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는 맨 처음에 짧은 「서문」이 있고 이어서 전반부(I. 운동학 부분)와 후반부(II. 전기동역학 부분)로 전체가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먼저, 당시 전자기학의 확립자로 최고의 명예를 자랑하고 있던 맥스웰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던 것처럼, 맥스웰의 전기역학을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하면 이상한 비대칭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에는, 이 이상한 비대칭 문제를 강체들(좌표계)과 시계, 전자기적 과정 간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해결하겠노라 선언한다. 이어서 곧장 1부 「운동학 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첫 1절이 ‘동시성의 정의’이며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될 ‘고전 본문’이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논문으로서는 이례적이게도 ‘과연 동시라는 게 무엇인지’를 일상적인 용어에 가까운 언어로 진술하고 있다. ‘저 기차가 7시에 여기에 도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와 함께 편안하게 생각해 보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2절 「길이와 시간의 상대성에 관하여」로 이어지는데, 참고로 이후 1부의 다른 절들은 다음과 같다. 3절 「한 정지계로부터 그 계에 대해 균일한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계로 좌표와 시간을 변환시키는 것에 관한 이론」, 4절 「움직이는 강체와 움직이는 시계에 관해 얻은 방정식들의 물리적 의미」, 5절 「속도 부가의 정리」.
고전본문
I 운동학 부분
1. 동시성의 정의
뉴턴 역학의 방정식이 1차 근사까지 성립하는 좌표계를 생각해 보자. 표현을 정확히 하기 위해, 또 이 좌표계를 나중에 도입된 다른 좌표계들과 용어상으로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정지계라고 부르겠다.
만일 한 *질점이 이 좌표계에 대해 정지해 있다면, 그 질점의 위치는 측정용 표준 기구(예를 들면 자)와 유클리드 기하학의 방법을 사용해서 그 좌표계에 대해 정의될 수 있고, 직교 좌표로 표현될 수도 있다.
만약 질점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명확히 하지 않는 한, 이런 종류의 수학적 기술은 물리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관련되는 우리의 모든 판단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판단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저 기차는 일곱시에 이곳에 도착한다.’ 고 말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내 시계의 작은 바늘이 7을 가리키는 것과 기차가 도착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막상 ‘시간’을 정의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난점들이 발생하는데, 어찌 보면 그 난점들은 모두 ‘시간’ 대신 ‘내 시계의 작은 바늘의 위치’를 쓰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한 정의는, 시계가 놓인 장소에 대해서만 올바르다. 반면, 서로 떨어진 두 장소에서 잇따라(즉,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연관시키고자 할 때는 더 이상 옳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그 시계에서 떨어져 있던 몇몇 장소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의 시간을 측정하고자 할 때에는 방금 전의 정의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공간상의 점 A에 시계가 있다면, 점 A에 있는 관측자는 사건들과 동시에 시계 바늘의 위치를 읽음으로써 A 바로 근처에 있는 사건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공간상의 점 B에 또 다른 시계 – 덧붙인다면 ‘A에 있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특성을 가진 시계’ – 가 있다면 점 B에 있는 관측자가 B의 바로 이웃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말한 것 이상의 정의가 더 주어지지 않고서는, A점에서의 사건과 B점에서의 사건을 시간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A점에서의 시간’과 ‘B점에서의 시간’만을 정의했을 뿐,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후자의 시간은 이제 정의상 빛이 A에서 B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B에서 A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동일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 질점(質點) : 뉴턴 역학에서는 한 물체의 질량이 그 물체의 중심에 모두 몰려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질점이라 한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의 초반
토론하기
(1) 너무나도 유명한 과학 천재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에서, 초반부에 ‘7시에 도착하는 기차’가 등장하니 기분이 어떤가요? 우리도 과학 논문이나 책을 쓰면서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싶을 때 활용해 볼 수 있는 기법일 거 같아요. 당신은 맨 처음에 독자들을 어떤 상황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으신가요? 아인슈타인처럼 다소 서정적인 쪽, 아니면 전혀 다르게 웃긴 것? 각자 취향에 따라 이야기해보세요.
