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생명체는 물질과는 딴판으로 워낙 신비로운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예로부터 생물은 무생물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런 전통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생기론이다. 생명에는 생명 고유의 신비로운 능력과 메커니즘이 있다는 견해다. 다른 한편, 생물 역시 보편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구현된 한 종류라는 견해도 있다. 이를 물활론이라 하는데, 이들에 따르면 무생물들도 비록 덜 정교하고 덜 복잡하지만 동일한 법칙과 원리에 따라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은 실현된 정교함의 정도에서 다른 것이지 아예 다른 종류의 존재라고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본문은 3장 「맥스웰의 도깨비」의 첫 대목이다. 여기서 자크 모노는 생명의 신비로운 활동이라는 게 사실은 단백질 등의 사이버네틱한 메커니즘이 낳은 결과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메커니즘은 거대 시스템에서만이 아니라 미시 시스템에서도 발견된다.
본문 이후 4장 「미시적 사이버네틱스」와 5장 「분자 개체 발생」에서는 이를 분자 수준으로까지 내려가 더 상세히 보여준다. 결국 그가 주장하려는 바는 기존의 유기체론적 접근 방식이 과도한 신비주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어떤 섭리나 원리가 있었던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우연한 사건들이 발생했고, 그 사건들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선택된 결과가 오늘날 눈부신 생명 세계라는 것이다.
고전본문
합목적성이란 개념에는 어떤 정해진 방향을 향하여 정합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라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기준들로 볼 때, 단백질이야말로 생명체의 합목적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분자적 요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생명체란 화학적 기계다. 모든 유기체들의 성장과 증식을 위해서는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이뤄져야 한다. 이 많은 화학적 반응 덕분에 세포들의 주요 성분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이른바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 아주 많은 수의 ‘경로들’에 의해 조직되는데, 이 경로들은 서로 갈라지거나 합쳐지고 순환하기도 하면서, 각자 일련의 반응들을 포함한다. 이 거대한 미시적, 화학적 활동이 정확하게 정해진 방향을 따라 일어날 수 있고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특이한 촉매 역할을 하는 모종의 단백질, 즉 효소 덕분이다.
2.하나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기체는 그 가장 단순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 하나의 정합적이고 전체적으로 통합된 기능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게다가 자율적이기까지 한 화학적 기계의 기능적 정합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지점에서 이뤄지는 화학적 활동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어떤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전체 구조를, 특히 고등한 유기체의 그것을 완전히 해명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중 아주 많은 요소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모든 경우에 이 시스템의 본질적인 요인들은 이른바 조절 단백질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이며, 이 단백질들은 요컨대 화학적 신호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3.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의 거시적인 구조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그에게 부과되는 게 아니다. 유기체는 그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건설적인 상호작용들에 의해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우연과 필연] 3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유기체는 자신을 스스로 성장시키고 운영해나가지만, 기계는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는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해도 자율성이 없는 존재일뿐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 21세기에는 개별 인간들이 전체 사이버 시스템의 말단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것은 진보인가? 아니면 퇴보인가? 어떤 점에서 진보이고 어떤 점에서 퇴보인가?
(3) 자크 모노는 유기체에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 주장했다. 한편 노버트 위너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만이 아니라 기계 또한 커뮤니케이션 기계라는 점에서 점점 더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진화해간다고 보았다. 21세기의 현실에서 볼 때 모노와 위너 중 누구의 견해가 더 옳았던 것일까?
해설읽기
합목적성에서 ‘합목적’이란 ‘목적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합목적성은 매우 다양한 여러 행위나 작용들이 하나의 특정한 목적에 부합되도록 이루어져 간다는 말이다. 인간이나 고등 동물에게는 합목적성이 쉽게 관찰될 수 있지만 과연 생명체의 생리나 구조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지금까지로 보았을 때는, 현대 생물학이 발달할수록 “그렇다.”는 쪽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세포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향해 갈 수가 있지? 인간 성인은 30, 40조개나 되는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이다. 그런 합목적성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비밀은 바로 단백질에 있다.
첫째, 생명체를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걸 관찰할 수 있다. 덕분에 세포의 다양한 성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무수한 반응들이 수없이 많은 경로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생명체가 정교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경로들이 정확하게 갈라지고 합쳐지고 순환하면서 일련의 반응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특이한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 즉 효소의 능력에 의해서다. 효소가 특정 반응은 일어나게 하고, 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기체는 각자 하나의 정합적이고 통합된 기능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과연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고 또 실제로 수행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 바로 사이버네틱스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했다. 즉, 생물이나 기계는 무수한 부분들이 마치 서로 통신(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하나의 전체적인 목적하에 제어되는 듯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처럼 복잡한 데다가 자율적이기까지 한 화학적 기계의 기능적 정합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지점에서 이뤄지는 화학적 활동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어떤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전체 구조 조절 단백질의 존재에 힘입어 유지된다. 이 단백질들은 화학적 신호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의 거시적인 구조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그에게 부과되는 게 아니다. 유기체는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신체로 감각하면서 너무 지나치면 줄이고 너무 부족하면 늘이며 나아간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길의 정확한 길이나 넓이, 자동차의 정확한 길이를 추정하고 그 길이들을 서로 맞춰가며 하지 않는다. 운행중인 차가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면 핸들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친다 싶으면 왼쪽으로 조금 튼다. 이렇게 피드백 기법을 구사하여 얼추 정확하게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도, 기계들도 이렇게 사이버네틱한 방식으로 효과적인 활동을 한다. 마치 신체의 모든 상호작용들이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도록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키워드
단백질, 대사, 사이버네틱, 시스템, 유기체, 조절, 단백질, 합목적성, 화학적 기계, 화학적 신호
전후맥락
생명체는 물질과는 딴판으로 워낙 신비로운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예로부터 생물은 무생물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런 전통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생기론이다. 생명에는 생명 고유의 신비로운 능력과 메커니즘이 있다는 견해다. 다른 한편, 생물 역시 보편적인 합목적적 원리가 구현된 한 종류라는 견해도 있다. 이를 물활론이라 하는데, 이들에 따르면 무생물들도 비록 덜 정교하고 덜 복잡하지만 동일한 법칙과 원리에 따라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은 실현된 정교함의 정도에서 다른 것이지 아예 다른 종류의 존재라고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본문은 3장 「맥스웰의 도깨비」의 첫 대목이다. 여기서 자크 모노는 생명의 신비로운 활동이라는 게 사실은 단백질 등의 사이버네틱한 메커니즘이 낳은 결과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메커니즘은 거대 시스템에서만이 아니라 미시 시스템에서도 발견된다.
