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1992년(이후 판본에는 2021년)[2] 파괴적인 세계 전쟁이 끝난 후,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의 대기는 UN으로 하여금 인류의 유전적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식민지로의 대량 이주를 장려하도록 한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무료 개인 안드로이드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Rosen Association은 화성의 식민지에서 안드로이드를 제조하지만 일부 안드로이드는 격렬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탈출하여 들키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경찰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 장교를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실제 살아있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은 유행하는 지위의 상징 이 되었다. 대량 멸종으로 인해 실제 동물이 희귀해졌고 그에 따른 더 큰 공감을 위한 문화적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실제처럼 보이는 로봇 모조품만 살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검은 얼굴의 전기양을 소유하고 있다.
방사능으로 생명이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정조차 공감상자에 의존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채널에 맞추고, 티비를 보려면 티비보기에 열중하는 공감 채널에, 직장에 출근할 때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드로 자신의 감정상태를 세팅하는 것이다. 공감의 증가 추세는 우연히 Mercerism이라는 새로운 기술 기반 종교를 탄생시켰다. 공감은 또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열쇠기도 하다. 최신 안드로이드 모델은 인간과 거의 다른점을 찾을 수 없지만 특정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데커트에게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다. 실수하면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상자에 의존하는 인간과 인간에 흡사한 안드로이드, 과연 어느쪽이 더 인간다운가? 이 소설은 공상과학에 기반한 대중소설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고전본문
그보다 한 발 앞에서 작은 무언가가 먼지 속에서 움직였다.
즉시 그는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플라스틱 약병을 꺼냈다. 이럴 때 쓰려고 들고 다녔던 것이다. 잘 안보이지만 살아있는 거미다. 그는 흥분에 떨면서 그것을 병 속에 넣고 바늘구멍을 낸 뚜껑을 꼭 닫았다.
[…]
존 이시도어가 말했다 “거미를 발견했어.”
세 명의 안드로이드는 TV 화면에서 그에게로 순간적으로 시선을 옮기며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어디 보자.”라고 프리스가 말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로이 바티는 “버스터가 화면에 나오는 동안에는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난 거미를 본 적이 없어,”라고 프리스는 말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약병을 엎어 놓고 그 안에 있는 생명체를 관찰했다. “다리가 엄청 많네. 왜 이렇게 많은 다리가 필요하죠, J.R.”
“거미는 원래 그래,”라고 이시도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그는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다리가 여덟 개”
프리스는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J.R? 이 다리들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덟 개라구?” 엄가드 바티가 말했다. “왜 네 개로 안 되지? 네 개를 잘라 보자.“
[중략]
“거미를 해치지 마.”라고 그(존 이시도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애원하듯이.
가위로 프리스는 거미의 다리 중 하나를 싹둑 잘랐다.
거실에서는 TV 화면 속 버스터 프렌들리가 말했다.
”배경에서 확대한 이 부분을 좀 보세요. 이건 여러분이 보통 보게 되는 하늘입니다. 잠깐만요, 연구팀장인 얼 파라미터 씨에게서 그들이 찾아낸 세상을 뒤엎을만한 발견에 대해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프리스는 손 끝으로 거미를 꼼짝 못하게 하며 다른 다리를 잘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중략]
“거미는 어때?” 그녀는 프리스의 어깨 위로 몸을 굽혔다.
프리스는 가위로 거미의 다리 하나를 또 잘라냈다. “이제 4개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거미를 밀었다. ”안 움직려 하지만 할 수 있을 거야.”
[중략]
“거미가 안 움직이려 할텐데“라고 엄가드가 말했다.
