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파스칼은 뛰어난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에 대한 뛰어난 철학적 성찰의 글들을 남겼다. 아래 본문에서 그는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를 비교하고 있다. 기하학적 정신이란 수학이 대표하는 합리적인 지성을 말하고, 섬세의 정신은 직관적 지식을 말한다. 이 두 지식을 비교하는 것은 당시 데카르트가 제시한 수학을 기반으로 한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엄밀한 이성적 추론도 중요하지만, 직관과 같은 추리, 논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필요하다.
고전본문
기하학적 정신에서 원리들은 분명하지만, 일상에서 사용되기에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 방면에 사람들은 낯설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에 관심을 돌리면, 원리들을 충분히 파악하게 된다. 그 큰 원리들은 매우 명확하여 그것들에 대해 잘못된 추론을 하려면 완전히 그릇된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에서 원리들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의 눈 앞에 드러난다. 사람들은 머리를 쓰기만 하면 되고, 자제할 필요도 없다. 다만 좋은 눈만 가지면 된다. 하지만, 좋은 눈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리들은 흩어져 있고, 수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원리만 놓쳐도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모른 원리들을 보기 위해서는 정말 깨끗한 눈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는 원리들에 대해서 잘못 추론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기하학자들은 좋은 눈을 가지면 섬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원리들에 대해서 잘못 추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기하학과 관련한 익숙하지 않는 원리들에 대해서 그들의 눈을 향한다면 기하학자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섬세의 정신의 소유자들이 기하학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기하학의 원리들을 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학학자들이 섬세하지 못한 것은, 그들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기하학의 분명하고 조잡한 원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섬세한 것들에서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것들에서는 기학학적 원리들이 통하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그것들을 본다기 보다는 느낀다. 그것들을 직접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것들은 정말 미묘하고, 수도 많아서, 섬세하고 명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기학학에서처럼 논리적으로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스칼 『팡세』 중에서
토론하기
(1) 파스칼이 말하는 ‘기학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2) 당신은 중요한 판단을 내일 때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판단과 결정을 하는가, 아니면 직관과 따라서 판단하는가?
(3) 파스칼은 인간에게 추론과 직관 능력은 모두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교육에서 인간의 두 차원에 대한 교육이 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해설읽기
위 본문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블레즈 파스칼의 글이다. 파스칼은 한 권의 책을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많은 단상들을 남겼는데 이것들이 모아져 오늘날 우리가 『팡세』라고 하는 책이 탄생하였다. 팡세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생각이라는 뜻으로, 이 책은 말 그대로 파스칼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들을 담고 있다. 윗글도 이 책 안에 있는 많은 단상들 중의 하나로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를 간명하게 표현하면 이성적 추론과 직관 사이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성의 추론적, 분석적 능력을 기학학적 정신이라고 표현했고, 단번에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직관 능력을 섬세의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추론적인 이성을 기학학적 정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장 이성적인 지식, 다시말해 명확하고, 또렷하고, 모호하지 않는 지식을 대변하는 학문이 기하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학교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자신의 학교에 들어오지 말라고 새겨져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기하학을 기반으로 유명한 이데아론을 제시했던 학자이기 때문에 이 학문을 중시한 것은 당연하다. 플라톤처럼 파스칼도 기하학은 명확한 원리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은 명확한 근거나 추론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게되는 지식을 말한다. 이런 지식을 잘 활용하는 부류는 문학가들이나 예술가 또는 종교가들이다. 그들은 이성적인 추론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세상을 파악하여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종교적인 사색을 한다. 많은 지적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학학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지식이다. 파스칼이 말하는 대로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눈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이 바로 섬세의 정신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에 따르면 파스칼은 두 다른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스칼은 인간의 사고의 능력을 위대한 기능으로 보았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다. 하지만 이성적 능력은 인간을 유능하게 할 지는 모르지만 지혜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조금만 이해력을 가져도 쉽게 오만해진다. 그리고 그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지식은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거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섬세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파스칼은 섬세의 정신만 갖추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섬세의 정신은 종종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명확한 원리를 파악하는 기하학적 정신이 필요하다. 파스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상태는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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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파스칼은 뛰어난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에 대한 뛰어난 철학적 성찰의 글들을 남겼다. 아래 본문에서 그는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를 비교하고 있다. 기하학적 정신이란 수학이 대표하는 합리적인 지성을 말하고, 섬세의 정신은 직관적 지식을 말한다. 이 두 지식을 비교하는 것은 당시 데카르트가 제시한 수학을 기반으로 한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엄밀한 이성적 추론도 중요하지만, 직관과 같은 추리, 논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필요하다.
