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에리히 프롬에게 현대사회의 자유는 마냥 긍정적인 가치만은 아니었다. 인간은 이전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 홀가분한 느낌에는 고립감과 불안감도 배어있었다. 과거 공동체가 개인을 구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속에는 안정감, 소속감, 유대감이라는 요소도 틀림없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아의 고립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이 글에서 프롬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탈출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전본문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자유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자유가 이미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증명하려고 애썼다. 개인은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고, 자기 외부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조종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는 ‘개인’이 되었지만,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이었다. 이 근본적인 불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 있었다. 우선 재산의 소유가 그의 자아를 뒤에서 받쳐주었다. 인간으로서의 ‘그’와 그가 소유한 재산은 분리될 수 없었다. 사람의 옷이나 집은 그의 몸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아를 이루는 일부였다.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약할수록 재산을 가져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거나 잃으면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해지고, 타인들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어느 정도는 그를 제대로 성숙한 인간으로 생각지 않았다.
자아를 뒷받침하는 다른 요소는 명성과 권력이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재산 소유의 결과이고, 부분적으로는 경쟁 분야에서 거둔 성공의 결과였다. 재산의 뒷받침에 덧붙여 남들에게 존경받고 남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면, 그것들이 불안정한 개인의 자아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재산도 사회적 명성도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개인적 신망의 원천이었다. 가정에서 개인은 ‘대단한 인물’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렸고, 무대의 중심이었으며, 순진하게도 자신의 역할을 자연의 권리로 받아들였다. 그가 사회적 관계에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일지 모르지만, 집 안에서는 왕이었다. 가족 외에 민족적 자부심(유럽에서는 흔히 계급적 자부심)도 그에게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하찮은 인물이라 해도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만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자랑으로 삼을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 : 16세기 루터, 칼뱅 등의 종교 개혁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기독교의 주요 세력을 형성한 교파 및 사상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4장 근대인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 두 측면 중에서
토론하기
(1) 현재 자신의 ‘자아’를 뒷받침해주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나열해봅시다.
(2) 우리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중세 시대를 자유가 없는 억압적인 시대였다고 쉽게 부정적으로 폄하하곤 합니다. 그러나 현대적 자유의 이면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세 시대의 ‘자아’는 어땠을지 새롭게 평가해봅시다.
(3) 현대인이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설읽기
잘 알려지다시피 중세 시대의 서양은 신 중심의 사회였다. 교회의 역할은 개인과 신을 함께 묶어주는 공동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개인과 신의 사이를 매개하기 위해서는 종교인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교회(사제)는 개인과 신을 연결하는 고리였고, 한편으로는 개인의 개성을 제한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을 집단의 성원으로서 신과 대면하게 해주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개혁은 달랐다. 개인이 혼자서 신과 대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와 중대한 차이가 있다. 종교개학은 종교인(사제)의 권위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루터와 칼뱅에게 신앙은 완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었다.
신분제에 묶여있던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면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됐다. 근대 사회는 두 가지 면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 인간은 더욱 독립적이고 자립적이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고립되고 고독해졌다. 그동안 그를 지탱하던 공동체 역할을 해주었던 종교(신앙)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라는 문제를 이해하려면, 자유의 두 측면 가운데 한쪽만 따라가느라 다른 한쪽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유대로부터 해방은 개인에게 독립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지만, 동시에 고독과 고립을 느끼게 했다. 근대의 사회 체제는 개인을 발달시켰지만 자유로운 개인은 무력감에서 벗어나기가 쉽게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종류의 의존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에리히 프롬이 새로운 의존이 나타나는 배경으로 꼽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근대인의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무엇보다도 시장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상품을 구입할 때, 우리는 든든함과 만족감을 느끼면서 잠시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새 그 상품은 집 한 구석에서 처박혀 잊혀지고 우리는 머지 않아 다른 새로운 상품을 찾아나서야 한다. 개인들은 고립감과 무력감을 의식하는 대신 사업에서의 성공, 기분 전환, 즐기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같은 것들로 고독감과 무력감을 덮어서 가려버린다. 이처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용인된 행동양식에 동조하는 모습을 띤다.
