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어느 외국인 탐험가가 유형지를 방문한다. 그곳의 재판관이면서 처형관인 장교는 탐험가에게 한 죄수의 처형장면을 보여주려 한다. 죄수의 죄목은 야간보초를 서다가 잠이 든 것과 그것을 책망하며 그를 채찍으로 때리는 대위를 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장교는 그에 대한 조사나 심문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죄수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처형기계는 죄수의 몸에 그가 위반한 죄목을 바늘로 기록하고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도록 고안된 장치다. 12시간이 지나면 죄수는 죽어서 구덩이로 던져지게 되어 있다. 이 기계는 전임 사령관이 개발했던 것인데, 그가 죽고 신임 사령관이 부임한 이후에는 폐지될 위기에 놓여 있다.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 제도에 대해 좋게 평가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전본문
장교는 아까 탐험가에게서 무관심한 태도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가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탐험가에게 마음껏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잠시 설명을 중단하였다. 죄수도 탐험가를 흉내냈다. 손을 눈 위에 얹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죄수가 눕는다는 말씀이지요”하고 탐험가는 의자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위로 걸쳤다.
“그렇습니다.” 장교는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손으로 자기의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졌다. “들어보십시오. 침대와 제도기에는 각각 전지가 달려 있습니다. 침대는 그 자체를 위해 전지가 필요하고, 제도기는 써레를 위해 전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잡아매어지면 곧 침대가 움직입니다. 그것은 매우 빠르면서도 작게 상하좌우로 흔들리게 됩니다. 당신은 아마 비슷한 장치를 병원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단지 저 침대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지요. 그 움직임은 써레의 움직임과 일치해야만 하니까요. 그런데 이 써레가 실제로는 판결의 집행을 떠맡고 있는 겁니다.”
“판결문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탐험가가 물었다.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장교가 놀라서 묻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고, 멍하니 생각이 잠긴 시선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설계도를 만지기에는 손이 너무 더럽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물통으로 가서 다시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가죽 지갑을 꺼내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판결은 엄하지 않습니다. 죄수가 범한 계율을 그의 몸에다 써레로 써 넣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의 몸에는,” 장교는 그 남자를 가리켰다. “네 상관을 존경하라는 말을 써넣습니다.”
탐험가는 그 남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장교가 그를 가리켰을 때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귀에 온 신경을 모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꼭 다문 입술은 그가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탐험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죄수를 쳐다보고 이렇게만 물었다. “저 사람은 판결문을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하고 장교는 곧 설명을 계속하려 했지만 탐험가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판결을 모르고 있다고요?” “모릅니다.” 장교는 다시 이렇게 말하고 탐험가로부터 그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바라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걸 그에게 알려주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알게 될 테니까요.” 죄수가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탐험가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죄수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그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때문에 탐험가는 뒤로 젖혔던 몸을 다시 앞으로 수그리고 물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그것도 모릅니다”하고 장교는 그에게서 무슨 특별한 말이라도 기대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모른다구요?”하고 탐험가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자신의 변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군요.” “그 사람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없었습니다”하고 장교는 옆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것은 마치 자신에겐 당연한 그런 일들의 이야기로 탐험가를 거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지만 저 사람에게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탐험가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솔제니친,「유형지에서」 중에서
토론하기
(1) 장교가 죄수를 처벌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의 생김새를 그려봅시다.
(2) 탐험가와 장교가 대립하는 쟁점은 무엇입니까?
(3)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처벌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처형기계에 놓인 죄수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설명해보세요.
해설읽기
카프카가 1919년 발표한 단편 「유형지에서」는 몸에 계율을 새겨주는 처형기계에 스스로 몸을 눕혀서 죽음을 맞는 장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처형기계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여기서는 처형기계를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비유로 보는 접근방식을 취해보고자 한다.
장교는 처형기계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다. 처형기구는 전임 사령관이 직접 설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 사령관은 유형지의 시설 전체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전임 사령관에 대한 믿음의 수준은 신앙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다. 신임 사령관이 들어오면서 과거 유형지에서 전임 사령관을 따르고 지지하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장교 한 사람만 남았다. 장교는 죄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으며 확신을 가지고 처형을 집행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장교와 죄수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식의 차이가 바로 그들 사이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교가 탐험가에게 죄수의 처형과 기계에 대해 설명할 때 죄수가 알아듣지 못하게 일부러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반면 처벌당사자인 죄수는 자신이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는 자신의 죄목을 처형기계가 열두 시간에 걸쳐서 바늘로 그의 몸에 상처로 새기는 글자를 해독하면서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탐험가는 이처럼 끔찍한 처벌방식을 고집하는 장교와 기괴한 기계장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합리적인 절차를 갖추고 있지 않고 지나치게 잔인하기 때문이다. 탐험가는 장교가 보여준 판결문 종이에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다. 자연스레 탐험가는 장교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고 자신이 사형될 것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형수에게 관심이 간다. 알고 보니 그의 죄목은 전날 늦잠을 잤다는 것이었다.
