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1992년(이후 판에서는 2021년) 파괴적인 세계 전쟁이 끝난 후,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의 대기는 UN으로 하여금 인류의 유전적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식민지로의 대량 이주를 장려하도록 한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무료 개인 안드로이드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Rosen Association은 화성의 식민지에서 안드로이드를 제조하지만 일부 안드로이드는 격렬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탈출하여 들키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경찰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 장교를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실제 살아있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은 유행하는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대량 멸종으로 인해 실제 동물이 희귀해졌고 그에 따른 더 큰 공감을 위한 문화적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실제처럼 보이는 로봇 모조품만 살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검은 얼굴의 전기양을 소유하고 있다.
방사능으로 생명이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정조차 공감상자에 의존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채널에 맞추고, 티비를 보려면 티비보기에 열중하는 공감 채널에, 직장에 출근할 때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드로 자신의 감정상태를 세팅하는 것이다. 공감의 증가 추세는 우연히 Mercerism이라는 새로운 기술 기반 종교를 탄생시켰다. 공감은 또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열쇠기도 하다. 최신 안드로이드 모델은 인간과 거의 다른점을 찾을 수 없지만 특정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데커트에게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다. 실수하면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상자에 의존하는 인간과 인간에 흡사한 안드로이드, 과연 어느쪽이 더 인간다운가? 이 소설은 공상과학에 기반한 대중소설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고전본문
침대 곁에 놓인 기분 조절 오르간의 자동 알람이 발산하는 경쾌하고 약한 전기 자극에 릭 데카드는 눈을 떴다. 깜짝 놀란(이렇게 사전 통고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눈을 뜬다는 사실이 그는 매번 놀랍기만 했다) 그는 침대에서 나왔고, 색색의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내 아이랜은 자기 침대에 누운 채로 우울한 회색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도로 감았다.
“당신, 펜필드를 너무 약하게 설정했어.” 그가 말했다. “내가 다시 설정해놓을게. 그러면 당신도 잠에서 깼을 때-“
“내 설정 함부로 건드리지 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씁쓸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는 아내의 옆에 앉아 그녀에게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전기 자극을 어느 정도 높게 설정해놓으면, 당신도 잠에서 깼을 때 기쁜 기분이 들 거야. 그게 바로 핵심이라고. C로 설정해놓으면 의식의 문턱을 넘어설 거야. 그게 나한테 해준 것처럼.” 친근한 태도로(그는 지금 세상을 향해 호의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모두 그의 설정이 D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드러난, 창백한 어깨를 토닥였다.
“그 어설픈 형사 같은 손 좀 치우시지.” 아이랜이 말했다.
“나는 형사가 아니야.” 이제 그는 짜증을 느꼈다. 그쪽에 다이얼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당신이야 그보다 더 심하지.” 아내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형사들에게 고용된 살해자니까.”
“나는 인간을 죽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는 방금 전보다 더 짜증이 솟구쳤다. 이제는 전적으로 적대감마저 들었다.
아이랜이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그 불쌍한 앤디들*만 죽였다 이거겠지.” (*andys 안드로이드 androids의 약칭.)
“그러는 당신도 그렇게 가져온 현상금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잖아. 뭐든지 순간적으로 당신의 관심을 끄는 물건에 써버릴 때 말이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기분 조절 오르간의 조종 장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돈을 저축했더라면.” 그가 말했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지금쯤은 진짜 양을 한 마리쯤 사서 위에 있는 가짜 양을 대신할 수도 있었겠지. 기껏해야 전기 동물이라니. 최근 몇 년 동안 s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벌 수 있는 돈은 모두 벌었는데도.” 조종 장치 앞에서 그는 (분노의 기분을 없애주는) 시상 억제 물질에 다이얼을 맞출지, 아니면 (말다툼에서 이기기에 충분할 만큼 그를 집요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시상 자극 물질에 다이얼을 맞출지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 한번 다이얼을 맞춰보시지.” 아이랜이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 독설을 내뱉는 쪽으로 맞춰보란 말이야.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도 똑같이 다이얼을 맞출 거야. 그렇게 최대한도까지 다이얼을 맞추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말다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게 될 거야. 어디 한번 다이얼을 맞추고 똑똑히 보시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녀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기분 조절 오르간의 조종 장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위협에 패배한 것이었다. “나는 그냥 오늘 일정표대로 다이얼을 맞출 거야.” 그러고는 1992년 1월 3일 자 일정표를 살펴보았다.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그는 가만히 기다렸다. 아내가 동의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을 만큼은 눈치가 있었다.