“내가 걷게 만들 수 있어.” 로이 바티는 성냥 통을 꺼내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는 성냥불을 거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들이댔고, 마침내 거미는 간신히 힘겹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중략]
무언가가 명의 안드로이드를 힘들게 했다. 끔찍한 무언가가. 거미는, 그는 생각했다. 아마도 로이 배티의 말대로 지구상의 마지막 거미였을 지도 모른다. 이제 거미는 죽었고, 머서[머서리즘의 교주]도 사라졌다. 그는 아파트가 폐허가 되어 사방에 흩어져 쎃여있는 먼지를 보았다. 그는 키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키플은 형상을 가진 모든 것의 최종적 무질서이며, 텅 빈 공허가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그가 빈 도자기 컵을 들고 서 있을 때, 키플은 그를 둘러써고 자라났다; 부엌의 찬장은 삐걱거리며 갈라졌고 그는 발밑의 바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손을 뻗어 그는 벽을 만져 보았다. 손이 닿자 벽면이 부서졌다. 회색 입자들이 간질이며 부서져 내렸는데, 부서진 회반죽 조각들은 바깥의 방사능 먼지와 비슷했다. 그가 테이블에 앉자 썩어서 속이 비어버린 튜브처럼 의자 다리가 구부러졌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컵을 내려놓고 의자를 눌러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리려고 했다. 의자는 그가 손으로 잡고있는 그대로 부서졌다. 의자의 여러 부분을 연결해 주던 나사들이 떨어져 나가 느슨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서 도자기 컵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거미줄 모양의 가는 선들이 덩굴 그림자처럼 자라나더니, 컵 가장자리에서 조각이 떨어져 거칠고 유약이 묻지 않은 안쪽이 드러났다.
“저 사람 뭐하는 거야?” 이름가드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냥 다 부수고 있잖아, 이시도르, 그만해-“
[중략]
마른 바람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그 주변에 쌓인 뼈들이 부서져 내렸다. 바람에도 뼈들이 부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단계에서. 바로 직전에 시간이 멈췄다. 여기서 올라 나가는 방법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려다보니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머서, 그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여기는 무덤의 세계고 난 다시 그 안에 있지만, 이번엔 당신은 여기 없군요.
뭔가가 그의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것을 찾았다. 그것이 너무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리 잘린 거미가 남은 다리로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거미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그는 뼈들이 되돌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거미가 다시 살아났다. 머서가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람이 불어 남은 뼈들을 부러트리고 흩어버렸지만, 그는 머서의 존재를 감지했다. 이리로 오십시오, 그는 머서에게 말했다. 내 발 위를 기어가던 어쩌던 방법을 강구해 제게 와주세요. 머서, 그는 생각했다. 그는 큰소리로 “머서!”라고 말했다.
토론하기
(1) 이시도르는 왜 거미에 집착하는가?
(2) 안드로이드들은 거미의 다리를 자르고 성냥불로 괴롭혔다. 그들과 이시도르의 차이는
무엇인가?
(3) TV에서 머시즘은 가짜고 머서는 헐리우드에서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시도르는 머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가 머서를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이 소설의 초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에 맞춰져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의 특징은 인간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지능’과 ‘감정’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과 논리적 두뇌 활동을 수행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들을 ‘비인간’취급했던 릭은 이들에 대해 접근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드로이드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존 이시도어는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의 구별은 모호해지고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작가는 ‘안드로이드도 인간이다.’라는 결말로 이 소설을 끝내지 않는다.
작중 내내 안드로이드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존은 거미를 잔혹하게 괴롭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다. 존이 작은 미물인 거미의 고통에 ‘공감’을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은 전혀 그 생물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한다. 여기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들 사이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미의 고통에 슬퍼하며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머서’라는 종교적 존재를 통해 전 인류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리더인 로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머서교와 같은 종교를 창시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머서교가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을 계속해간다.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머서교와 무관하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애초에 감정이입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영역을 타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욕구를 창출해내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안드로이드와 전기 두꺼비를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존에세서 우리는 인간이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감정의 구조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발견한다. 존의 변화의 저변에는 그의 이성이 있다. 이성이 감정적 판단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특징은 인간 스스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안드로이드에겐 알고리즘에 의해 짜인 논리가 존재한다. 이 0과 1로 이루어진 논리시스템을 통해 안도로이드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지능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이는 인간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개발자가 짜준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딥러닝이라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나오긴 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타인이 사고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하고 그걸 실행하기 전까지 안드로이드는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기존의 알고리즘을 누군가 업데이트해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이성은 자발적인 것이며 자립적이다. 이성은 외부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감정과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이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자가발전’이 없는 한,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키워드
감정, 공감, 디스토피아, 로봇, 안드로이드, 인간, 필릭 K 딕, 핵전쟁
전후맥락
1992년(이후 판본에는 2021년)[2] 파괴적인 세계 전쟁이 끝난 후,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의 대기는 UN으로 하여금 인류의 유전적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식민지로의 대량 이주를 장려하도록 한다. 지구에서 멀어지면 무료 개인 안드로이드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Rosen Association은 화성의 식민지에서 안드로이드를 제조하지만 일부 안드로이드는 격렬하게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탈출하여 들키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경찰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 장교를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실제 살아있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은 유행하는 지위의 상징 이 되었다. 대량 멸종으로 인해 실제 동물이 희귀해졌고 그에 따른 더 큰 공감을 위한 문화적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실제처럼 보이는 로봇 모조품만 살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검은 얼굴의 전기양을 소유하고 있다.
