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본문은 책 전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1장 「이성의 승리」에서는 뉴턴 역학에 의한 서구 근대의 과학 혁명을, 2장 「실재의 규명」과 3장 「두 문화」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동역학이 발전하고 이러한 세계관이 서구 사회를 지배해간 과정을 그렸다. 본문은 4장 「에너지와 산업시대」의 말미에서 발췌한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열과 에너지 문제가 중심으로 떠올랐고, 그러면서 엔트로피 법칙도 발견되었다. 한데 동시에 이 시기는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해 서양 세계를 지배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과연 평형계로 향하는 경향(물리학, 특히 열역학)과 다양성을 향하는 경향(생물학, 특히 진화론) 중 어떤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울까? 두 경향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본문에서는 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본문 이후 책의 후반(5장에서 8장 및 결론까지)에서는 자신의 주요 연구 분야인 비평형 열역학을 중심으로, 기존의 물리학이나 화학과는 반대로 다양성, 불안정성, 새로운 질서 창조 등에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진화의 역사가 과시하는 끝없는 다양성은 바로 가역적 시간에서 우연적인 사건이 발생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복잡성을 지닌 미시적인 세계가 지니는 시간의 비가역성, 그 창조성에 근원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고전본문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결정의 비활성적인 구조가 예측할 수 있고 재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질서로서 정의될 수 있으며, 평형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유일한 진화로서 접근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열역학적 기술로부터의 외삽인 어떠한 시도도 생물학과 사회과학들에 의하여 기술되는 진화의 종류를 드물고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 – 드문 사건들이 통계적으로 선택됨 – 가 어떻게 볼츠만이 기술하는 모든 특이성들, 모든 드문 배열들이 통계적으로 사라지는 일과 화해될 수 있을 것인가? 로제 카이유와가 물은 것처럼 “과연 카르노와 다윈이 모두 옳을 수 있겠는가?”
다윈의 접근방식이 볼츠만에 의해 탐색된 경로와 본질적으로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볼츠만이 다윈을 무척 존경했음을 알고 있다. 다윈이 이론은 종(種)들의 자발적인 요동에 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는 선택이 비가역적인 생물학적 진화로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무질서함이 비가역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 볼츠만의 해석은 초기 조건들의 망각, 초기 구조들의 파괴를 의미하는 반면, 다윈적인 진화는 자생적 조직화 – 항상 증가하는 복잡성- 와 연관되는 것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제4장 중에서
토론하기
(1) 물리 법칙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특정한 상태로 안정화된다고 예측한다. 일정한 온도와 압력하에서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결국 물이 된다는 식으로. 그런데 지구에서 생물이 진화해온 과정은 복잡성과 다양성이 계속 증가해온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생물의 진화는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화사 역시 물리 법칙이 복잡하게 적용된 것일까?
(2) 비슷한 질문이지만, 생물계 역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일까, 아니면 물리 법칙을 위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물리 법칙만으로는 생물의 진화와 다양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할까?
(3) 현대의 생명공학과 유전자 편집 기술(대표적으로 크리스퍼)은 더 좋은 유전자를 원하는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 세계는 갈수록 다양해질까 아니면 대부분 생존에 유리한 특징들로 무장하게 되어 획일화되어갈까?
해설읽기
서양에서 17세기에 시작된 과학 혁명은 세계를 필연적인 법칙이 실현되는 기계 장치로 보았다. 그런 세계관이 점점 더 서양을 물들이더니 19세기 중후반에는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시점의 물리학을 대표하는 것은 열역학인데, 볼츠만의 엔트로피 개념에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즉,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물리적으로 파악할 경우(대상이나 상황을 물리학에서는 계(system)이라 부른다), 모든 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장 확률이 높은 상태로 이행한다. 가장 확률이 높은 상태란 모든 요소들이 특정 지점에 편중됨 없이 골고루 퍼진 것을 가리킨다. 물통에 잉크방울이 떨어졌을 때, 맨 처음에는 잉크가 특정 지점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잉크와 물은 눈으로도 쉽게 구별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잉크는 점점 더 퍼지면서 전체적으로 잉크물이 된다. 그 결과 물 전체는 특별한 곳 없이 모두 같아진다. 다른 예를 들자면 커피를 사서 방안으로 들어가면, 맨 처음에는 커피잔 있는 곳만 뜨겁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피의 온기는 방 전체로 퍼져나간다. 한참 시간이 흐르면 커피는 식는다. 즉, 커피의 온기가 방 전체에 퍼져서, 온도를 기준으로 볼 때 방 전체는 특별한 곳 없이 모두 같아진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열적 죽음(또는 열사(熱死))이라 부른다. 열을 기준으로 볼 때 어떤 생동감도, 차이도 없이 전체가 고르다는 뜻이다. 물리학적으로 평형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게 바로 물리학, 그중에서도 특히 열역학이 가리키는 바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물리학자가 바로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이다. 모든 물리계는 시간이 흐르면 열적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왜 그러한가? 그 상태의 경우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도서관에 1000권의 책이 제목을 기준으로 정확히 가나다 순서로 꽂혀 있다고 하자. 이 도서관을 하루 종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순서가 매우 헝클어지고 말 것이다. 왜 그러한가? 책들이 정확히 꽂혀 있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인데, 헝클어지는 경우의 수는 몇백가지 몇천가지를 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경우가 될 확률보다 몇백가지 몇천가지의 경우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문제는 실제 지구나 우주를 보면 이런 경우, 즉 평형 상태인 비활성적인 구조가 보편적이기는커녕 드물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연구하는 다양한 생물이나 사회들의 경우, 정반대일 정도로 점점 더 다양화되어왔다. 대표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 영역에서는 드문 사건들이 대부분 선택되어 왔다고 했는데, 이는 흔한 사건들이 선택된다고 하는 열역학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요컨대 볼츠만은 모든 특이성들, 모든 드문 배열들이 통계적으로 사라질 거라 했는데, 그런 물리학이 실제 진화의 역사 및 현재와 어떻게 화해될 수 있겠는가? 참고로 카르노(1796-1832)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의 기초를 닦은 과학자다.
