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빅토르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매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3년 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 튀르크하임 수용소 네 곳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그는 이름도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서 남기고자 한다. 특히 소매에 신분을 구별해 주는 특별한 표시조차 달지 못한 채 멸시를 받았던 보통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고전본문
수용소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에 대해 그릇된 생각, 즉 감상이나 연민을 갖기 쉽다. 하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 수감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이자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이제 일정한 수의 수감자를 다른 수용소로 이동시킨다고 공식적인 발표가 났을 경우를 살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그 최종 목적지가 당연히 가스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감자 중에 병에 걸렸거나 쇠약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아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는 큰 수용소로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당자를 가리는 과정이 곧 개별적인 수감자들 사이에, 혹은 수감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수송을 할 때마다 수송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수감자들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었고,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때문에 누가 수송이 되느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용소로 들어올 때(적어도 아우슈비츠에서는 그랬다) 수감자들의 신상을 적은 기록은 소지품과 함께 압수되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가짜로 이름이나 직업을 댈 수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이렇게 하는 수감자들이 많았다. 이 번호는 수감자의 살갗에 문신으로 새겨지거나 바지나 윗도리 혹은 외투에 수놓아졌다. 감시병이 어떤 수감자를 벌주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저 그 번호를 힐끗(그 눈초리를 얼마나 무서워했던가!) 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절대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곧 수송될 처지에 놓인 수감자들을 살펴보자. 그들에게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고 또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이제 곧 끌려갈 친구의 목숨을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대신할 다른 사람, 즉 다른 ‘번호’를 수송자 명단에 집어 넣는다.
(…)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이 주제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하지만 자기 자신이 수감자로 갇혀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 과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의 의미 추구』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중에서
토론하기
(1) 빅토르 프랑클의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2) 수용인원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용소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저지른 나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3) 제3자가 생존자(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판단해야 할 때, ‘공정한 시야’를 확보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봅시다.
해설읽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그것이 초래한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 같은 비극에 대해 비판할 때, 그 악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나치(또는 아돌프 히틀러)를 쉽게 지목하곤 한다. 그러나 복잡한 역사적 사실을 제하고, 위에서 빅토르 프랑클이 서술하는 수용소 생활만 살펴보더라도 나치진영에 해당하는 인물은 감시병이 유일하다. 물론 감시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치는 아니지만 수감자들 사이에는 또 다른 지배자가 있었다.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로 카포(반장)였다. 수감자들에게 식량이 없을 때에도 카포들이 굶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카포의 권력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수감자 중에서 성질이 난폭하다가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이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카포들이 감시병들이나 나치대원들보다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나치대원들에게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졌다고 인정을 받는 수감자가 주로 카포로 뽑혔으며, 기대했던 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났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러나 정신과의사 출신인 빅토르 프랑클을 놀라게 했던 점은 그런 경우라도 일단 한 수감자가 카포로 선발되면 그들은 금세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의 행동양식을 닮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치대원들에 의해 행해지는 공식적인 카포 선발과는 별도로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시시때때로 자체적으로 카포 선발이 벌어지곤 했다.
빅토르 프랑클이 경험한 수용소 생활의 진정 끔찍한 점은 생존을 위해서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수감자들이 서로에게 나쁜 일을 하도록, 즉 가해자가 되도록 강제된다는 사실이었다.