결국 장교는 탐험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기계장치가 신임 사령관은 물론 탐험가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어 폐지될 될 것을 예감한다. 자신이 유지 보수했던 기계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자, 장교는 스스로 기계를 작동시켜 버린다. 그는 죄수를 풀어주도록 명령하고 옷을 벗고 죄수 대신 처형기계에 매달린다. 장교는 죄수 대신 자기가 누워 ‘정당하여라!’라는 글귀를 몸에 새기려다 바늘에 온 몸이 찔려 죽고 만다.
이런 장교의 행동을 권력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잔혹한 처형기계가 우리가 이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권력관계의 전부일까? 신임 사령관은 기존의 제도 대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사람이다. 즉, 그는 새롭게 등장한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탐험가는 제3자처럼 보이지만 신임 사령관은 그를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가 ‘외국’에서 왔기 때문이다. 장교가 탐험가에게서 유형지와 처형기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호의를 얻어내고자 애쓰는 까닭도 그가 신임 사령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럽식 사고방식’을 보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에 주목한다면 「유형지에서」의 유형지와 장교를 식민지와 토착민으로 이해하는 식의 독법도 가능할 것이다. 장교가 사망한 다음에 탐험가가 전임 사령관이 묻힌 묘비에서 그가 다시 부활하여 유형지를 재정복하리라는 예언을 읽는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유럽식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미개한 권력숭배처럼 보이더라도 최소한 장교에게 처형기계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무엇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전임 사령관이 만든 제도와 관습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신임 사령관이 부임하자 그것을 하루 아침에 내다버린 모습은 과연 장교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처음 보는 탐험가에게 자기들을 데려가달라고 하는 사병과 죄수는 어떤가? 이 작품의 마지막은 사병과 죄수가 보트에 오르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탐험가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탐험가도 죄수에 대해 진정으로 연민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해설읽기
권력, 부조리, 사형, 재판, 죄수, 처벌
전후맥락
어느 외국인 탐험가가 유형지를 방문한다. 그곳의 재판관이면서 처형관인 장교는 탐험가에게 한 죄수의 처형장면을 보여주려 한다. 죄수의 죄목은 야간보초를 서다가 잠이 든 것과 그것을 책망하며 그를 채찍으로 때리는 대위를 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장교는 그에 대한 조사나 심문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죄수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처형기계는 죄수의 몸에 그가 위반한 죄목을 바늘로 기록하고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도록 고안된 장치다. 12시간이 지나면 죄수는 죽어서 구덩이로 던져지게 되어 있다. 이 기계는 전임 사령관이 개발했던 것인데, 그가 죽고 신임 사령관이 부임한 이후에는 폐지될 위기에 놓여 있다.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 제도에 대해 좋게 평가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전본문
장교는 아까 탐험가에게서 무관심한 태도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가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탐험가에게 마음껏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잠시 설명을 중단하였다. 죄수도 탐험가를 흉내냈다. 손을 눈 위에 얹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죄수가 눕는다는 말씀이지요”하고 탐험가는 의자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위로 걸쳤다.
“그렇습니다.” 장교는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손으로 자기의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졌다. “들어보십시오. 침대와 제도기에는 각각 전지가 달려 있습니다. 침대는 그 자체를 위해 전지가 필요하고, 제도기는 써레를 위해 전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잡아매어지면 곧 침대가 움직입니다. 그것은 매우 빠르면서도 작게 상하좌우로 흔들리게 됩니다. 당신은 아마 비슷한 장치를 병원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단지 저 침대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지요. 그 움직임은 써레의 움직임과 일치해야만 하니까요. 그런데 이 써레가 실제로는 판결의 집행을 떠맡고 있는 겁니다.”
“판결문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탐험가가 물었다.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장교가 놀라서 묻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고, 멍하니 생각이 잠긴 시선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설계도를 만지기에는 손이 너무 더럽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물통으로 가서 다시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가죽 지갑을 꺼내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판결은 엄하지 않습니다. 죄수가 범한 계율을 그의 몸에다 써레로 써 넣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의 몸에는,” 장교는 그 남자를 가리켰다. “네 상관을 존경하라는 말을 써넣습니다.”
