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트로이 전쟁이 끝났는데도 오뒷세우스는 7년 간이나 오귀기아 섬에서 요정 칼립소와 지내고 있다. 칼륍소와 지내는 것도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괴로워한다. 신들은 오뒷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결정하였고, 칼륍소도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칼륍소가 오뒷세우스는 회유해 보지만 그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다.
고전본문
칼립소: 제우스의 자손 라에르테스의 아들, 꾀가 많은
오뒷세우스여! 그대는 정말 지금 곧장 그리운
고향 땅에 돌아가려 하시나요? 그렇다 해도 편히 가세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향 땅에 이르기 전에 얼마나 많은
화를 겪어야 할 운명인지 속으로 안다면
매일 그리는 그대의 아내를 보고 싶은 열망에도
이곳에, 바로 이곳에 나와 함께 머물며
이 집을 다스리며 죽지 않는 몸이 되고 싶어질 거예요.
정말 나는 외양에서 그녀 못지않다고 자부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들이 생김새나 신장에서
불사의 여신들과 겨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오뒷세우스: (꾀 많은 오뒷세우스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위대한 여신이여, 이 때문에 화를 내지 마시오.
현명한 페넬로페가 생김새와 신장에서
그대를 따라갈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대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시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 돌아가서 귀향의 날을
보기를 날마다 원합니다. 혹여 신들 중에
하나가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나를 난파시킨다 하더라도
나는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서 참을 것이오.
나는 이미 파도와 전쟁터에서 온갖 것들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더해지면 되라지요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5권 중
토론하기
(1) 오뒷세우스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오뒷세우스가 칼륍소의 회유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3) 영생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오뒷세우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이 오뒷세우스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해설읽기
『오뒷세이아』는 다음과 같이 오뒷세우스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해 주세요, 뮤즈여! 트로이아 성을 파괴한 뒤
멀리 멀리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던 꾀가 많은 그 사람에 대해서,
그는 수많은 도시들을 방문했고, 그 도시들의 풍습에 익숙해졌습니다.
게다가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고향으로 인도하려다가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1권 1행~5행).
꾀 많은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런데 오뒷세이아는 그의 무용담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임을 오뒷세이아의 서두에서 드러내고 있다. 왜 하필이면 고통이라는 주제를 이 서사시는 내세우고 있을까? 그 이유는 고통이 인간의 성숙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안할 때, 그리고 하는 일이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자신을 성찰하기 어렵다. 하지만 큰 어려움을 겪으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닥칠까, 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지략가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꾀로 성공한 자이다. 신들의 뜻이었는지, 그들은 오뒷세우스가 성공보다는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트로이 전쟁 이후 다른 전쟁 영웅들은 모두 귀환했지만 오뒷세우스만은 오귀기아라는 섬에서 칼륍소에게 무려 7년이나 억류되어 있다. 칼륍소는 그리스어에서 감추다라는 뜻의 단어와 연관되는 이름이다. 이름의 뜻대로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덮고, 감추는 일을 해왔다. 칼륍소는 뛰어난 외모를 가진 요정으로 오뒷세우스에게 육체적 쾌락을 제공해 주지만, 오뒷세우스의 마음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신들은 회의에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하고,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를 통해 이 사실을 칼립소에게 전달한다. 신들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에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회유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자신이 페넬로페 보다 외모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신들처럼 오뒷세우스가 영원하고 고통 없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의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었다. 오뒷세이아의 이 에피소드는 오뒷세우스라는 인물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모델이 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만일 오뒷세우스가 신들만이 누리는 영원한 삶을 선택했다면 신들 중 하나로 추앙받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위대한 인간으로는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는 어리석게도 영원한 삶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버린 것일까? 그가 영원한 삶보다는 인간의 삶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이 버거운 삶을 오뒷세우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삶이 그를 더 인간답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신들의 삶을 부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찾고, 그 곳에서 자신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만큼 살맛 나게 하는 것은 없다. 오뒷세우스는 아버지로서, 왕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영원한 삶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길을 택한 것이다.
