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가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1818년 소설이 처음 발간된 이후, 지난 이백 년 동안 소설과 영화로, 만화와 게임 캐릭터로, 상업화된 이미지로 변이되고 소비되어왔다. 괴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바뀌어 그 뿌리 깊은 공포의 본질은 희석되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우리 의식 속에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창조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인류의 오랜 꿈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기술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초의 사회상과 문화 인식과 무의식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문명이 과학의 이름으로 자연을 길들이고 정복해 나가던 당시, 문명과 자연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모고, 인류가 자연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까지 손을 뻗친다면,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이 소설이다.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는 인류 문명의 어두운 이면의 불안을 단적으로 응축시켜 보여준다. 이후 이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주인공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창조한 괴물의 이름으로 오인되어 만화와 할로윈 축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되면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유전공학, 생명공학, 기계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이제 여성의 출산을 대신해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상과학소설 속의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더는 악몽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다가온 것이다. 인공장기가 생산되어 실생활에 이용되고 인공 수정을 넘어서, 인간 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늘날, 이백 년 전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은 무서운 악몽 속의 괴물이기보다는 사이버공간이나 영화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캐릭터가 되었다. 인류는 이미 인조인간의 창조가 가능해질 만큼 자연에 드리워져 있던 신비의 베일을 벗겨버렸고, 문명과 자연의 경계 자체가 희미해진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전본문
나는 반을 호기심에서, 반은 심심풀이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잠시 후 발트만 교수가 들어왔다. [중략] “고대 과학연구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거장들도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죠. 그들은 금속의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생명의 영약은 헛된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략] 이들은 자연의 후미진 곳을 관찰하고 자연이 거기 숨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냈습니다. 이들은 신의 영역에 더 접근합니다. 혈액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성질은 무엇인지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새롭고 거의 무한한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들은 천둥을 명령하고 지진을 흉내 내며 그늘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방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교수의 그 말, 차라리 운명의 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그 말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이다. [중략] 프랑켄 슈타인의 영혼이 외쳤다. 그렇게 엄청남 업적이 이미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내가 더 많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 이미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지의 힘을 탐사할 것이며 창조의 가장 은밀한 신비를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중략]
그날 이후 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자연철학이라고 불리는 분야 중 특히 화학에 몰두했다. [중략]
나는 한 가지 목적에 매진하면서 오로지 거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진보했다. 2년 만에 화학 기구의 발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성과를 이룩했고 대학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략]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현상 중 하나가, 인간,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의 신체 구조였다. 생명의 원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중략] 생명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우선 죽음에 관해 연구해야 했다.
나는 곧 해부학에 완전히 통달하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체의 자연적인 소멸과 부패 또한 관찰해야 했다. [중략] 나는 부패의 원인과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납골당과 시체 안치소에서 밤낮을 보내야 했다. [중략] 이런 원인과 과정의 순간순간을 중단시켜 검토하고 분석하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죽음에서 삶으로의 변화를 더듬어 가다 보니 마침내, 암흑의 한가운데서 갑작스런 빛이 내게 쏟아졌다. 너무나 환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단순한 빛이어서 나는 그것이 밝히는 엄청난 가능성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같은 분야의 많은 천재 중에서 오직 나만이 그처럼 기막힌 비밀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경이로운 능력을 갖게 되자 나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오랫동안 고심했다. 생명의 움직임을 불어넣을 능력은 있었지만, 그것을 수용할 골격과 복잡한 섬유들, 근육과 혈관들을 모두 준비하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었다.
[중략]
나는 납골당에서 뼈를 구해왔고, 부정한 손으로 인간 신체의 엄청난 비밀을 훼손시켰다. 집 꼭대기에 있는 외딴 방, 난간과 계단을 사이에 두고 다른 방들과 분리된 그 연구실에서 나는 불결한 창조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중략]
을씨년스러운 11월 어느 날 밤 나는 치열했던 노력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제 내 발 앞에 놓인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의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갈망으로 거의 몸부림치다시피 하면서 주변에 놓여 있던 생명의 기구들을 가져왔다. 이미 새벽 한 시였다. 음산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고 초는 거의 다 타서 사그라지고 있을 때였다. 반은 꺼져버린 희미한 빛 속에서, 그것이 흐리멍덩한 노란 눈을 떴다. 그것은 거칠게 숨을 쉬면서 발작적으로 사지를 꿈틀거렸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았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그토록 엄청난 고통과 정성을 쏟아 만들 괴물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팔다리가 비례에 맞도록 구성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도록 안배했다. 아름답게 말이다.! 신이여! 누런 피부는 그 밑에서 움직이는 근육과 동맥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윤기를 내며 흘러내렸고 이는 진주처럼 하얬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은 그 젖은 눈, 희끄무레한 안구 소켓과 거의 비슷한 색깔의 축축한 눈과 쭈글쭈글한 피부, 새까만 입술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섬뜩했다.
