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968)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로 인구과밀이 빚어내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구과밀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22살에 늙지 않는 주사를 맞아 젊은 모습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영원한 젊음과 영생을 얻게 된 인류는 바로 인구 과밀과 지루함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다. 전 세계를 통제하는 세계 정부는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섹스를 금지하고 “윤리적 자살 센터”를 운영하며 TV로 자살권유 캠페인을 벌인다. 모든 사람들이 성욕을 억제한는 약을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하며 이를 어기는 것은 사회적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받는다. 국영 TV에서는 재미없는 세상을 계속 지루하게 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광고가 온종일 반복되어 나온다. 자살 센터에서는 고통없이 편안히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나게 해주고, 죽기 전 몇 일동안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종 전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고 선전한다. 자살 센터에서 자살도우미로 일하는 직원들은 섹시한 외모의 늘씬한 미인들이다. 이들은 겉보기엔 20대지만 실제로는 100살이 넘은 노인들이다. 세계정부의 성에 대한 억압과 자살캠페인 정책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해 이번에는 자살센터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기획하고 있다는 첨보가 들어와 자살센터는 보안조치를 강화하고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상황이다. 이 때 윤리적 자살을 위해 센터에 입소해 있는 폭시 할아버지가 이야기에 등장한다.
고전본문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려고 낸시가 자살 부스에 들어왔을 때, 폭시 할아버지는 민트색 바칼라운저 안락의자에 누워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명이 그 의자에 누워 아주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하워드 존슨(식당이름)의 메뉴를 살펴보면서 레몬색 벽에 걸린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무자크 음악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방은 페인트칠한 블록으로 지었고 베네치아의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이 하나 있었다.
모든 윤리적 자살 상담소에는 하워드 존슨 식당이 붙어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워드 존슨은 지붕이 오렌지이고, 자살센터 지붕은 보라색이었다. 그리고 둘 다 정부에서 운영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세계 정부의 것이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었다. 낸시와 메리와 보안관은 운이 좋게도 직업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보통 시민들은 하릴없이 집안을 서성이며 TV를 시청했는데, 방송도 정부에서 하는 것이었다. 매 15분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거나, 현명하게 소비하라거나, 자신이 선택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권유했다. 또는 법을 따르고, 가까운 윤리적 자살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담당 상담사가 얼마나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지를 알아보라고 권했다.
폭시 할아버지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늙고 대머리인데다, 움직임이 불안정하고, 손에 검버섯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에 두 번 노화 방지 주사를 맞은 덕분에 22살로 보였다. 늙은 모습이라는 것은 그의 한창 젊은 시절이 지나버리고 나서야 노화방지 주사가 발명되었다는 증거였다.
“최후의 만찬은 정했나요?” 낸시가 그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있으며, 자신이 시인 빌리에 때분에 화가 난것과 이 노인에 대해 지루해 하는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프로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빵가루를 입힌 송아지고기 튀김이 아주 맛있답니다.“
노인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다시 어린애가 된 것같이 탐욕스럽고 교활하게 그는 그녀가 프로답지 못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녀를 벌하려 했다. “별로 친절하게 들리지 않네요. 난 여기 당신들 모두가 당연히 친절할 줄 알았는데요. 여기는 참 좋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그녀가 말했다. “만약 제가 불친절해 보인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 아니예요.”
“내가 당신을 지루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정말 매우 흥미로운 역사를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폭스 할아버지는 윤리적인 산아제한의 아버지였던 그랜드 래피즈의 약제사 J. 에드거 네이션과 알고 지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말하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라고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굴어도 되었다. 중요한 건, 그가 떠나고 싶을 때, 즉 죽고 싶을 때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거였다. 주사를 놓아 달라고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주사를 놓아달라고 해야 했다. 법이 그랬다.
낸시의 기술, 모든 호스티스의 기술은 (자살)자원자들이 떠나지 않게 하고, 그들을 달래고 어르고, (자살)에 이르는 각각의 단계마다에서 참을성 있게 구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낸시는 부스 안에 앉아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새로운 것이어서 감탄하는 척해야 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제이 에드거 네이션이 어떻게 윤리적 산아제한을 실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말이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그 약을 복용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네,”라고 폭스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의 꿈은 그랜드 래피즈 동물원의 원숭이 관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지. 그거 알고 있었소?”라고 그가 엄하게 물었다.
“아니, 아니, 몰랐어요. 정말 흥미롭네요.“
“그는 열 한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부활절날 교회에 갔어요. 그날은 날씨도 너무 좋았고 부활절 예배는 너무 아름답고 순수해서 동물원 산책을 가기로 했지요. 그들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마냥 들떠 있었답니다.“
“음.” 묘사된 장면은 부활절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따온 것이었다.
