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네흘류도프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 마슬로바를 따라 죄수들의 호송 여정을 같이 하게 된다. 그는 여정 중에 무더운 날씨에 발목에 족쇄를 차고 걸어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서 행군을 강행하던 행렬에서 죄수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는 것을 목격한다. 죄수들은 걷다 쓰러져도 환자에게 취해야 할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 그러나 호송장교나 순경 등 책임자들은 죄수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일정대로 호송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네흘류도프는 이러한 비인도적인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행군 이후 죄수들이 올라탄 호송 열차의 환경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에 죄수들은 빈틈없이 들어차 있어 뜨거운 열기에 숨쉬기조차 곤란하다. 열차에는 산기(産氣)가 있는 여죄수가 있음에도 호송 장교는 전혀 배려가 없다.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의 호송을 담당하는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관련된 이들은 오직 이 다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죄수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는 염두에 두지 않는 것에 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고전본문
‘이런 일은 모두,’ 네흘류도프는 다시 생각을 되풀이했다. ‘지사라든가 교도소장, 파출소장, 순경 등이 인간을 대할 때 진실로 인간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중략> 모두 만일 지사라든가 교도소장, 장교가 아니었더라면 이같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지 심사숙고했을 것이며, 호송 중 숨이 찬다든가 더위에 못 견디는 사람들이 생기면 행진을 멈추고 잠시 나무 그늘로 가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불행이 발생했다면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아예 그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에 슬픔을 표하는 것까지 막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중략>
‘그렇다. 교도소장이나 호송 장교들, 그 외 모든 근무자들 대부분이 선량하고 착한 인간임에도 단지 공직에 있다는 이유로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자기가 관직에 몸을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순수한 동정도 품지 않은 몰인정한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관리인 그들은 돌 땅에 비가 스며들지 않듯 인간애가 도무지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온갖 돌로 다져진 가파른 비탈 위에 빗물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이런 철로의 축대는 다져져야 하겠지만, 식물을 키울 수 없는 능력을 잃은 이 흙을 보기란 슬픈 일이다. 이 흙도 축대 위에 있는 흙들처럼 곡식과 풀, 떨기 나무와 수목들이 자라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도 이와 다름 없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지사나 교도소장이나 순경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으로 생각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진리의 법칙을 법칙으로 인정치 않는 데 모든 문제가 있다. <중략> 그들은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식물의 생장력을 마비시키는 돌과 같이 연민의 감정이 조금도 없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바다. <중략> 이런 심리학상의 문제를 가정해 보자. 현대인들, 이를테면 기독교도라든가 자선가, 지극히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죄를 짓게 하려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즉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을 지사나 교도소장, 장교나 경관이 되게끔 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국가의 공무를 수행할 때는 사람들을 인간적인 면에서 형제로 대하거나 인간적인 취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 같은 단서가 붙지 않고는 오늘 내가 눈으로 본 것과 같은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사랑 없이도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 있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있을 수가 없다. 여기에 모든 문젯거리가 있다. 물론 물건이라면 사랑 없이도 다룰 수 있다. 사랑 없이도 나무를 벤다거나 벽돌을 굽는다거나 쇠를 달군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애정 없이 다룰 수가 있을까? 아무런 세심한 주의 없이 꿀벌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벌의 특성상 세심한 보살핌 없이 꿀벌을 다룬다면 키우지도 못하고 손해를 입게 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건 인간 상호 간의 애정이야말로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근본 법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랑 없이 사람들과 사귀어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타인에게 무언가 요구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네흘류도프는 그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그 외 자기 맘에 드는 물건을 상대하는 게 낫다.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용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어제 매형과의 경우처럼 사랑의 감정 없이 타인을 대한다면 늘 내 눈으로 목격했듯이 타인에 대한 몰인정과 냉혹은 한이 없어지고 내가 직접 겪었듯이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정말로.’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레프 톨스토이, [부활] 중에서
토론하기
(1) 네흘류도프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죄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러한 일이 이들의 호송을 담당하는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관련된 이들이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네흘류도프의 비판이 타당한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라.
