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욥은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고 신을 경외하며 온갖 악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사탄은 유대인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욥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신이 그를 부유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신은 욥의 신앙심의 순수성을 시험하도록 사탄에게 그의 생명을 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사탄은 욥의 재물, 자녀들을 빼앗는다. 욥은 신에 대한 경외심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신같이 결백한 사람이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욥의 세 친구들이 와서 욥에게 그가 저지른 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욥은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결백을 항변한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구약성서의 「욥기」라는 책의 결말에서 신은 욥에게 나타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신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밝히고, 시험을 이겨낸 욥에게 이전보다 더 큰 부와 훌륭한 자녀들을 선물한다.
고전본문
욥의 친구: 그대는 악인들이 받는 심판을 모두 받고 있소.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사로잡고 있소. 진노가 내리고 있으니 그 진노가 그대를 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그대를 구원할 수는 없소. 당신이 부유하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소. 금이나 힘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오. 밤이 오기를 바라지 마시오. 밤은 사람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끌고가오. 조심하고, 불의를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는 당신의 불행 때문에 불의를 선택했소. 보시오, 신은 그의 권능으로 우뚝 서 계신 분이오. 누가 그와 같이 가르치겠소.
욥의 항변: 만일 내가 거짓으로 행동하였다면, 내 발이 속임수를 향해 빨리 달려갔다면, 신이 나를 공평한 저울로 달아보길! 그리고 내 청렴함을 그가 아시길! 만일 내 걸음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면, 나의 마음이 내 눈을 따라 다녔다면, 만일 내 손에 더러움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고, 내가 심은 싹들이 다 뽑히기를!
신: (신이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말로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용사처럼 허리띠를 바로 매거라. 너에게 질문을 던질테니 답해보거라. 내가 땅을 조성할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해력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누가 땅의 척도를 정하였느냐, 너는 그것을 아느냐? 누가 땅 위에 재는 줄을 펼쳤느냐? 땅의 기초를 어디에 세웠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는냐?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느니라.
-『구약성서』, 「욥기」 중
토론하기
(1) 욥의 친구가 욥을 비난하는 이유를 말해 봅시다.
(2)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비난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말해봅시다.
(3) 억울하게 고통을 당할 때 당신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신의 변호가 인정받지 못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해설읽기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리고 그 신이 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신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할까?’ 선한 신은 왜 자연재해와 그에 따른 엄청난 희생에 대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왜 어떤 아이들은 유복한 집에서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다른 아이들은 장애를 갖고 태어날까? 왜 착한 사람들은 늘 핍박을 받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지만, 불의하게 치부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만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모순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고대 근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성서의 「욥기」는 욥이라는 정직하고 신을 경외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욥은 신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는데, 사탄은 신에게 욥의 종교심은 그가 받은 축복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신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데에 동의한다.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재산은 빼앗기고 사랑하는 자식들은 죽고, 가장 가까운 아내마저 신을 저주하라고 말한다. 욥이 아내의 말대로 신을 저주했다면 사탄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욥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욥도 사람인지라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다. ‘왜 나같이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이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자신은 정직하고 공정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거짓을 일삼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다. 이런 질문은 욥이 자신에게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욥과 같은 질문을 우리도 던질 수 있다. 특별히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아닌데, 큰 병에 걸리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욥의 항의는 우리 모두의 항의이다.
욥의 의문에 대해서 세 친구가 찾아와 그 질문에 답해준다. 답의 핵심은 고통은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한 보응이라는 것이다. 엘리후의 답은 바로 욥의 고통은 욥이 저지른른 악에 대한 징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응보적 사고방식은 인간의 정신적 습관이다. 우리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친구들이나 부모, 형제들이 ‘네가 그렇게 행동했느니 이렇게 된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언뜻 이러한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고,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결과를 일으킨 사람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욥의 상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욥을 포함한 우리는 우리와 전혀 무관한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경우 운전자 자신이이 음주를 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평소처럼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보행자를 탓할 수 있을까? 물론, 엘리후라면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변을 당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세상물정도 모르는 초등학생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욥이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러한 모순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때 신이 욥에게 나타난다. 신의 말의 핵심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잠시 살다가 죽지만 신은 세상을 만들고, 그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분이다. 사실, 인간이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불평하고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세상을 전과 달리 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도 있고, 더욱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욥기」의 결론에 따르면, 욥이 고통을 받기 이전보다 더 큰 신의 축복을 받았는데, 신이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그런 축복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서 욥이 더 큰 인간적 축복을 받도록 성숙시키려 했을 것이다.