방사능으로 생명이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정조차 공감상자에 의존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채널에 맞추고, 티비를 보려면 티비보기에 열중하는 공감 채널에, 직장에 출근할 때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드로 자신의 감정상태를 세팅하는 것이다. 공감의 증가 추세는 우연히 Mercerism이라는 새로운 기술 기반 종교를 탄생시켰다. 공감은 또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열쇠기도 하다. 최신 안드로이드 모델은 인간과 거의 다른점을 찾을 수 없지만 특정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데커트에게는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다. 실수하면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상자에 의존하는 인간과 인간에 흡사한 안드로이드, 과연 어느쪽이 더 인간다운가? 이 소설은 공상과학에 기반한 대중소설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고전본문
그보다 한 발 앞에서 작은 무언가가 먼지 속에서 움직였다.
즉시 그는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플라스틱 약병을 꺼냈다. 이럴 때 쓰려고 들고 다녔던 것이다. 잘 안보이지만 살아있는 거미다. 그는 흥분에 떨면서 그것을 병 속에 넣고 바늘구멍을 낸 뚜껑을 꼭 닫았다.
[…]
존 이시도어가 말했다 “거미를 발견했어.”
세 명의 안드로이드는 TV 화면에서 그에게로 순간적으로 시선을 옮기며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어디 보자.”라고 프리스가 말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로이 바티는 “버스터가 화면에 나오는 동안에는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난 거미를 본 적이 없어,”라고 프리스는 말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약병을 엎어 놓고 그 안에 있는 생명체를 관찰했다. “다리가 엄청 많네. 왜 이렇게 많은 다리가 필요하죠, J.R.”
“거미는 원래 그래,”라고 이시도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그는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다리가 여덟 개”
프리스는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J.R? 이 다리들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덟 개라구?” 엄가드 바티가 말했다. “왜 네 개로 안 되지? 네 개를 잘라 보자.“
[중략]
“거미를 해치지 마.”라고 그(존 이시도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애원하듯이.
가위로 프리스는 거미의 다리 중 하나를 싹둑 잘랐다.
거실에서는 TV 화면 속 버스터 프렌들리가 말했다.
”배경에서 확대한 이 부분을 좀 보세요. 이건 여러분이 보통 보게 되는 하늘입니다. 잠깐만요, 연구팀장인 얼 파라미터 씨에게서 그들이 찾아낸 세상을 뒤엎을만한 발견에 대해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프리스는 손 끝으로 거미를 꼼짝 못하게 하며 다른 다리를 잘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중략]
“거미는 어때?” 그녀는 프리스의 어깨 위로 몸을 굽혔다.
프리스는 가위로 거미의 다리 하나를 또 잘라냈다. “이제 4개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거미를 밀었다. ”안 움직려 하지만 할 수 있을 거야.”
[중략]
“거미가 안 움직이려 할텐데“라고 엄가드가 말했다.
