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본문]
1장에서 나는 우리가 아는 물리학 법칙들이 통계적인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 법칙들은 사물이 무질서를 향해 가는 자연적인 경향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유전물질의 미미한 크기와 고도의 영속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분자를 제안함으로써’, 그러니까 고도로 분화된 질서를 구현한 걸작이자 양자이론의 마술지팡이에 의해 보호받는 예외적으로 큰 분자를 제안함으로써 자연적인 무질서화 경향성을 피해나가야 했다. 그 ‘제안’에 의해 확률의 법칙들이 타당성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결과는 수정된다. 물리학자는 고전물리학 법칙들이 양자이론에 의해 수정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수정은 특히 두드러진 한 예로 보인다. 생명은 물질의 질서 있고 법칙적인 행동이며, 그 행동은 물질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는 경향성에만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
살아있는 유기체는, 절대 0도 근처에서 분자적인 무질서가 제거될 때 모든 계가 향하는 순전히 기계적인(열역학적이지 않은) 행동을 부분적으로 나타내는 거시적인 계인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거역할 수 없는 정확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물리적 법칙들이, 물질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는 통계적인 경향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한다. 나는 1장에서 몇 가지 예를 제시했다. 그 예들과 관련된 일반적인 원리는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즉, 엔트로피 원리)과 역시 잘 알려진 그 법칙의 통계물리학적 토대이다. 이어지는 여섯 페이지(원서 pp.69-74, 번역서 118~124쪽)에서 나는 엔트로피 원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의 거시규모 행동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
유기체가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보이는 것은 활동이 없는 ‘평형상태’로의 빠른 파멸을 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기체 속에는 비(非)물리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힘(생력(生力, 엔텔레키)이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인류 사상사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제기되었고,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어떻게 평형상태로의 파멸을 면하는 것일까? 자명한 대답이 있다. 먹고, 마시고, 숨쉬고, 동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물질대사(metabolism)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6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사회 현상들 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행하기 때문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죠. 자, 함께 말해봅시다. 여름 휴가지를 정할 때 인파가 너무 많이 몰리지 않을 곳을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 걸까요?
(2)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물리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으로 설명하는 것은 왠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면, 그 복잡하고 다양하며 경이로운 생명의 세계를 과연 물리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과연 현명한 접근 방법일까요?
(3) 슈뢰딩거는 생명이 고도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반면, 물질은 점점 더 무질서로 향해 간다고 확언합니다. 한편으로는 물질이 그런 거 같기도 하지만, 빅뱅 이래 우주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초고온 초고압력의 초기 상태는 극도로 단순했지만, 그 이후 138억년 동안 수많은 은하들과 태양계들과 행성들이 생겨나고 급기야 지구에서는 다양하기 그지없는 생물계까지 진화하지 않았습니까? 슈뢰딩거의 확신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설읽기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전체 일곱 개 장 중 제 6장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내용인데, 일반인들에게는 꽤나 생소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약간 설명을 듣고나서 읽으면 과히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슈뢰딩거가 몇 번 되풀이해서 말하듯이, 물리학 법칙의 핵심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물리학에서 탐구하는 내용이 자연계의 필연적인 법칙일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술 같은 분야와 다른 것이라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물질의 기본 요소인 원자들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또 어느 방향으로 운동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100% 우연이다. 그럼 왜 물리학에는 필연적인 법칙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무수할 정도로 많은 원자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이동한 결과, 대단히 높은 확률로 특정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슈뢰딩거는 본문에서 ‘확률의 법칙’이라 부르고, 그래서 “물리학 법칙들은 통계적인 법칙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다시 말해보겠다. 원자들의 운동 하나하나는 100% 우연이다. 하지만 수많은 원자들의 행동은 확률적으로 99% 이상 예측 가능하다. 왜? 간단하다. 확률을 측정할 때, 대상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확률의 확실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한번 던졌을 때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신도 알 수 없지만, 100조번 던지면 1에서 6까지의 숫자가 각각 1/6씩 나올 것이라고 99.999% 확신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이런 통계적인 법칙들이 드러내는 자연의 특정 패턴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물들이 무질서를 향해 가는 자연적인 경향성”이다. 이는 통계적인 법칙인데, 이 경향성의 확률이 하도 높아서 필연적이라 해도 거의 무방할 지경이다. 예컨대 생물이 죽으며 온갖 무생물들과 자연적 조건의 영향을 받아 무질서하게 분해되는 것을 생각해보라.
