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소크라테스는 길을 걷던 도중 우연히 만난 동료에게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히포크라테스라는 청년이 소크라테스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들기고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호들갑을 떤다. 유명한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가 지금 아테네에 와 있고 그로부터 배움을 구하고 싶으니 자신과 함께 그를 찾아가 소개도 해주고 대신 대화도 나눠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기 돈은 물론 친구들의 돈까지 빌려 소피스트에게 배우기 위한 거액의 수업료를 낼 각오가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가 소피스트에게 배움을 청하는 것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진지한 반성 없이 그저 들떠있음을 깨닫고 그를 자기 집 뒤뜰로 데려가 히포크라테스를 상대로 과연 그의 결심이 타당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시험하기 시작한다.
고전본문
“자네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는 있나?” ― “무엇에 대해서 말씀이세요?” ―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 영혼을 소피스트에게 보살펴달라고 맡기는 것 말이야. 소피스트가 어떤 자인지 자네가 알고 있다면 나는 놀랄 걸세. 하지만 만약 모르고 있다면, 자네는 영혼을 누군가에게 맡기면서 그가 무엇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셈이지.” ― “아는 것도 같은데요.” ― “그럼 말해보게. 소피스트는 어떤 자인가?” ― “제 생각으로는 이름 그대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 ― “그건 화가나 목수도 마찬가지잖나…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러니까 ‘소피스트는 무엇에 대해서 지혜로운 것들을 아는 자인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뭐라고 대답할까?” ― “말하는데 유능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 뭐라고 말하겠어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충분하지는 않네… 예컨대 키타라 연주자는 키타라 연주에 관해서 분명 말하는데도 유능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네. 그렇지?” ― “그렇죠.” ― “그래. 그럼 소피스트는 무엇에 대해 말하는데 유능하게 만들어주지?” ― “분명 자기도 알고 있고 배우는 사람도 알도록 해주는 그 분야겠지요.” ― “물론 그렇겠지. 그래서 그 자신도 알고 있고 또 배우는 사람도 알도록 해주는 그 분야라는 것이 대체 뭔가?” ― “아이고.. 더 이상은 답변을 하지 못하겠네요.” … “자네는 프로타고라스를 ‘소피스트’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네 자신을 내맡기려고 하는 그 소피스트가 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분명하네.” 히포크라테스가 듣고 대답했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 “자, 히포크라테스, 소피스트는 영혼을 양육하는 상품들의 교역 상인이나 행상인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는데.” ― “그런데 소크라테스 선생님, 영혼은 무엇으로 양육되나요?” 내가 말했네. “그건 당연히 배움일 테지. 이봐, 소피스트가 스스로 팔려고 내놓은 것들을 찬양하면서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해야 하네. 몸의 양식에 관한 교역 상인이나 행상인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 중 어떤 것이 몸에 이롭고 해로운지 알지 못하면서도 팔고 있는 것들은 무조건 찬양하지. 또 그걸 사려는 사람들도 마침 그가 체육 전문가나 의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모를 것이네. 이와 마찬가지로, 친구여, 배울 거리를 이 나라 저 나라로 가지고 가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고자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판매하는 것을 전부 찬양하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영혼에 이롭고 해로운지 알지 못하고 있을 거야… 가장 중요한 것에 있어서 주사위 던지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하네. 먹을거리를 살 때보다 배울 거리를 살 때 더 위험하니까 말이야.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는 행상이나 교역 상인에게 사서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올 수도 있고, 먹고 마심으로써 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전문가를 불러 먹거나 마셔야 할지, 얼마나 먹고 마셔야 할지, 언제 그래야 할지 조언을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일세. 그러니 이것들을 살 때 큰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네. 반대로, 배울 거리는 다른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올 수 없고, 돈을 지불하고 배운 것을 영혼 속에 담아서 배운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그러니 이것을 우리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세.“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배우려고 하는 히포크라테스의 행동이 경솔하다고 지적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2) 배움을 청하기 좋은 선생님과 좋지 않은 선생님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일까?
해설읽기
작품 속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유명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왔다는 소식만으로 몹시 흥분해서는 동이 트기도 전에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자기를 대신해 프로타고라스와 대화를 나눠달라고 한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단순히 몇 마디의 대화가 아니라 프로타고라스의 제자가 되어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친 히포크라테스는 너무 경솔하다. 히포크라테스가 정말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프로타고라스가 가르칠 수 있다고 공언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그가 정말로 그 앎을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전달해줄 올바른 방법도 가지고 있는지 등등. 하지만 히포크라테스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숙고는 하지 않은 채 ‘프로타고라스’라는 이름이 가진 유명세와 권위에 미혹되어 충분히 생각해 보기도 전에 거액의 수업료 납부도 불사해가며 당장이라도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과속 페달을 밟고 너무 앞질러 가버린 히포크라테스의 영혼을 붙잡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도대체 프로타고라스가 어떤 사람이기에 또 무엇이 되고자 그를 찾아가려는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그를 찾아간다면, 그는 아마도 그 사람이 피아니스트이고 자신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누군가 유명 축구 선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그를 찾아간다면, 아마도 그는 그 사람이 축구선수이고 자기 자신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찾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뭔가 배우고자 그를 찾아가려는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소피스트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소피스트가 되고자 찾아가려는 셈이 된다. 그러나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소피스트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안뜰에서 시험하려 한 것은 히포크라테스가 과연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앎과 성찰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히포크라테스의 경솔함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키워드
덕, 미덕, 배움,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전후맥락
소크라테스는 길을 걷던 도중 우연히 만난 동료에게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히포크라테스라는 청년이 소크라테스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들기고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호들갑을 떤다. 유명한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가 지금 아테네에 와 있고 그로부터 배움을 구하고 싶으니 자신과 함께 그를 찾아가 소개도 해주고 대신 대화도 나눠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기 돈은 물론 친구들의 돈까지 빌려 소피스트에게 배우기 위한 거액의 수업료를 낼 각오가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가 소피스트에게 배움을 청하는 것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진지한 반성 없이 그저 들떠있음을 깨닫고 그를 자기 집 뒤뜰로 데려가 히포크라테스를 상대로 과연 그의 결심이 타당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시험하기 시작한다.