“내가 걷게 만들 수 있어.” 로이 바티는 성냥 통을 꺼내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는 성냥불을 거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들이댔고, 마침내 거미는 간신히 힘겹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중략]
무언가가 명의 안드로이드를 힘들게 했다. 끔찍한 무언가가. 거미는, 그는 생각했다. 아마도 로이 배티의 말대로 지구상의 마지막 거미였을 지도 모른다. 이제 거미는 죽었고, 머서[머서리즘의 교주]도 사라졌다. 그는 아파트가 폐허가 되어 사방에 흩어져 쎃여있는 먼지를 보았다. 그는 키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키플은 형상을 가진 모든 것의 최종적 무질서이며, 텅 빈 공허가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그가 빈 도자기 컵을 들고 서 있을 때, 키플은 그를 둘러써고 자라났다; 부엌의 찬장은 삐걱거리며 갈라졌고 그는 발밑의 바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손을 뻗어 그는 벽을 만져 보았다. 손이 닿자 벽면이 부서졌다. 회색 입자들이 간질이며 부서져 내렸는데, 부서진 회반죽 조각들은 바깥의 방사능 먼지와 비슷했다. 그가 테이블에 앉자 썩어서 속이 비어버린 튜브처럼 의자 다리가 구부러졌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컵을 내려놓고 의자를 눌러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리려고 했다. 의자는 그가 손으로 잡고있는 그대로 부서졌다. 의자의 여러 부분을 연결해 주던 나사들이 떨어져 나가 느슨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서 도자기 컵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거미줄 모양의 가는 선들이 덩굴 그림자처럼 자라나더니, 컵 가장자리에서 조각이 떨어져 거칠고 유약이 묻지 않은 안쪽이 드러났다.
“저 사람 뭐하는 거야?” 이름가드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냥 다 부수고 있잖아, 이시도르, 그만해-“
[중략]
마른 바람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그 주변에 쌓인 뼈들이 부서져 내렸다. 바람에도 뼈들이 부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단계에서. 바로 직전에 시간이 멈췄다. 여기서 올라 나가는 방법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려다보니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머서, 그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여기는 무덤의 세계고 난 다시 그 안에 있지만, 이번엔 당신은 여기 없군요.
뭔가가 그의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것을 찾았다. 그것이 너무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리 잘린 거미가 남은 다리로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거미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그는 뼈들이 되돌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거미가 다시 살아났다. 머서가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람이 불어 남은 뼈들을 부러트리고 흩어버렸지만, 그는 머서의 존재를 감지했다. 이리로 오십시오, 그는 머서에게 말했다. 내 발 위를 기어가던 어쩌던 방법을 강구해 제게 와주세요. 머서, 그는 생각했다. 그는 큰소리로 “머서!”라고 말했다.
토론하기
(1) 이시도르는 왜 거미에 집착하는가?
(2) 안드로이드들은 거미의 다리를 자르고 성냥불로 괴롭혔다. 그들과 이시도르의 차이는
무엇인가?
(3) TV에서 머시즘은 가짜고 머서는 헐리우드에서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시도르는 머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가 머서를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설읽기
이 소설의 초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에 맞춰져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의 특징은 인간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지능’과 ‘감정’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과 논리적 두뇌 활동을 수행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들을 ‘비인간’취급했던 릭은 이들에 대해 접근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드로이드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존 이시도어는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의 구별은 모호해지고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작가는 ‘안드로이드도 인간이다.’라는 결말로 이 소설을 끝내지 않는다.
작중 내내 안드로이드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존은 거미를 잔혹하게 괴롭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다. 존이 작은 미물인 거미의 고통에 ‘공감’을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은 전혀 그 생물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한다. 여기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들 사이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미의 고통에 슬퍼하며 안드로이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머서’라는 종교적 존재를 통해 전 인류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리더인 로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머서교와 같은 종교를 창시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머서교가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입을 계속해간다.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머서교와 무관하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애초에 감정이입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영역을 타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욕구를 창출해내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안드로이드와 전기 두꺼비를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존에세서 우리는 인간이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감정의 구조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발견한다. 존의 변화의 저변에는 그의 이성이 있다. 이성이 감정적 판단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특징은 인간 스스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안드로이드에겐 알고리즘에 의해 짜인 논리가 존재한다. 이 0과 1로 이루어진 논리시스템을 통해 안도로이드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지능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이는 인간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개발자가 짜준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딥러닝이라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나오긴 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타인이 사고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 누군가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하고 그걸 실행하기 전까지 안드로이드는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기존의 알고리즘을 누군가 업데이트해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이성은 자발적인 것이며 자립적이다. 이성은 외부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감정과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이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자가발전’이 없는 한,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키워드
감정, 공감, 디스토피아, 로봇, 안드로이드, 인간, 필릭 K 딕, 핵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