(2) 네흘류도프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을 대할 때는 사랑과 동정의 태도가 필요하며 죄수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할 때는 단지 직무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수형 제도와 관련된 이들이 자신의 직무와 인간적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적 의무를 우선시하였다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의 책임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관해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네흘류도프는 수용소로 가는 여정 중에 일사병으로 죽는 죄수들을 목격하고 이러한 불행한 일의 원인이 호송을 맡은 이들이 혹서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이동을 강행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교도소장이나 호송관리 등 관련자들은 죄수들이 병이 나거나 임신 등으로 인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죄수들의 안전이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처럼 그들을 수용소까지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한다. 네흘류도프는 이들의 잔인성이 이들이 죄수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죄수들에 관하여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병자나 임신부 등에게 전혀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 죄수들이라 하여 안전과 생명을 위한 조치를 받을 권리가 없는가? 죄수들은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하여 가는 길이고 만약 이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과 관련 없는 안전과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는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네흘류도프의 비판은 죄수들이 치러야 하는 죄의 대가와 상관없이 이들의 안전과 생명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인권에 대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동정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네흘류도프의 생각은 교도소장이나 호송관리 등 관련자들의 직무에 관한 개념을 새로이 해야 할 필요를 인식케 한다. 과연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존중은 죄수들을 다루는 관련자들의 직무나 업무를 벗어난 것인가?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하기 위해서 인간 상호 간의 애정, 동정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오히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인간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관련자들의 직무 자체에 포함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네흘류도프의 생각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보육시설과 요양시설에서의 아동과 노인에 대한 학대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송 중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보육시설 및 요양시설에서의 사건사고는 아이나 노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다. 그러므로 보육교사나 요양기관종사자의 직무는 단순히 아이나 노인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넘어서 인권에 대한 존중까지 확대된다. 인간에 대한 동정과 사랑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다루고 인간을 대하는 모든 직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직무 자체에 포함된 것임을 네흘류도프의 비판을 통해 다시금 인식할수 있다.
키워드
경관, 공무, 공직, 교도소장, 냉혹, 동정, 몰인정, 사랑, 연민, 의무, 인간, 인간애, 인간에 한 의무, 장교, 직무, 타인
전후맥락
네흘류도프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 마슬로바를 따라 죄수들의 호송 여정을 같이 하게 된다. 그는 여정 중에 무더운 날씨에 발목에 족쇄를 차고 걸어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서 행군을 강행하던 행렬에서 죄수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는 것을 목격한다. 죄수들은 걷다 쓰러져도 환자에게 취해야 할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 그러나 호송장교나 순경 등 책임자들은 죄수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일정대로 호송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네흘류도프는 이러한 비인도적인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행군 이후 죄수들이 올라탄 호송 열차의 환경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에 죄수들은 빈틈없이 들어차 있어 뜨거운 열기에 숨쉬기조차 곤란하다. 열차에는 산기(産氣)가 있는 여죄수가 있음에도 호송 장교는 전혀 배려가 없다.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의 호송을 담당하는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관련된 이들은 오직 이 다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죄수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는 염두에 두지 않는 것에 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고전본문
‘이런 일은 모두,’ 네흘류도프는 다시 생각을 되풀이했다. ‘지사라든가 교도소장, 파출소장, 순경 등이 인간을 대할 때 진실로 인간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중략> 모두 만일 지사라든가 교도소장, 장교가 아니었더라면 이같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지 심사숙고했을 것이며, 호송 중 숨이 찬다든가 더위에 못 견디는 사람들이 생기면 행진을 멈추고 잠시 나무 그늘로 가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불행이 발생했다면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아예 그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에 슬픔을 표하는 것까지 막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중략>
