는 보어가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인 동시에 공연자”라고 말한 것처럼, 인류의 시간이라는 척도에서 본다면 우리들 자신의 협력은 매우 짧다고 할지 모르나 생활도 음악도 학문도 끊임없이 전진하리라는 확신이 점점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부분과 전체』 본문의 마지막 부분
토론하기
(1) 2차 대전 이후에도 오늘날처럼 작고 부분적인 데 관심이 몰리고 커다란 연관성에 대해서는 터부시했다는 대목이 재미있는데요, 저자는 이런 면모를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커다란 전체에 대한 관심이 적은 현대인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볼 수 있을까요?
(2) 음악은 개인의 깊숙한 속까지 파고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연주나 감상을 통해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훌륭한 활동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음악이란 어떤 것인지, 나의 체험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3) 나에게 세계의 상은 어떠한 모습인지 말해주세요. 혹시 주변과는 달리 내게 유독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가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주세요.
해설읽기
물리학은 정신과학과 달리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탐구에 집중하는 자연과학이다. 그런데 그것이 원자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원자 이하의 레벨인 양자역학의 단계에 이르자 새로운 차원이 발견되었다. 그 초미시 세계에서는 관찰과 객관적 사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실험 장치를 설계하면 자연은 스스로 입자임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전개하면 자연은 스스로 파동임을 보여주었다. 관찰자이자 실험자인 인간이 객관적이라 믿어져 온 자연 자체와 분리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해낸 양자역학의 핵심 창시자인 하이젠베르크는 책의 마무리를 부분 탐구인 자연과학과 보편적이고 전체를 지향하는 인간 정신의 관계를 논한다.
그는 우선 커다란 연관성에 과히 관심이 없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경계한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충실하게 아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커다란 연관성은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그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거기에 끝까지 성실하려는 젊은이들은 꼭 있게 마련이라는 신뢰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부분을 배척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세계의 속살로 소중하게 포섭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각인된 전체의 상을 음악을 통해 제시한다. 이 전체상에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는 자신의 두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은 인류가 이런 협력을 통해 계속 전진하리라는 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키워드
명상, 상(像), 커다란 연관성, 터부, 플라톤
전후맥락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원자 이론과 처음으로 만난 순간에서부터 양자역학을 개척한 과정까지 깊이있게 그려낸다. 철학적 깨달음에까지 도달한 그는 이후 언어, 칸트 철학, 정치 등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생물학과 화학과 물리학의 관계, 통일장 이론 등에 이르기까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책의 마지막 절인 20.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에서는 현대 과학 최고의 성취인 소립자 이론과 인류의 근본 사유인 플라톤 철학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치열하게 묘사해낸다. ‘고전 본문’은 바로 이 대목의 마지막 세 단락이다. 부분과 전체를 마무리짓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고전본문
멀리 떨어져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 엘리자베트가 끼여들었다. “아니, 당신들은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당신들이 논하고 있는 그와 같은 커다란 연관성 따위의 문제에 관심이나 있는 줄 아세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은 대부분 개개의 작은 문제에 쏠려 있지. 커다란 연관성 같은 것은 거의 거론해서는 안되는 터부가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던데요. 사람들이 바로 다음의 일식과 월식을 원(圓)과 주전원(周轉圓)의 중첩으로 계산해내는 데만 만족해 버리고, 아리스타르쿠스의 태양 중심의 행성계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저 옛날과 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당신들이 말하는 커다란 연관성에 관한 일반적인 물음에 대하여 사람들이 흥미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비판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반론을 폈다.
“개개의 작은 일에 대한 관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것이죠. 그 까닭은 우리는 바로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예요. 당신도 보어가 항상 즐겨 인용한 구절, 즉 ‘충실한 곳에 바로 명석이 따른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 그 터부라는 것도 나는 그렇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터부라는 것은 사람이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수다와 조롱에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까 말이오. 옛부터 터부의 논거로서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소.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고 오로지 현인에게만 말하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조롱할 테니까.” 그러니까 터부에 대해서 저항해서는 안 되오. 항상 세상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끝까지 성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커다란 연 관성을 깊이 생각하려는 몇몇이 꼭 있게 마련이오. 그때는 그 수의 다소가 문제되지 않소.
(.,)
플라톤의 철학을 명상해본 사람은 세계가 어떠한 상(像)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대화 묘사도 최근에 내가 뮌헨에서 보낸 세월의 상징으로 나의 마음에 각인되었던 상에 의하여 완결되어야 할 것이다. (…) 폰 홀스트는 비올라를 갖고 우리 두 아이들 사이에 앉아서 베토벤이 청년 시절에 작곡한 세레나데 D 장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곡은 생명력과 환희에 넘쳐 있었으며, 중심적 질서를 향한 신뢰가 무기력과 피로감을 완전히 물리쳐주고 있었다. 그 곡을 경청하는 동안 내 전신에는 보어가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인 동시에 공연자”라고 말한 것처럼, 인류의 시간이라는 척도에서 본다면 우리들 자신의 협력은 매우 짧다고 할지 모르나 생활도 음악도 학문도 끊임없이 전진하리라는 확신이 점점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부분과 전체』 본문의 마지막 부분
토론하기
(1) 2차 대전 이후에도 오늘날처럼 작고 부분적인 데 관심이 몰리고 커다란 연관성에 대해서는 터부시했다는 대목이 재미있는데요, 저자는 이런 면모를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커다란 전체에 대한 관심이 적은 현대인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볼 수 있을까요?
(2) 음악은 개인의 깊숙한 속까지 파고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연주나 감상을 통해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훌륭한 활동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음악이란 어떤 것인지, 나의 체험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3) 나에게 세계의 상은 어떠한 모습인지 말해주세요. 혹시 주변과는 달리 내게 유독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가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주세요.
해설읽기
물리학은 정신과학과 달리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탐구에 집중하는 자연과학이다. 그런데 그것이 원자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원자 이하의 레벨인 양자역학의 단계에 이르자 새로운 차원이 발견되었다. 그 초미시 세계에서는 관찰과 객관적 사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실험 장치를 설계하면 자연은 스스로 입자임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전개하면 자연은 스스로 파동임을 보여주었다. 관찰자이자 실험자인 인간이 객관적이라 믿어져 온 자연 자체와 분리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해낸 양자역학의 핵심 창시자인 하이젠베르크는 책의 마무리를 부분 탐구인 자연과학과 보편적이고 전체를 지향하는 인간 정신의 관계를 논한다.
그는 우선 커다란 연관성에 과히 관심이 없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경계한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충실하게 아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커다란 연관성은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그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거기에 끝까지 성실하려는 젊은이들은 꼭 있게 마련이라는 신뢰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부분을 배척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세계의 속살로 소중하게 포섭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각인된 전체의 상을 음악을 통해 제시한다. 이 전체상에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는 자신의 두 아이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은 인류가 이런 협력을 통해 계속 전진하리라는 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키워드
명상, 상(像), 커다란 연관성, 터부,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