역사학에서는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거가 중요하다고 말해지곤 한다. 증거가 있으면 이견 없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소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려고 할 경우에 증거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조직적인 대량학살의 경우, 죽음은 우발적 사건이나 부수적인 결과가 아니다. 이때 가해자는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체계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이럴 때 역사적 비극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서류고의 문서보다 생존자의 증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수감자로 갇혀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겪고 목격한 사람이 과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수용소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제3자로서 공정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용소 생활은 그들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들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볼만한 안목을 가지기 힘들다.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아니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 안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 있다. 빅토르 프랑클은 『인간의 의미 추구』에서 한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리고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생존자의 판단이 다소 왜곡되거나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왜곡됨과 치우침이야말로 때로는 그가 역사적 비극을 몸소 겪은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증거이기도 하다. 역사적 비극에 다가설 때, 사심 없는 객관성에 대한 추구가 역으로 비윤리성을 초래하지는 않는지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키워드
비극, 생존자, 수용소, 아우슈비츠, 의미, 인간성, 자유, 증언, 폭력, 학살
전후맥락
빅토르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매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3년 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 튀르크하임 수용소 네 곳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그는 이름도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서 남기고자 한다. 특히 소매에 신분을 구별해 주는 특별한 표시조차 달지 못한 채 멸시를 받았던 보통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고전본문
수용소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에 대해 그릇된 생각, 즉 감상이나 연민을 갖기 쉽다. 하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 수감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이자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이제 일정한 수의 수감자를 다른 수용소로 이동시킨다고 공식적인 발표가 났을 경우를 살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그 최종 목적지가 당연히 가스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감자 중에 병에 걸렸거나 쇠약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아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는 큰 수용소로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당자를 가리는 과정이 곧 개별적인 수감자들 사이에, 혹은 수감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수송을 할 때마다 수송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수감자들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었고,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때문에 누가 수송이 되느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용소로 들어올 때(적어도 아우슈비츠에서는 그랬다) 수감자들의 신상을 적은 기록은 소지품과 함께 압수되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가짜로 이름이나 직업을 댈 수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이렇게 하는 수감자들이 많았다. 이 번호는 수감자의 살갗에 문신으로 새겨지거나 바지나 윗도리 혹은 외투에 수놓아졌다. 감시병이 어떤 수감자를 벌주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저 그 번호를 힐끗(그 눈초리를 얼마나 무서워했던가!) 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절대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곧 수송될 처지에 놓인 수감자들을 살펴보자. 그들에게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고 또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이제 곧 끌려갈 친구의 목숨을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대신할 다른 사람, 즉 다른 ‘번호’를 수송자 명단에 집어 넣는다.
(…)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이 주제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하지만 자기 자신이 수감자로 갇혀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 과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의 의미 추구』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중에서
토론하기
(1) 빅토르 프랑클의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2) 수용인원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용소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저지른 나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3) 제3자가 생존자(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판단해야 할 때, ‘공정한 시야’를 확보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봅시다.
해설읽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그것이 초래한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 같은 비극에 대해 비판할 때, 그 악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나치(또는 아돌프 히틀러)를 쉽게 지목하곤 한다. 그러나 복잡한 역사적 사실을 제하고, 위에서 빅토르 프랑클이 서술하는 수용소 생활만 살펴보더라도 나치진영에 해당하는 인물은 감시병이 유일하다. 물론 감시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치는 아니지만 수감자들 사이에는 또 다른 지배자가 있었다.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바로 카포(반장)였다. 수감자들에게 식량이 없을 때에도 카포들이 굶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카포의 권력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수감자 중에서 성질이 난폭하다가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이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카포들이 감시병들이나 나치대원들보다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나치대원들에게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졌다고 인정을 받는 수감자가 주로 카포로 뽑혔으며, 기대했던 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났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러나 정신과의사 출신인 빅토르 프랑클을 놀라게 했던 점은 그런 경우라도 일단 한 수감자가 카포로 선발되면 그들은 금세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의 행동양식을 닮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치대원들에 의해 행해지는 공식적인 카포 선발과는 별도로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시시때때로 자체적으로 카포 선발이 벌어지곤 했다.
빅토르 프랑클이 경험한 수용소 생활의 진정 끔찍한 점은 생존을 위해서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수감자들이 서로에게 나쁜 일을 하도록, 즉 가해자가 되도록 강제된다는 사실이었다.
역사학에서는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거가 중요하다고 말해지곤 한다. 증거가 있으면 이견 없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소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려고 할 경우에 증거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조직적인 대량학살의 경우, 죽음은 우발적 사건이나 부수적인 결과가 아니다. 이때 가해자는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체계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이럴 때 역사적 비극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서류고의 문서보다 생존자의 증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수감자로 갇혀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겪고 목격한 사람이 과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수용소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제3자로서 공정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용소 생활은 그들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들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볼만한 안목을 가지기 힘들다.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아니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 안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 있다. 빅토르 프랑클은 『인간의 의미 추구』에서 한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리고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생존자의 판단이 다소 왜곡되거나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왜곡됨과 치우침이야말로 때로는 그가 역사적 비극을 몸소 겪은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증거이기도 하다. 역사적 비극에 다가설 때, 사심 없는 객관성에 대한 추구가 역으로 비윤리성을 초래하지는 않는지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키워드
비극, 생존자, 수용소, 아우슈비츠, 의미, 인간성, 자유, 증언, 폭력,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