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주인공 노라는 남편인 토르발의 위급했던 병이 다 낫고, 그가 은행 총재로 임명까지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문은 주인공 노라와 그녀의 친구 린데 부인의 대화 장면이다. 노라는 오랜 친구인 린데 부인에게 남편의 병이 나을 수 있었던 이탈리아 요양 여행은 사실 자신이 구한 돈으로 다녀왔음을 고백한다. 희곡이 창작되었던 19세기 말 유럽에서 여성은 남편의 동의 없이는 돈도 빌릴 수 없었는데, 토르발은 금욕적이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서라도 요양 가자는 아내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그러자 노라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명하여 돈을 빌리고, 틈틈이 돈을 모아 빚을 갚아왔던 것이다. 노라의 아버지는 노라가 돈을 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노라는 돈을 빌렸던 은행 서기 닐스 크로그스타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총재인 남편을 찾아오자 위기를 맞는다. 크로그스타는 해고를 막아주지 않으면 노라가 서명을 위조해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남편과 은행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노라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살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가 편지를 보낼 우체통 열쇠를 토르발이 노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본문]
노라: 이쪽으로 와봐. (린데 부인을 소파로 끌어당겨 나란히 앉는다) 들어 봐. 내가 무엇 때문에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난 토르발의 생명을 구했어.
린데 부인: 구해? 어떻게?
노라: 이탈리아에 여행 갔던 얘기 했지? 거기 가지 않았으면, 토르발의 병은 낫지 않았을 거야.
린데 부인: 그래, 네 아버지가 필요한 경비를 다 주셨지.
노라: (웃으며) 그래, 토르발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 하지만….
린데 부인: 하지만?
노라: 아빠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내가 직접 돈을 구했으니까.
린데 부인: 네가? 굉장히 큰 돈인데.
노라: 4천하고도 8백 크로네야.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린데 부인: 하지만 노라, 그게 가능한 일이니? 복권에라도 당첨된 거야?
노라: (거들먹거리면서) 복권? (콧방귀를 끼며) 그런 게 자랑거리가 되겠니?
린데 부인: 그럼 도대체 어디서 구했어?
노라: (콧노래를 부르며 비밀스럽게 웃는다) 흠, 트랄라라라!
린데 부인: 빌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노라: 그래? 어째서?
린데 부인: 부인은 남편 허락 없이는 돈을 빌려 쓸 수 없어.
노라: (머리를 끄떡이며) 맞아. 하지만 부인이 수완이 있고 사리에 밝은 여자라면…
(중략)
린데 부인: 내 말 잘 들어, 노라. 어쨌든 바보 같은 짓은 안 한 거지?
노라: (다시 몸을 앞으로 일으켜 고쳐 앉으며 남편의 생명을 구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야?
린데 부인: 남편 모르게 너 혼자 처리한다는 게 바보짓이지.….
노라: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어! 하느님 맙소사, 넌 이해 못 하는구나. 얼마나 위독한 상태였는지 그이에게 알릴 수도 없었어. 의사가 나에게 와서 그 사람 목숨이 위험하다는 거야.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이를 설득하려고 했지. 다른 젊은 아내들처럼 외국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애원하고, 울기도 했어.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내 뜻대로 하자고 했어. 돈을 빌리는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 그이는 펄쩍 뛰더군, 크리스티네. 그 사람이 말하길, 내가 경솔하다는 거야. 줏대 없이 흔들리고 변덕이 심하다나. 날 그렇게 봤던 거야. 내 줏대 없음과 변덕을 들어주지 않는 게 남편의 의무라고 하더군. 그래, 난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목숨을 살려야 하니까. 그때 어떤 계획이 떠올랐지.
린데 부인: 남편은 네가 마련한 돈이 아버지로부터 얻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
노라: 몰랐지. 아빠는 곧바로 돌아가셨으니까. 난 남편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어. 그 사람은 병들어 누워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지.
린데 부인: 그래서 남편한테 여태껏 털어놓지 않았어?
노라: 그럼, 말도 안 되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그런 일에 아주 엄격해. 토르발은 남자로서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야. 만일 자기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여길 거야. 어쩌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돼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생활도, 행복한 가정도 다 끝나 버리고 말겠지.
(중략)
린데 부인: 불쌍한 노라! 그래서 네 용돈까지 다 써버렸어?
노라: 그럼. 물론이지. 아무래도 돈 문제는 나 혼자 책임져야 했으니까. 토르발이 나에게 새 옷을 사라고, 혹은 어떤 이유로든 돈을 주면 난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모아 뒀어. 언제나 평범하고 싼 옷들만 샀지. 다행히도 난 아무 옷이나 다 잘 어울려서 토르발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가끔은 슬퍼질 때가 있었어, 크리스티네. 옷을 잘 차려입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그렇지 않니?
린데 부인: 그렇지.
노라: 난 또 다른 방법으로도 돈을 모았지. 지난겨울, 정말 운 좋게도 난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거리를 맡았어. 그래서 매일 밤 문을 걸어 잠그고 늦은 시간까지 남의 글을 대신 썼지. 아, 그땐 정말 피곤했어. 지쳤지. 그래도 앉아서 일하고 돈을 번다는 게 무척 즐거웠어. 마치 내가 남자가 된 것 같았어.