키워드
고통, 섭리, 신, 신정론, 인과응보
전후맥락
욥은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고 신을 경외하며 온갖 악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사탄은 유대인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욥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신이 그를 부유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신은 욥의 신앙심의 순수성을 시험하도록 사탄에게 그의 생명을 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사탄은 욥의 재물, 자녀들을 빼앗는다. 욥은 신에 대한 경외심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신같이 결백한 사람이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욥의 세 친구들이 와서 욥에게 그가 저지른 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욥은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결백을 항변한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구약성서의 「욥기」라는 책의 결말에서 신은 욥에게 나타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신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밝히고, 시험을 이겨낸 욥에게 이전보다 더 큰 부와 훌륭한 자녀들을 선물한다.
고전본문
욥의 친구: 그대는 악인들이 받는 심판을 모두 받고 있소.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사로잡고 있소. 진노가 내리고 있으니 그 진노가 그대를 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그대를 구원할 수는 없소. 당신이 부유하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소. 금이나 힘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오. 밤이 오기를 바라지 마시오. 밤은 사람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끌고가오. 조심하고, 불의를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는 당신의 불행 때문에 불의를 선택했소. 보시오, 신은 그의 권능으로 우뚝 서 계신 분이오. 누가 그와 같이 가르치겠소.
욥의 항변: 만일 내가 거짓으로 행동하였다면, 내 발이 속임수를 향해 빨리 달려갔다면, 신이 나를 공평한 저울로 달아보길! 그리고 내 청렴함을 그가 아시길! 만일 내 걸음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면, 나의 마음이 내 눈을 따라 다녔다면, 만일 내 손에 더러움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고, 내가 심은 싹들이 다 뽑히기를!
신: (신이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말로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용사처럼 허리띠를 바로 매거라. 너에게 질문을 던질테니 답해보거라. 내가 땅을 조성할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해력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누가 땅의 척도를 정하였느냐, 너는 그것을 아느냐? 누가 땅 위에 재는 줄을 펼쳤느냐? 땅의 기초를 어디에 세웠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는냐?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느니라.
-『구약성서』, 「욥기」 중
토론하기
(1) 욥의 친구가 욥을 비난하는 이유를 말해 봅시다.
(2)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비난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말해봅시다.
(3) 억울하게 고통을 당할 때 당신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신의 변호가 인정받지 못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해설읽기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리고 그 신이 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신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할까?’ 선한 신은 왜 자연재해와 그에 따른 엄청난 희생에 대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왜 어떤 아이들은 유복한 집에서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다른 아이들은 장애를 갖고 태어날까? 왜 착한 사람들은 늘 핍박을 받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지만, 불의하게 치부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만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모순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고대 근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성서의 「욥기」는 욥이라는 정직하고 신을 경외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욥은 신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는데, 사탄은 신에게 욥의 종교심은 그가 받은 축복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신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데에 동의한다.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재산은 빼앗기고 사랑하는 자식들은 죽고, 가장 가까운 아내마저 신을 저주하라고 말한다. 욥이 아내의 말대로 신을 저주했다면 사탄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욥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욥도 사람인지라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다. ‘왜 나같이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이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자신은 정직하고 공정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거짓을 일삼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다. 이런 질문은 욥이 자신에게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욥과 같은 질문을 우리도 던질 수 있다. 특별히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아닌데, 큰 병에 걸리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욥의 항의는 우리 모두의 항의이다.
욥의 의문에 대해서 세 친구가 찾아와 그 질문에 답해준다. 답의 핵심은 고통은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한 보응이라는 것이다. 엘리후의 답은 바로 욥의 고통은 욥이 저지른른 악에 대한 징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응보적 사고방식은 인간의 정신적 습관이다. 우리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친구들이나 부모, 형제들이 ‘네가 그렇게 행동했느니 이렇게 된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언뜻 이러한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고,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결과를 일으킨 사람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욥의 상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욥을 포함한 우리는 우리와 전혀 무관한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경우 운전자 자신이이 음주를 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평소처럼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보행자를 탓할 수 있을까? 물론, 엘리후라면 뭔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변을 당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세상물정도 모르는 초등학생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욥이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러한 모순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때 신이 욥에게 나타난다. 신의 말의 핵심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잠시 살다가 죽지만 신은 세상을 만들고, 그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분이다. 사실, 인간이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불평하고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어린 시절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세상을 전과 달리 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도 있고, 더욱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욥기」의 결론에 따르면, 욥이 고통을 받기 이전보다 더 큰 신의 축복을 받았는데, 신이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그런 축복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서 욥이 더 큰 인간적 축복을 받도록 성숙시키려 했을 것이다.
키워드
고통, 섭리, 신, 신정론, 인과응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