폭시 할아버지는 장면 속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어 원숭이 관에 도착하기 전에 네이션과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 만들었다. ” “좋은 아침이에요, 미스터 네이션.” 나는 그에게 말했다오. “정말 좋은 아침이에요.” “그리고 하워드 씨, 안녕하세요?” 그가 내게 말했어요. ”부활절 아침만큼 더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건 없지요.’ ”
“음.” 낸시는 거의 완벽한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문을 통해 전화벨이 희미하게, 끊입없이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원숭이 관으로에 갔는데, 우리가 무엇을 봤는 줄 알아요?“
“전혀 모르겠는데요.”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원숭이가 자기 성기를 만지고 노는 것을 봤어요!”
“세상에!”
”그랬다니까!“
“네이 에드거 네이션은 너무 화가 나서 곧장 집으로 가서 봄에 기독교인 가족들이 원숭이들을 쳐다봐도 괜찮도록 만드는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토론하기
(1) 늙지 않고 장수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다. 장수는 인류의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2) 의학의 발달로 인간이 늙지 않게 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3) 안락사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다. 이 작품에서처럼 언젠가 국가가 “자살센터”을 운영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해설읽기
[해설1] “원숭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경우, 이 가짜 도덕주의는 세계 정부에 의해 강요됩니다. 보네거트는 종종 평등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했지만, 단일 체제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형성하고 통제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수어사이드 가게가 보라색 지붕을 가지고 있고 항상 인접한 하워드 존슨의 식당들이 주황색 지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평등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람들의 젊은 외모, 그리고 아무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평등은 개성을 위태롭게 한다; 보네거트는 “타인의 개인의 인권을 통제하는 독선을 일관되게 비난했다.”[1]: 99 그의 주장은 그의 또 다른 단편인 “해리슨 버거론”(1965)에서 훨씬 더 가혹하게 제시되는데, 이 단편에서 미국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평등을 원하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해설2] 보네거트가 《원숭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서 논하는 또 다른 문제는 세계의 인구 과잉이다. 그 이야기에서, 170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에 앉아서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 이 프로그램들은 법과 통치자 그리고 윤리적 자살의 원칙을 전파하는 광고와 쇼를 보여줌으로써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거의 모든 일이 기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실업자라는 사실로 이어진다. 심지어 모든 자살 상담소 옆에 있는 식당(하워드 존슨)에서도 모든 일은 기계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직원 부족으로 인한 침묵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코드는 정기적인 식당 소음을 발생시킨다. 게다가, 벌, 새, 모기 같은 세계의 동물과 식물 종들은 성장하는 인류로부터 물러나야 했기 때문에 멸종되었다. 더 이상의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발하는 조치는 과감한 것이다: 통치자들은 윤리적 자살을 장려하고 사람들의 신체 하부를 마비시킴으로써 생식을 막는다. 보네거트는 《웰컴 투 더 몽키 하우스》뿐만 아니라 같은 모음집 《저쪽/내일 그리고 내일과 내일》(1954)의 또 다른 이야기에서 인구 과잉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그는 2158년에 6대의 가족이 하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함께 살았는지를 묘사한다.
[해설3] 나라마다 안락사법이 다르다. 영국 상원 의료윤리심의위원회는 안락사를 “삶을 끝내려는 의도적인 개입”으로 정의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안락사는 “환자의 요청에 의해 의사가 생명을 종료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네덜란드 법은 안락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요청에 따라 자살하고 생명을 끊는다”는 광범위한 정의에 따라 이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안락사는 자발적, 비자발적, 비자발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자발적 안락사는 한 사람이 그들의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합법적이다. 비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동의가 불가능할 때 발생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능동적, 수동적 형태 모두 특정한 제한된 조건 하에서 합법적이다. 동의를 구하거나 환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행해지는 비자발적 안락사는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며 보통 살인으로 간주된다.