[중략]
내가 만들어낸 모습을 더는 참고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나는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오랫동안 침실에서 서성였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 격한 마음이 겨우 누그러지기 무섭게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토론하기
(1)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지적 욕구는 우리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2) 메리 셸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3) 우리는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준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해설읽기
19세기 초 18세 소녀가 쓴 이 소설은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 도전한 젊은 과학자가 마침내 인조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무서운 괴물의 모습을 한 인조인간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비극적 파국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 소설 풍의 공포물이자 과학의 힘과 그 위험성을 다루는 영문학 사상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신의 창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의 야심과 몰락,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억압된 인간 욕망의 표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인간을 창조한다는 원초적 우주적 테마는 이 작품의 부제, “모던 프로메테우스”로 부각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벌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벌을 받았다는 신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불은 신들의 것으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영웅적 인물이기도 하다.
전설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했고 악명 높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두 프로메테우스는 그 창조의 결과로 고통과 벌을 받게 된다. 전설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능멸한 벌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연을 능멸한 벌을. 프랑켄슈타인이 금단의 지식에 손을 댄 결과는 죽음과 고통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패한 도전은 19세기 근대산업사회의 문턱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의 모습이다. 이 소설은 산업사회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인류가 선택한 방향을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과학혁명의 힘으로 인류는 자연을 통제하고 파괴해왔다. 이제 인간은 인공장기의 개발과 유전공학을 통해 자신을 사이보그로 개량해내었고, 죽음의 한계를 넘어 불멸을 넘보고 있다. 셸리의 악몽은 우리의 희망이자 악몽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과학이 손에 쥐어준 전무후무한 능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피조물을 팽개치고 달아난 프랑켄슈타인같이 무책임한 창조자가 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과학, 괴물, 메리 셸리, 생명의 불씨, 공상 과학, 도전, 인조 인간, 자연,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전후맥락
메리 셸리가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1818년 소설이 처음 발간된 이후, 지난 이백 년 동안 소설과 영화로, 만화와 게임 캐릭터로, 상업화된 이미지로 변이되고 소비되어왔다. 괴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바뀌어 그 뿌리 깊은 공포의 본질은 희석되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우리 의식 속에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창조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인류의 오랜 꿈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기술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초의 사회상과 문화 인식과 무의식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문명이 과학의 이름으로 자연을 길들이고 정복해 나가던 당시, 문명과 자연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모고, 인류가 자연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까지 손을 뻗친다면,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이 소설이다.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는 인류 문명의 어두운 이면의 불안을 단적으로 응축시켜 보여준다. 이후 이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주인공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창조한 괴물의 이름으로 오인되어 만화와 할로윈 축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되면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유전공학, 생명공학, 기계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이제 여성의 출산을 대신해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상과학소설 속의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더는 악몽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다가온 것이다. 인공장기가 생산되어 실생활에 이용되고 인공 수정을 넘어서, 인간 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늘날, 이백 년 전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은 무서운 악몽 속의 괴물이기보다는 사이버공간이나 영화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캐릭터가 되었다. 인류는 이미 인조인간의 창조가 가능해질 만큼 자연에 드리워져 있던 신비의 베일을 벗겨버렸고, 문명과 자연의 경계 자체가 희미해진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전본문
나는 반을 호기심에서, 반은 심심풀이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잠시 후 발트만 교수가 들어왔다. [중략] “고대 과학연구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거장들도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죠. 그들은 금속의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생명의 영약은 헛된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략] 이들은 자연의 후미진 곳을 관찰하고 자연이 거기 숨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냈습니다. 이들은 신의 영역에 더 접근합니다. 혈액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성질은 무엇인지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새롭고 거의 무한한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들은 천둥을 명령하고 지진을 흉내 내며 그늘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방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교수의 그 말, 차라리 운명의 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그 말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이다. [중략] 프랑켄 슈타인의 영혼이 외쳤다. 그렇게 엄청남 업적이 이미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내가 더 많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 이미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지의 힘을 탐사할 것이며 창조의 가장 은밀한 신비를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중략]
그날 이후 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자연철학이라고 불리는 분야 중 특히 화학에 몰두했다. [중략]
나는 한 가지 목적에 매진하면서 오로지 거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진보했다. 2년 만에 화학 기구의 발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성과를 이룩했고 대학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략]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현상 중 하나가, 인간,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의 신체 구조였다. 생명의 원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중략] 생명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 우선 죽음에 관해 연구해야 했다.