(2) 어떤 물체의 운동을 관측하고 이해하려 할 때,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측합니다. 이것이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는 말의 뜻인데요, 과연 물체의 위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위치의 변화만 가지고 물체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요?
(3)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문제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A장소의 시계와 B장소의 시계를 정확히만 맞추어 놓으면 문제가 잘 해결될 거 같아요. 자, 어떻게 하면 멀리 떨어진 두 장소의 시계를 똑같이,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인공위성이나 먼 우주 공간을 여행 중인 우주선에 실린 시계까지 포함해서 세상 모든 시계를 다 똑같이 맞추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어떤 방법을 쓰면 그럴 수 있을까요?
해설읽기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 중 초반 부분으로, 맨 처음의 짧은 서문에 1장이 곧장 이어지는데 그 1절이 바로 ‘동시성의 정의’다. 물리학 전문지에 실린 정식 물리학 논문인데, ‘저 기차가 7시에 여기에 도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에게 물으면서 ‘동시’, ‘동시성’, ‘시간’의 문제로 들어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운동학의 첫 부분에서 ‘동시’를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갈릴레오와 뉴턴 이후로 물리학은 그동안 매우 높은 수준의 운동학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정작 운동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못해오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물리학의 기본과 토대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매우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 때문이다. 운동이란 결국, 어떤 시점에 어느 위치에 있던 존재가 이후 다른 시점에 다른 위치로 옮겨지는 것이다. 한데 만일 이를 측정하는 시계가 측정 주체나 측정 대상의 운동 상태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이런 황당무계해 보이는 질문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도발한다. 이 논문에는 아무래도 물리학 논문이다 보니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두 가지에 대해서는 꼭 알아두자.
첫째, 좌표계와 정지계.
어떤 존재가 운동하고 그 존재의 운동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런 운동과 관측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를 좌표계라 한다. 물체가 운동하는 장소와 관측자가 관측하는 장소가 다를 경우에는 좌표계가 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관측하는 계나 운동하는 계가 계속 움직이고 흔들리면 정확한 관측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는 정지한 것으로 상정할 수가 있다. 이를 정지계라 한다.
둘째, 질점.
뉴턴 역학에서는 한 물체의 질량이 그 물체의 중심점에 모두 몰려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질점(質點)이라 부른다. 질량들이 모두 집약되어 있는 점이라는 뜻이다. 왜 질점이라는 걸 상정할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력이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할 때 애매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뉴턴 역학에서 말하는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는, 두 물체의 질량이 각각 모두 집약되어 있는 질점 간의 거리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어서 물체의 운동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치가 얼마나 변하느냐를 따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질점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는 문장의 의미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란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때 시계가 가리켜 보이는 시간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일과 시계가 몇시 몇분을 가리키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이는 매우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가령 A라는 장소에서 어떤 사건(A사건)이 있어났을 때, 그와 동시에 그 바로 근처에 있던 시계가 가령 7시를 가리켰을 경우, A사건은 7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관측자가 A에 있는데 사건이 A로부터 좀 떨어져 있는 B라는 장소에서 일어났다면? 그럴 경우 당신이 A장소에서 보니 B사건과 A장소에 있는 시계가 7시를 가리킨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B사건은 7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이를 앞의 사건과 합쳐서 A사건과 B사건은 모두 7시에, 즉 동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26세의 청년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의 1절 중후반부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지금까지는 ‘A점에서의 시간’과 ‘B점에서의 시간’만을 정의했을 뿐,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만일 이 시간을 정의하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또는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 즉 “후자의 시간은 이제 정의상 빛이 A에서 B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B에서 A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동일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 과정을 거치면서 아인슈타인은 ‘동시성’과 ‘시간’을 명확히 정의하였고, 그 열쇠는 바로 서양 사람들이 진리의 다른 이름으로 믿는 빛이었다. 이로써 자연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키워드