다윈의 진화론은 한 종 내의 개체들이 모두 다르고 이들로부터 태어나는 자손들도 모두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달라져가는 생물들은 역시나 계속 변화해가는 자연 조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는 요동(搖動) 상태가 빚어진다. 이를 본문에서는 ‘종들의 자발적 요동’이라 표현하였다. 이 요동 상태는 생존 경쟁을 거쳐 더 적합한 생물이 살아남기 때문에, 아주 흔한 상태가 선택되기보다는 드문 상태가 선택되는 경향을 초래한다. 이 선택은 평형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비가역적인 진화를 계속 창출해낸다. 이는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무질서함이 비가역성을 초래하는 상황이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다. 볼츠만의 열역학은 단순성이 증가하지만 다윈식의 진화는 복잡성이 항상 증가하며, 이를 생물학에서는 자생적 조직화라 부른다.
키워드
다윈, 복잡성, 볼츠만, 비가역성, 사건들, 열역학, 자발적인 요동, 자생적 조직화, 진화, 카르노
전후맥락
본문은 책 전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1장 「이성의 승리」에서는 뉴턴 역학에 의한 서구 근대의 과학 혁명을, 2장 「실재의 규명」과 3장 「두 문화」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동역학이 발전하고 이러한 세계관이 서구 사회를 지배해간 과정을 그렸다. 본문은 4장 「에너지와 산업시대」의 말미에서 발췌한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열과 에너지 문제가 중심으로 떠올랐고, 그러면서 엔트로피 법칙도 발견되었다. 한데 동시에 이 시기는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해 서양 세계를 지배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과연 평형계로 향하는 경향(물리학, 특히 열역학)과 다양성을 향하는 경향(생물학, 특히 진화론) 중 어떤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울까? 두 경향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본문에서는 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본문 이후 책의 후반(5장에서 8장 및 결론까지)에서는 자신의 주요 연구 분야인 비평형 열역학을 중심으로, 기존의 물리학이나 화학과는 반대로 다양성, 불안정성, 새로운 질서 창조 등에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진화의 역사가 과시하는 끝없는 다양성은 바로 가역적 시간에서 우연적인 사건이 발생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복잡성을 지닌 미시적인 세계가 지니는 시간의 비가역성, 그 창조성에 근원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고전본문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결정의 비활성적인 구조가 예측할 수 있고 재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질서로서 정의될 수 있으며, 평형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유일한 진화로서 접근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열역학적 기술로부터의 외삽인 어떠한 시도도 생물학과 사회과학들에 의하여 기술되는 진화의 종류를 드물고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 – 드문 사건들이 통계적으로 선택됨 – 가 어떻게 볼츠만이 기술하는 모든 특이성들, 모든 드문 배열들이 통계적으로 사라지는 일과 화해될 수 있을 것인가? 로제 카이유와가 물은 것처럼 “과연 카르노와 다윈이 모두 옳을 수 있겠는가?”