토론하기
(1) 린데 부인은 왜 자신의 친구인 노라가 큰돈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나요? 당시 사회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봅시다.
(2) 평소 노라와 남편 토르발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바탕으로 상상해봅시다.
(3) 노라는 별 고민 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편 몰래 큰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다른 작품에서 본 적 있나요? 이런 인물들의 이면이 만들어진 계기나 이유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인형의 집』은 주인공 노라와 그녀의 남편 토르발의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노라는 남편인 토르발의 위급했던 병이 다 낫고, 그가 은행 총재로 임명까지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비밀이 들통나면서 부부는 위기를 맞는데, 노라의 비밀이란 토르발의 중병을 치료하기 위한 이탈리아 요양 여행이 실은 그녀가 돈을 마련해서 떠났다는 사실이다. 노라는 자신이 돈을 빌린 방법은 물론이고 아내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편이 매우 자존심이 상할 것을 알고 지금까지 비밀로 간직해왔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남편을 도운 일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린데 부인(크리스티네)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토르발은 노라를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등하게 대하기보다 자신의 ‘종달새’, ‘다람쥐’라 부르며 그녀가 매우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노라는 자신을 대하는 토르발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그가 아는 모습이 전부 같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종달새’로 남아있기보다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서라도 돈을 빌리는 과감한 면도 있었다. 희곡이 창작될 당시 여성은 남편의 동의 없이는 혼자서 돈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노라의 선택은 부도덕으로 평가되기보다 차별적 관행에 따르지 않은 결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라에게 돈을 빌려줬던 크로그스타는 노라가 남편 몰래 돈을 빌린 데다가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녀를 협박한다. 노라가 남편에게 부탁해서 친구 린데 부인을 고용하려는 은행 서기직은 원래 그의 자리였고, 크로그스타는 토르발에게 부탁해도 자신의 해고를 무를 수 없자 아내인 노라가 대신 해결해주기를 요구한다. 노라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지만, 그의 협박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 비밀을 폭로하는 편지가 도착할 우체통 열쇠를 토르발이 노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 도중에 토르발은 노라의 비밀을 제대로 모르는 채로, 아내가 크로그스타에게서 해고를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격분하고 그녀를 의심한다. 평소 아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보기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노라의 성격을 그녀의 아버지와 닮았다고 판단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노라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노라는 비밀이 폭로되기 전까지 남편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고,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위기를 자신의 자살로 막으리라 결심한다.
[앞뒤 맥락]
주인공 노라는 남편인 토르발의 위급했던 병이 다 낫고, 그가 은행 총재로 임명까지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문은 주인공 노라와 그녀의 친구 린데 부인의 대화 장면이다. 노라는 오랜 친구인 린데 부인에게 남편의 병이 나을 수 있었던 이탈리아 요양 여행은 사실 자신이 구한 돈으로 다녀왔음을 고백한다. 희곡이 창작되었던 19세기 말 유럽에서 여성은 남편의 동의 없이는 돈도 빌릴 수 없었는데, 토르발은 금욕적이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서라도 요양 가자는 아내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그러자 노라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명하여 돈을 빌리고, 틈틈이 돈을 모아 빚을 갚아왔던 것이다. 노라의 아버지는 노라가 돈을 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노라는 돈을 빌렸던 은행 서기 닐스 크로그스타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총재인 남편을 찾아오자 위기를 맞는다. 크로그스타는 해고를 막아주지 않으면 노라가 서명을 위조해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남편과 은행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노라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살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가 편지를 보낼 우체통 열쇠를 토르발이 노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본문]
노라: 이쪽으로 와봐. (린데 부인을 소파로 끌어당겨 나란히 앉는다) 들어 봐. 내가 무엇 때문에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난 토르발의 생명을 구했어.
린데 부인: 구해? 어떻게?
노라: 이탈리아에 여행 갔던 얘기 했지? 거기 가지 않았으면, 토르발의 병은 낫지 않았을 거야.
린데 부인: 그래, 네 아버지가 필요한 경비를 다 주셨지.
노라: (웃으며) 그래, 토르발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 하지만….
린데 부인: 하지만?
노라: 아빠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내가 직접 돈을 구했으니까.
린데 부인: 네가? 굉장히 큰 돈인데.
노라: 4천하고도 8백 크로네야.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린데 부인: 하지만 노라, 그게 가능한 일이니? 복권에라도 당첨된 거야?
노라: (거들먹거리면서) 복권? (콧방귀를 끼며) 그런 게 자랑거리가 되겠니?
린데 부인: 그럼 도대체 어디서 구했어?
노라: (콧노래를 부르며 비밀스럽게 웃는다) 흠, 트랄라라라!
린데 부인: 빌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노라: 그래? 어째서?
린데 부인: 부인은 남편 허락 없이는 돈을 빌려 쓸 수 없어.
노라: (머리를 끄떡이며) 맞아. 하지만 부인이 수완이 있고 사리에 밝은 여자라면…
(중략)
린데 부인: 내 말 잘 들어, 노라. 어쨌든 바보 같은 짓은 안 한 거지?
