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현대인들은 자연발생설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이고 황당무계한 설이라고 비웃는다. 대표적인 것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곤충이나 진드기는 이슬이나 흙탕물 구덩이, 쓰레기, 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새우나 장어는 흙탕물 구덩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역사 전체로 볼 때는 자연발생설쪽이 자연발생설을 반대하는 쪽보다 더 우세할 때가 많았다. 본문 초반에 나오는 반 헬몬트는 쥐가 자연발생한다는 실험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는 밀가루 낱알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서 항아리에 넣어 창고에 방치하면 쥐가 발생한다는 걸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실험과 주장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레디의 썩은 고기 실험이었다. 파스퇴르 당시의 상황은 더 만만치 않았는데, 현미경 기술 및 관찰 기법이 발전하면서 도리어 자연발생설이 우세해지는 기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을 황당무계하다고 곧장 거부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전체 9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한 권 쓰게 되었다. 그중 맨 첫장인 1장에서 양 진영 모두 치열한 실험을 했고, 양 진영 모두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는 걸 설명했다. 이를 통해 왜 논쟁이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는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펼치고 그는 1장의 종반부 이렇게 시사한다, 자신은 이 문제를 부패와 발효라는 관점에서 추적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고 최종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고전본문
자연발생설은 고대는 물론 중세 말기까지도 널리 신봉되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조를 시켜도 습해지는 것이나 습하게 해도 건조해지는 것은 모두 동물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하였다. 반 헬몬트(Van Helmont)는 쥐를 생겨나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17세기에도 여전히 늪지대의 진흙에서 개구리를 발생시키거나 강물에서 뱀장어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잘못된 학설은 16~17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탐구 정신에 밀려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우선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실험 학회)의 저명한 회원이었던 레디(Redi)는 썩은 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더기는 파리의 알에서 생긴 유충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가 내세운 증거는 간결하면서도 매우 결정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얇은 천으로 썩은 고기를 덮어두기만 하면 구더기(유충)의 발생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레디는 동물의 기생충에도 암수가 있고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훗날 레오뮈르가 서술한 것처럼, 사람들은 과일에다 알을 낳는 파리를 자주 목격함으로써 과일이 썩어서 구더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더기가 과일을 썩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현미경 관찰이 부쩍 늘어나면서 자연발생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통해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浸出液)에서 발견한 다종 다양한 생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이 생물들로부터 암수 생식과 유사한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전부터 생명을 가지고 있었던 물질은 사후에도 고유한 활력을 지니며, 적당한 조건만 갖춰지면 해체되고 있는 물질의 각 부분이 활력의 영향을 받아 이들 조건 자체에 의하여 규정되는 다양한 구조와 조직을 따라 새롭게 재결합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다른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통해 발견한 놀라운 성과들을 상상의 힘을 빌어 확대하고 이들 인푸소리아(적충류) 사이의 교배나 암수 및 알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며 자연발생설에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증거들은 양쪽 모두 전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
위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연구들보다 뒤늦게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이자 루앙(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 도시) 지역의 뛰어난 박물학자였던 푸세(당시 루앙 과학박물관장)는 그 자신이 자연발생설의 결정적인 근거로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실험 결과를 아카데미에 제출하였다(1858년). 그러나 이때 역시 누구 한 사람 그의 실험이 지닌 오류를 지적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 아카데미는 마땅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제목의 문제를 제출하면서 현상금을 걸었다. <주도면밀한 실험을 통해서 자연발생설을 규명해 볼 것>. (…)
그러니까 발효에 관한 연구와 관련하여 내가 처해 있었던 입장 때문에 나는 자연발생설에 대한 견해를 총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나는 발효 현상에 대한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유력한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보고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연구 결과는 발효에 관한 나의 연구로부터 필연적으로 파생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박물학자의 예지(叡智)의 시금석에 지나지 않았던 문제에 내가 전력을 기울이게 된 사정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자연발생설 비판] 1장중에서
토론하기
(1) 파스퇴르는 부패 또는 발효 현상의 전문가였고, 이 실력을 바탕으로 자연발생론을 공격했습니다. 부패 현상 중 우리 인간에게 유리한 것들을 발효라고 한다는데, 여러분은 어떤 발효 현상을 알고 있나요?