고전본문
“자네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는 있나?” ― “무엇에 대해서 말씀이세요?” ―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 영혼을 소피스트에게 보살펴달라고 맡기는 것 말이야. 소피스트가 어떤 자인지 자네가 알고 있다면 나는 놀랄 걸세. 하지만 만약 모르고 있다면, 자네는 영혼을 누군가에게 맡기면서 그가 무엇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셈이지.” ― “아는 것도 같은데요.” ― “그럼 말해보게. 소피스트는 어떤 자인가?” ― “제 생각으로는 이름 그대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 ― “그건 화가나 목수도 마찬가지잖나…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러니까 ‘소피스트는 무엇에 대해서 지혜로운 것들을 아는 자인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뭐라고 대답할까?” ― “말하는데 유능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 뭐라고 말하겠어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충분하지는 않네… 예컨대 키타라 연주자는 키타라 연주에 관해서 분명 말하는데도 유능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네. 그렇지?” ― “그렇죠.” ― “그래. 그럼 소피스트는 무엇에 대해 말하는데 유능하게 만들어주지?” ― “분명 자기도 알고 있고 배우는 사람도 알도록 해주는 그 분야겠지요.” ― “물론 그렇겠지. 그래서 그 자신도 알고 있고 또 배우는 사람도 알도록 해주는 그 분야라는 것이 대체 뭔가?” ― “아이고.. 더 이상은 답변을 하지 못하겠네요.” … “자네는 프로타고라스를 ‘소피스트’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네 자신을 내맡기려고 하는 그 소피스트가 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분명하네.” 히포크라테스가 듣고 대답했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 “자, 히포크라테스, 소피스트는 영혼을 양육하는 상품들의 교역 상인이나 행상인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는데.” ― “그런데 소크라테스 선생님, 영혼은 무엇으로 양육되나요?” 내가 말했네. “그건 당연히 배움일 테지. 이봐, 소피스트가 스스로 팔려고 내놓은 것들을 찬양하면서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해야 하네. 몸의 양식에 관한 교역 상인이나 행상인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 중 어떤 것이 몸에 이롭고 해로운지 알지 못하면서도 팔고 있는 것들은 무조건 찬양하지. 또 그걸 사려는 사람들도 마침 그가 체육 전문가나 의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모를 것이네. 이와 마찬가지로, 친구여, 배울 거리를 이 나라 저 나라로 가지고 가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고자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판매하는 것을 전부 찬양하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영혼에 이롭고 해로운지 알지 못하고 있을 거야… 가장 중요한 것에 있어서 주사위 던지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하네. 먹을거리를 살 때보다 배울 거리를 살 때 더 위험하니까 말이야.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는 행상이나 교역 상인에게 사서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올 수도 있고, 먹고 마심으로써 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전문가를 불러 먹거나 마셔야 할지, 얼마나 먹고 마셔야 할지, 언제 그래야 할지 조언을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일세. 그러니 이것들을 살 때 큰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네. 반대로, 배울 거리는 다른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올 수 없고, 돈을 지불하고 배운 것을 영혼 속에 담아서 배운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그러니 이것을 우리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세.“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배우려고 하는 히포크라테스의 행동이 경솔하다고 지적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2) 배움을 청하기 좋은 선생님과 좋지 않은 선생님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일까?
해설읽기
작품 속에서 히포크라테스는 유명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왔다는 소식만으로 몹시 흥분해서는 동이 트기도 전에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자기를 대신해 프로타고라스와 대화를 나눠달라고 한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단순히 몇 마디의 대화가 아니라 프로타고라스의 제자가 되어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친 히포크라테스는 너무 경솔하다. 히포크라테스가 정말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프로타고라스가 가르칠 수 있다고 공언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그가 정말로 그 앎을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전달해줄 올바른 방법도 가지고 있는지 등등. 하지만 히포크라테스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숙고는 하지 않은 채 ‘프로타고라스’라는 이름이 가진 유명세와 권위에 미혹되어 충분히 생각해 보기도 전에 거액의 수업료 납부도 불사해가며 당장이라도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과속 페달을 밟고 너무 앞질러 가버린 히포크라테스의 영혼을 붙잡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도대체 프로타고라스가 어떤 사람이기에 또 무엇이 되고자 그를 찾아가려는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그를 찾아간다면, 그는 아마도 그 사람이 피아니스트이고 자신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누군가 유명 축구 선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그를 찾아간다면, 아마도 그는 그 사람이 축구선수이고 자기 자신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찾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뭔가 배우고자 그를 찾아가려는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소피스트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소피스트가 되고자 찾아가려는 셈이 된다. 그러나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소피스트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안뜰에서 시험하려 한 것은 히포크라테스가 과연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앎과 성찰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히포크라테스의 경솔함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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