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은『히포크라테스 문헌』에 수록된 글 60여편 중 한편이다.『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의술을 자연의 일반 원리를 가정한 다음 그로부터 의술을 연역해내려는 저자들의 글이 적잖이 실려 있다. 또는 열, 냉, 건, 습 중 한 가지만을 핵심 원리로 주장하는 글들도 있다. 이런 글들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여 유행하던 의술이었다. 「전통 의학에 관하여」의 저자는 그런 경향에 반대한다. 의술은 기본적으로 인체의 경험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대부분 실증 가능한 것이다. 서로 공허한 가정을 내세우며 다투기보다는, 환자 한명 한명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누적시켜 그로부터 의술의 원리와 지침을 도출해내는 편이 더 의술의 취지에 가깝다. 저자가 보기에 전통 의학은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의술은 기본 방법은 동일해야 한다. 이 글은 『히포크라테스 문헌』에 실린 다른 글들과 견해가 다르지만, 고대 그리스 의학의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평가된다.
고전본문
이제까지 의술에 대하여 말하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들의 이론을 위해 열[뜨거움]과 냉[차가움], 건[건조함]과 습[축축함] 혹은 그밖에 자신들이 선호하는 어떤 것을 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의 질병이나 사망의 원인을 단순화시켜서 모든 사례에 대해 동일한 원인 한두 가지를 가정함으로써 많은 것에 대하여 명백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이 특히 비난받을 만한 까닭은 그들의 잘못이 실제로 사용되는 기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이 기술은 매우 중요하게 이용되며 유능한 의료 전문가들과 장인들은 각별한 존중을 받는다. 한데 장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시원찮고, 어떤 이들은 아주 뛰어나다. 만일 의술이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의술을 통해 아무것도 고찰하거나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런 차이는 없었을 것이고 모두가 똑같이 의술에 경험이 없고 무지할 것이며 환자들의 모든 것은 우연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다른 모든 기술의 경우 장인들의 손재주나 식견에서 서로 큰 차이가 나듯이, 의술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나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술에서는 공허한 가정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가정이라는 것은 예컨대 노출되지 않은 곳이나 갈 수 없는 곳, 즉 공중에 있거나 땅 밑에 있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가 뭔가를 말하려 들 때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어떻게 있는지를 누군가가 말하거나 알고자 할 경우에, 그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가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듣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에 견주에 그 확실성을 알아보아야 할지, 그런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 의학에 관하여」의 제 1절 중에서
토론하기
(1) 의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현실적인 기술이므로 공허한 가정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된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도 인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일반 원리나 인체의 본성에 대한 탐구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2) 「전통 의학에 관하여」는 2500년 전의 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의술에 대한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 발달했었다는 사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까?
(3) 열, 냉, 건, 습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너무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초자연적인 원리나 신들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설읽기
당시 새로 등장한 의술의 경향에 맞서 전통적인 의술을 옹호하는 글. 당시 새로운 의사들과 의술 이론가들은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일반 원리나 어떤 특수한 가정을 세운 다음, 그로부터 의술을 연역하려 하였다. 이와 비슷한 경향으로 열, 냉, 건, 습이라는 네 요소를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질병을 이중 어느 한 가지로만 설명하는 부류들도 있었다. 열, 냉, 건, 습은 단지 의술에만 한정되지 않고 세상 만물의 생성과 소멸, 변화 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들이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만도 아니었다.
저자는 단순한 가정 대신 경험적 방법이야말로 전통 의학이 취해온 방법이었고, 여전히 가장 유력한 의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의술은 세계를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적인 문제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의 질병이나 죽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공허하고 추상적인 방법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용되는 기술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하거늘, 의학에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단순하고 공허한 가정을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세운다면, 그 가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당사자와 환자 모두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의술에서 가정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그릇된 것이다. 가정이란 실제로 관측하거나 체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설명이나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구사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의술은 인간의 신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이 있으며, 의술을 시행할 때마다 그 의술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환자와 대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까지 발전되어온 의술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온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의술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의료 전문가들과 장인들은 각별한 존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장인들이 안목이나 기술에 의해 명확히 평가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의사나 의료 이론가들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장 현실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술에서 공허한 가정은 필요없다.
저자는 의학의 근본이 수술이나 약물 이전에 섭생법이라고 본다. 한데 섭생법은 우주와 자연에 관한 근본 원리라든가 아니면 특정한 가정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각각의 사람이 매일 경험하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건강과 장수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거치면 매우 훌륭한 섭생법이 수립될 수 있다.