본문 이후 4장 「미시적 사이버네틱스」와 5장 「분자 개체 발생」에서는 이를 분자 수준으로까지 내려가 더 상세히 보여준다. 결국 그가 주장하려는 바는 기존의 유기체론적 접근 방식이 과도한 신비주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어떤 섭리나 원리가 있었던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우연한 사건들이 발생했고, 그 사건들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선택된 결과가 오늘날 눈부신 생명 세계라는 것이다.
고전본문
합목적성이란 개념에는 어떤 정해진 방향을 향하여 정합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라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기준들로 볼 때, 단백질이야말로 생명체의 합목적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분자적 요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생명체란 화학적 기계다. 모든 유기체들의 성장과 증식을 위해서는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이뤄져야 한다. 이 많은 화학적 반응 덕분에 세포들의 주요 성분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이른바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 아주 많은 수의 ‘경로들’에 의해 조직되는데, 이 경로들은 서로 갈라지거나 합쳐지고 순환하기도 하면서, 각자 일련의 반응들을 포함한다. 이 거대한 미시적, 화학적 활동이 정확하게 정해진 방향을 따라 일어날 수 있고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특이한 촉매 역할을 하는 모종의 단백질, 즉 효소 덕분이다.
2.하나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기체는 그 가장 단순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 하나의 정합적이고 전체적으로 통합된 기능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게다가 자율적이기까지 한 화학적 기계의 기능적 정합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지점에서 이뤄지는 화학적 활동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어떤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전체 구조를, 특히 고등한 유기체의 그것을 완전히 해명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중 아주 많은 요소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모든 경우에 이 시스템의 본질적인 요인들은 이른바 조절 단백질이라 불리는 단백질들이며, 이 단백질들은 요컨대 화학적 신호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3.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의 거시적인 구조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그에게 부과되는 게 아니다. 유기체는 그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건설적인 상호작용들에 의해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우연과 필연] 3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유기체는 자신을 스스로 성장시키고 운영해나가지만, 기계는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는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해도 자율성이 없는 존재일뿐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 21세기에는 개별 인간들이 전체 사이버 시스템의 말단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것은 진보인가? 아니면 퇴보인가? 어떤 점에서 진보이고 어떤 점에서 퇴보인가?
(3) 자크 모노는 유기체에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 주장했다. 한편 노버트 위너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만이 아니라 기계 또한 커뮤니케이션 기계라는 점에서 점점 더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진화해간다고 보았다. 21세기의 현실에서 볼 때 모노와 위너 중 누구의 견해가 더 옳았던 것일까?
해설읽기
합목적성에서 ‘합목적’이란 ‘목적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합목적성은 매우 다양한 여러 행위나 작용들이 하나의 특정한 목적에 부합되도록 이루어져 간다는 말이다. 인간이나 고등 동물에게는 합목적성이 쉽게 관찰될 수 있지만 과연 생명체의 생리나 구조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지금까지로 보았을 때는, 현대 생물학이 발달할수록 “그렇다.”는 쪽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세포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향해 갈 수가 있지? 인간 성인은 30, 40조개나 되는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이다. 그런 합목적성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비밀은 바로 단백질에 있다.
첫째, 생명체를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수천 가지의 화학적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걸 관찰할 수 있다. 덕분에 세포의 다양한 성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무수한 반응들이 수없이 많은 경로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생명체가 정교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경로들이 정확하게 갈라지고 합쳐지고 순환하면서 일련의 반응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특이한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 즉 효소의 능력에 의해서다. 효소가 특정 반응은 일어나게 하고, 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기체는 각자 하나의 정합적이고 통합된 기능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과연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고 또 실제로 수행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 바로 사이버네틱스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했다. 즉, 생물이나 기계는 무수한 부분들이 마치 서로 통신(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하나의 전체적인 목적하에 제어되는 듯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처럼 복잡한 데다가 자율적이기까지 한 화학적 기계의 기능적 정합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지점에서 이뤄지는 화학적 활동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어떤 사이버네틱 시스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전체 구조 조절 단백질의 존재에 힘입어 유지된다. 이 단백질들은 화학적 신호를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의 거시적인 구조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그에게 부과되는 게 아니다. 유기체는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신체로 감각하면서 너무 지나치면 줄이고 너무 부족하면 늘이며 나아간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길의 정확한 길이나 넓이, 자동차의 정확한 길이를 추정하고 그 길이들을 서로 맞춰가며 하지 않는다. 운행중인 차가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면 핸들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친다 싶으면 왼쪽으로 조금 튼다. 이렇게 피드백 기법을 구사하여 얼추 정확하게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도, 기계들도 이렇게 사이버네틱한 방식으로 효과적인 활동을 한다. 마치 신체의 모든 상호작용들이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도록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키워드
단백질, 대사, 사이버네틱, 시스템, 유기체, 조절, 단백질, 합목적성, 화학적 기계, 화학적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