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서양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17세기는 기계론의 시대였다. 정교한 기계의 발달로 인해 생물까지도 기계적인 원리(이게 mechanism(기계론)의 의미다)에 의해 점점 더 많이 설명할 수 있게 되리라 믿어졌다. 그렇지만 생물학 역시 발달하면서 19세기 즈음에는, 생명만은 기계론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없다는 유기체론이 다수가 되었다. 크게 보아 생기론과 물활론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1955년 DNA가 유전자이며 이는 이중나선 구조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자크 모노는 진화사에서 ‘우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우연을 통해 어떻게 정교한 전체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지도 선명한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고전 본문’의 이 대목은 2장의 전반부로, 3장부터 현대 생물학의 이러한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직전 부분이다. 그는 우선 기계론만이 아니라, 생기론과 물활론 역시 시원적인 원리, 즉 비과학적인 원리를 미리 가정한다는 점에서 과학에 반한다고 비판한다. 3장부터의 내용이 매끄럽게 전개되기 위한 포장도로를 깔아놓은 것이다.
[고전본문]
자연선택설은 (…)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이론들 중 유일하게 ‘객관성의 공리’에 부합하는 이론이 된다. (…) 생명체의 이상스러움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그 밖의 모든 이론들은 이와 반대되는 가설을 취하고 있다. 명백하게 이 문제를 위해 제시된 이론이든 아니면 종교적 이데올로기들이나 거대한 철학적 체계들 속에서 이 문제와 관련될 수 있는 함축적인 생각들이든 마찬가지다. 이들 이론들은 어떤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먼저 있고, 이 원리에 의해 불변성이 안전하게 지켜지고 개체 발생이 유도되어 진화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즉, 이 모든 현상들은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발현되는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이번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해석들의 논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이들 해석들은 겉보기에는 서로 매우 다른 것들처럼 보이지만, 모두들 ‘객관성의 공리’를 저버린다는 데서 일치한다. (…) 나는 분석의 편의를 위해서, 이들 해석들을 그들이 끌어들이는 합목적적 원리의 본성과 이 원리가 미치는 범위를 기준으로 하여, 두 개의 큰 무리로 분류하려 한다. 물론 이런 분류는 자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 무리는 어떤 합목적적 원리가 명백하게 단지 생명계 내에서만, 즉 ‘살아있는 물체들’ 내에서만 작용한다고 인정하는 무리로 정의할 수있다. 내가 생기론적이라고 브르게 될 이들 이론들은 그러므로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을 둔다.
다른 한편, 두 번째 무리는 어떤 보편적인 합목적적 원리를 끌어들이는 무리다. 이 보편적 인원리는 생명계의 진화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진화 역시 이끈다. 이들에 따르면 생명계의 진화와 우주 전체의 진화 사이의 차이란 이 원리가 전자에게서보다 정확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뿐이다. 이 이론들은 우주 전체의 보편적인 진화는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을 향해 이뤄진다고 보며, 생명체들을 이러한 보편적 진화가 만들어 낸 가장 공들인 산물들로, 곧 가장 완성된 산물들로 생각한다.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바로 인간 (혹은 인간성)이다. 즉 이러한 보편적 진화가 인간에게 도달하게 된 것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최종적으로 도달하도록 그 방향이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물활론적’이라고 부를 이런 생각들은 많은 점에서 생기론적 이론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우연과 필연』 2장의 첫 절 「불변성과 합목적성 사이의 우선 관계」의 후반부
토론하기
(1) 자크 모노는 어떤 시원적인 원리를 포함하는 모든 사상과 과학을 ‘객관성의 공리’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과학에 반하는 것이라 판결합니다. 과연 모노의 비판은 현실적인 것일까요? 어떤 원리도 없이 진리 탐구가 출발할 수 있을까요?
(2) 생명계는 무생물계와는 다른 면모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물들을 창조되었다고 본다면 그건 현대 과학에 정반대되는 오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생물과 대조되는 생물의 특징을 어떻게 파악하면 좋을까요?