고전본문
기하학적 정신에서 원리들은 분명하지만, 일상에서 사용되기에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 방면에 사람들은 낯설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에 관심을 돌리면, 원리들을 충분히 파악하게 된다. 그 큰 원리들은 매우 명확하여 그것들에 대해 잘못된 추론을 하려면 완전히 그릇된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에서 원리들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의 눈 앞에 드러난다. 사람들은 머리를 쓰기만 하면 되고, 자제할 필요도 없다. 다만 좋은 눈만 가지면 된다. 하지만, 좋은 눈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리들은 흩어져 있고, 수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원리만 놓쳐도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모른 원리들을 보기 위해서는 정말 깨끗한 눈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는 원리들에 대해서 잘못 추론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기하학자들은 좋은 눈을 가지면 섬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원리들에 대해서 잘못 추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기하학과 관련한 익숙하지 않는 원리들에 대해서 그들의 눈을 향한다면 기하학자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섬세의 정신의 소유자들이 기하학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기하학의 원리들을 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학학자들이 섬세하지 못한 것은, 그들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기하학의 분명하고 조잡한 원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섬세한 것들에서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것들에서는 기학학적 원리들이 통하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그것들을 본다기 보다는 느낀다. 그것들을 직접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것들은 정말 미묘하고, 수도 많아서, 섬세하고 명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기학학에서처럼 논리적으로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스칼 『팡세』 중에서
토론하기
(1) 파스칼이 말하는 ‘기학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2) 당신은 중요한 판단을 내일 때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판단과 결정을 하는가, 아니면 직관과 따라서 판단하는가?
(3) 파스칼은 인간에게 추론과 직관 능력은 모두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교육에서 인간의 두 차원에 대한 교육이 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해설읽기
위 본문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블레즈 파스칼의 글이다. 파스칼은 한 권의 책을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많은 단상들을 남겼는데 이것들이 모아져 오늘날 우리가 『팡세』라고 하는 책이 탄생하였다. 팡세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생각이라는 뜻으로, 이 책은 말 그대로 파스칼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들을 담고 있다. 윗글도 이 책 안에 있는 많은 단상들 중의 하나로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를 간명하게 표현하면 이성적 추론과 직관 사이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성의 추론적, 분석적 능력을 기학학적 정신이라고 표현했고, 단번에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직관 능력을 섬세의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추론적인 이성을 기학학적 정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장 이성적인 지식, 다시말해 명확하고, 또렷하고, 모호하지 않는 지식을 대변하는 학문이 기하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학교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자신의 학교에 들어오지 말라고 새겨져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기하학을 기반으로 유명한 이데아론을 제시했던 학자이기 때문에 이 학문을 중시한 것은 당연하다. 플라톤처럼 파스칼도 기하학은 명확한 원리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은 명확한 근거나 추론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게되는 지식을 말한다. 이런 지식을 잘 활용하는 부류는 문학가들이나 예술가 또는 종교가들이다. 그들은 이성적인 추론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세상을 파악하여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종교적인 사색을 한다. 많은 지적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학학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 섬세의 정신은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지식이다. 파스칼이 말하는 대로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눈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이 바로 섬세의 정신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에 따르면 파스칼은 두 다른 정신을 모두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스칼은 인간의 사고의 능력을 위대한 기능으로 보았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다. 하지만 이성적 능력은 인간을 유능하게 할 지는 모르지만 지혜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조금만 이해력을 가져도 쉽게 오만해진다. 그리고 그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지식은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거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섬세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파스칼은 섬세의 정신만 갖추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섬세의 정신은 종종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명확한 원리를 파악하는 기하학적 정신이 필요하다. 파스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상태는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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