‘그렇다. 교도소장이나 호송 장교들, 그 외 모든 근무자들 대부분이 선량하고 착한 인간임에도 단지 공직에 있다는 이유로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자기가 관직에 몸을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순수한 동정도 품지 않은 몰인정한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관리인 그들은 돌 땅에 비가 스며들지 않듯 인간애가 도무지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온갖 돌로 다져진 가파른 비탈 위에 빗물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이런 철로의 축대는 다져져야 하겠지만, 식물을 키울 수 없는 능력을 잃은 이 흙을 보기란 슬픈 일이다. 이 흙도 축대 위에 있는 흙들처럼 곡식과 풀, 떨기 나무와 수목들이 자라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도 이와 다름 없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지사나 교도소장이나 순경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으로 생각하고 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진리의 법칙을 법칙으로 인정치 않는 데 모든 문제가 있다. <중략> 그들은 인간에 대해 연민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식물의 생장력을 마비시키는 돌과 같이 연민의 감정이 조금도 없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바다. <중략> 이런 심리학상의 문제를 가정해 보자. 현대인들, 이를테면 기독교도라든가 자선가, 지극히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죄를 짓게 하려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즉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을 지사나 교도소장, 장교나 경관이 되게끔 해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국가의 공무를 수행할 때는 사람들을 인간적인 면에서 형제로 대하거나 인간적인 취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 같은 단서가 붙지 않고는 오늘 내가 눈으로 본 것과 같은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사랑 없이도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 있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있을 수가 없다. 여기에 모든 문젯거리가 있다. 물론 물건이라면 사랑 없이도 다룰 수 있다. 사랑 없이도 나무를 벤다거나 벽돌을 굽는다거나 쇠를 달군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애정 없이 다룰 수가 있을까? 아무런 세심한 주의 없이 꿀벌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벌의 특성상 세심한 보살핌 없이 꿀벌을 다룬다면 키우지도 못하고 손해를 입게 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건 인간 상호 간의 애정이야말로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근본 법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랑 없이 사람들과 사귀어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타인에게 무언가 요구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네흘류도프는 그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그 외 자기 맘에 드는 물건을 상대하는 게 낫다.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용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어제 매형과의 경우처럼 사랑의 감정 없이 타인을 대한다면 늘 내 눈으로 목격했듯이 타인에 대한 몰인정과 냉혹은 한이 없어지고 내가 직접 겪었듯이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정말로.’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레프 톨스토이, [부활] 중에서
토론하기
(1) 네흘류도프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죄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러한 일이 이들의 호송을 담당하는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관련된 이들이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네흘류도프의 비판이 타당한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라.
(2) 네흘류도프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을 대할 때는 사랑과 동정의 태도가 필요하며 죄수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할 때는 단지 직무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송장교, 순경, 교도소장, 의사 등 수형 제도와 관련된 이들이 자신의 직무와 인간적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적 의무를 우선시하였다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의 책임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관해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네흘류도프는 수용소로 가는 여정 중에 일사병으로 죽는 죄수들을 목격하고 이러한 불행한 일의 원인이 호송을 맡은 이들이 혹서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이동을 강행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교도소장이나 호송관리 등 관련자들은 죄수들이 병이 나거나 임신 등으로 인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죄수들의 안전이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처럼 그들을 수용소까지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한다. 네흘류도프는 이들의 잔인성이 이들이 죄수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죄수들에 관하여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병자나 임신부 등에게 전혀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 죄수들이라 하여 안전과 생명을 위한 조치를 받을 권리가 없는가? 죄수들은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하여 가는 길이고 만약 이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과 관련 없는 안전과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는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네흘류도프의 비판은 죄수들이 치러야 하는 죄의 대가와 상관없이 이들의 안전과 생명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인권에 대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동정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네흘류도프의 생각은 교도소장이나 호송관리 등 관련자들의 직무에 관한 개념을 새로이 해야 할 필요를 인식케 한다. 과연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존중은 죄수들을 다루는 관련자들의 직무나 업무를 벗어난 것인가?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하기 위해서 인간 상호 간의 애정, 동정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오히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인간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관련자들의 직무 자체에 포함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네흘류도프의 생각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보육시설과 요양시설에서의 아동과 노인에 대한 학대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죄수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송 중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보육시설 및 요양시설에서의 사건사고는 아이나 노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다. 그러므로 보육교사나 요양기관종사자의 직무는 단순히 아이나 노인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넘어서 인권에 대한 존중까지 확대된다. 인간에 대한 동정과 사랑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다루고 인간을 대하는 모든 직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직무 자체에 포함된 것임을 네흘류도프의 비판을 통해 다시금 인식할수 있다.
키워드
경관, 공무, 공직, 교도소장, 냉혹, 동정, 몰인정, 사랑, 연민, 의무, 인간, 인간애, 인간에 한 의무, 장교, 직무, 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