특히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에 복종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부흥처럼 대중들이 권위적인 정치지도자에게 동조하고 굴복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들이 권위적인 정치지도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필요로 하고 적극적으로 욕망하기까지 한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소극적인 자유에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전후맥락
에리히 프롬에게 현대사회의 자유는 마냥 긍정적인 가치만은 아니었다. 인간은 이전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 홀가분한 느낌에는 고립감과 불안감도 배어있었다. 과거 공동체가 개인을 구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속에는 안정감, 소속감, 유대감이라는 요소도 틀림없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아의 고립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이 글에서 프롬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탈출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전본문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자유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자유가 이미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증명하려고 애썼다. 개인은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고, 자기 외부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조종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는 ‘개인’이 되었지만,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이었다. 이 근본적인 불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 있었다. 우선 재산의 소유가 그의 자아를 뒤에서 받쳐주었다. 인간으로서의 ‘그’와 그가 소유한 재산은 분리될 수 없었다. 사람의 옷이나 집은 그의 몸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아를 이루는 일부였다.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약할수록 재산을 가져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거나 잃으면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해지고, 타인들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어느 정도는 그를 제대로 성숙한 인간으로 생각지 않았다.
자아를 뒷받침하는 다른 요소는 명성과 권력이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재산 소유의 결과이고, 부분적으로는 경쟁 분야에서 거둔 성공의 결과였다. 재산의 뒷받침에 덧붙여 남들에게 존경받고 남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면, 그것들이 불안정한 개인의 자아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재산도 사회적 명성도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개인적 신망의 원천이었다. 가정에서 개인은 ‘대단한 인물’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렸고, 무대의 중심이었으며, 순진하게도 자신의 역할을 자연의 권리로 받아들였다. 그가 사회적 관계에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일지 모르지만, 집 안에서는 왕이었다. 가족 외에 민족적 자부심(유럽에서는 흔히 계급적 자부심)도 그에게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하찮은 인물이라 해도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만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자랑으로 삼을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 : 16세기 루터, 칼뱅 등의 종교 개혁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기독교의 주요 세력을 형성한 교파 및 사상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4장 근대인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 두 측면 중에서
토론하기
(1) 현재 자신의 ‘자아’를 뒷받침해주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나열해봅시다.
(2) 우리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중세 시대를 자유가 없는 억압적인 시대였다고 쉽게 부정적으로 폄하하곤 합니다. 그러나 현대적 자유의 이면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세 시대의 ‘자아’는 어땠을지 새롭게 평가해봅시다.
(3) 현대인이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설읽기
잘 알려지다시피 중세 시대의 서양은 신 중심의 사회였다. 교회의 역할은 개인과 신을 함께 묶어주는 공동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개인과 신의 사이를 매개하기 위해서는 종교인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교회(사제)는 개인과 신을 연결하는 고리였고, 한편으로는 개인의 개성을 제한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을 집단의 성원으로서 신과 대면하게 해주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개혁은 달랐다. 개인이 혼자서 신과 대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와 중대한 차이가 있다. 종교개학은 종교인(사제)의 권위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루터와 칼뱅에게 신앙은 완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었다.
신분제에 묶여있던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면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됐다. 근대 사회는 두 가지 면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 인간은 더욱 독립적이고 자립적이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고립되고 고독해졌다. 그동안 그를 지탱하던 공동체 역할을 해주었던 종교(신앙)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라는 문제를 이해하려면, 자유의 두 측면 가운데 한쪽만 따라가느라 다른 한쪽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유대로부터 해방은 개인에게 독립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지만, 동시에 고독과 고립을 느끼게 했다. 근대의 사회 체제는 개인을 발달시켰지만 자유로운 개인은 무력감에서 벗어나기가 쉽게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종류의 의존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에리히 프롬이 새로운 의존이 나타나는 배경으로 꼽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근대인의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무엇보다도 시장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상품을 구입할 때, 우리는 든든함과 만족감을 느끼면서 잠시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새 그 상품은 집 한 구석에서 처박혀 잊혀지고 우리는 머지 않아 다른 새로운 상품을 찾아나서야 한다. 개인들은 고립감과 무력감을 의식하는 대신 사업에서의 성공, 기분 전환, 즐기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같은 것들로 고독감과 무력감을 덮어서 가려버린다. 이처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용인된 행동양식에 동조하는 모습을 띤다.
특히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에 복종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부흥처럼 대중들이 권위적인 정치지도자에게 동조하고 굴복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들이 권위적인 정치지도자를 비판하기는커녕 필요로 하고 적극적으로 욕망하기까지 한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소극적인 자유에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