(2) 근대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했고 그에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주장들을 보면 황당해 보이는 것도 많은데,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주장을 확신했던 걸까요?
(3)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년)에서 지구상 생명체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분명히 밝혔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도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진화해 지금까지 다양하게 진화해왔다고 믿고 있지요. 하지만 20세기 초반 이래로, 우주로부터 날아온 포자(胞子)가 지구 생명의 기원이라는 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구요. 만일 이들의 말이 맞다면 자연발생설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반대자들이 맞는 걸까요?(참고로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겨우 2년 뒤인 1861년에 출판되었습니다).
해설읽기
걸레나 천 같은 것을 더러운 채 그냥 놔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악취가 풍기고 더 더러워진다. 그걸 더 오래 방치해두면 거기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온다. 인류는 이런 부류의 현상을 일상적으로 보아왔다. 자연발생설은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생겨난, 아주 오래된 믿음이다. 즉, 생물들은 특정한 조건만 잘 갖춰지면 물질로부터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벼룩은 먼지에서, 구더기는 썩은 고기나 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썼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들은 생물은 생물로부터만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양의 경우, 이 두 진영은 아득한 옛날부터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다투어왔다. 16, 17세기에 유럽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등, 새로운 분위기가 일면서 자연발생설이 밀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반전이 일어난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현미경과 관련된 기술과 관찰 기법이 부쩍 발전하면서 자연발생설이 다시 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과학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미신처럼 보이는 자연발생설이 금세 끝장났을 것도 같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왜 그럴까? 사실 자연발생설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창조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생명 탄생이 오직 신에 의한 영역일 뿐이기 때문에, 저 생명도 없는 물질로부터 그냥 생물이 탄생할리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질은 생명보다 미천한 것이라고도 믿었다. 하지만 더러운 걸레 같은 곳에서 이상한 벌레들이 생겨나는 일은 왜 생기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우리 눈에 안 보일 정도로 극히 작은 생물의 알이 있거나 미세동물들이 암수 생식을 하는 것이라고. 그랬던 그들은 현미경 기술이 발달하자 드디어 그런 알이나 미세동물들을 발견하게 될 거라 크게 기뻐했다. 그렇지만 현미경 관련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런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1675년에는 레벤후쿠에 의해 정반대의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고깃국물을 뜨겁게 가열해 그 국물속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생물체를 다 죽였다. 그리고 얼마뒤 거기서 미생물들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많은 사람들은 생물체가 전혀 없는 곳에서 생물들이 탄생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었다. 큰 동물이나 고등 동물들은 자연발생에 의해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극미한 동물, 식물, 균류 등은 자연 조건이 맞으면 저절로 탄생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복잡해지던 상황 속에서 파스퇴르가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1861). 그리고 이로 인해 자연발생설 반대파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파스퇴르 이전까지 양 진영은 치열하게 실험과 논쟁으로 맞섰지만, 그들의 실험 결과는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또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부패와 발효 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고, 그 바탕 위에서 결정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은 자연발생설 비판의 1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이 논쟁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결코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연발생설 진영에서도 상당히 치밀한 실험 근거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책의 제 1장에서 양 진영 모두 치밀했지만 동시에 모두 약점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끝으로, 본문에 나오는 낯선 용어 몇 가지를 이해해두자. 첫째,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浸出液)은, 동물이나 식물의 체내에 있던 성분이 체외로 흘러나온 액체를 가리킨다. 둘째, 인푸소리아(infusoria)는 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대단히 미세한 동물이다. ‘적충류(滴蟲流)’라고도 하는데 물방울처럼 생긴 벌레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흔히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에서 발견되었다. 셋째, 박물학자는 과학이 오늘날처럼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되기 전에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을 두루 연구한 자연과학자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키워드
자연 발생설, 아리스토텔레스, 탐구 정신, 현미경 관찰, 생물의 기원, 암수 생식, 발효, 박물학자
전후맥락