다윈의 접근방식이 볼츠만에 의해 탐색된 경로와 본질적으로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볼츠만이 다윈을 무척 존경했음을 알고 있다. 다윈이 이론은 종(種)들의 자발적인 요동에 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는 선택이 비가역적인 생물학적 진화로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무질서함이 비가역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 볼츠만의 해석은 초기 조건들의 망각, 초기 구조들의 파괴를 의미하는 반면, 다윈적인 진화는 자생적 조직화 – 항상 증가하는 복잡성- 와 연관되는 것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제4장 중에서
토론하기
(1) 물리 법칙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특정한 상태로 안정화된다고 예측한다. 일정한 온도와 압력하에서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결국 물이 된다는 식으로. 그런데 지구에서 생물이 진화해온 과정은 복잡성과 다양성이 계속 증가해온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생물의 진화는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화사 역시 물리 법칙이 복잡하게 적용된 것일까?
(2) 비슷한 질문이지만, 생물계 역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일까, 아니면 물리 법칙을 위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물리 법칙만으로는 생물의 진화와 다양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할까?
(3) 현대의 생명공학과 유전자 편집 기술(대표적으로 크리스퍼)은 더 좋은 유전자를 원하는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 세계는 갈수록 다양해질까 아니면 대부분 생존에 유리한 특징들로 무장하게 되어 획일화되어갈까?
해설읽기
서양에서 17세기에 시작된 과학 혁명은 세계를 필연적인 법칙이 실현되는 기계 장치로 보았다. 그런 세계관이 점점 더 서양을 물들이더니 19세기 중후반에는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시점의 물리학을 대표하는 것은 열역학인데, 볼츠만의 엔트로피 개념에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즉,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물리적으로 파악할 경우(대상이나 상황을 물리학에서는 계(system)이라 부른다), 모든 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장 확률이 높은 상태로 이행한다. 가장 확률이 높은 상태란 모든 요소들이 특정 지점에 편중됨 없이 골고루 퍼진 것을 가리킨다. 물통에 잉크방울이 떨어졌을 때, 맨 처음에는 잉크가 특정 지점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잉크와 물은 눈으로도 쉽게 구별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잉크는 점점 더 퍼지면서 전체적으로 잉크물이 된다. 그 결과 물 전체는 특별한 곳 없이 모두 같아진다. 다른 예를 들자면 커피를 사서 방안으로 들어가면, 맨 처음에는 커피잔 있는 곳만 뜨겁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피의 온기는 방 전체로 퍼져나간다. 한참 시간이 흐르면 커피는 식는다. 즉, 커피의 온기가 방 전체에 퍼져서, 온도를 기준으로 볼 때 방 전체는 특별한 곳 없이 모두 같아진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열적 죽음(또는 열사(熱死))이라 부른다. 열을 기준으로 볼 때 어떤 생동감도, 차이도 없이 전체가 고르다는 뜻이다. 물리학적으로 평형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게 바로 물리학, 그중에서도 특히 열역학이 가리키는 바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물리학자가 바로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이다. 모든 물리계는 시간이 흐르면 열적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왜 그러한가? 그 상태의 경우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도서관에 1000권의 책이 제목을 기준으로 정확히 가나다 순서로 꽂혀 있다고 하자. 이 도서관을 하루 종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순서가 매우 헝클어지고 말 것이다. 왜 그러한가? 책들이 정확히 꽂혀 있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인데, 헝클어지는 경우의 수는 몇백가지 몇천가지를 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경우가 될 확률보다 몇백가지 몇천가지의 경우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문제는 실제 지구나 우주를 보면 이런 경우, 즉 평형 상태인 비활성적인 구조가 보편적이기는커녕 드물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연구하는 다양한 생물이나 사회들의 경우, 정반대일 정도로 점점 더 다양화되어왔다. 대표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 영역에서는 드문 사건들이 대부분 선택되어 왔다고 했는데, 이는 흔한 사건들이 선택된다고 하는 열역학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요컨대 볼츠만은 모든 특이성들, 모든 드문 배열들이 통계적으로 사라질 거라 했는데, 그런 물리학이 실제 진화의 역사 및 현재와 어떻게 화해될 수 있겠는가? 참고로 카르노(1796-1832)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의 기초를 닦은 과학자다.
다윈의 진화론은 한 종 내의 개체들이 모두 다르고 이들로부터 태어나는 자손들도 모두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달라져가는 생물들은 역시나 계속 변화해가는 자연 조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는 요동(搖動) 상태가 빚어진다. 이를 본문에서는 ‘종들의 자발적 요동’이라 표현하였다. 이 요동 상태는 생존 경쟁을 거쳐 더 적합한 생물이 살아남기 때문에, 아주 흔한 상태가 선택되기보다는 드문 상태가 선택되는 경향을 초래한다. 이 선택은 평형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비가역적인 진화를 계속 창출해낸다. 이는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무질서함이 비가역성을 초래하는 상황이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다. 볼츠만의 열역학은 단순성이 증가하지만 다윈식의 진화는 복잡성이 항상 증가하며, 이를 생물학에서는 자생적 조직화라 부른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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