2006년 현재 안락사는 생명윤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와 관련된 도덕적, 윤리적, 법적 문제에 대해 분열된 대중적 논란이 발생한다. 수동적 안락사는 많은 나라에서 일부 상황에서 합법적이다. 그러나 능동적 안락사는 특정한 상황으로 제한되고 상담가, 의사 또는 다른 전문가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국가(예: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에서만 합법적이거나 사실상 합법적이다.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한 지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키워드
노인 문제, 성억압, 세계 정부, 인구 과밀, 자살, 커트 보니것
전후맥락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968)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로 인구과밀이 빚어내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구과밀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22살에 늙지 않는 주사를 맞아 젊은 모습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영원한 젊음과 영생을 얻게 된 인류는 바로 인구 과밀과 지루함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다. 전 세계를 통제하는 세계 정부는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섹스를 금지하고 “윤리적 자살 센터”를 운영하며 TV로 자살권유 캠페인을 벌인다. 모든 사람들이 성욕을 억제한는 약을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하며 이를 어기는 것은 사회적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받는다. 국영 TV에서는 재미없는 세상을 계속 지루하게 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광고가 온종일 반복되어 나온다. 자살 센터에서는 고통없이 편안히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나게 해주고, 죽기 전 몇 일동안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종 전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고 선전한다. 자살 센터에서 자살도우미로 일하는 직원들은 섹시한 외모의 늘씬한 미인들이다. 이들은 겉보기엔 20대지만 실제로는 100살이 넘은 노인들이다. 세계정부의 성에 대한 억압과 자살캠페인 정책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해 이번에는 자살센터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기획하고 있다는 첨보가 들어와 자살센터는 보안조치를 강화하고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상황이다. 이 때 윤리적 자살을 위해 센터에 입소해 있는 폭시 할아버지가 이야기에 등장한다.
고전본문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려고 낸시가 자살 부스에 들어왔을 때, 폭시 할아버지는 민트색 바칼라운저 안락의자에 누워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명이 그 의자에 누워 아주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하워드 존슨(식당이름)의 메뉴를 살펴보면서 레몬색 벽에 걸린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무자크 음악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방은 페인트칠한 블록으로 지었고 베네치아의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이 하나 있었다.
모든 윤리적 자살 상담소에는 하워드 존슨 식당이 붙어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워드 존슨은 지붕이 오렌지이고, 자살센터 지붕은 보라색이었다. 그리고 둘 다 정부에서 운영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세계 정부의 것이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었다. 낸시와 메리와 보안관은 운이 좋게도 직업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보통 시민들은 하릴없이 집안을 서성이며 TV를 시청했는데, 방송도 정부에서 하는 것이었다. 매 15분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거나, 현명하게 소비하라거나, 자신이 선택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권유했다. 또는 법을 따르고, 가까운 윤리적 자살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담당 상담사가 얼마나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지를 알아보라고 권했다.
폭시 할아버지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늙고 대머리인데다, 움직임이 불안정하고, 손에 검버섯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에 두 번 노화 방지 주사를 맞은 덕분에 22살로 보였다. 늙은 모습이라는 것은 그의 한창 젊은 시절이 지나버리고 나서야 노화방지 주사가 발명되었다는 증거였다.
“최후의 만찬은 정했나요?” 낸시가 그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있으며, 자신이 시인 빌리에 때분에 화가 난것과 이 노인에 대해 지루해 하는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프로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빵가루를 입힌 송아지고기 튀김이 아주 맛있답니다.“
노인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다시 어린애가 된 것같이 탐욕스럽고 교활하게 그는 그녀가 프로답지 못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녀를 벌하려 했다. “별로 친절하게 들리지 않네요. 난 여기 당신들 모두가 당연히 친절할 줄 알았는데요. 여기는 참 좋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그녀가 말했다. “만약 제가 불친절해 보인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 아니예요.”
“내가 당신을 지루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정말 매우 흥미로운 역사를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폭스 할아버지는 윤리적인 산아제한의 아버지였던 그랜드 래피즈의 약제사 J. 에드거 네이션과 알고 지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말하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라고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굴어도 되었다. 중요한 건, 그가 떠나고 싶을 때, 즉 죽고 싶을 때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거였다. 주사를 놓아 달라고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주사를 놓아달라고 해야 했다. 법이 그랬다.
낸시의 기술, 모든 호스티스의 기술은 (자살)자원자들이 떠나지 않게 하고, 그들을 달래고 어르고, (자살)에 이르는 각각의 단계마다에서 참을성 있게 구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낸시는 부스 안에 앉아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새로운 것이어서 감탄하는 척해야 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제이 에드거 네이션이 어떻게 윤리적 산아제한을 실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말이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그 약을 복용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네,”라고 폭스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의 꿈은 그랜드 래피즈 동물원의 원숭이 관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지. 그거 알고 있었소?”라고 그가 엄하게 물었다.
“아니, 아니, 몰랐어요. 정말 흥미롭네요.“
“그는 열 한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부활절날 교회에 갔어요. 그날은 날씨도 너무 좋았고 부활절 예배는 너무 아름답고 순수해서 동물원 산책을 가기로 했지요. 그들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마냥 들떠 있었답니다.“
“음.” 묘사된 장면은 부활절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따온 것이었다.