탐험가는 그 남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장교가 그를 가리켰을 때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귀에 온 신경을 모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꼭 다문 입술은 그가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탐험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죄수를 쳐다보고 이렇게만 물었다. “저 사람은 판결문을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하고 장교는 곧 설명을 계속하려 했지만 탐험가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판결을 모르고 있다고요?” “모릅니다.” 장교는 다시 이렇게 말하고 탐험가로부터 그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바라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걸 그에게 알려주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알게 될 테니까요.” 죄수가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탐험가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죄수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그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때문에 탐험가는 뒤로 젖혔던 몸을 다시 앞으로 수그리고 물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그것도 모릅니다”하고 장교는 그에게서 무슨 특별한 말이라도 기대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모른다구요?”하고 탐험가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자신의 변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군요.” “그 사람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없었습니다”하고 장교는 옆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것은 마치 자신에겐 당연한 그런 일들의 이야기로 탐험가를 거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지만 저 사람에게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탐험가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솔제니친,「유형지에서」 중에서
토론하기
(1) 장교가 죄수를 처벌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의 생김새를 그려봅시다.
(2) 탐험가와 장교가 대립하는 쟁점은 무엇입니까?
(3)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처벌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처형기계에 놓인 죄수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설명해보세요.
해설읽기
카프카가 1919년 발표한 단편 「유형지에서」는 몸에 계율을 새겨주는 처형기계에 스스로 몸을 눕혀서 죽음을 맞는 장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처형기계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여기서는 처형기계를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비유로 보는 접근방식을 취해보고자 한다.
장교는 처형기계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다. 처형기구는 전임 사령관이 직접 설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 사령관은 유형지의 시설 전체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전임 사령관에 대한 믿음의 수준은 신앙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다. 신임 사령관이 들어오면서 과거 유형지에서 전임 사령관을 따르고 지지하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장교 한 사람만 남았다. 장교는 죄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으며 확신을 가지고 처형을 집행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장교와 죄수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식의 차이가 바로 그들 사이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교가 탐험가에게 죄수의 처형과 기계에 대해 설명할 때 죄수가 알아듣지 못하게 일부러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반면 처벌당사자인 죄수는 자신이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는 자신의 죄목을 처형기계가 열두 시간에 걸쳐서 바늘로 그의 몸에 상처로 새기는 글자를 해독하면서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탐험가는 이처럼 끔찍한 처벌방식을 고집하는 장교와 기괴한 기계장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합리적인 절차를 갖추고 있지 않고 지나치게 잔인하기 때문이다. 탐험가는 장교가 보여준 판결문 종이에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다. 자연스레 탐험가는 장교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고 자신이 사형될 것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형수에게 관심이 간다. 알고 보니 그의 죄목은 전날 늦잠을 잤다는 것이었다.
결국 장교는 탐험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기계장치가 신임 사령관은 물론 탐험가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어 폐지될 될 것을 예감한다. 자신이 유지 보수했던 기계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자, 장교는 스스로 기계를 작동시켜 버린다. 그는 죄수를 풀어주도록 명령하고 옷을 벗고 죄수 대신 처형기계에 매달린다. 장교는 죄수 대신 자기가 누워 ‘정당하여라!’라는 글귀를 몸에 새기려다 바늘에 온 몸이 찔려 죽고 만다.
이런 장교의 행동을 권력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잔혹한 처형기계가 우리가 이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권력관계의 전부일까? 신임 사령관은 기존의 제도 대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사람이다. 즉, 그는 새롭게 등장한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탐험가는 제3자처럼 보이지만 신임 사령관은 그를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가 ‘외국’에서 왔기 때문이다. 장교가 탐험가에게서 유형지와 처형기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호의를 얻어내고자 애쓰는 까닭도 그가 신임 사령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럽식 사고방식’을 보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에 주목한다면 「유형지에서」의 유형지와 장교를 식민지와 토착민으로 이해하는 식의 독법도 가능할 것이다. 장교가 사망한 다음에 탐험가가 전임 사령관이 묻힌 묘비에서 그가 다시 부활하여 유형지를 재정복하리라는 예언을 읽는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유럽식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미개한 권력숭배처럼 보이더라도 최소한 장교에게 처형기계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무엇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전임 사령관이 만든 제도와 관습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신임 사령관이 부임하자 그것을 하루 아침에 내다버린 모습은 과연 장교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처음 보는 탐험가에게 자기들을 데려가달라고 하는 사병과 죄수는 어떤가? 이 작품의 마지막은 사병과 죄수가 보트에 오르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탐험가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탐험가도 죄수에 대해 진정으로 연민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해설읽기
권력, 부조리, 사형, 재판, 죄수,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