(3)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연법칙에 의해 모든 것이 규정된다면 생물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인간 개개인의 고유성이라는 말도 무의미하게 되지 않을까요?
해설읽기
자크 모노는 우선 ‘객관성의 공리’를 충족시켜야만 과학이 구축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공리는 과학이라면 미리 어떤 의도나 목적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도나 목적은 세계 어디에도, 또 우주 진화의 그 어느 시점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리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참인지 아닌지 영원히 입증될 수 없다. 다만, 이 공리는 17세기의 과학형명 이래로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의 발전을 인도해 왔다(이상의 내용은 우연과 필연의 p.38-39를 요약 발췌하였음).
자연선택설은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이론들 중 유일하게 ‘객관성의 공리’에 부합하는 이론이다. 반면 생명체의 이상스러움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그 밖의 모든 이론들은 어떤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먼저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은 이 원리에 따라, 이 원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해석들은 매우 다양하며 때로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하지만, ‘객관성의 공리’를 저버린다는 데서는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이런 비과학적 사조들은 크게 이 원리가 미치는 범위를 기준으로 양분될 수 있다. 생명에만 미친다고 보는 생기론, 이들은 시원적인 원리가 생물체에게만 한정되며, 생물체라면 어느 존재든 다 이 원리를 갖고 있다고 본다. 생물과 무생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두 번째는 물활론이다. 이는 시원적이고 합목적적인 원리를 세상 만물이 다 갖는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생명계의 진화와 우주 전체의 진화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이들은 우주 전체의 보편적인 진화가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을 향해 이뤄진다고 본다. 생명체들의 진화는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일종으로, 다만 복잡하고 정교한 진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바로 인간이다.
자크 모노가 전자를 비판하는 것은 생기론이 신비로운 생기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크게 놀랍진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자연법칙을 빅뱅 직후부터 일관되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현대의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들은 물활론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물활론 비판은 충격을 준다. 물론 ‘물활론’을 통상적인 의미와 달리, 자크 모노가 규정한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앞뒤 맥락]
서양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17세기는 기계론의 시대였다. 정교한 기계의 발달로 인해 생물까지도 기계적인 원리(이게 mechanism(기계론)의 의미다)에 의해 점점 더 많이 설명할 수 있게 되리라 믿어졌다. 그렇지만 생물학 역시 발달하면서 19세기 즈음에는, 생명만은 기계론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없다는 유기체론이 다수가 되었다. 크게 보아 생기론과 물활론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1955년 DNA가 유전자이며 이는 이중나선 구조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자크 모노는 진화사에서 ‘우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우연을 통해 어떻게 정교한 전체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지도 선명한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고전 본문’의 이 대목은 2장의 전반부로, 3장부터 현대 생물학의 이러한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직전 부분이다. 그는 우선 기계론만이 아니라, 생기론과 물활론 역시 시원적인 원리, 즉 비과학적인 원리를 미리 가정한다는 점에서 과학에 반한다고 비판한다. 3장부터의 내용이 매끄럽게 전개되기 위한 포장도로를 깔아놓은 것이다.
[고전본문]
자연선택설은 (…)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이론들 중 유일하게 ‘객관성의 공리’에 부합하는 이론이 된다. (…) 생명체의 이상스러움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그 밖의 모든 이론들은 이와 반대되는 가설을 취하고 있다. 명백하게 이 문제를 위해 제시된 이론이든 아니면 종교적 이데올로기들이나 거대한 철학적 체계들 속에서 이 문제와 관련될 수 있는 함축적인 생각들이든 마찬가지다. 이들 이론들은 어떤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먼저 있고, 이 원리에 의해 불변성이 안전하게 지켜지고 개체 발생이 유도되어 진화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즉, 이 모든 현상들은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발현되는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이번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해석들의 논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이들 해석들은 겉보기에는 서로 매우 다른 것들처럼 보이지만, 모두들 ‘객관성의 공리’를 저버린다는 데서 일치한다. (…) 나는 분석의 편의를 위해서, 이들 해석들을 그들이 끌어들이는 합목적적 원리의 본성과 이 원리가 미치는 범위를 기준으로 하여, 두 개의 큰 무리로 분류하려 한다. 물론 이런 분류는 자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 무리는 어떤 합목적적 원리가 명백하게 단지 생명계 내에서만, 즉 ‘살아있는 물체들’ 내에서만 작용한다고 인정하는 무리로 정의할 수있다. 내가 생기론적이라고 브르게 될 이들 이론들은 그러므로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을 둔다.