노라: (다시 몸을 앞으로 일으켜 고쳐 앉으며 남편의 생명을 구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야?
린데 부인: 남편 모르게 너 혼자 처리한다는 게 바보짓이지.….
노라: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어! 하느님 맙소사, 넌 이해 못 하는구나. 얼마나 위독한 상태였는지 그이에게 알릴 수도 없었어. 의사가 나에게 와서 그 사람 목숨이 위험하다는 거야.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이를 설득하려고 했지. 다른 젊은 아내들처럼 외국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애원하고, 울기도 했어.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내 뜻대로 하자고 했어. 돈을 빌리는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 그이는 펄쩍 뛰더군, 크리스티네. 그 사람이 말하길, 내가 경솔하다는 거야. 줏대 없이 흔들리고 변덕이 심하다나. 날 그렇게 봤던 거야. 내 줏대 없음과 변덕을 들어주지 않는 게 남편의 의무라고 하더군. 그래, 난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목숨을 살려야 하니까. 그때 어떤 계획이 떠올랐지.
린데 부인: 남편은 네가 마련한 돈이 아버지로부터 얻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
노라: 몰랐지. 아빠는 곧바로 돌아가셨으니까. 난 남편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어. 그 사람은 병들어 누워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지.
린데 부인: 그래서 남편한테 여태껏 털어놓지 않았어?
노라: 그럼, 말도 안 되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그런 일에 아주 엄격해. 토르발은 남자로서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야. 만일 자기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여길 거야. 어쩌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돼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생활도, 행복한 가정도 다 끝나 버리고 말겠지.
(중략)
린데 부인: 불쌍한 노라! 그래서 네 용돈까지 다 써버렸어?
노라: 그럼. 물론이지. 아무래도 돈 문제는 나 혼자 책임져야 했으니까. 토르발이 나에게 새 옷을 사라고, 혹은 어떤 이유로든 돈을 주면 난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모아 뒀어. 언제나 평범하고 싼 옷들만 샀지. 다행히도 난 아무 옷이나 다 잘 어울려서 토르발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가끔은 슬퍼질 때가 있었어, 크리스티네. 옷을 잘 차려입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그렇지 않니?
린데 부인: 그렇지.
노라: 난 또 다른 방법으로도 돈을 모았지. 지난겨울, 정말 운 좋게도 난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거리를 맡았어. 그래서 매일 밤 문을 걸어 잠그고 늦은 시간까지 남의 글을 대신 썼지. 아, 그땐 정말 피곤했어. 지쳤지. 그래도 앉아서 일하고 돈을 번다는 게 무척 즐거웠어. 마치 내가 남자가 된 것 같았어.
토론하기
(1) 린데 부인은 왜 자신의 친구인 노라가 큰돈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나요? 당시 사회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봅시다.
(2) 평소 노라와 남편 토르발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바탕으로 상상해봅시다.
(3) 노라는 별 고민 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편 몰래 큰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다른 작품에서 본 적 있나요? 이런 인물들의 이면이 만들어진 계기나 이유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인형의 집』은 주인공 노라와 그녀의 남편 토르발의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노라는 남편인 토르발의 위급했던 병이 다 낫고, 그가 은행 총재로 임명까지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비밀이 들통나면서 부부는 위기를 맞는데, 노라의 비밀이란 토르발의 중병을 치료하기 위한 이탈리아 요양 여행이 실은 그녀가 돈을 마련해서 떠났다는 사실이다. 노라는 자신이 돈을 빌린 방법은 물론이고 아내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편이 매우 자존심이 상할 것을 알고 지금까지 비밀로 간직해왔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남편을 도운 일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린데 부인(크리스티네)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토르발은 노라를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등하게 대하기보다 자신의 ‘종달새’, ‘다람쥐’라 부르며 그녀가 매우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노라는 자신을 대하는 토르발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그가 아는 모습이 전부 같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종달새’로 남아있기보다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서라도 돈을 빌리는 과감한 면도 있었다. 희곡이 창작될 당시 여성은 남편의 동의 없이는 혼자서 돈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노라의 선택은 부도덕으로 평가되기보다 차별적 관행에 따르지 않은 결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라에게 돈을 빌려줬던 크로그스타는 노라가 남편 몰래 돈을 빌린 데다가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녀를 협박한다. 노라가 남편에게 부탁해서 친구 린데 부인을 고용하려는 은행 서기직은 원래 그의 자리였고, 크로그스타는 토르발에게 부탁해도 자신의 해고를 무를 수 없자 아내인 노라가 대신 해결해주기를 요구한다. 노라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지만, 그의 협박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 비밀을 폭로하는 편지가 도착할 우체통 열쇠를 토르발이 노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 도중에 토르발은 노라의 비밀을 제대로 모르는 채로, 아내가 크로그스타에게서 해고를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격분하고 그녀를 의심한다. 평소 아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보기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노라의 성격을 그녀의 아버지와 닮았다고 판단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노라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노라는 비밀이 폭로되기 전까지 남편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고,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위기를 자신의 자살로 막으리라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