반면, 생물들은 어떤가? 수정란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고도로 질서가 잡혀가지 않는가? 맞다. 생물은 분명히 자연법칙에 따라 태어나고 성장하지만, 그럼에도 무질서로 향하지 않는다. 도리어 신체의 각 부위마다 고도의 복잡도를 보이며, 부위들 간에도 정밀 기계들보다 훨씬 더 정교한 조화를 과시한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이것이 슈뢰딩거가 매혹된 물음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기체(생물)는 모든 물질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평형상태로 향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조직성과 복잡성과 정밀함을 보인다.
더 경이로운 건 생명의 핵심 요소인 유전 물질들은 우리 몸의 극히 일부분밖에 차지하지 않는 물질이라는 사실이다. 유전 물질은 수정란이 하나의 생물로 성장해갈 때 핵심 역할을 한다. 한데 유전 물질은 크기가 너무나도 미미한데, 그러면서도 자식이 부모를 닮도록 만들어내는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고도의 영속성을 보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가 설명하려는 게 바로 이 신비로운 수수께끼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서 비(非)물리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 따위는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그렇게 한다.
우선 하나는 그 물질들이 큰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로의 경향이 상당히 수정된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자이론이다. 생명의 행동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기반을 두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것은 생물은 물질 대사를 하기 때문이다. 물체들과는 달리 생물체들은 먹고, 마시고, 숨쉬고, 동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전본문]
1장에서 나는 우리가 아는 물리학 법칙들이 통계적인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 법칙들은 사물이 무질서를 향해 가는 자연적인 경향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유전물질의 미미한 크기와 고도의 영속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분자를 제안함으로써’, 그러니까 고도로 분화된 질서를 구현한 걸작이자 양자이론의 마술지팡이에 의해 보호받는 예외적으로 큰 분자를 제안함으로써 자연적인 무질서화 경향성을 피해나가야 했다. 그 ‘제안’에 의해 확률의 법칙들이 타당성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결과는 수정된다. 물리학자는 고전물리학 법칙들이 양자이론에 의해 수정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수정은 특히 두드러진 한 예로 보인다. 생명은 물질의 질서 있고 법칙적인 행동이며, 그 행동은 물질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는 경향성에만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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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기체는, 절대 0도 근처에서 분자적인 무질서가 제거될 때 모든 계가 향하는 순전히 기계적인(열역학적이지 않은) 행동을 부분적으로 나타내는 거시적인 계인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거역할 수 없는 정확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물리적 법칙들이, 물질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는 통계적인 경향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한다. 나는 1장에서 몇 가지 예를 제시했다. 그 예들과 관련된 일반적인 원리는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즉, 엔트로피 원리)과 역시 잘 알려진 그 법칙의 통계물리학적 토대이다. 이어지는 여섯 페이지(원서 pp.69-74, 번역서 118~124쪽)에서 나는 엔트로피 원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의 거시규모 행동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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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체가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보이는 것은 활동이 없는 ‘평형상태’로의 빠른 파멸을 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기체 속에는 비(非)물리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힘(생력(生力, 엔텔레키)이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인류 사상사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제기되었고,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어떻게 평형상태로의 파멸을 면하는 것일까? 자명한 대답이 있다. 먹고, 마시고, 숨쉬고, 동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물질대사(metabolism)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6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사회 현상들 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행하기 때문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죠. 자, 함께 말해봅시다. 여름 휴가지를 정할 때 인파가 너무 많이 몰리지 않을 곳을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 걸까요?
