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외판원으로 일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잠들었으나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되어 있던 것이다.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레고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과 회사의 상사가 그의 방에 찾아오고 모두가 그의 끔찍한 모습을 보게 된다. 가족들은 차마 그레고르를 집 밖으로 내쫓지 못하지만, 결코 이전처럼 그를 대하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는 그를 엄격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며 심약한 어머니는 그를 돕고 싶어하지만 두려움에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여동생 그레테만이 소녀다운 의협심으로 자발적으로 그레고르의 식사를 챙겨주고 생활을 돌봐준다.
한편 절망에 빠져 있던 그레고르는 점차 인간으로서의 생활 방식을 잊게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은 음식을 선호하게 되고 동굴같이 어두운 방 안에서 곳곳을 기어다니는 것을 즐기는 등 본능적으로 벌레의 습성을 따르게 된다. 자신이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그레고르는 과거에 좋아했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방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그레고르를 발견한 어머니가 기절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이 모든 상황에 분노한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있는 힘껏 사과를 던진다. 그레고르의 등에 사과가 깊숙이 박히게 되고 그는 운신이 힘들 만큼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레고르가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버린 가족들은 각자 직업을 구하는 한편, 집에 하숙인을 들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러 나왔다가 하숙인들에게 정체를 들키면서 가족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진 가족들은 저 벌레가 정말 그레고르 본인이라면 가족들을 위해 진작 집을 떠나야 했다고 원망하며, 여태껏 집에 남아 식구들을 괴롭히는 벌레는 그레고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미 등의 상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던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대화를 들으며 죽게 된다. 이튿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족은 지금까지의 괴로웠던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서로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며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 가족들은 자신들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희망에 부푼다.
[고전본문]
“죽었다고요?”하고 잠자 부인은 말하면서 의심스러운 듯 할멈 쪽을 쳐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었고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척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제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요”하고 할멈은 말하며 확인해주기 위해 빗자루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옆으로 한참 쭉 밀어 보였다. 잠자 부인은 빗자루를 제지하려는 것 같은 몸짓을 취했지만 실제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자,”하고 잠자 씨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겠다.” 그가 성호를 긋자 세 여자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시체에서 눈을 뗴지 않고 내내 바라보고 있었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다들 좀 보세요. 어쩌면 저렇게 말랐을까요. 하기야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음식은 들여다 놓은 그대로 다시 내보내지곤 했지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완전히 납작한 모양으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알아보았다. 이제는 다리들이 더 이상 그의 몸을 받쳐 주지 못했고 피골이 상접한 것 말고는 시선을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레테야, 잠깐 우리 방으로 건너오너라.” 잠자 부인이 그레테는 시체 쪽을 뒤돌아보면서 부모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파출부 할멈은 문을 닫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쾌한 공기 속에는 이미 미지근한 기운이 약간 섞여 있었다. 벌써 삼월 말이었던 것이다.
(…) 그러고 나서 세 사람은 다 함께 집을 나섰는데, 몇 달 동안 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그들만이 타고 있던 차량 안 곳곳을 따스한 햇살이 밝게 비추어 주었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서 장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세하게 따져보니 전망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제까지는 서로 상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상당히 괜찮은 일자리를 얻은 데다 특히 앞으로 전도가 유망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상황을 최대한 개선하려면 물론 집을 옮기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은 이제 그레고르가 골랐던 지금의 집보다는 더 작고 더 싸면서도 위치가 더 좋고 전반적으로 더 실용적인 집을 얻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잠자 부부는 점점 생기가 돌고 있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최근에 두 볼이 창백해질 정도로 온갖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풍만한 처녀로 피어올랐다는 것을 거의 동시에 느꼈다. 부부는 점점 말수가 적어지더니 거의 무의식적인 눈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이제는 슬슬 딸에게 성실한 신랑감도 구해 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젊은 육체를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카프카 [변신] 중에서
토론하기
(1)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때 어째서 주인공이 거대한 벌레로 변하는 설정을 택했을까?
(2)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음에도, 그가 죽은 후 가족들이 더 행복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한 남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작스럽게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리는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변신’을 소재로 한 신화와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인공이 신비로운 영물(靈物)이나, 인간에게 무해한 자연물이 아니라 흉측하고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불안감이나 앞으로 그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벌레로 변한 이후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며, 대부분의 삶을 방안에 감금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점차 인간성을 잃고 벌레처럼 생활하고 사유하게 되는 그레고르가 아닌, 그의 변신으로 인해 갑자기 유일한 수입원을 잃은 채 거대한 벌레와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 된 가족들의 불쾌감과 불편함에 더 집중된다.
한편, 그레고르가 어째서 벌레로 변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초현실적인 설명도, 과학적인 설명도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이다. 사실 그가 벌레로 변하게 된 이유 자체는 소설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던 장남이 제 앞가림도 못 하는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어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레고르는 일체의 경제 활동이나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가족들을 대신하는 인물로, 아파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 속에서 누적된 피로를 감당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왔다. 그 와중에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음악 학교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남몰래 품고 있다. 벌레가 되어버린 후 그레고르는 자신의 앞날은 전혀 걱정하지 않은 채, 가족들을 위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할 뿐이다.
이처럼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그레고르가 어째서 벌레로 변하는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레고르에게 의존하여 살아왔음에도 벌레가 된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가족들은 어째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작가는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습게도 그가 벌레로 변하자 가족 구성원들은 이전까지의 무력한 태도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행하며 활력을 되찾는다. 반대로 벌레가 된 후 끊임없이 가족들을 걱정하던 그레고르는 자신이 가족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레고르가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지만, 작품의 결말은 가족들이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은 어떤 점에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인생의 행·불행은 결코 그 사람의 선악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맞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들의 외로움과 절망을 전한다.