다른 한편, 두 번째 무리는 어떤 보편적인 합목적적 원리를 끌어들이는 무리다. 이 보편적 인원리는 생명계의 진화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진화 역시 이끈다. 이들에 따르면 생명계의 진화와 우주 전체의 진화 사이의 차이란 이 원리가 전자에게서보다 정확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뿐이다. 이 이론들은 우주 전체의 보편적인 진화는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을 향해 이뤄진다고 보며, 생명체들을 이러한 보편적 진화가 만들어 낸 가장 공들인 산물들로, 곧 가장 완성된 산물들로 생각한다.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바로 인간 (혹은 인간성)이다. 즉 이러한 보편적 진화가 인간에게 도달하게 된 것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최종적으로 도달하도록 그 방향이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앞으로 ‘물활론적’이라고 부를 이런 생각들은 많은 점에서 생기론적 이론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우연과 필연』 2장의 첫 절 「불변성과 합목적성 사이의 우선 관계」의 후반부
토론하기
(1) 자크 모노는 어떤 시원적인 원리를 포함하는 모든 사상과 과학을 ‘객관성의 공리’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과학에 반하는 것이라 판결합니다. 과연 모노의 비판은 현실적인 것일까요? 어떤 원리도 없이 진리 탐구가 출발할 수 있을까요?
(2) 생명계는 무생물계와는 다른 면모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물들을 창조되었다고 본다면 그건 현대 과학에 정반대되는 오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생물과 대조되는 생물의 특징을 어떻게 파악하면 좋을까요?
(3) 인간이라고 해서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연법칙에 의해 모든 것이 규정된다면 생물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인간 개개인의 고유성이라는 말도 무의미하게 되지 않을까요?
해설읽기
자크 모노는 우선 ‘객관성의 공리’를 충족시켜야만 과학이 구축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공리는 과학이라면 미리 어떤 의도나 목적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도나 목적은 세계 어디에도, 또 우주 진화의 그 어느 시점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리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참인지 아닌지 영원히 입증될 수 없다. 다만, 이 공리는 17세기의 과학형명 이래로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의 발전을 인도해 왔다(이상의 내용은 우연과 필연의 p.38-39를 요약 발췌하였음).
자연선택설은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이론들 중 유일하게 ‘객관성의 공리’에 부합하는 이론이다. 반면 생명체의 이상스러움을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그 밖의 모든 이론들은 어떤 시원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먼저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은 이 원리에 따라, 이 원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해석들은 매우 다양하며 때로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하지만, ‘객관성의 공리’를 저버린다는 데서는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이런 비과학적 사조들은 크게 이 원리가 미치는 범위를 기준으로 양분될 수 있다. 생명에만 미친다고 보는 생기론, 이들은 시원적인 원리가 생물체에게만 한정되며, 생물체라면 어느 존재든 다 이 원리를 갖고 있다고 본다. 생물과 무생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두 번째는 물활론이다. 이는 시원적이고 합목적적인 원리를 세상 만물이 다 갖는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생명계의 진화와 우주 전체의 진화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이들은 우주 전체의 보편적인 진화가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을 향해 이뤄진다고 본다. 생명체들의 진화는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일종으로, 다만 복잡하고 정교한 진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진화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바로 인간이다.
자크 모노가 전자를 비판하는 것은 생기론이 신비로운 생기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크게 놀랍진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자연법칙을 빅뱅 직후부터 일관되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현대의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들은 물활론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물활론 비판은 충격을 준다. 물론 ‘물활론’을 통상적인 의미와 달리, 자크 모노가 규정한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