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고백록』에서 솔직하게 기술하는데, 아래 본문은 배서리 경험을 기술하는 부분이다. 그는 이 절도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악 자체를 사랑하는 성향이 있음을 통찰해 내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사상가로서 그는 선한 창조주자로서의 신을 믿기 때문에 악은 그가 만든 선한 세계에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다.
고전본문
(가) 주님, 도둑질은 당신의 법과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 이 불의함은 이 법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도둑이 다른 도둑을 참아내겠습니까? 부유한 도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도둑이 궁핍해서 도둑질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둑질하기를 욕망했습니다. 저는 굶주림이나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착하게 지내는 것이 따분해서 그리고 그저 죄를 짓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지고 있고,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을 했습니다. 내가 도둑질한 물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도둑질과 죄짓는 것 그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우리집 포도밭 근처에 있는 열매로 가득한 배나무는 빛깔이나 맛이 식욕을 자극할 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늦은 밤 몇몇 탐심있는 젊은 친구들이 나무를 흔들어 배를 훔쳐서 잔뜩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만 보고 돼지들에게 던져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 피조물은 존재 그 자체로 선합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합니다. 내가 좇았던 악은 정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진짜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부패할 수 없는 것, 즉 최고로 선한 것이거나, 아니면 부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존재하는 것이 선하다면 부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께서 만물을 선하게 만드셨음을 압니다. 당신이 만드시지 않은 존재란 없습니다. 당신은 만물을 동등한 지위로 만드시지 않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에서
토론하기
(1) 저자가 마음 속에서 느끼는 갈등은 무엇입니까?
(2)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행동을 하고픈 욕구를 느낀 적이 있다면 말해 봅시다.
(3)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정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배치되는 생각은 아닐까? 아우구스티누스 스스로도 악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은 선하다는 주장을 왜 했을까?
(4)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런 생각이 우리의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해설읽기
가끔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데,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나쁜 생각을 품게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절친한 친구라면 배신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음 속에 문득 그런 끔찍한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과학이 답변할 수 없으며 오직 종교만이 여러 답을 줄 수 있다. 윗글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성인이자, 신학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자기 고백적인 글의 일부이다. 그는 로마의 궁전 대변인을 지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평생 가톨릭의 주교로서 많은 글을 쓰면서 보냈다. 윗글의 출처인 『고백록』은 주교가 된 이후에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개종까지의 과정을 자기 고백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적 인생관,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글 (가)는 저자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악에 대한 충동을 기술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그는 도둑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고픈 마음 그 자체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배서리를 하고 나서 그것을 돼지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바로 그가 도둑질을 위해서 도둑질을 한 것임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망각하고 사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기억은 그리스도교 주교가 되어서 그가 악의 문제에 대해서 사색할 때 소환된다. 그는 이제 인간은 왜 악을 저지르는가? 악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인간은 선함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왜 악을 사랑하는가? 이런 질문을 놓고 씨름한다. 그의 사유의 결과는 (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철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지문이지만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결론은 모든 것은 선한 신이 만들었으니 세상은 선하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악에 대한 경험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우선 그가 선한 신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는 선한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니 그분의 작품인 세상이 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한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편만할까? 왜 어떤 사람은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지진, 쓰나미, 정치적 불의, 살인 등의 극한 범죄가 끊이지 않을까? 이러한 명백한 악의 현실 앞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에 보이는 악은 실체가 아니라고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큰 병이 들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몸에 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악은 너무나 명백하여 사람들은 그것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보자. 큰 병에 걸렸지만, 그 사람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이 남아있다. 병을 제외하고는 그는 여전히 전체적으로 보아서 사람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말을 하며,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에 비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병이란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이 압도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악이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에는 아름다운 자연, 시시각각 드러나는 신의 섭리,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들이 오히려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덧붙여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자리를 인간의 의지, 즉 하고자 하는 마음에 둔다. 이 말은 악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선택한 악은 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있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키워드
사랑, 선, 신, 악, 의지
전후맥락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고백록』에서 솔직하게 기술하는데, 아래 본문은 배서리 경험을 기술하는 부분이다. 그는 이 절도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악 자체를 사랑하는 성향이 있음을 통찰해 내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사상가로서 그는 선한 창조주자로서의 신을 믿기 때문에 악은 그가 만든 선한 세계에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다.