폭시 할아버지는 장면 속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어 원숭이 관에 도착하기 전에 네이션과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 만들었다. ” “좋은 아침이에요, 미스터 네이션.” 나는 그에게 말했다오. “정말 좋은 아침이에요.” “그리고 하워드 씨, 안녕하세요?” 그가 내게 말했어요. ”부활절 아침만큼 더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건 없지요.’ ”
“음.” 낸시는 거의 완벽한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문을 통해 전화벨이 희미하게, 끊입없이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원숭이 관으로에 갔는데, 우리가 무엇을 봤는 줄 알아요?“
“전혀 모르겠는데요.”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원숭이가 자기 성기를 만지고 노는 것을 봤어요!”
“세상에!”
”그랬다니까!“
“네이 에드거 네이션은 너무 화가 나서 곧장 집으로 가서 봄에 기독교인 가족들이 원숭이들을 쳐다봐도 괜찮도록 만드는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토론하기
(1) 늙지 않고 장수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다. 장수는 인류의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2) 의학의 발달로 인간이 늙지 않게 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3) 안락사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다. 이 작품에서처럼 언젠가 국가가 “자살센터”을 운영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해설읽기
[해설1] “원숭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경우, 이 가짜 도덕주의는 세계 정부에 의해 강요됩니다. 보네거트는 종종 평등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했지만, 단일 체제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형성하고 통제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수어사이드 가게가 보라색 지붕을 가지고 있고 항상 인접한 하워드 존슨의 식당들이 주황색 지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평등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람들의 젊은 외모, 그리고 아무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평등은 개성을 위태롭게 한다; 보네거트는 “타인의 개인의 인권을 통제하는 독선을 일관되게 비난했다.”[1]: 99 그의 주장은 그의 또 다른 단편인 “해리슨 버거론”(1965)에서 훨씬 더 가혹하게 제시되는데, 이 단편에서 미국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평등을 원하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해설2] 보네거트가 《원숭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서 논하는 또 다른 문제는 세계의 인구 과잉이다. 그 이야기에서, 170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에 앉아서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 이 프로그램들은 법과 통치자 그리고 윤리적 자살의 원칙을 전파하는 광고와 쇼를 보여줌으로써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거의 모든 일이 기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실업자라는 사실로 이어진다. 심지어 모든 자살 상담소 옆에 있는 식당(하워드 존슨)에서도 모든 일은 기계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직원 부족으로 인한 침묵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코드는 정기적인 식당 소음을 발생시킨다. 게다가, 벌, 새, 모기 같은 세계의 동물과 식물 종들은 성장하는 인류로부터 물러나야 했기 때문에 멸종되었다. 더 이상의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발하는 조치는 과감한 것이다: 통치자들은 윤리적 자살을 장려하고 사람들의 신체 하부를 마비시킴으로써 생식을 막는다. 보네거트는 《웰컴 투 더 몽키 하우스》뿐만 아니라 같은 모음집 《저쪽/내일 그리고 내일과 내일》(1954)의 또 다른 이야기에서 인구 과잉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그는 2158년에 6대의 가족이 하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함께 살았는지를 묘사한다.
[해설3] 나라마다 안락사법이 다르다. 영국 상원 의료윤리심의위원회는 안락사를 “삶을 끝내려는 의도적인 개입”으로 정의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안락사는 “환자의 요청에 의해 의사가 생명을 종료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네덜란드 법은 안락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요청에 따라 자살하고 생명을 끊는다”는 광범위한 정의에 따라 이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안락사는 자발적, 비자발적, 비자발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자발적 안락사는 한 사람이 그들의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합법적이다. 비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동의가 불가능할 때 발생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능동적, 수동적 형태 모두 특정한 제한된 조건 하에서 합법적이다. 동의를 구하거나 환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행해지는 비자발적 안락사는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며 보통 살인으로 간주된다.
2006년 현재 안락사는 생명윤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와 관련된 도덕적, 윤리적, 법적 문제에 대해 분열된 대중적 논란이 발생한다. 수동적 안락사는 많은 나라에서 일부 상황에서 합법적이다. 그러나 능동적 안락사는 특정한 상황으로 제한되고 상담가, 의사 또는 다른 전문가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국가(예: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에서만 합법적이거나 사실상 합법적이다.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한 지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키워드
노인 문제, 성억압, 세계 정부, 인구 과밀, 자살, 커트 보니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