관측자, 뉴턴 역학, 동시, 시간, 정지계, 좌표계, 질점
전후맥락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는 맨 처음에 짧은 「서문」이 있고 이어서 전반부(I. 운동학 부분)와 후반부(II. 전기동역학 부분)로 전체가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먼저, 당시 전자기학의 확립자로 최고의 명예를 자랑하고 있던 맥스웰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던 것처럼, 맥스웰의 전기역학을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하면 이상한 비대칭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에는, 이 이상한 비대칭 문제를 강체들(좌표계)과 시계, 전자기적 과정 간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해결하겠노라 선언한다. 이어서 곧장 1부 「운동학 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첫 1절이 ‘동시성의 정의’이며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될 ‘고전 본문’이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논문으로서는 이례적이게도 ‘과연 동시라는 게 무엇인지’를 일상적인 용어에 가까운 언어로 진술하고 있다. ‘저 기차가 7시에 여기에 도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와 함께 편안하게 생각해 보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2절 「길이와 시간의 상대성에 관하여」로 이어지는데, 참고로 이후 1부의 다른 절들은 다음과 같다. 3절 「한 정지계로부터 그 계에 대해 균일한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계로 좌표와 시간을 변환시키는 것에 관한 이론」, 4절 「움직이는 강체와 움직이는 시계에 관해 얻은 방정식들의 물리적 의미」, 5절 「속도 부가의 정리」.
고전본문
I 운동학 부분
1. 동시성의 정의
뉴턴 역학의 방정식이 1차 근사까지 성립하는 좌표계를 생각해 보자. 표현을 정확히 하기 위해, 또 이 좌표계를 나중에 도입된 다른 좌표계들과 용어상으로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정지계라고 부르겠다.
만일 한 *질점이 이 좌표계에 대해 정지해 있다면, 그 질점의 위치는 측정용 표준 기구(예를 들면 자)와 유클리드 기하학의 방법을 사용해서 그 좌표계에 대해 정의될 수 있고, 직교 좌표로 표현될 수도 있다.
만약 질점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명확히 하지 않는 한, 이런 종류의 수학적 기술은 물리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관련되는 우리의 모든 판단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판단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저 기차는 일곱시에 이곳에 도착한다.’ 고 말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내 시계의 작은 바늘이 7을 가리키는 것과 기차가 도착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막상 ‘시간’을 정의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난점들이 발생하는데, 어찌 보면 그 난점들은 모두 ‘시간’ 대신 ‘내 시계의 작은 바늘의 위치’를 쓰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한 정의는, 시계가 놓인 장소에 대해서만 올바르다. 반면, 서로 떨어진 두 장소에서 잇따라(즉,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연관시키고자 할 때는 더 이상 옳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그 시계에서 떨어져 있던 몇몇 장소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의 시간을 측정하고자 할 때에는 방금 전의 정의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공간상의 점 A에 시계가 있다면, 점 A에 있는 관측자는 사건들과 동시에 시계 바늘의 위치를 읽음으로써 A 바로 근처에 있는 사건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공간상의 점 B에 또 다른 시계 – 덧붙인다면 ‘A에 있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특성을 가진 시계’ – 가 있다면 점 B에 있는 관측자가 B의 바로 이웃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말한 것 이상의 정의가 더 주어지지 않고서는, A점에서의 사건과 B점에서의 사건을 시간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A점에서의 시간’과 ‘B점에서의 시간’만을 정의했을 뿐,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후자의 시간은 이제 정의상 빛이 A에서 B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B에서 A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동일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 질점(質點) : 뉴턴 역학에서는 한 물체의 질량이 그 물체의 중심에 모두 몰려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질점이라 한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의 초반
토론하기
(1) 너무나도 유명한 과학 천재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에서, 초반부에 ‘7시에 도착하는 기차’가 등장하니 기분이 어떤가요? 우리도 과학 논문이나 책을 쓰면서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싶을 때 활용해 볼 수 있는 기법일 거 같아요. 당신은 맨 처음에 독자들을 어떤 상황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으신가요? 아인슈타인처럼 다소 서정적인 쪽, 아니면 전혀 다르게 웃긴 것? 각자 취향에 따라 이야기해보세요.
