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1951년, 평범한 농부였던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하 슈호프)는 독소전 참전 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와서 팔년째 수감 중이다. 여느 때처럼 슈호프는 오전 5시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려 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몸에서 오한이 난다. 그러나 수감자인 그는 예외 없이 바깥에 나가 주어진 작업을 해야만 한다.
고전본문
지금 여기 서 있는 죄수들은, 이제 조금 후면 염장*한 돼지비계를 베어물 수 있고, 빵에 버터를 잔뜩 발라 먹을 수도 있고, 설탕 물을 마실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위장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 속에 끼어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단 한 가지 기대밖엔 없었다. 반원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뜨거운 야챗국 한 그릇 훌훌 들이마실 수 있다면! 식은 것 두 그릇보다는 뜨거운 한 그릇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
슈호프는 드디어 거나한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빵은 남겨두었다. 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 빵까지 먹는다는 것은 어쩐지 분에 넘치는 일이다. 빵은 내일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배라는 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라서, 이전에 배불렀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또 시끄럽게 조를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슈호프는 자기 몫의 국을 다 먹어가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옆자리를 힐끔거리지는 않는다. 정당한 자기 몫을 먹고 있는데, 굳이 남의 그릇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쪽에 있던 녀석이 자리를 뜨자 키가 큰 노인인 유-81호가 와서 앉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슈호프가 슬쩍 쳐다본다. 슈호프는 이 노인이 제64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포인도소에 줄을 서 있을 때, 자기 반 대신 ‘사회주의 생활단지’ 건설장으로 작업을 하러 나간 반이 그 노인의 반이라는 것을 얼핏 들었다. 하루 종일 바람 피할 장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자기 자신들을 에워싸는 철조망을 치고 돌아왔음이 분명하다.
슈호프는 이 노인에 대해 이렇게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아예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 한번도 특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십 년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십 년을 첨가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슈호프는 오늘 처음으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소 내의 죄수들은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빠져서 이발할 필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수용소에서 하도 잘 먹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진 모양이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듯, 슈호프 머리 너머 어느 곳인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거무스름한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삼백 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내려놓는다.
*염장(鹽藏): 소금에 절여서 저장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토론하기
(1) 수용소 내 다른 수감자들과 구별되는 노인(유-81호)만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2)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설명해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봅시다.
해설읽기
저자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의 이름 ‘이반’은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의 하나다. 그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정치적인 활동을 한 적도 없는, 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인물이다. 이런 주인공의 특성과 그가 갇혀있는 수용소라는 장소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당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런 일들이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품고 지상에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련에서 벌어진다는 점이 비극적인 아이러니다.
솔제니친은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수용소의 경험을 묘사한다. 수용소 생활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깝고, 생존의 기반은 음식이기에 소설의 적지 않은 분량이 음식에 대한 설명에 할애된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음식이 호사스럽게 그려지는 상황 또한 수용소라는 장소의 특성을 드러내준다. 음식 앞에서는 수감자들 대다수가 동물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주인공 슈호프는 자신의 설정한 선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인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는 본문에 나와있는 것처럼 내일을 위해 빵을 조금 남겨두거나, 옆자리의 국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아무리 추워도 식사시간에는 모자를 벗어서 예절을 지키고자 한다. 저자가 슈호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 81호 노인은 슈호프보다 훨씬 고결한 인물이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십 년 형기가 끝나면 어느새 새로운 형기가 추가되어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된 수감자이다. 그런데 슈호프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이 노인의 식사장면은 숭고하기 그지 없어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종교적인 의식처럼 보인다. 그는 다른 죄수들처럼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지 않고 숟가락을 높이 들고 먹는다. 더러운 식탁에 빵을 바로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깔고 그 위에 놓는다. 치아는 없지만 딱딱한 빵을 굳은 잇몸으로 먹는다. 얼굴에 생기는 없지만 당당한 빛이 있다. 우리는 그의 당당한 모습을 통해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오랫동안 갇혀 있는 그에게 전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그의 시선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지배권력도 어떤 열악한 현실을 강제하더라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손이 바위처럼 단단해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솔제니친이 수용소 생활의 세부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솔제니친 자신이 수용소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제니친은 지배권력을 폭로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단순한 글을 쓰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등장인물들을 아주 정확하고 간결하게 묘사하는 편이다. 그는 문학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작가이다. 저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인내하며 선한 것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조망한다. 그러나 이런 저자의 접근방식은 역으로 약자들을 구속하고 학대하는 권력에 대한 그 어떤 선전선동보다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키워드
권력, 권위, 복종, 사회주의, 수용소,인간성, 존엄성, 폭력
전후맥락
1951년, 평범한 농부였던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하 슈호프)는 독소전 참전 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와서 팔년째 수감 중이다. 여느 때처럼 슈호프는 오전 5시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려 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몸에서 오한이 난다. 그러나 수감자인 그는 예외 없이 바깥에 나가 주어진 작업을 해야만 한다.
