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빅토르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매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3년 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 튀르크하임 수용소 네 곳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그는 종전과 해방 이후에 자신을 포함한 여러 생존자들에게 나타났던 이상현상들을 글로 남긴다. 그는 수용소 바깥으로 나왔다고 해서 갇혀있던 사람이 단번에 극적으로 자유를 회복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고전본문
이제 강제수용소에서의 정신의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풀려난 사람들의 심리이다. 해방의 체험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극도로 긴장했던 며칠이 지난 후 수용소 정문 위에 흰 깃발이 펄럭였던 그날 아침의 경험담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정신적 흥분 상태에 이어 전체적인 긴장이완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미친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들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고,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과감하게 수용소 밖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겨보았다. 우리에게 고함을 치며 명령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피하기 위해 자맥질*하는 오리처럼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감시병들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우리는 그들을 거의 못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재빠르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곧 다리가 아파오면서 구부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게 되었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탉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가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내 손을 잘라버리고 말테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자맥질 :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놀리면서 떴다 잠겼다 하는 행동
『인간의 의미 추구』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중에서
토론하기
(1)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좀처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마지막 대목에서 저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자신의 친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자신의 주변이나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인물들 중에서 아픈 사람, 망가진 사람, 나쁜 사람, 각각에 해당하는 사례를 하나씩 떠올려본 다음에 그 경계선에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그가 경계선에 있다고 판단한 자신의 근거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생존자들이 수용소에서의 견뎌야 했던 극도의 긴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절대 순탄하지 않다. 생존자들은 간절히 해방을 바랐지만 정작 해방이 되자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기쁨은 다시 새로 배워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 용어로 ‘이인증’depersonalization, 離人症*이라고 한다.
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용기를 갖고 힘을 내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바깥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을 떠올리는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자유를 얻은 다음에 어떤 사람이 알게 된 사실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용소에서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그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존자들은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지만 현실은 자기가 꿈꾸어오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년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과 고난을 전부 겪어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생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잔인한 운명 자체이다.
그러니까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물리적 속박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속박은 공고하게 남아있었다. 빅토르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았기 때문에 정신적 치료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특히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존자가 겪게 되는 위험을 잠수병에 빗대어 설명한다. 물 속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생존자들에게서 빈번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으로 생존자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적인 성향에 물들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적지 않은 생존자들이 이제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자유를 마음 내키는 대로 심지어는 잔인하게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기들이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했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들은 폭력과 불의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빅토르 프랑클은 한 사람이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미’는 한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변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빅토르 프랑클은 여기에 ‘의미치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미치료’가 다른 심리치료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발견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이인증 :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의 감정, 생각, 감각 등의 정신세계와 신체, 행동에 대해 분리되어서 관찰자처럼 느껴지는 증상
키워드
가해, 고통, 수용소, 아우슈비츠, 의미, 인간성, 폭력, 피해, 학살, 희생자
전후맥락
빅토르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매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3년 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 튀르크하임 수용소 네 곳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그는 종전과 해방 이후에 자신을 포함한 여러 생존자들에게 나타났던 이상현상들을 글로 남긴다. 그는 수용소 바깥으로 나왔다고 해서 갇혀있던 사람이 단번에 극적으로 자유를 회복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고전본문
이제 강제수용소에서의 정신의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풀려난 사람들의 심리이다. 해방의 체험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극도로 긴장했던 며칠이 지난 후 수용소 정문 위에 흰 깃발이 펄럭였던 그날 아침의 경험담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정신적 흥분 상태에 이어 전체적인 긴장이완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미친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들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고,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과감하게 수용소 밖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겨보았다. 우리에게 고함을 치며 명령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피하기 위해 자맥질*하는 오리처럼 몸을 움츠릴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감시병들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우리는 그들을 거의 못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재빠르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곧 다리가 아파오면서 구부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게 되었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탉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가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내 손을 잘라버리고 말테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자맥질 :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놀리면서 떴다 잠겼다 하는 행동
『인간의 의미 추구』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중에서
토론하기
(1)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좀처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마지막 대목에서 저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자신의 친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자신의 주변이나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인물들 중에서 아픈 사람, 망가진 사람, 나쁜 사람, 각각에 해당하는 사례를 하나씩 떠올려본 다음에 그 경계선에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그가 경계선에 있다고 판단한 자신의 근거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생존자들이 수용소에서의 견뎌야 했던 극도의 긴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절대 순탄하지 않다. 생존자들은 간절히 해방을 바랐지만 정작 해방이 되자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기쁨은 다시 새로 배워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 용어로 ‘이인증’depersonalization, 離人症*이라고 한다.
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용기를 갖고 힘을 내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바깥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을 떠올리는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자유를 얻은 다음에 어떤 사람이 알게 된 사실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용소에서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그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존자들은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지만 현실은 자기가 꿈꾸어오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년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과 고난을 전부 겪어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생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잔인한 운명 자체이다.
그러니까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물리적 속박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속박은 공고하게 남아있었다. 빅토르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았기 때문에 정신적 치료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특히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존자가 겪게 되는 위험을 잠수병에 빗대어 설명한다. 물 속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생존자들에게서 빈번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으로 생존자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적인 성향에 물들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적지 않은 생존자들이 이제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자유를 마음 내키는 대로 심지어는 잔인하게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기들이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했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들은 폭력과 불의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빅토르 프랑클은 한 사람이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미’는 한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변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빅토르 프랑클은 여기에 ‘의미치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미치료’가 다른 심리치료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발견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이인증 :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의 감정, 생각, 감각 등의 정신세계와 신체, 행동에 대해 분리되어서 관찰자처럼 느껴지는 증상
키워드
가해, 고통, 수용소, 아우슈비츠, 의미, 인간성, 폭력, 피해, 학살, 희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