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어느 날 요양원에 있던 어머니의 부고를 받게 된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채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어울렸던 어머니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정작 뫼르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장례식 절차에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시신을 살펴보는 절차를 사양할 뿐 아니라, 장례식 전야에 지인들과 밤을 새는 절차에도 따분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가 인상 깊게 느낀 것은 밤샌 다음 날 아침 마신 맛있는 밀크커피와 운구하는 길에 내리쬐었던 뜨거운 햇빛뿐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거의 느끼지 못하며 안락한 집에서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느낀다. 뫼르소의 이와 같은 무심하고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친해진 뫼르소는 그와 함께 알제 교외의 한 해수욕장에 놀러 가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레몽은 악연이 있는 아랍인 남성들과 마주치게 되고 칼에 찔리게 된다. 이후 다시 한번 아랍인들과 마주치게 되자 레몽은 그들에게 권총을 쏘려 하지만, 뫼르소는 그를 만류하며 권총을 받아든다.
[고전본문]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을 걸었다. 이제 태양은 찍어 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레몽이 자신이 가는 곳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닷가 끝까지 가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로 향해 모래밭으로 흐르고 있는 조그만 샘 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름기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마음은 거의 가라앉은 듯 아주 느긋한 빛이었다. 우리가 나타나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레몽을 찌른 녀석도 아무 말 없이 레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녀석은 그 악기로 낼 수 있는 세 가지 소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햇볕에 진동하는 해변 전체가 내 뒤에서 죄어들고 있었다. 나는 샘으로 향해 몇 걸음 나섰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아직 내게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얼굴 위에 드리운 그늘 탓이었던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토론하기
(1) 이 작품의 제목인 ‘이방인’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2) 주인공 뫼르소가 그날 처음 만날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도 4번이나 더 총을 쏜 이유는 무엇일까.
(3) 뫼르소는 살인 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질문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이 작품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었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작렬하는 태양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그는 무감각한 상태로 이미 죽은 시신을 향해 4번이나 더 총을 쏜 것이다. 이처럼 뫼르소의 살인은 명백한 죄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었다면 법정은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연극처럼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뫼르소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분위기에 맞는 행동을 억지로 하지 않으며, 또 주변 지인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적당한 말을 꾸며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결말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타인의 이해 영역 내에 있기 위해 우리의 진정한 마음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모두 일종의 거짓말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감형을 위해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는 대신, 변호를 포기하고 스스로 사형을 택한 뫼르소를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애도’라는 가장 내밀한 감정조차 사회가 정해놓은 범위 내의 행동으로 표출해야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사회적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물은 언제든지 반(反)사회적 인물로 낙인찍힐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은 뫼르소가 법정에 서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가 행한 살인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살해당한 아랍인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 아랍인은 마치 뫼르소가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서게 하기 위한 계기, 그리고 그가 자신을 향한 오해와 힐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죄를 뉘우친다는 거짓 선언을 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만 활용되는 것이다. 비록 주변인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뫼르소와 달리 이 인물은 소설에서 그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서사 외부로 떠밀리는 것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이방인’으로 전락해버린 아랍인이야말로 이 작품의 제목이 더 걸맞는 인물이 아닐까. 이처럼 교묘하게 은폐된 아랍인의 죽음이 과연 의도된 것인지 혹은 작가조차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뤄진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앞뒤 맥락]
어느 날 요양원에 있던 어머니의 부고를 받게 된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채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어울렸던 어머니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정작 뫼르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장례식 절차에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시신을 살펴보는 절차를 사양할 뿐 아니라, 장례식 전야에 지인들과 밤을 새는 절차에도 따분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가 인상 깊게 느낀 것은 밤샌 다음 날 아침 마신 맛있는 밀크커피와 운구하는 길에 내리쬐었던 뜨거운 햇빛뿐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거의 느끼지 못하며 안락한 집에서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느낀다. 뫼르소의 이와 같은 무심하고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친해진 뫼르소는 그와 함께 알제 교외의 한 해수욕장에 놀러 가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레몽은 악연이 있는 아랍인 남성들과 마주치게 되고 칼에 찔리게 된다. 이후 다시 한번 아랍인들과 마주치게 되자 레몽은 그들에게 권총을 쏘려 하지만, 뫼르소는 그를 만류하며 권총을 받아든다.
[고전본문]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을 걸었다. 이제 태양은 찍어 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레몽이 자신이 가는 곳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닷가 끝까지 가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로 향해 모래밭으로 흐르고 있는 조그만 샘 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름기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마음은 거의 가라앉은 듯 아주 느긋한 빛이었다. 우리가 나타나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레몽을 찌른 녀석도 아무 말 없이 레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녀석은 그 악기로 낼 수 있는 세 가지 소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햇볕에 진동하는 해변 전체가 내 뒤에서 죄어들고 있었다. 나는 샘으로 향해 몇 걸음 나섰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아직 내게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얼굴 위에 드리운 그늘 탓이었던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토론하기
(1) 이 작품의 제목인 ‘이방인’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2) 주인공 뫼르소가 그날 처음 만날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도 4번이나 더 총을 쏜 이유는 무엇일까.
(3) 뫼르소는 살인 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질문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이 작품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었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작렬하는 태양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그는 무감각한 상태로 이미 죽은 시신을 향해 4번이나 더 총을 쏜 것이다. 이처럼 뫼르소의 살인은 명백한 죄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었다면 법정은 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연극처럼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뫼르소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분위기에 맞는 행동을 억지로 하지 않으며, 또 주변 지인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적당한 말을 꾸며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결말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타인의 이해 영역 내에 있기 위해 우리의 진정한 마음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모두 일종의 거짓말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감형을 위해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는 대신, 변호를 포기하고 스스로 사형을 택한 뫼르소를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애도’라는 가장 내밀한 감정조차 사회가 정해놓은 범위 내의 행동으로 표출해야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사회적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물은 언제든지 반(反)사회적 인물로 낙인찍힐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은 뫼르소가 법정에 서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가 행한 살인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살해당한 아랍인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 아랍인은 마치 뫼르소가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서게 하기 위한 계기, 그리고 그가 자신을 향한 오해와 힐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죄를 뉘우친다는 거짓 선언을 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만 활용되는 것이다. 비록 주변인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뫼르소와 달리 이 인물은 소설에서 그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서사 외부로 떠밀리는 것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이방인’으로 전락해버린 아랍인이야말로 이 작품의 제목이 더 걸맞는 인물이 아닐까. 이처럼 교묘하게 은폐된 아랍인의 죽음이 과연 의도된 것인지 혹은 작가조차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뤄진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