고전본문
지금 여기 서 있는 죄수들은, 이제 조금 후면 염장*한 돼지비계를 베어물 수 있고, 빵에 버터를 잔뜩 발라 먹을 수도 있고, 설탕 물을 마실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위장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 속에 끼어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단 한 가지 기대밖엔 없었다. 반원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뜨거운 야챗국 한 그릇 훌훌 들이마실 수 있다면! 식은 것 두 그릇보다는 뜨거운 한 그릇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
슈호프는 드디어 거나한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빵은 남겨두었다. 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 빵까지 먹는다는 것은 어쩐지 분에 넘치는 일이다. 빵은 내일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배라는 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라서, 이전에 배불렀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또 시끄럽게 조를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슈호프는 자기 몫의 국을 다 먹어가고 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옆자리를 힐끔거리지는 않는다. 정당한 자기 몫을 먹고 있는데, 굳이 남의 그릇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쪽에 있던 녀석이 자리를 뜨자 키가 큰 노인인 유-81호가 와서 앉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슈호프가 슬쩍 쳐다본다. 슈호프는 이 노인이 제64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포인도소에 줄을 서 있을 때, 자기 반 대신 ‘사회주의 생활단지’ 건설장으로 작업을 하러 나간 반이 그 노인의 반이라는 것을 얼핏 들었다. 하루 종일 바람 피할 장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자기 자신들을 에워싸는 철조망을 치고 돌아왔음이 분명하다.
슈호프는 이 노인에 대해 이렇게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아예 셀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 한번도 특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십 년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십 년을 첨가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슈호프는 오늘 처음으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소 내의 죄수들은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빠져서 이발할 필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수용소에서 하도 잘 먹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진 모양이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듯, 슈호프 머리 너머 어느 곳인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거무스름한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삼백 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내려놓는다.
*염장(鹽藏): 소금에 절여서 저장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토론하기
(1) 수용소 내 다른 수감자들과 구별되는 노인(유-81호)만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2)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설명해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봅시다.
해설읽기
저자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의 이름 ‘이반’은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의 하나다. 그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정치적인 활동을 한 적도 없는, 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인물이다. 이런 주인공의 특성과 그가 갇혀있는 수용소라는 장소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당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런 일들이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품고 지상에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련에서 벌어진다는 점이 비극적인 아이러니다.
솔제니친은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수용소의 경험을 묘사한다. 수용소 생활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깝고, 생존의 기반은 음식이기에 소설의 적지 않은 분량이 음식에 대한 설명에 할애된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음식이 호사스럽게 그려지는 상황 또한 수용소라는 장소의 특성을 드러내준다. 음식 앞에서는 수감자들 대다수가 동물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주인공 슈호프는 자신의 설정한 선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인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는 본문에 나와있는 것처럼 내일을 위해 빵을 조금 남겨두거나, 옆자리의 국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아무리 추워도 식사시간에는 모자를 벗어서 예절을 지키고자 한다. 저자가 슈호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 81호 노인은 슈호프보다 훨씬 고결한 인물이다. 그가 수용소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십 년 형기가 끝나면 어느새 새로운 형기가 추가되어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된 수감자이다. 그런데 슈호프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이 노인의 식사장면은 숭고하기 그지 없어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종교적인 의식처럼 보인다. 그는 다른 죄수들처럼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지 않고 숟가락을 높이 들고 먹는다. 더러운 식탁에 빵을 바로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깔고 그 위에 놓는다. 치아는 없지만 딱딱한 빵을 굳은 잇몸으로 먹는다. 얼굴에 생기는 없지만 당당한 빛이 있다. 우리는 그의 당당한 모습을 통해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오랫동안 갇혀 있는 그에게 전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그의 시선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지배권력도 어떤 열악한 현실을 강제하더라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손이 바위처럼 단단해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솔제니친이 수용소 생활의 세부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솔제니친 자신이 수용소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제니친은 지배권력을 폭로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단순한 글을 쓰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등장인물들을 아주 정확하고 간결하게 묘사하는 편이다. 그는 문학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작가이다. 저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인내하며 선한 것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조망한다. 그러나 이런 저자의 접근방식은 역으로 약자들을 구속하고 학대하는 권력에 대한 그 어떤 선전선동보다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키워드
권력, 권위, 복종, 사회주의, 수용소,인간성, 존엄성,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