“오늘 내 일정표에는 6시간에 걸친 자책성 우울이 들어 있어.” 아이랜이 대답했다.
“뭐라고? 왜 그렇게 일정표를 짰어?” 그건 기분 조절 오르간의 목적 전체를 무력화하는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당신이 그런 설정을 할 수 있다는 건 미처 몰랐는데.”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토론하기
(1) 인간의 감정을 기계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2) 아이랜은 왜 일부러 6시간이나 “자책성 우울”감을 경험하려 할까?
(3) 릭 데카트의 직업은 문제가 있는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다. 아내 아이랜은 그를살인자라고 비난하고, 릭은 자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은 살인일까 아닐까?
해설읽기
이 소설의 초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에 맞춰져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인간과 같은 ‘지능’과 ‘감정’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과 논리적 두뇌 활동을 수행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들을 ‘비인간’ 취급했던 릭도 이들에 대해 접근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드로이드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존 이시도어는 아예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구별하는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못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안드로이드도 인간이다.’라는 결말로 이 소설을 끝내지 않는다.
작중 내내 안드로이드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존은 거미를 잔혹하게 괴롭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다. 존이 작은 미물인 거미에 대해 ‘공감’을 하는 반면, 안드로이드들은 전혀 그 생물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했다. 여기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들 사이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미의 고통에 슬퍼하며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머서’라는 종교적 존재를 통해 전 인류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리더인 로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머서교와 같은 종교를 창시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머서교가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을 계속해간다.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머서교와 무관하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애초에 감정이입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영역을 타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욕구를 창출해내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안드로이드와 전기 두꺼비를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존의 모습은 인간이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감정의 구조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밑에는 그의 이성이 있다. 이성이 감정적 판단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특징은 인간 스스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안드로이드에겐 알고리즘에 의해 짜인 논리가 존재한다. 이 0과 1로 이루어진 논리시스템을 통해 안도로이드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지능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이는 인간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개발자가 짜준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딥러닝이라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나오긴 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타인이 사고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하고 그걸 실행하기 전까지 안드로이드는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기존의 알고리즘을 누군가 업데이트해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이성은 자발적인 것이며 자립적이다. 이성은 외부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감정과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이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자가발전’이 없는 한,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감정, 공감, 디스토피아, 로봇, 안드로이드, 인간, 필립 K 딕, 핵전쟁
전후맥락
1992년(이후 판에서는 2021년) 파괴적인 세계 전쟁이 끝난 후,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의 대기는 UN으로 하여금 인류의 유전적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식민지로의 대량 이주를 장려하도록 한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무료 개인 안드로이드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Rosen Association은 화성의 식민지에서 안드로이드를 제조하지만 일부 안드로이드는 격렬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탈출하여 들키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경찰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 장교를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실제 살아있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은 유행하는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대량 멸종으로 인해 실제 동물이 희귀해졌고 그에 따른 더 큰 공감을 위한 문화적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실제처럼 보이는 로봇 모조품만 살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검은 얼굴의 전기양을 소유하고 있다.
방사능으로 생명이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정조차 공감상자에 의존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채널에 맞추고, 티비를 보려면 티비보기에 열중하는 공감 채널에, 직장에 출근할 때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드로 자신의 감정상태를 세팅하는 것이다. 공감의 증가 추세는 우연히 Mercerism이라는 새로운 기술 기반 종교를 탄생시켰다. 공감은 또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열쇠기도 하다. 최신 안드로이드 모델은 인간과 거의 다른점을 찾을 수 없지만 특정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데커트에게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다. 실수하면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상자에 의존하는 인간과 인간에 흡사한 안드로이드, 과연 어느쪽이 더 인간다운가? 이 소설은 공상과학에 기반한 대중소설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고전본문
침대 곁에 놓인 기분 조절 오르간의 자동 알람이 발산하는 경쾌하고 약한 전기 자극에 릭 데카드는 눈을 떴다. 깜짝 놀란(이렇게 사전 통고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눈을 뜬다는 사실이 그는 매번 놀랍기만 했다) 그는 침대에서 나왔고, 색색의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내 아이랜은 자기 침대에 누운 채로 우울한 회색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도로 감았다.
“당신, 펜필드를 너무 약하게 설정했어.” 그가 말했다. “내가 다시 설정해놓을게. 그러면 당신도 잠에서 깼을 때-“
“내 설정 함부로 건드리지 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씁쓸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는 아내의 옆에 앉아 그녀에게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전기 자극을 어느 정도 높게 설정해놓으면, 당신도 잠에서 깼을 때 기쁜 기분이 들 거야. 그게 바로 핵심이라고. C로 설정해놓으면 의식의 문턱을 넘어설 거야. 그게 나한테 해준 것처럼.” 친근한 태도로(그는 지금 세상을 향해 호의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모두 그의 설정이 D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드러난, 창백한 어깨를 토닥였다.
