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보에티우스는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반역자로 몰려서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사람에게 철학의 여신이 찾아와 인생에 대한 여러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철학의 여신에 따르면, 변하는 대상은 언제든 우리에게서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 대상에서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고전본문]
죽을 운명의 자녀들이여, 왜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을 바깥에서 찾고 있는가? 오류와 무지가 당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너에게 완전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히 보여줄 것이다. 너 자신보다 너에게 더 소중한 것이 있는가? 어떤 것도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너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너 자신의 주인이라면 너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운명의 여신이 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행복은 결코 우연의 장난에 불과한 것들에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아라. 만일 행복이 이성을 따르는 살아 있는 피조물에게 최고의 선이라면, 그리고 빼앗길 수 있는 것은 결코 최고의 선이 아니라면-왜냐하면 빼앗길 수 없는 것이 그것보다 더 좋기 때문에,- 운명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에 행복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철학의 위안』 2권 4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철학의 여신은 왜 완전한 행복이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조언하는가?
(2) 바라던 것을 가지면 행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의 정도가 줄어든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말해 보자. 왜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은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없을까?
(3)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의 길과 보에티우스가 말하는 행복의 길의 차이를 말해보고, 보에티누스의 행복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해설읽기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무엇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이 행복에 이르고자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멋진 외모, 높은 학력을 가지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여 나쁜 약물이나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외적인 조건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본문에서 철학의 여신은 외적인 행복의 조건을 모두 잃어버린 보에티우스를 향하여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보에티우스는 높은 학력과 지위를 가졌으며, 두 아들 모두 로마의 집정관이 되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그는 그 모든 것을 한 순간 잃어버리게 되었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에게 그가 누리던 행복은 허상이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행복의 근거는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부나 명성 사회적 지위같은 것이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들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찾는 행복이란 덧없는 대상에 불과하다. 경험적으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덧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집착은 일종의 영혼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신을 보에티우스에게서 이러한 질병을 치유하려 한다. 여신의 처방은 밖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즉 마음에 무엇이 있길래 그것을 들여다 보라는 뜻인가? 평범한 우리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방금 행복을 덧없는 대상에서 얻으려고 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영원한 그리고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의 근원이 있을까? 보에티우스에게 그것은 신이다. 신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바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유신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을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무신론자들이나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신에게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면 신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바꿀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가치, 변하지 않는 예술혼, 변하지 않는 학문적 진리, 변하지 않는 정신, 이러한 것들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부와 명예보다는 이러한 것을 찾아서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키워드
운명, 이성, 최고선, 행복
[앞뒤 맥락]
보에티우스는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반역자로 몰려서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사람에게 철학의 여신이 찾아와 인생에 대한 여러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철학의 여신에 따르면, 변하는 대상은 언제든 우리에게서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 대상에서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고전본문]
죽을 운명의 자녀들이여, 왜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을 바깥에서 찾고 있는가? 오류와 무지가 당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너에게 완전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히 보여줄 것이다. 너 자신보다 너에게 더 소중한 것이 있는가? 어떤 것도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너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너 자신의 주인이라면 너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운명의 여신이 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행복은 결코 우연의 장난에 불과한 것들에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아라. 만일 행복이 이성을 따르는 살아 있는 피조물에게 최고의 선이라면, 그리고 빼앗길 수 있는 것은 결코 최고의 선이 아니라면-왜냐하면 빼앗길 수 없는 것이 그것보다 더 좋기 때문에,- 운명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에 행복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철학의 위안』 2권 4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철학의 여신은 왜 완전한 행복이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조언하는가?
(2) 바라던 것을 가지면 행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의 정도가 줄어든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말해 보자. 왜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은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없을까?
(3)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의 길과 보에티우스가 말하는 행복의 길의 차이를 말해보고, 보에티누스의 행복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해설읽기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무엇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이 행복에 이르고자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멋진 외모, 높은 학력을 가지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여 나쁜 약물이나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외적인 조건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본문에서 철학의 여신은 외적인 행복의 조건을 모두 잃어버린 보에티우스를 향하여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보에티우스는 높은 학력과 지위를 가졌으며, 두 아들 모두 로마의 집정관이 되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그는 그 모든 것을 한 순간 잃어버리게 되었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에게 그가 누리던 행복은 허상이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행복의 근거는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부나 명성 사회적 지위같은 것이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들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찾는 행복이란 덧없는 대상에 불과하다. 경험적으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덧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집착은 일종의 영혼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신을 보에티우스에게서 이러한 질병을 치유하려 한다. 여신의 처방은 밖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즉 마음에 무엇이 있길래 그것을 들여다 보라는 뜻인가? 평범한 우리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방금 행복을 덧없는 대상에서 얻으려고 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영원한 그리고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의 근원이 있을까? 보에티우스에게 그것은 신이다. 신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바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유신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을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무신론자들이나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신에게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면 신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바꿀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가치, 변하지 않는 예술혼, 변하지 않는 학문적 진리, 변하지 않는 정신, 이러한 것들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부와 명예보다는 이러한 것을 찾아서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키워드
운명, 이성, 최고선,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