키워드
전후맥락
트로이 전쟁이 끝났는데도 오뒷세우스는 7년 간이나 오귀기아 섬에서 요정 칼립소와 지내고 있다. 칼륍소와 지내는 것도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괴로워한다. 신들은 오뒷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결정하였고, 칼륍소도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칼륍소가 오뒷세우스는 회유해 보지만 그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다.
고전본문
칼립소: 제우스의 자손 라에르테스의 아들, 꾀가 많은
오뒷세우스여! 그대는 정말 지금 곧장 그리운
고향 땅에 돌아가려 하시나요? 그렇다 해도 편히 가세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향 땅에 이르기 전에 얼마나 많은
화를 겪어야 할 운명인지 속으로 안다면
매일 그리는 그대의 아내를 보고 싶은 열망에도
이곳에, 바로 이곳에 나와 함께 머물며
이 집을 다스리며 죽지 않는 몸이 되고 싶어질 거예요.
정말 나는 외양에서 그녀 못지않다고 자부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들이 생김새나 신장에서
불사의 여신들과 겨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오뒷세우스: (꾀 많은 오뒷세우스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위대한 여신이여, 이 때문에 화를 내지 마시오.
현명한 페넬로페가 생김새와 신장에서
그대를 따라갈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대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시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 돌아가서 귀향의 날을
보기를 날마다 원합니다. 혹여 신들 중에
하나가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나를 난파시킨다 하더라도
나는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서 참을 것이오.
나는 이미 파도와 전쟁터에서 온갖 것들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더해지면 되라지요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5권 중
토론하기
(1) 오뒷세우스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오뒷세우스가 칼륍소의 회유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3) 영생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오뒷세우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이 오뒷세우스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해설읽기
『오뒷세이아』는 다음과 같이 오뒷세우스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해 주세요, 뮤즈여! 트로이아 성을 파괴한 뒤
멀리 멀리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던 꾀가 많은 그 사람에 대해서,
그는 수많은 도시들을 방문했고, 그 도시들의 풍습에 익숙해졌습니다.
게다가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고향으로 인도하려다가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1권 1행~5행).
꾀 많은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런데 오뒷세이아는 그의 무용담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임을 오뒷세이아의 서두에서 드러내고 있다. 왜 하필이면 고통이라는 주제를 이 서사시는 내세우고 있을까? 그 이유는 고통이 인간의 성숙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안할 때, 그리고 하는 일이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자신을 성찰하기 어렵다. 하지만 큰 어려움을 겪으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닥칠까, 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지략가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꾀로 성공한 자이다. 신들의 뜻이었는지, 그들은 오뒷세우스가 성공보다는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트로이 전쟁 이후 다른 전쟁 영웅들은 모두 귀환했지만 오뒷세우스만은 오귀기아라는 섬에서 칼륍소에게 무려 7년이나 억류되어 있다. 칼륍소는 그리스어에서 감추다라는 뜻의 단어와 연관되는 이름이다. 이름의 뜻대로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덮고, 감추는 일을 해왔다. 칼륍소는 뛰어난 외모를 가진 요정으로 오뒷세우스에게 육체적 쾌락을 제공해 주지만, 오뒷세우스의 마음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신들은 회의에서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결정하고,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를 통해 이 사실을 칼립소에게 전달한다. 신들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에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회유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자신이 페넬로페 보다 외모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신들처럼 오뒷세우스가 영원하고 고통 없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의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었다. 오뒷세이아의 이 에피소드는 오뒷세우스라는 인물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모델이 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만일 오뒷세우스가 신들만이 누리는 영원한 삶을 선택했다면 신들 중 하나로 추앙받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위대한 인간으로는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는 어리석게도 영원한 삶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버린 것일까? 그가 영원한 삶보다는 인간의 삶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이 버거운 삶을 오뒷세우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삶이 그를 더 인간답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신들의 삶을 부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찾고, 그 곳에서 자신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만큼 살맛 나게 하는 것은 없다. 오뒷세우스는 아버지로서, 왕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영원한 삶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길을 택한 것이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