(2) 어떤 물체의 운동을 관측하고 이해하려 할 때,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측합니다. 이것이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는 말의 뜻인데요, 과연 물체의 위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위치의 변화만 가지고 물체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요?
(3)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문제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A장소의 시계와 B장소의 시계를 정확히만 맞추어 놓으면 문제가 잘 해결될 거 같아요. 자, 어떻게 하면 멀리 떨어진 두 장소의 시계를 똑같이,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인공위성이나 먼 우주 공간을 여행 중인 우주선에 실린 시계까지 포함해서 세상 모든 시계를 다 똑같이 맞추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어떤 방법을 쓰면 그럴 수 있을까요?
해설읽기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 중 초반 부분으로, 맨 처음의 짧은 서문에 1장이 곧장 이어지는데 그 1절이 바로 ‘동시성의 정의’다. 물리학 전문지에 실린 정식 물리학 논문인데, ‘저 기차가 7시에 여기에 도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에게 물으면서 ‘동시’, ‘동시성’, ‘시간’의 문제로 들어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운동학의 첫 부분에서 ‘동시’를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갈릴레오와 뉴턴 이후로 물리학은 그동안 매우 높은 수준의 운동학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정작 운동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못해오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물리학의 기본과 토대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매우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 때문이다. 운동이란 결국, 어떤 시점에 어느 위치에 있던 존재가 이후 다른 시점에 다른 위치로 옮겨지는 것이다. 한데 만일 이를 측정하는 시계가 측정 주체나 측정 대상의 운동 상태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이런 황당무계해 보이는 질문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도발한다. 이 논문에는 아무래도 물리학 논문이다 보니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두 가지에 대해서는 꼭 알아두자.
첫째, 좌표계와 정지계.
어떤 존재가 운동하고 그 존재의 운동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런 운동과 관측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를 좌표계라 한다. 물체가 운동하는 장소와 관측자가 관측하는 장소가 다를 경우에는 좌표계가 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관측하는 계나 운동하는 계가 계속 움직이고 흔들리면 정확한 관측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는 정지한 것으로 상정할 수가 있다. 이를 정지계라 한다.
둘째, 질점.
뉴턴 역학에서는 한 물체의 질량이 그 물체의 중심점에 모두 몰려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질점(質點)이라 부른다. 질량들이 모두 집약되어 있는 점이라는 뜻이다. 왜 질점이라는 걸 상정할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력이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할 때 애매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뉴턴 역학에서 말하는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는, 두 물체의 질량이 각각 모두 집약되어 있는 질점 간의 거리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어서 물체의 운동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치가 얼마나 변하느냐를 따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질점의 운동을 기술할 경우에는, 그 좌표의 값은 시간의 함수로 주어진다.”는 문장의 의미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란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때 시계가 가리켜 보이는 시간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일과 시계가 몇시 몇분을 가리키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이는 매우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가령 A라는 장소에서 어떤 사건(A사건)이 있어났을 때, 그와 동시에 그 바로 근처에 있던 시계가 가령 7시를 가리켰을 경우, A사건은 7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관측자가 A에 있는데 사건이 A로부터 좀 떨어져 있는 B라는 장소에서 일어났다면? 그럴 경우 당신이 A장소에서 보니 B사건과 A장소에 있는 시계가 7시를 가리킨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B사건은 7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이를 앞의 사건과 합쳐서 A사건과 B사건은 모두 7시에, 즉 동시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26세의 청년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의 1절 중후반부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지금까지는 ‘A점에서의 시간’과 ‘B점에서의 시간’만을 정의했을 뿐,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만일 이 시간을 정의하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또는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A와 B에 대해 동시에 통용되는 시간, 즉 “후자의 시간은 이제 정의상 빛이 A에서 B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B에서 A까지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동일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 과정을 거치면서 아인슈타인은 ‘동시성’과 ‘시간’을 명확히 정의하였고, 그 열쇠는 바로 서양 사람들이 진리의 다른 이름으로 믿는 빛이었다. 이로써 자연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키워드
관측자, 뉴턴 역학, 동시, 시간, 정지계, 좌표계, 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