나는 곧 해부학에 완전히 통달하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체의 자연적인 소멸과 부패 또한 관찰해야 했다. [중략] 나는 부패의 원인과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납골당과 시체 안치소에서 밤낮을 보내야 했다. [중략] 이런 원인과 과정의 순간순간을 중단시켜 검토하고 분석하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죽음에서 삶으로의 변화를 더듬어 가다 보니 마침내, 암흑의 한가운데서 갑작스런 빛이 내게 쏟아졌다. 너무나 환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단순한 빛이어서 나는 그것이 밝히는 엄청난 가능성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같은 분야의 많은 천재 중에서 오직 나만이 그처럼 기막힌 비밀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경이로운 능력을 갖게 되자 나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오랫동안 고심했다. 생명의 움직임을 불어넣을 능력은 있었지만, 그것을 수용할 골격과 복잡한 섬유들, 근육과 혈관들을 모두 준비하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었다.
[중략]
나는 납골당에서 뼈를 구해왔고, 부정한 손으로 인간 신체의 엄청난 비밀을 훼손시켰다. 집 꼭대기에 있는 외딴 방, 난간과 계단을 사이에 두고 다른 방들과 분리된 그 연구실에서 나는 불결한 창조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중략]
을씨년스러운 11월 어느 날 밤 나는 치열했던 노력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제 내 발 앞에 놓인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의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갈망으로 거의 몸부림치다시피 하면서 주변에 놓여 있던 생명의 기구들을 가져왔다. 이미 새벽 한 시였다. 음산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고 초는 거의 다 타서 사그라지고 있을 때였다. 반은 꺼져버린 희미한 빛 속에서, 그것이 흐리멍덩한 노란 눈을 떴다. 그것은 거칠게 숨을 쉬면서 발작적으로 사지를 꿈틀거렸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았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그토록 엄청난 고통과 정성을 쏟아 만들 괴물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팔다리가 비례에 맞도록 구성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도록 안배했다. 아름답게 말이다.! 신이여! 누런 피부는 그 밑에서 움직이는 근육과 동맥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윤기를 내며 흘러내렸고 이는 진주처럼 하얬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은 그 젖은 눈, 희끄무레한 안구 소켓과 거의 비슷한 색깔의 축축한 눈과 쭈글쭈글한 피부, 새까만 입술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섬뜩했다.
[중략]
내가 만들어낸 모습을 더는 참고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나는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오랫동안 침실에서 서성였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 격한 마음이 겨우 누그러지기 무섭게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토론하기
(1)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지적 욕구는 우리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2) 메리 셸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3) 우리는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준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해설읽기
19세기 초 18세 소녀가 쓴 이 소설은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 도전한 젊은 과학자가 마침내 인조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무서운 괴물의 모습을 한 인조인간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비극적 파국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 소설 풍의 공포물이자 과학의 힘과 그 위험성을 다루는 영문학 사상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신의 창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의 야심과 몰락,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억압된 인간 욕망의 표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인간을 창조한다는 원초적 우주적 테마는 이 작품의 부제, “모던 프로메테우스”로 부각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벌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벌을 받았다는 신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불은 신들의 것으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영웅적 인물이기도 하다.
전설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했고 악명 높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두 프로메테우스는 그 창조의 결과로 고통과 벌을 받게 된다. 전설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능멸한 벌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연을 능멸한 벌을. 프랑켄슈타인이 금단의 지식에 손을 댄 결과는 죽음과 고통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패한 도전은 19세기 근대산업사회의 문턱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의 모습이다. 이 소설은 산업사회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인류가 선택한 방향을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과학혁명의 힘으로 인류는 자연을 통제하고 파괴해왔다. 이제 인간은 인공장기의 개발과 유전공학을 통해 자신을 사이보그로 개량해내었고, 죽음의 한계를 넘어 불멸을 넘보고 있다. 셸리의 악몽은 우리의 희망이자 악몽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과학이 손에 쥐어준 전무후무한 능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피조물을 팽개치고 달아난 프랑켄슈타인같이 무책임한 창조자가 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과학, 괴물, 메리 셸리, 생명의 불씨, 공상 과학, 도전, 인조 인간, 자연,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