현대인들은 자연발생설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이고 황당무계한 설이라고 비웃는다. 대표적인 것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곤충이나 진드기는 이슬이나 흙탕물 구덩이, 쓰레기, 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새우나 장어는 흙탕물 구덩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역사 전체로 볼 때는 자연발생설쪽이 자연발생설을 반대하는 쪽보다 더 우세할 때가 많았다. 본문 초반에 나오는 반 헬몬트는 쥐가 자연발생한다는 실험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는 밀가루 낱알과 땀으로 더러워진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서 항아리에 넣어 창고에 방치하면 쥐가 발생한다는 걸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실험과 주장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레디의 썩은 고기 실험이었다. 파스퇴르 당시의 상황은 더 만만치 않았는데, 현미경 기술 및 관찰 기법이 발전하면서 도리어 자연발생설이 우세해지는 기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을 황당무계하다고 곧장 거부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전체 9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한 권 쓰게 되었다. 그중 맨 첫장인 1장에서 양 진영 모두 치열한 실험을 했고, 양 진영 모두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는 걸 설명했다. 이를 통해 왜 논쟁이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는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펼치고 그는 1장의 종반부 이렇게 시사한다, 자신은 이 문제를 부패와 발효라는 관점에서 추적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고 최종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고전본문
자연발생설은 고대는 물론 중세 말기까지도 널리 신봉되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조를 시켜도 습해지는 것이나 습하게 해도 건조해지는 것은 모두 동물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하였다. 반 헬몬트(Van Helmont)는 쥐를 생겨나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17세기에도 여전히 늪지대의 진흙에서 개구리를 발생시키거나 강물에서 뱀장어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잘못된 학설은 16~17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탐구 정신에 밀려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우선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실험 학회)의 저명한 회원이었던 레디(Redi)는 썩은 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더기는 파리의 알에서 생긴 유충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가 내세운 증거는 간결하면서도 매우 결정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얇은 천으로 썩은 고기를 덮어두기만 하면 구더기(유충)의 발생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레디는 동물의 기생충에도 암수가 있고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훗날 레오뮈르가 서술한 것처럼, 사람들은 과일에다 알을 낳는 파리를 자주 목격함으로써 과일이 썩어서 구더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더기가 과일을 썩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현미경 관찰이 부쩍 늘어나면서 자연발생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통해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浸出液)에서 발견한 다종 다양한 생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이 생물들로부터 암수 생식과 유사한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전부터 생명을 가지고 있었던 물질은 사후에도 고유한 활력을 지니며, 적당한 조건만 갖춰지면 해체되고 있는 물질의 각 부분이 활력의 영향을 받아 이들 조건 자체에 의하여 규정되는 다양한 구조와 조직을 따라 새롭게 재결합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다른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통해 발견한 놀라운 성과들을 상상의 힘을 빌어 확대하고 이들 인푸소리아(적충류) 사이의 교배나 암수 및 알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며 자연발생설에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증거들은 양쪽 모두 전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
위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연구들보다 뒤늦게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이자 루앙(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 도시) 지역의 뛰어난 박물학자였던 푸세(당시 루앙 과학박물관장)는 그 자신이 자연발생설의 결정적인 근거로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실험 결과를 아카데미에 제출하였다(1858년). 그러나 이때 역시 누구 한 사람 그의 실험이 지닌 오류를 지적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 아카데미는 마땅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제목의 문제를 제출하면서 현상금을 걸었다. <주도면밀한 실험을 통해서 자연발생설을 규명해 볼 것>. (…)
그러니까 발효에 관한 연구와 관련하여 내가 처해 있었던 입장 때문에 나는 자연발생설에 대한 견해를 총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나는 발효 현상에 대한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유력한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보고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연구 결과는 발효에 관한 나의 연구로부터 필연적으로 파생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박물학자의 예지(叡智)의 시금석에 지나지 않았던 문제에 내가 전력을 기울이게 된 사정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자연발생설 비판] 1장중에서
토론하기
(1) 파스퇴르는 부패 또는 발효 현상의 전문가였고, 이 실력을 바탕으로 자연발생론을 공격했습니다. 부패 현상 중 우리 인간에게 유리한 것들을 발효라고 한다는데, 여러분은 어떤 발효 현상을 알고 있나요?