“그 어설픈 형사 같은 손 좀 치우시지.” 아이랜이 말했다.
“나는 형사가 아니야.” 이제 그는 짜증을 느꼈다. 그쪽에 다이얼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당신이야 그보다 더 심하지.” 아내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형사들에게 고용된 살해자니까.”
“나는 인간을 죽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는 방금 전보다 더 짜증이 솟구쳤다. 이제는 전적으로 적대감마저 들었다.
아이랜이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그 불쌍한 앤디들*만 죽였다 이거겠지.” (*andys 안드로이드 androids의 약칭.)
“그러는 당신도 그렇게 가져온 현상금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잖아. 뭐든지 순간적으로 당신의 관심을 끄는 물건에 써버릴 때 말이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기분 조절 오르간의 조종 장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돈을 저축했더라면.” 그가 말했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지금쯤은 진짜 양을 한 마리쯤 사서 위에 있는 가짜 양을 대신할 수도 있었겠지. 기껏해야 전기 동물이라니. 최근 몇 년 동안 s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벌 수 있는 돈은 모두 벌었는데도.” 조종 장치 앞에서 그는 (분노의 기분을 없애주는) 시상 억제 물질에 다이얼을 맞출지, 아니면 (말다툼에서 이기기에 충분할 만큼 그를 집요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시상 자극 물질에 다이얼을 맞출지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 한번 다이얼을 맞춰보시지.” 아이랜이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 독설을 내뱉는 쪽으로 맞춰보란 말이야.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도 똑같이 다이얼을 맞출 거야. 그렇게 최대한도까지 다이얼을 맞추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말다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게 될 거야. 어디 한번 다이얼을 맞추고 똑똑히 보시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녀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기분 조절 오르간의 조종 장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위협에 패배한 것이었다. “나는 그냥 오늘 일정표대로 다이얼을 맞출 거야.” 그러고는 1992년 1월 3일 자 일정표를 살펴보았다.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그는 가만히 기다렸다. 아내가 동의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을 만큼은 눈치가 있었다.
“오늘 내 일정표에는 6시간에 걸친 자책성 우울이 들어 있어.” 아이랜이 대답했다.
“뭐라고? 왜 그렇게 일정표를 짰어?” 그건 기분 조절 오르간의 목적 전체를 무력화하는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당신이 그런 설정을 할 수 있다는 건 미처 몰랐는데.”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토론하기
(1) 인간의 감정을 기계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2) 아이랜은 왜 일부러 6시간이나 “자책성 우울”감을 경험하려 할까?
(3) 릭 데카트의 직업은 문제가 있는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다. 아내 아이랜은 그를살인자라고 비난하고, 릭은 자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은 살인일까 아닐까?
해설읽기
이 소설의 초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에 맞춰져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인간과 같은 ‘지능’과 ‘감정’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과 논리적 두뇌 활동을 수행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들을 ‘비인간’ 취급했던 릭도 이들에 대해 접근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드로이드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존 이시도어는 아예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구별하는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못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안드로이드도 인간이다.’라는 결말로 이 소설을 끝내지 않는다.
작중 내내 안드로이드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존은 거미를 잔혹하게 괴롭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다. 존이 작은 미물인 거미에 대해 ‘공감’을 하는 반면, 안드로이드들은 전혀 그 생물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했다. 여기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들 사이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미의 고통에 슬퍼하며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머서’라는 종교적 존재를 통해 전 인류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리더인 로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머서교와 같은 종교를 창시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머서교가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을 계속해간다.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머서교와 무관하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애초에 감정이입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영역을 타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욕구를 창출해내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안드로이드와 전기 두꺼비를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존의 모습은 인간이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감정의 구조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밑에는 그의 이성이 있다. 이성이 감정적 판단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특징은 인간 스스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안드로이드에겐 알고리즘에 의해 짜인 논리가 존재한다. 이 0과 1로 이루어진 논리시스템을 통해 안도로이드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지능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이는 인간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개발자가 짜준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딥러닝이라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나오긴 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타인이 사고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하고 그걸 실행하기 전까지 안드로이드는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기존의 알고리즘을 누군가 업데이트해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이성은 자발적인 것이며 자립적이다. 이성은 외부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감정과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이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자가발전’이 없는 한,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감정, 공감, 디스토피아, 로봇, 안드로이드, 인간, 필립 K 딕, 핵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