고전본문
(가) 주님, 도둑질은 당신의 법과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 이 불의함은 이 법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도둑이 다른 도둑을 참아내겠습니까? 부유한 도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도둑이 궁핍해서 도둑질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둑질하기를 욕망했습니다. 저는 굶주림이나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착하게 지내는 것이 따분해서 그리고 그저 죄를 짓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지고 있고,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을 했습니다. 내가 도둑질한 물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도둑질과 죄짓는 것 그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우리집 포도밭 근처에 있는 열매로 가득한 배나무는 빛깔이나 맛이 식욕을 자극할 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늦은 밤 몇몇 탐심있는 젊은 친구들이 나무를 흔들어 배를 훔쳐서 잔뜩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만 보고 돼지들에게 던져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 피조물은 존재 그 자체로 선합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합니다. 내가 좇았던 악은 정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진짜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부패할 수 없는 것, 즉 최고로 선한 것이거나, 아니면 부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존재하는 것이 선하다면 부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께서 만물을 선하게 만드셨음을 압니다. 당신이 만드시지 않은 존재란 없습니다. 당신은 만물을 동등한 지위로 만드시지 않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에서
토론하기
(1) 저자가 마음 속에서 느끼는 갈등은 무엇입니까?
(2)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행동을 하고픈 욕구를 느낀 적이 있다면 말해 봅시다.
(3)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정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배치되는 생각은 아닐까? 아우구스티누스 스스로도 악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은 선하다는 주장을 왜 했을까?
(4)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런 생각이 우리의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해설읽기
가끔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데,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나쁜 생각을 품게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절친한 친구라면 배신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음 속에 문득 그런 끔찍한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과학이 답변할 수 없으며 오직 종교만이 여러 답을 줄 수 있다. 윗글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성인이자, 신학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자기 고백적인 글의 일부이다. 그는 로마의 궁전 대변인을 지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평생 가톨릭의 주교로서 많은 글을 쓰면서 보냈다. 윗글의 출처인 『고백록』은 주교가 된 이후에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개종까지의 과정을 자기 고백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적 인생관,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글 (가)는 저자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악에 대한 충동을 기술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그는 도둑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고픈 마음 그 자체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배서리를 하고 나서 그것을 돼지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바로 그가 도둑질을 위해서 도둑질을 한 것임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은 망각하고 사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기억은 그리스도교 주교가 되어서 그가 악의 문제에 대해서 사색할 때 소환된다. 그는 이제 인간은 왜 악을 저지르는가? 악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인간은 선함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왜 악을 사랑하는가? 이런 질문을 놓고 씨름한다. 그의 사유의 결과는 (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철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지문이지만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결론은 모든 것은 선한 신이 만들었으니 세상은 선하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악에 대한 경험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우선 그가 선한 신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는 선한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니 그분의 작품인 세상이 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한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편만할까? 왜 어떤 사람은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지진, 쓰나미, 정치적 불의, 살인 등의 극한 범죄가 끊이지 않을까? 이러한 명백한 악의 현실 앞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에 보이는 악은 실체가 아니라고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큰 병이 들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몸에 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악은 너무나 명백하여 사람들은 그것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보자. 큰 병에 걸렸지만, 그 사람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이 남아있다. 병을 제외하고는 그는 여전히 전체적으로 보아서 사람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말을 하며,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에 비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병이란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이 압도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악이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에는 아름다운 자연, 시시각각 드러나는 신의 섭리,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들이 오히려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덧붙여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자리를 인간의 의지, 즉 하고자 하는 마음에 둔다. 이 말은 악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선택한 악은 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있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키워드
사랑, 선, 신, 악,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