(2) 근대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했고 그에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주장들을 보면 황당해 보이는 것도 많은데,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주장을 확신했던 걸까요?
(3)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년)에서 지구상 생명체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분명히 밝혔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도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진화해 지금까지 다양하게 진화해왔다고 믿고 있지요. 하지만 20세기 초반 이래로, 우주로부터 날아온 포자(胞子)가 지구 생명의 기원이라는 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구요. 만일 이들의 말이 맞다면 자연발생설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반대자들이 맞는 걸까요?(참고로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겨우 2년 뒤인 1861년에 출판되었습니다).
해설읽기
걸레나 천 같은 것을 더러운 채 그냥 놔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악취가 풍기고 더 더러워진다. 그걸 더 오래 방치해두면 거기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온다. 인류는 이런 부류의 현상을 일상적으로 보아왔다. 자연발생설은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생겨난, 아주 오래된 믿음이다. 즉, 생물들은 특정한 조건만 잘 갖춰지면 물질로부터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벼룩은 먼지에서, 구더기는 썩은 고기나 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썼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들은 생물은 생물로부터만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양의 경우, 이 두 진영은 아득한 옛날부터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다투어왔다. 16, 17세기에 유럽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등, 새로운 분위기가 일면서 자연발생설이 밀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반전이 일어난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현미경과 관련된 기술과 관찰 기법이 부쩍 발전하면서 자연발생설이 다시 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과학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미신처럼 보이는 자연발생설이 금세 끝장났을 것도 같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왜 그럴까? 사실 자연발생설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창조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생명 탄생이 오직 신에 의한 영역일 뿐이기 때문에, 저 생명도 없는 물질로부터 그냥 생물이 탄생할리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질은 생명보다 미천한 것이라고도 믿었다. 하지만 더러운 걸레 같은 곳에서 이상한 벌레들이 생겨나는 일은 왜 생기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우리 눈에 안 보일 정도로 극히 작은 생물의 알이 있거나 미세동물들이 암수 생식을 하는 것이라고. 그랬던 그들은 현미경 기술이 발달하자 드디어 그런 알이나 미세동물들을 발견하게 될 거라 크게 기뻐했다. 그렇지만 현미경 관련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런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1675년에는 레벤후쿠에 의해 정반대의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고깃국물을 뜨겁게 가열해 그 국물속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생물체를 다 죽였다. 그리고 얼마뒤 거기서 미생물들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많은 사람들은 생물체가 전혀 없는 곳에서 생물들이 탄생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었다. 큰 동물이나 고등 동물들은 자연발생에 의해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극미한 동물, 식물, 균류 등은 자연 조건이 맞으면 저절로 탄생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복잡해지던 상황 속에서 파스퇴르가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1861). 그리고 이로 인해 자연발생설 반대파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파스퇴르 이전까지 양 진영은 치열하게 실험과 논쟁으로 맞섰지만, 그들의 실험 결과는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또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부패와 발효 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고, 그 바탕 위에서 결정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은 자연발생설 비판의 1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이 논쟁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결코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연발생설 진영에서도 상당히 치밀한 실험 근거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책의 제 1장에서 양 진영 모두 치밀했지만 동시에 모두 약점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끝으로, 본문에 나오는 낯선 용어 몇 가지를 이해해두자. 첫째,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浸出液)은, 동물이나 식물의 체내에 있던 성분이 체외로 흘러나온 액체를 가리킨다. 둘째, 인푸소리아(infusoria)는 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대단히 미세한 동물이다. ‘적충류(滴蟲流)’라고도 하는데 물방울처럼 생긴 벌레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흔히 동식물성 물질의 침출액에서 발견되었다. 셋째, 박물학자는 과학이 오늘날처럼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되기 전에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을 두루 연구한 자연과학자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키워드
자연 발생설, 아리스토텔레스, 탐구 정신, 현미경 관찰, 생물의 기원, 암수 생식, 발효, 박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