자연의 일반 원리를 강조하는 의술 이론가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가 의술을 알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저자가 볼 때 인간의 본질이 뭔지를 탐구하는 그런 문제는 의술이 아니라 철학에 속한다. 그는 이 글의 후반부인 20절에서 인간의 본질은 도리어 의술을 통하지 않고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의사는 추상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 할 게 아니라, 먹을 것과 마실 것 등과 관련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그리고 각각의 사람에게 각각의 것으로부터 무슨 결과가 생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알아둘 것은 이 글의 주장과 달리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다른 많은 저자들이 철학적 의학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저자가 비판하는 바로 그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체의 본질, 즉 인체의 궁극적 구성요소가 무엇인지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궁극적 구성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우주의 온갖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듯이, 인체의 구성 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이 요소들로 질병이나 건강뿐 아니라 인체와 관려된 온갖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키워드
가정, 건, 공허한 가정, 기술, 기준, 냉, 습, 열, 우연, 장인, 확실성
전후맥락
이 글은『히포크라테스 문헌』에 수록된 글 60여편 중 한편이다.『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의술을 자연의 일반 원리를 가정한 다음 그로부터 의술을 연역해내려는 저자들의 글이 적잖이 실려 있다. 또는 열, 냉, 건, 습 중 한 가지만을 핵심 원리로 주장하는 글들도 있다. 이런 글들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여 유행하던 의술이었다. 「전통 의학에 관하여」의 저자는 그런 경향에 반대한다. 의술은 기본적으로 인체의 경험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대부분 실증 가능한 것이다. 서로 공허한 가정을 내세우며 다투기보다는, 환자 한명 한명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누적시켜 그로부터 의술의 원리와 지침을 도출해내는 편이 더 의술의 취지에 가깝다. 저자가 보기에 전통 의학은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의술은 기본 방법은 동일해야 한다. 이 글은 『히포크라테스 문헌』에 실린 다른 글들과 견해가 다르지만, 고대 그리스 의학의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평가된다.
고전본문
이제까지 의술에 대하여 말하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들의 이론을 위해 열[뜨거움]과 냉[차가움], 건[건조함]과 습[축축함] 혹은 그밖에 자신들이 선호하는 어떤 것을 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의 질병이나 사망의 원인을 단순화시켜서 모든 사례에 대해 동일한 원인 한두 가지를 가정함으로써 많은 것에 대하여 명백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이 특히 비난받을 만한 까닭은 그들의 잘못이 실제로 사용되는 기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이 기술은 매우 중요하게 이용되며 유능한 의료 전문가들과 장인들은 각별한 존중을 받는다. 한데 장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시원찮고, 어떤 이들은 아주 뛰어나다. 만일 의술이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의술을 통해 아무것도 고찰하거나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런 차이는 없었을 것이고 모두가 똑같이 의술에 경험이 없고 무지할 것이며 환자들의 모든 것은 우연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다른 모든 기술의 경우 장인들의 손재주나 식견에서 서로 큰 차이가 나듯이, 의술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나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술에서는 공허한 가정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가정이라는 것은 예컨대 노출되지 않은 곳이나 갈 수 없는 곳, 즉 공중에 있거나 땅 밑에 있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가 뭔가를 말하려 들 때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어떻게 있는지를 누군가가 말하거나 알고자 할 경우에, 그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가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듣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에 견주에 그 확실성을 알아보아야 할지, 그런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 의학에 관하여」의 제 1절 중에서
토론하기
(1) 의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현실적인 기술이므로 공허한 가정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된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도 인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일반 원리나 인체의 본성에 대한 탐구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2) 「전통 의학에 관하여」는 2500년 전의 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의술에 대한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 발달했었다는 사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까?
(3) 열, 냉, 건, 습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너무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초자연적인 원리나 신들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설읽기
당시 새로 등장한 의술의 경향에 맞서 전통적인 의술을 옹호하는 글. 당시 새로운 의사들과 의술 이론가들은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일반 원리나 어떤 특수한 가정을 세운 다음, 그로부터 의술을 연역하려 하였다. 이와 비슷한 경향으로 열, 냉, 건, 습이라는 네 요소를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질병을 이중 어느 한 가지로만 설명하는 부류들도 있었다. 열, 냉, 건, 습은 단지 의술에만 한정되지 않고 세상 만물의 생성과 소멸, 변화 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들이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만도 아니었다.
저자는 단순한 가정 대신 경험적 방법이야말로 전통 의학이 취해온 방법이었고, 여전히 가장 유력한 의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의술은 세계를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적인 문제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의 질병이나 죽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공허하고 추상적인 방법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용되는 기술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하거늘, 의학에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단순하고 공허한 가정을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세운다면, 그 가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당사자와 환자 모두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의술에서 가정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그릇된 것이다. 가정이란 실제로 관측하거나 체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설명이나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구사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의술은 인간의 신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이 있으며, 의술을 시행할 때마다 그 의술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환자와 대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까지 발전되어온 의술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온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의술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의료 전문가들과 장인들은 각별한 존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장인들이 안목이나 기술에 의해 명확히 평가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의사나 의료 이론가들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장 현실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술에서 공허한 가정은 필요없다.
저자는 의학의 근본이 수술이나 약물 이전에 섭생법이라고 본다. 한데 섭생법은 우주와 자연에 관한 근본 원리라든가 아니면 특정한 가정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각각의 사람이 매일 경험하는 현실을 통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건강과 장수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거치면 매우 훌륭한 섭생법이 수립될 수 있다.
자연의 일반 원리를 강조하는 의술 이론가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가 의술을 알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저자가 볼 때 인간의 본질이 뭔지를 탐구하는 그런 문제는 의술이 아니라 철학에 속한다. 그는 이 글의 후반부인 20절에서 인간의 본질은 도리어 의술을 통하지 않고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의사는 추상적으로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 할 게 아니라, 먹을 것과 마실 것 등과 관련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그리고 각각의 사람에게 각각의 것으로부터 무슨 결과가 생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알아둘 것은 이 글의 주장과 달리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다른 많은 저자들이 철학적 의학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저자가 비판하는 바로 그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체의 본질, 즉 인체의 궁극적 구성요소가 무엇인지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궁극적 구성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우주의 온갖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듯이, 인체의 구성 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이 요소들로 질병이나 건강뿐 아니라 인체와 관려된 온갖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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