[앞뒤 맥락]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외판원으로 일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잠들었으나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되어 있던 것이다.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레고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과 회사의 상사가 그의 방에 찾아오고 모두가 그의 끔찍한 모습을 보게 된다. 가족들은 차마 그레고르를 집 밖으로 내쫓지 못하지만, 결코 이전처럼 그를 대하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는 그를 엄격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며 심약한 어머니는 그를 돕고 싶어하지만 두려움에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여동생 그레테만이 소녀다운 의협심으로 자발적으로 그레고르의 식사를 챙겨주고 생활을 돌봐준다.
한편 절망에 빠져 있던 그레고르는 점차 인간으로서의 생활 방식을 잊게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은 음식을 선호하게 되고 동굴같이 어두운 방 안에서 곳곳을 기어다니는 것을 즐기는 등 본능적으로 벌레의 습성을 따르게 된다. 자신이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그레고르는 과거에 좋아했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방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그레고르를 발견한 어머니가 기절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이 모든 상황에 분노한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있는 힘껏 사과를 던진다. 그레고르의 등에 사과가 깊숙이 박히게 되고 그는 운신이 힘들 만큼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레고르가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버린 가족들은 각자 직업을 구하는 한편, 집에 하숙인을 들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러 나왔다가 하숙인들에게 정체를 들키면서 가족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진 가족들은 저 벌레가 정말 그레고르 본인이라면 가족들을 위해 진작 집을 떠나야 했다고 원망하며, 여태껏 집에 남아 식구들을 괴롭히는 벌레는 그레고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미 등의 상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던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대화를 들으며 죽게 된다. 이튿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족은 지금까지의 괴로웠던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서로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며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 가족들은 자신들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희망에 부푼다.
[고전본문]
“죽었다고요?”하고 잠자 부인은 말하면서 의심스러운 듯 할멈 쪽을 쳐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었고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척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제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요”하고 할멈은 말하며 확인해주기 위해 빗자루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옆으로 한참 쭉 밀어 보였다. 잠자 부인은 빗자루를 제지하려는 것 같은 몸짓을 취했지만 실제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자,”하고 잠자 씨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겠다.” 그가 성호를 긋자 세 여자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시체에서 눈을 뗴지 않고 내내 바라보고 있었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다들 좀 보세요. 어쩌면 저렇게 말랐을까요. 하기야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음식은 들여다 놓은 그대로 다시 내보내지곤 했지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완전히 납작한 모양으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알아보았다. 이제는 다리들이 더 이상 그의 몸을 받쳐 주지 못했고 피골이 상접한 것 말고는 시선을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레테야, 잠깐 우리 방으로 건너오너라.” 잠자 부인이 그레테는 시체 쪽을 뒤돌아보면서 부모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파출부 할멈은 문을 닫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쾌한 공기 속에는 이미 미지근한 기운이 약간 섞여 있었다. 벌써 삼월 말이었던 것이다.
(…) 그러고 나서 세 사람은 다 함께 집을 나섰는데, 몇 달 동안 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그들만이 타고 있던 차량 안 곳곳을 따스한 햇살이 밝게 비추어 주었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서 장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세하게 따져보니 전망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제까지는 서로 상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상당히 괜찮은 일자리를 얻은 데다 특히 앞으로 전도가 유망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상황을 최대한 개선하려면 물론 집을 옮기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은 이제 그레고르가 골랐던 지금의 집보다는 더 작고 더 싸면서도 위치가 더 좋고 전반적으로 더 실용적인 집을 얻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잠자 부부는 점점 생기가 돌고 있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최근에 두 볼이 창백해질 정도로 온갖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풍만한 처녀로 피어올랐다는 것을 거의 동시에 느꼈다. 부부는 점점 말수가 적어지더니 거의 무의식적인 눈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이제는 슬슬 딸에게 성실한 신랑감도 구해 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젊은 육체를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카프카 [변신] 중에서
토론하기
(1)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때 어째서 주인공이 거대한 벌레로 변하는 설정을 택했을까?
(2)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음에도, 그가 죽은 후 가족들이 더 행복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한 남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작스럽게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리는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변신’을 소재로 한 신화와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인공이 신비로운 영물(靈物)이나, 인간에게 무해한 자연물이 아니라 흉측하고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불안감이나 앞으로 그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벌레로 변한 이후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며, 대부분의 삶을 방안에 감금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점차 인간성을 잃고 벌레처럼 생활하고 사유하게 되는 그레고르가 아닌, 그의 변신으로 인해 갑자기 유일한 수입원을 잃은 채 거대한 벌레와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 된 가족들의 불쾌감과 불편함에 더 집중된다.
한편, 그레고르가 어째서 벌레로 변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초현실적인 설명도, 과학적인 설명도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이다. 사실 그가 벌레로 변하게 된 이유 자체는 소설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보다는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던 장남이 제 앞가림도 못 하는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어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레고르는 일체의 경제 활동이나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가족들을 대신하는 인물로, 아파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 속에서 누적된 피로를 감당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왔다. 그 와중에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음악 학교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남몰래 품고 있다. 벌레가 되어버린 후 그레고르는 자신의 앞날은 전혀 걱정하지 않은 채, 가족들을 위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할 뿐이다.
이처럼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그레고르가 어째서 벌레로 변하는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레고르에게 의존하여 살아왔음에도 벌레가 된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가족들은 어째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작가는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습게도 그가 벌레로 변하자 가족 구성원들은 이전까지의 무력한 태도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행하며 활력을 되찾는다. 반대로 벌레가 된 후 끊임없이 가족들을 걱정하던 그레고르는 자신이 가족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레고르가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지만, 작품의 결말은 가족들이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은 어떤 점에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인생의 행·불행은 결코 그 사람의 선악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맞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들의 외로움과 절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