(2)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물리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으로 설명하는 것은 왠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면, 그 복잡하고 다양하며 경이로운 생명의 세계를 과연 물리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과연 현명한 접근 방법일까요?
(3) 슈뢰딩거는 생명이 고도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반면, 물질은 점점 더 무질서로 향해 간다고 확언합니다. 한편으로는 물질이 그런 거 같기도 하지만, 빅뱅 이래 우주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초고온 초고압력의 초기 상태는 극도로 단순했지만, 그 이후 138억년 동안 수많은 은하들과 태양계들과 행성들이 생겨나고 급기야 지구에서는 다양하기 그지없는 생물계까지 진화하지 않았습니까? 슈뢰딩거의 확신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설읽기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전체 일곱 개 장 중 제 6장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내용인데, 일반인들에게는 꽤나 생소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약간 설명을 듣고나서 읽으면 과히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슈뢰딩거가 몇 번 되풀이해서 말하듯이, 물리학 법칙의 핵심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물리학에서 탐구하는 내용이 자연계의 필연적인 법칙일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술 같은 분야와 다른 것이라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물질의 기본 요소인 원자들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또 어느 방향으로 운동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100% 우연이다. 그럼 왜 물리학에는 필연적인 법칙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무수할 정도로 많은 원자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이동한 결과, 대단히 높은 확률로 특정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슈뢰딩거는 본문에서 ‘확률의 법칙’이라 부르고, 그래서 “물리학 법칙들은 통계적인 법칙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다시 말해보겠다. 원자들의 운동 하나하나는 100% 우연이다. 하지만 수많은 원자들의 행동은 확률적으로 99% 이상 예측 가능하다. 왜? 간단하다. 확률을 측정할 때, 대상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확률의 확실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한번 던졌을 때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신도 알 수 없지만, 100조번 던지면 1에서 6까지의 숫자가 각각 1/6씩 나올 것이라고 99.999% 확신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이런 통계적인 법칙들이 드러내는 자연의 특정 패턴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물들이 무질서를 향해 가는 자연적인 경향성”이다. 이는 통계적인 법칙인데, 이 경향성의 확률이 하도 높아서 필연적이라 해도 거의 무방할 지경이다. 예컨대 생물이 죽으며 온갖 무생물들과 자연적 조건의 영향을 받아 무질서하게 분해되는 것을 생각해보라.
반면, 생물들은 어떤가? 수정란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고도로 질서가 잡혀가지 않는가? 맞다. 생물은 분명히 자연법칙에 따라 태어나고 성장하지만, 그럼에도 무질서로 향하지 않는다. 도리어 신체의 각 부위마다 고도의 복잡도를 보이며, 부위들 간에도 정밀 기계들보다 훨씬 더 정교한 조화를 과시한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이것이 슈뢰딩거가 매혹된 물음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기체(생물)는 모든 물질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평형상태로 향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조직성과 복잡성과 정밀함을 보인다.
더 경이로운 건 생명의 핵심 요소인 유전 물질들은 우리 몸의 극히 일부분밖에 차지하지 않는 물질이라는 사실이다. 유전 물질은 수정란이 하나의 생물로 성장해갈 때 핵심 역할을 한다. 한데 유전 물질은 크기가 너무나도 미미한데, 그러면서도 자식이 부모를 닮도록 만들어내는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고도의 영속성을 보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가 설명하려는 게 바로 이 신비로운 수수께끼다. 하지만 그는 물리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서 비(非)물리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 따위는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그렇게 한다.
우선 하나는 그 물질들이 큰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로의 경향이 상당히 수정된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자이론이다. 생명의 행동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기반을 두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것은 생물은 물질 대사를 하기 때문이다. 물체들과는 달리 생물체들은 먹고, 마시고, 숨쉬고, 동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